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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리뷰한 엑소더스 저자의 또 다른 책이다. 워낙 좋은 책이어서 이것도 읽어 봤는데 전반적으로 괜찮다. 세부적으로는 동의 못 하는 면도 있지만. 아쉽게도 출간된 지 좀 된 책이다. 원서 기준으로 2007년 출간됐기 때문에, 그 때와 지금 간의 시대 차이에 유의해서 읽어야 한다. 경제위기 전후로 정치질서와 경제질서가 많이 달라졌다. 

원제 The Bottom Billion(밑바닥 10억 명)과 부제 '극빈국 10억 인구의 위기'에서 알 수 있듯, 제목에서 빈곤은 '세계의 최빈곤층 10억 명'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프리카의 굶어가는 아이들' 이미지를 상상하면 얼추 맞는다. 

그렇다면 세계 밑바닥 국가들의 빈곤은 도대체 왜 문제일까? 국민들이 여유로운 삶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힘든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이 비참함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들 국가들은 생활수준이 몇 십 년 동안 제자리걸음 수준이며, 콩고민주공화국처럼 치명적 내전을 겪은 몇몇 국가는 오히려 악화되기까지 했다. 또 지금처럼 한다면 앞으로도 비참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예측된다. 

더 비참한 것은 다른 국가들은 몇십 년 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당장 한국, 대만, 중국, 베트남, 인도의 과거와 현재만 비교해도 답이 나온다. 정도는 좀 약하지만 동남아시아나 구 공산권 국가들도 많은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그러나 최빈국들은 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소외되어 뒤쳐지고 있다. 이 경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밀라노비치의 연구에 따르자면, 1988-2008년 사이 세계적으로 생활수준이 크게 증가했지만 이 경향에서 예외적인 두 집단이 있는데, 바로 포퓰리즘의 주동세력으로 지목받는 선진국 빈곤층과, 이 책에서 말하는 세계 최빈곤층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는 건 도의적으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옛날 책이라 언급은 안 됐지만 시리아 내전만 봐도 그렇다. 시리아가 최빈곤국은 아니지만 내전으로 최빈곤국처럼 삶이 고달파지자 많은 시리아인이 유럽에 난민으로 몰려갔는데, 이는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을 불러일으켰으며, 난민 받기 꺼려하는 국가들이 서로 갈등을 빚는 등 유럽 선진국들에 혼란을 불러왔다. 


그렇다면 왜 세계 최빈곤국들은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하는가? 저자는 최빈곤국의 고질병 네 요인을 지적한다. 첫 번째는 나라를 분열시키는 내전이다. 빈곤국들은 국가 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경제적 충격에도 바로 내전에 빠질 수 있다. 이 경우 국가 기반 전체가 전쟁에 총동원되고, 사람들이 기아와 학살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기란 어렵다. 설령 내전이 끝나더라도 무시못할 확률로 재발한다. 이러니 경제성장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거기에 반란세력은 겉으론 독립운동처럼 고상해 보일지라도 속살을 들추면 사리사욕을 위한 군벌의 무자비한 폭력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서방에서 이미지만 보고 반란세력들의 내란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는데, 이런식의 폭력은 늘 그렇듯 명분이 있어보여도 폭력은 폭력이라는 내 사고만 더 확실해졌다. 

두 번째는 흔히 자원의 저주라 말하는 천연자원. 천연자원이 발견되고 수출되면 화폐 가치가 상승해 기존 상품들의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네덜란드 병이라 한다. 또 천연자원은 선진적인 국가체제를 만드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국가가 천연자원을 차지한 경우 국가가 별 노력 없이도 국민들을 경제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부패하고 무능하고 비민주적인 시스템에 안주하게 만든다. 또 최빈곤국들에서 천연자원은 자칫 천연자원을 재정적 기반으로 할동하는 반란세력만 키울 수 있다.[각주:1] 

세 번째는 내륙국으로서의 지리적 한계이다. 세계 최빈곤국 상당수는 해안이 없는 내륙국이며, 이는 국제 무역에 있어 매우 불리하다. 육로는 해운보다 운송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데다, 세계 최빈곤국들은 인프라가 극악이기 때문에 운송비용이 더더욱 치솟는다. 거기에 최빈곤국들은 주변국가들도 최빈곤국들인 경우가 많으므로,  주변 국가의 경제성장으로부터 상호 이득을 얻기는 커녕 옆 나라의 내전에 말려들기 십상이다.  

마지막은 최빈곤국들의 엉망진창인 내정이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빈곤국 정부의 부패, 무능, 폭정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최빈곤국인 차드에선 재무부가 여러 기관을 거쳐 지방 보건소에 국비를 지원하는데, 조사 결과 지방 보건소에 실제로 도달한 액수는 재무부 국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부패로 공공자금의 99% 이상이 증발한 셈이다. 이정도면 국민들에게 국가라는 개념은 없다고 봐야 한다.


 최빈곤국들이 이런 비참함에서 탈출할 방법은 있을까? 다행히 희망은 있다고 한다. 현명하고 득이 되는 원조정책, 군사적 개입, 법률과 헌장을 통한 최빈곤국 국가시스템의 선진화, 무역 정책 개혁이 그 답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서구 선진국들이 이미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소극적이었기 대문에 제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빈곤국들이 빈곤을 탈출하려면 더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선진국들은 국가 간 외교 혹은 국제단체를 통해 최빈곤국들과 적극적으로 공조하며 경우에 따라선 내정에 개입할 필요도 있다고 한다. 

 글이 너무 길어지니 원조정책과 무역정책 개혁만 예로 들어보자. 최빈곤국들에 원조를 하는 경우, 부정부패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게 원조 지원국의 내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원조는 많이 하면서도 원조 지원국을 감시하는 데 소홀해왔기 때문에 원조의 제 효과를 못 봤다. 또 원조정책을 담당하는 조직은 파워나 발언권이 약해 현장의 목소리가 상부에 제대로 닿지 못하고, 상위 조직의 결정에 끌려다니게 되었다. 기존의 무역정책도 문제가 많았다. 선진국 좌파들은 개발도상국들을 위한답시고 고관세 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최빈곤국들의 경제적 행위자들이 자유무역에서 보호받게 되어 과도한 지대를 누리도록 만들었다. 또 자국 산업을 보호한답시고 고관세 정책을 펼친 선진국도 있는데, 이는 빈곤국의 농업/산업이 발달할 기회를 박탈하고 말았다. 

 이렇게 현실파악 없이 좋은 의도만 앞세워서는 안 되며, 진정으로 최빈곤국들을 위한 경제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최빈곤국들이 제자리걸음하는 이유는 잘 짚어냈으나, 그 해답이 비현실적이며 이 시대엔 더더욱 실현 불가능하다고 본다. 해답이라고 내 놓은 것들이 원조정책의 현실화나 무역 정책 개혁과 같은 걸 제외하면 뜬구름 잡는 수준의 이야기다.  스스로 내놓은 정책이나 어젠다를 더 구체화해서 이야기해야 했지만 저자는 그러지 못했다. 

또한 이런 해결책들은 국제정치의 활성화와 선진국들이 최빈곤국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섬을 전제하는데, 아쉽게도 현재 국제정세와 국제경제는 아예 정반대로 가고 있다. 책 출간 당시는 2007년이었는데 그 때는 국제정치 문제가 지금처럼 심하지도 않았고, 자유시장과 선진국의 선의를 통한 경제발전에 대한 믿음이 팽배했던 시기다. 그러나 2008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경기불황으로 선진국들마저 내 코가 석자가 되어 옛날만큼 최빈곤국들에 관심과 재원을 쏟아붓기 어려워졌다. 또 세계적으로 포퓰리즘 정치가 유행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기존의 자유주의적인 국제정치가 위협받고 있다. 

현재 서구권 선진국들은 어느 정도 민주주의나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에만 원조하고 투자하나(위에서 말했듯 감시를 안 하긴 하지만), 중국은 그냥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국가거나 부패가 심한 국가일지라도 투자하고 원조한다. 이는 국가 시스템을 선진화시켜야하는 최빈곤국들의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게 만든다. 당장 12년 된 이 책에서도 중국의 무책임한 국제경제정책은 비판받은 바 있는데, 이는 개선되기는커녕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더 악화되었으며, 아예 민주주의와 인권 챙기는 서구적인 국제경제정책과 1대 1로 비견될만큼 중국의 경제정책은 체급이 커져버렸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변화는 최빈곤국들의 경제발전을 방해할 것이다. 만약 저자의 주장들과 예언이 다 맞다면, 최빈곤국들은 앞으로도 발전하지 못할 것이며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우울한 예측이 그려진다. 아니 제자리걸음 정도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최빈곤국들은 높은 출산율로 인구가 급증하고 있으며, 그 상황에서 기후변화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을 것이다.[각주:2] 이 경우 국가기반이 위태로워져 대기근, 내전, 국가 붕괴를 불러올 확률이 높아진다. 최악의 예측이긴 하지만, 최빈곤국들이 몰려있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남아공 보츠와나 같은 몇몇 멀쩡한 나라를 제외하면 지역 단위로 한꺼번에 붕괴할 수도 있다. 


다만 저자의 해결책이 빗나간 것은 저자의 잘못만은 아니다. 옛날 책이기에, 현재의 세계질서 변화까지 고려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부적으론 아쉬움이 있지만, 저자 입장에선 차선 정도의 해결방안과 미래예측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어지간한 학자들보다 최빈곤국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고. 특히 원조/무역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것을 고려해서 10점 만점에 8점을 주겠다. 


+ 진보좌파들은 읽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위에서 말한 잘못된 무역정책 건도 크지만, 불의에 대한 항거라는 레토릭에 속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내전을 미화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빈곤국들에 실재하는 가난 문제를 경시했다. 성장만능주의라면 모를까, '최빈곤국에는 성장이 중요하다'는 수준의 논문에 국제단체들이 반발했다던데 이게 제정신인가? 애 다섯 낳으면 한 명은 어릴 때 떠나보내야 하고, 흉년 나면 친족 중 누군가가 굶어죽어야 하고, 내전나면 소년병으로 끌려가고 질병으로 죽어가는 삶이 그리 낭만적으로 보이나. 다행히 요즘 진보좌파는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진정 최빈곤국들의 삶을 돌보는 진보좌파가 되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


  1. 최근만 해도, 이라크 북부지역의 석유자원을 경제적 바탕으로 삼은 ISIS의 사례가 있다. [본문으로]
  2. 예전에 쓴 글에서도 말했지만, 최빈곤국들은 기후의 관점에서 사람 살기 힘든 지역인 경우가 절대다수다. 기후가 조금이라도 변화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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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이 종교적 광신, 빈곤, 독재, 종파 갈등, 내전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분쟁지역이 된 근원을 다룬 책. 3-4년 전에 사놓고 어제야 다 읽었다. 

이 책에선 중동이 분쟁지역이 된 것은 오스만 제국이 세계 1차대전 직후 멸망하고 여러 국가들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그 기간인 1910-1922년의 중동 역사를 900페이지에 매우 상세하게 설명했다. 

주제가 딱딱해 보이는데도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다. 1910-22년 사이의 중동사를 정치인과 국가들의 시점에서 몰입감 있고 재미있게 묘사해간 저자와 깔끔하게 번역해낸 번역자 덕분이다. 덕분에 900페이지짜리 두꺼운 책을 비교적 쉽게 완독할 수 있었다. 보석같은 책 내용을 머리 속에 솔솔 들어오도록 한 저자와 번역자에게 감사한다. 


그렇다면 왜 중동은 지금같은 분쟁지역이 되었을까? 900페이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자면, 

중동에 관여했던 행위자들 전부 상상 이상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새x들이어서. 


저때 중동엔 국가 단위든 정치인 단위든 관료 조직 단위든 제대로 된 행위자들이 하나도 없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만 (오스만에서의) 아랍 독립세력 전부 다. 보면서 한숨나오고 뒷골땡기고 뒷목잡은 부분이 한 두 구절이 아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 '제국주의 열강들이 중동지역의 역사나 지리와 무관한, 자기들 이익에 맞춘 자의적인 국경선을 그은 것이 중동 재앙의 시작이었다' 정도의 지식은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로 무능하고 무책임했을 줄은 몰랐다. 전에 인용했던 이 구절은 수많은 막장행태 모음집의 하나일 뿐이다.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문제만도 아니라 더 놀라울 따름이다. 문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다. 얼마나 일이 엉망으로 돌아갔냐면, 현대 중동이 지금보다도 더한 극한상황이어도 충분히 납득됐을 정도다. 심지어 영국과 프랑스는 책 읽고 인상이 더 나빠졌다. 이게 위대한 제국들의 속살인가 싶었다.  

일일히 인용하기엔 너무 많으니, 문제가 된 행태들의 패턴만 언급해보자. 

1. 내부 조율의 부재. 국가 내에서 의견 통일이 좀체 되질 않는다. 아니 국가 내 정도면 양반이고 조직 내부에서도 온갖 내분이 일어난다. 건설적이지 못하며 문제해결을 방해할 정도로. 

2. 명령/지휘체계의 무력화. 조직의 중간관리자가 상부 보고 없이 제 멋대로 행동한다. 

3. 정확한 정보통신의 부재. 통신 문제로 명령이 제대로 하달되지 않아 엉뚱한 지꺼리를 하고 만다.   

4. 상식을 뛰어넘는 무모한 군사작전들. 아무리 20세기 초였다지만 정말 정신 나간 작전이 많았다.

5. 상대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의 부재. 그 위대한 대영 제국에서, 세계 1차대전 발발 시점에 (전쟁 상대국) 오스만의 역사나 문화를 상세하게 설명한 책이 한 권 뿐이었다는 게 말이 되냐? 

6. 모호하며 수도 없이 바뀌는 동맹과 적. 세계 1차대전 일어나기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어느 나라가 누구랑 한 편을 맺을 지 확실하지 않았으며, 세계 1차대전 중엔 러시아에서 혁명이 벌어지고 터키에서 술탄과 신흥세력이 대립하면서 기존의 동맹-적 구도가 완전히 꼬여버렸다. 

7. 타국과 중요한 협약을 맺는 데 실무 경험 없는 신입 공무원을 두기.  

8. 기초적인 사실관계 파악도 안 하고 대충대충 약속하고 협약 맺기.

8-1. 그리고 몇 달 만에 괜히 약속/협약 맺었다고 후회하기.   

9. 자기 이익을 위해 손바닥 뒤집듯 말 바꾸기. 

10. 약속/협약을 모호하게 맺어 해석으로 2라운드 분쟁 벌어지게 하기.


이런 식의 행태를 모든 행위자들이 상습적으로 해댔으니 중동이 멀쩡한 게 더 이상할 거다. 여기 나온 행위자 모두 경영학/MBA 수업 시간에 '실패한 조직'의 사례로 내밀어도 할 말 없다. 3,6번이야 외부 조건이 안 좋았다 쳐도, 나머지는 실드를 쳐 줄 수가 없다. 이렇게 면밀하게 따져들어가면 문제 없는 조직이 없겠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물론 행위자들이 병x이라서 중동이 이렇게 된 것만은 아니다. 중동은 서구 열강들과는 여러모로 이질적인 지역이며, 아예 세상 돌아가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아니 달랐다 정도도 순화된 표현이고, 동은 굳이 유럽인이 아니더라도 외부인이 통치하고 관리하기 정말 어려운 지역이었다.

확실한 역사와 영토, 내부 시스템을 갖춘 국민국가로 가득한 유럽과 달리, 세계 1차대전 직전까지만 해도 중동엔 오스만이나 이란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 형태 갖춘 나라들이 없었다. 그나마 오스만 이란 모두 제국이라 유럽식 국민국가는 아예 없고,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동엔 이집트 정도를 제외하면 오스만과 이란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역사를 지닌 지역이 없었다. 그렇다고 중동 전 지역을 오스만과 이란 이집트 차지로 만들 수도 없었다. 두 나라 모두 점차 영토를 잃고 몰락해가면서, 중동 지역 상당 부분이 무질서화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아예 영국이 가져갔고. 거기에 아라비아 반도 남쪽은 헤자즈[각주:1]의 후세인 세력과 리야드[각주:2]의 사우드 세력이 서로 아라비아 반도의 패권을 장악하겠다고 싸워대는 혼란의 상황이었다. 거기에 중동인들은 서구식 세속주의를 원하지 않았으며, 이슬람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으며 비무슬림이 자기 지역 지도자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심지어 사우드 세력은 이슬람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와하비즘의 계승자였다. 

이런 식이었으니, 서구 열강이 중동 지역을 재편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최소한의 지식도 없이 중동을 다루려 했고, 자기 이해관계를 위해 중동을 이용하려 들다 문제를 악화시킨 건 백 번 까여야 마땅하지만, 유럽의 행태가 약간이나마 이해는 간다.


분량이 정말 많은데 정말 내용이 알차다. 읽기에도 편하고. 내 인생의 책으로 꼽을만한 명저다. 10점 만점에 10점. 분량이 많고 비싸지만, 현대 중동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책이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1. 아라비아 반도의 중서부 해안지역. 이슬람의 두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위치해 있다. [본문으로]
  2. 아라비아 반도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 현재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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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90% + 미세먼지 10%로 구성된 지구환경 입문서적. 

실생활에서 중요한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이슈를 중심으로 쓴 책이라 재미있게 읽힌다. 글을 딱딱하지 않고 쉽게 썼으면서도 구체적인 수치, 연구자료, 논문 등을 인용해 깊이있는 논의를 펼치는 게 좋다. 주제는 핫이슈지만 읽다보면 어느 새 지구환경 기초지식을 갖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괜찮은 입문서적이라 개인적으론 8/10점. 왜 미세먼지가 이리 심하고 어찌 해결해야 할지, 기후변화가 어떻게 돌아가며 뭘 해야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특히 추천한다. 개인적으론 미세먼지 심할 때 인공강우를 하는 게 효과적이지 못한 이유를 언급한 부분이 특히 인상깊었다. 요즘 이슈와 여론에 제일 직접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미세먼지에 대한 분량이 적은 건 아쉬웠다. 요즘 핫이슈인데 좀 분량 많고 깊이 있게 다뤘으면 어땠을까 쉽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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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이 좋은지 말만 앞세우지 말고 그 우월함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정치인들이라면 민주주의, 자유, 인권을 앞세우는 정치인이 그렇지 않은 정치인보다 우월하다는 걸 현실정치에서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전세계적인 민주주의, 자유, 인권 후퇴를 보면서 "저걸 부정하는 미x 놈들은 뭐야?"하는 생각만 했었는데(왜 저런 생각을 하나 이해는 돼도),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에 회의적인 인간만 탓하기엔 상태가 많이 나빠졌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전세계 흐름이 그렇다. 왜 저들이 이상한 걸 우리가 바로잡아야 하냐 생각이 들 지 모르지만, 그걸 따지기 전에 가만히 있으면 상태가 더 나빠질 것임은 분명하다. 어떻게든 먼저 나서야 문제를 줄일 수 있고, 그 나서는 방법 중 제일 좋은 것은 상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의 위대함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을 앞세운 정치세력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게 사실이라 더 그렇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막상 정치 시작하면 위선적이고 비겁하고 무능한 부류들을 왜 신뢰해야 하는데? 몇십 년 전에나 통할 이야기가 머리속에 깊숙히 쳐박히고, 정책 담당자의 머릿속은 꽃밭, 현장은 그냥 개무시.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이니 앞세웠던 진보적인 개념들도 빛이 바랠 수밖에. 


이 정도까지 갈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만약에 민주주의, 자유, 인권 개념이 세계적으로 몰락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자유, 인권을 앞세운 무책임한 인간들 탓일 것이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의의를 가졌고, 여러 무시 못할 이점들이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적인 기류가 지속적으로 만연해진다면 그들 주장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강한 반감을 주는 옷을 억지로 입어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가 잘 해야 한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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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의 밑바닥엔 끝이 없다. 

어떤 곤궁과 비참함을 생각하든 그 이상의 비참함이 존재하는 곳이 과거와 현재의 지구촌이다. 문자 그대로 생존만 하는 삶 밑에는 굶어죽는 삶이 존재하며, 전쟁에서 총살당하는 삶 밑에는 전쟁에서 흉기로 고통스럽게 고문당하다 살해당하는 삶이 있다. 이렇게 문자 그대로 생존만 하거나 생존조차 위협받는 사람들이 지구촌에 10억 명이 넘는다. 그렇다고 세상이 나빠진 것도 아니며, 오히려 2에서도 말해냈지만 그나마 개선된 게 이 지경이다. 세상을 더 밝게 만들려면,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끔찍한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2. 인류는 분명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뤄냈다. 

세계 어느 곳이든 평균수명, 영아 사망률, 교육 수준, 구매력 소득 등 거의 모든 물질적 지표는 100년 간 엄청나게 개선되었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면 이를 인정하고, 이 발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3. 선진국에서 당연한 현상들이 개발도상국에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선진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개발도상국에선 버젓이 일어난다. 일상 공무를 처리하려면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게 필수적이라던가, 군부가 국가 경제 상당수를 장악하고 있다던가, 글자도 못 읽는 사람들(특히 여자)이 넘쳐나거나, 통합된 국민 개념이 존재하지 않거나, 국가의 공권력이 국토 전역에 미치지 못하고 민병대가 날뛴다거나, 복수심에 불타 이웃국가와 잘 지내긴 커녕 상대국을 고의로 골탕먹이려는 외교를 펼친다던가... 우리가 당연시한 개념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4. 개발도상국은 선진국과는 다른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치관적 기반을 가졌기에, 선진국에서나 통할 정책이나 개념을 개발도상국에 함부로 이식하려 하면 안 된다. 

선진국들의 역사 및 시스템은 일단 서구의 것이다.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중국과 미국의 가족문화가 다르며, 독일과 파키스탄의 정치시스템이 다르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서구권 국가들에게 서구식 정책/개념/시스템을 도입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 잘 해 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며, 이식하는 국가의 사회구조와 잘못 얽혀버리면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3과는 다른 이야기다. 3은 가치 판단이 들어간 선진국스러움의 문제라면, 4는 그냥 가치 판단과 무관한 차이를 말한다. 


5. 개발도상국 사람이나 집단이 선하고 고결할 거라 기대하지 말라.

좌파식 언더도그마의 영향 때문인지 약자 진영에 환상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슬프게도 진상은 정반대에 가깝다. 적어도 선진국들의 행위자들은 추태를 벌이더라도 최소한의 가면은 쓰지만, 개발도상국은 대놓고 추태를 벌인다. 개발도상국에선 추한 모습을 볼 각오를 하는 것이 좋다. 선진국 기준에서 후진적이고 천박한 가치관을 드러내는 데 서슴치 않는 사람들, 겉치르르한 명분을 내세우나 내부적으론 탐욕과 부패에 찌든 집단들을 수많이 목격할 것이다. 개발도상국에 관심을 가지려면 이런 모습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6. 우선 힘의 역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발도상국에선 사회가 노골적인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경향이 강하다. 슬프게도 사회의 윤리, 도덕적 수준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이 현실을 이해해야 사회 개선을 하든 뭘 할 수 있다. 윤리와 도덕을 따지자면, 선진국 기준에서 제대로 된 인간이나 집단을 찾아보기 힘들기에 더 그렇다. 


7. 무질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비선진국은 선진국에 비해 사회질서가 취약하기에,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진다. 이 경우 억제된 금기의 욕망들이 죄다 분출되면서 경제 붕괴, 파괴, 고문, 살인, 강간이 일상이 되는 지옥도가 열린다. 유고슬라비아나 르완다 내전은 그 극단적인 사례이다. 정도는 좀 덜하지만 소련의 붕괴도 그랬고.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제일 고통받는 순간은 이런 무질서의 상황이다. 그러므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내정에 개입할 땐 어떤 방식으로든 질서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무질서보다는 통제된 폭력이 훨씬 낫다. 


8. 성급하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위의 요소들 때문에 개발도상국은 살짝만 삐끗하면 바로 위험해질 수 있다. 1,2에서 말했듯 개발도상국 사정이 시궁창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지금이 최악도 아니다. 그러니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고, 목표도 소박하게 잡은 다음, 개발도상국이 다음 단계로 무사히 이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신중하게 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진정 개발도상국을 위한 행동이다.

 

9. 위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적 사고는 안 된다.

개발도상국이 이런 비참한 신세를 피하지 못한 건 지리적, 자연적인 난점과 운의 요소도 크게 작용한다. 진짜 좋은 조건에서 망해버린 나라들도 있지만, 성장 기회를 자신도 모르게 놓치거나 단순히 터가 안 좋은 데 세워져 가난한 나라들도 정말 많다. 스웨덴,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들도 아프리카 대륙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지리조건이 경제성장에 여러모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의 무능함과 한심함에 대해 비판할 건 비판하더라도, 이들의 조건을 생각해 무작정 깎아내려선 안 된다. 


10. 지옥처럼 보이는 세상에서도 삶의 의미는 있다.

이들의 삶의 수기를 읽어보면 진짜 눈물겹다. 이들은 비참한 현실에서도 더 나은 가족들의 삶, 더 나은 공동체, 더 나은 나라를 위해 죽기살기로 생활한다. 그리고 사회의 눈부신 발전에 공헌한다. 이런 노력을 보면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게으르다는 편견도 싹 사라진다. 더불어 고통으로 가득찬 삶의 진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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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낙태죄가 폐지되는 변화는 환영한다. 낙태를 처벌해야 할 윤리적인 당위성도 잘 봐줘야 애매한 수준이고, 법은 이미 사문화된 지 오래라 뒤에선 연간 수십만건의 낙태가 벌어지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상황에서 낙태죄를 존치하거나 더 나아가 낙태죄 집행을 확실히 하자는 건 도덕적 만족감을 명분으로 뒷감당 못 할 짓을 벌이는 거다. 차라리 낙태를 양성화해 여성들이 보다 안전하게 낙태를 받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다만 낙태죄가 폐지되는 과정은 다분히 아쉽다. 사회적으로 공론화가 충분히 되어 낙태죄 폐지 여론이 굳어지면서 국민이 선출한 국회/정부가 이에 부응했다기보단,  비선출직인 헌재 재판관들이 순수한 법논리의 곡예를 통해 결정한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여론이 낙태죄에 갈수록 우호적으로 변하니 헌재가 국민 여론도 감안해서 판결했겠지만, 이런 식의 결정은 낙태 반대론자에게 쓸데없는 반발을 초래할 여지가 있다. 물론 민의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공론장과 국회 정부는 무관심의 손놓는데 관료조직에 가까운 사법기관만 일하는 건 일종의 기술독재적 현상이다. 자칫 전문관료가 대중, 정부, 국회와 괴리되어 국민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국엔 낙태죄와 관련된 논의가 놀랄 정도로 적었다. 이는 국가별 낙태죄와 낙태 찬반 논란 현황을 비교해본 한 논문의 실제 결론이다. 적어도 서구 선진국들은 낙태 논의가 굉장히 치열했다. 수많은 찬반 논거와 학술연구가 나왔으며 정치권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고 대중토론에서도 엄청나게 나온 단골메뉴다. 낙태죄 폐지는 그런 수십-수백년간의 대논쟁의 결과였다. 특히 미국은 낙태 찬반이 좌우를 가르는 주요 기준점일 정도였다.

슬프게도 현대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은 거의 건국 초기부터 낙태를 특수한 경우를 빼곤 금지해왔는데, 한국인들이 낙태를 유난히 반대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었다. 낙태에 긍정적인 쪽도 아니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인들의 국민 여론은 무관심에 가까웠다. 정부가 1953년 낙태죄를 신설했던 게 66년 간 유지돼왔으나, 이는 국민의 합의 없는 관료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가까웠다. 이러한 낙태 찬반 문제는 관심가질 사람만 관심을 가졌다. 그렇게 낙태죄 문제는 사회적으로 잊혀져 갔고, 법적으론 불법이었으나 뒤에선 할 사람은 다 하는 사문화 현상이 생겨났다. 그렇게 수많은 여성들이 음지에서 눈물 흘리면서 낙태를 하게 됐으나, 그녀들은 사회의 시선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한국에 낙태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은 건 사회문화적으로 낙태를 논할 껀수가 없어서인 면도 있다. 전통적인 기독교나 이슬람 문화권은 낙태를 적극 반대해왔고, 사회주의 국가들은 철학적인 이유로 낙태를 찬성해왔지만 한국은 이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았으니. 적어도 불교나 유교는 낙태에 대한 뚜렷한 견해를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됐든, 이렇게 낙태 이슈에 무관심했던 사회 풍조가 한국의 낙태죄와 낙태 여성들의 문제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낙태죄 폐지는 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물론 이 현상이 나쁘지만은 않을 수 있다. 적어도 이 판결이 낙태 반대론자에 의한 강한 백래쉬를 일으킬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처럼 낙태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으니. 미국은 낙태가 허용된 나라지만, 여전히 낙태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고, 지역별로 낙태를 막기 위한 별 괴상한 꼼수들을 쓰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낙태 반대론자가 낙태 시술하는 의사를 죽인 사례까지 있다. 적어도 한국에 이런 수준의 백래쉬가 일어날 일은 없다.

그러나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왕 낙태 문제가 급부상한 거, 지금이라도 사회적인 많은 논의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내가 서술한 문제가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이다.

 + 글의 핀트와는 어긋나지만 이왕 말 나왔으니 계속 말하자면, 나는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지만 여자한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낙태 찬성론자들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한다. 여자들은 남자들과의 성관계를 거부하기 더 어려워질 거다. 임신가능성을 이유로 거부한다면 그럼 그냥 낙태하라는 식의 소리가 돌아올 수 있으니. 물론 저렇게 덜떨어진 남자들이 전체중에 아주 많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있고도 남을 일이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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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생활 패턴이 점점 인싸화되는 느낌이다.

- 머리를 나름의 스타일로 꾸미는 등 외모에 관심이 생겼고
- 산책이나 자전거 타기 등 야외 활동을 많이 하고
- 사람들 더 자주 만나고 연락하고
- 평소에 관심 없었던 가요를 듣게 되고
- 술을 마실 줄 알게 되고
....

평생 갈 것 같은 내 성격에도 변화가 오는구나. 이렇게 계속 가면 내 나쁜 면들도 많이 고쳐질 듯?

생활 패턴을 바꿔서인지 삶의 질이 높아진 것 같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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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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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참석자들을 포함해 모든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볼 때, 약[제1차 세계대전 평화협정] 내용이 관련 지역 및 주민들에 대한 지식이나 그에 대한 고려 없이 결정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유럽에 부과된 조약 내용이 그 정도였으니 거리상으로도 멀고 생소한 중동 같은 지역에 부과된 내용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아서 밸푸어만 해도 평화회의에 참석한 윌슨, 로이드 조지, 클레망소ㅡ모리스 행키의 전문지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ㅡ를 가리켜 "이 전능하면서 또 전적으로 무지한 세 거두가 회의장에 앉아 어린애 같은 인물의 지도를 받으며 대륙들을 난도질하고 있다"고 꼬집어 말했고, 이탈리아의 외교관도 이렇게 썼다. "파리 평화회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세계의 이런저런 정치인들이 지도 앞에 서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도시나 강을 찾으려고 손가락으로 지도 위 그림을 더듬어가며 '그 빌어먹을 곳이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라고 투덜대는 모습이었다." 로이드 조지도 (성서의 구절을 빌려) 단에서 브엘세바(베에르셰바)까지의 팔레스타인은 영국이 통치해야 한다고 요구했지작 단이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다. 19세기 성서 지도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하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1년 후 앨런비 장군으로부터 단의 위치를 찾았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자신이 원하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경계선을 북쪽으로 더 이동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 데이비드 프롬킨, 『현대 중동의 탄생』, 이순호 역, 갈라파고스, 2015, p.609

서구 열강이 피식민국의 역사/지리에 무지했고 식민지배의 편리를 위해 국경을 자의적으로 그은 건 알고 있었지만, 주먹구구, 나이브함과 무책임함의 레벨이었을 줄은 몰랐네.

이건 문제가 안 생기는 게 신기한 수준이다. 중동이 분쟁지역이 된 건 예상된 바다.

+ 참고로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서구 정치인들이 세계 1차대전에서 중동지역에 저지른 뻘짓과 삽질은 책을 따로 써야 할 정도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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