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었던 서적, 칼럼, 논문과 전공지식을 바탕으로,

학술과 통념을 잇는 중간단계 수준의 지식을 전달하는 계정을 만들고 싶다.

유튜브 지식이지만 영상마다 출처도 달고 최소한의 공신력은 갖춰서. 


계획한 컨텐츠는 총 3개. 

여러 잡다한 주제에 대한 생각. [단, 국내시사는 제외]

책 추천하고 비평하기. 

국제지리/인구학/이슬람/클래식 등 개인적인 관심사 지식.

3개 다 할 수는 없으니 골라서 해야겠다.


일단 목표는 1000명.

전업은 바라지도 않으니, 대학생으로서 용돈 정도의 밥벌이는 해보고 싶다. 


개인사정으로 지금 당장은 못 만드니 계획을 짜 봐야지.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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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시대로 보는 사람이 많다. 중국이 많이 성장하다 보니,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중 간 불안감은 상존했는데, 반중 공약을 내세운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직접적으로 현실화되었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 패권을 차지할 수 없을 거라는 의견이 많이 보인다.  중진국 함정의 위험성, 지리적 제약, 과도한 부채성장, 관치경제의 한계, 일당 독재의 한계, 소프트파워의 부재, 인구구조 문제, 동맹국의 부실함 등 중국의 고질적 문제 떄문이다.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그런데 중국이 패권국이 될 하나의 확실한 시나리오가 있다면 어떨까. 바로 세계 최초로 과학기술을 기술적 특이점 수준으로 극도로 발전시키는 시나리오다. 

중국은 선진국은 아니지만 세계 2위의 국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투자가 가능하므로,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기술 역량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적어도 양적인 면에선 여러 분야에서 세계 1위이며, 질적으로는 아직 세계 최강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정부가 잘만 하면 추월도 가능하다. 따라서 중국이 과학기술 발달의 승리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타국에 대해 기술적 우위를 누릴 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한 중국의 고질적 문제들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중국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만 들어보자. 

1. AI와 자동화

- 인간의 일자리를 줄이거나 아예 완전 대체할 수도 있는데, 미래에 인구구조 문제로 고통받을 중국에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 

- 고도로 발달한 AI를 정치에 활용하면, 중국은 관치경제를 유지하면서도 관치 특유의 비효율성과 부패 문제를 개선해 추가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부가 모든 경제현상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 경우, 냉전식 사회주의도 더 이상 공상이 아니게 될 수 있다. 과거에 실패한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적 요소 없이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2. 유전공학

- 유전자 조작을 통해 우수한 성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정부는 개개인으로 하여금 '우수한' 후손들을 낳게 할 것이고, 그러면 '양'적인 인구구조 문제를 개개인의 '질'적 향상으로써 돌파할 수 있다. 

- 유전자 조작을 통해 독재정권 및 사회 유지에 방해가 되는 '반사회성', '과격함', '도전성' 등의 성질을 약화시킨 후손들을 만들 수 있다. 

- 노화 방지 기술을 통해 노화를 늦춘다면 은퇴 연령을 늦출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인구절벽을 막고 연금 붕괴를 피할 수 있다. 

- 또한 유전자 조작으로 인간 본성을 사회주의에 맞게 바꾸면, AI와 함께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하는 데서 더 보람을 느끼는 인류를 만든다던가,  

3. 정보통신

- 정보통신의 발달로 정부의 완벽한 검열 및 도청이 가능해지면, 중국인 개개인에게는 디스토피아가 되겠지만,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성공이다. 이건 CCTV/얼굴 인식/황금방패 등을 통해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 사례들을 읽고 소름끼칠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인간성을 바꿔서 국가와 지배계층에 유리하도록 하자는 발상은 거부감이 강하게 드는 게 당연하므로. 

이것이 내가 중국의 과학기술을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단언컨대 한국과 미국, 스웨덴, 독일 같은 나라는 절대 이렇게 못 한다. 하더라도 시행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런 국가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원칙을 중시하는 데다, 시민사회가 발달했기 때문에 이런 중대한 문제를 정부가 밀실에서 얼렁뚱땅 넘길 수 없다. 다양한 시민집단들이 논의에 참여해 각자의 의견을 내놓고, 신중하게 결론지을 것이므로. 

하지만 중국은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밀실로 결정해서 명령하면 그만이므로, 이런 소름끼치는 발상을 손쉽고 빠르게 정당화하고 강제할 수 있다. 따라서 설령 중국이 과학기술 발전이 좀 늦더라도, 타국이 중국과의 교류를 막지 않는다면 중국은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기술을 현장에 바로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기술은 디스토피아적인 발상과는 별개로 어마어마하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에 복종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했다가, 복종만 하기 때문에 일체의 이견이나 창의성이 없는 기계같은 인류를 만들어버려 기업가정신이나 문화적 다양성이 완전히 죽어버릴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이유로 위험성은 언급조차 안 되거나 무시될 가능성도 있다. 정말 그렇게 되면 과학기술의 발달은 중국과 중국인들에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이렇게 패권을 장악한다면, 한국도 울며 겨자먹기로 중국의 과학기술들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중국과의 경쟁에서 반영구적으로 패할 것이므로. 이런 시나리오는 매우 위험한데, 과학기술의 장단점을 제대로 논의해보지도 못하고 떠밀려서 서둘러 도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의 민주주의, 자유, 인권과 같은 가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 과학기술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도 고생하게 될 것이고. 


중국이 미래에 이 시나리오대로 움직일까. 미래 예측은 전문가도 자주 틀리는 분야인 데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므로 확답할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유력한 시나리오 중 하나 정도는 될 것임은 분명하다. 중국 바로 동쪽에 있으며 여러 산업 분야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한국 시민으로서, 이 시나리오를 국가 차원에서 생각해 보고 대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래야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가 올 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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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한국사회를 총체적인 저신뢰 사회로 평가하고 있지만, 그 평가는 각 국가들의 스스로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에 근거하고 있기에 절대적이고 객관적 기준에 근거한다면 우리 사회가 정말 저신뢰 사회가 맞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 진정 저신뢰 사회였고 지금도 저신뢰 사회라면, 지난 반세기의 눈부신 사회경제적 발전이 가능 했을지 다시 한 번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도 한국사회의 일상에서는 암묵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 비계약적이고 비법률적인 관행들이 만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계약서나 약관들에 대한 철저한 검토보다는 구두 약속이나 모호한 무한책임을 근거로 한 업무처리가 흔하다. 이러한 일상의 행위들은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일어나기 힘든 것들이다. 라서 한국사회의 저신뢰 평가는 실제 한국사회에서의 신뢰의 부재와 더불어, 주관적인 인식의 왜곡에 최소한 일부 귀인될 수도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문화 역사적으로 유교적인 가치를 근간으로 한 국가와 사회체계를 운영해왔기에 국가, 사회, 기업을 하나의 큰 가족과 같은 집단으로 인식하는 가족확장성(Korean Family Expansionism)[각주:1]을 심리적 특성으로 발전시켜왔다. 이에 따라 한국 사람들은 정부, 회사 등 사회적 체계들을 가족의 속성으로 인식하고, 그런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사회적 체계에 가족과 같은 높은 신뢰를 요구하고 있을 수 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즉, 오히려 거대한 가족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싶은 한국인들에게, 현실적으로 정부, 사회, 기업과 같은 사회적 조직은 더 이상 한국 사람들의 높은 신뢰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기에 그에 대한 불신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의문을 규명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신뢰의 기준과 실제 신뢰 수준 간의 관계, 그리고 가족확장성이라는 문화심리적 요인과의 관계를 확인하였다.


(중략)


 한국 사회는 일반적으로 ‘저(低)신뢰사회’로 평가된다. 2011년 OECD에서 발간된 보고서인 <How's Life?: Measuring Well-being 2011>에 따르면 일반적인 타인들에 대한 신뢰 수준 조사 결과, 한국은 조사대상국 36개국 중 20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치였다. 사법부, 정부, 그리고 언론에 대한 신뢰 수준에 대해서는 조사대상국 40 개국 가운데 각각 34위, 31위, 38위를 기록하였다. OECD에서 발간된 또 다른 보고서 <Government at a Glance 2013>에서는 한국인 이 정부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불과 25%에 불과했는데, 이는 조사대상국 34개국 가운데 29위에 해당하는 결과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결과들은 활용한 문항에 따라 일관되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조사의 효율성을 위해 단일 문항으로 묻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성균관대 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의 <한국종합사회조사>에서는 매년 기업, 언론, 정부, 국회, 학계, 시민단체 등의 주요 기관, 그리고 사회 전반 에 대한 신뢰 수준을 측정하는데 해당 조사 역시 단일 문항을 활용, 단지 각 대상에 대해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리커트 3점 척도 상에서 응답하도록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조사는 효율성과 현실성을 고려한 것이지만 그 신뢰성 과 타당성의 측면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아직 신뢰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합의된 학술적 정의가 존재하지 않고 그에 따른 정교한 척도가 구성되어 있지 않기에, 기존 신뢰에 관한 조사결과는 학술적 엄격성에 충분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중략)

 최상진 등(2013)은 한국에서의 신뢰 개념과 서구에서의 신뢰 개념을 비교, 양자 간의 근본적인 차이에 관해 지적한 바 있다. 이들에 따르면 국에서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 등 비교적 가까운 사람들과의 특수한 관계들 속에서 신뢰가 형성되는 데 반해, 서구에서는 비교적 넓은 범위의, 일반적인 대인 관계나 공적인 관계 내에서도 신뢰가 폭넓게 형성되고, 규정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은 또한 한국 사람들은 상호 간 특별하고,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고 나면 신뢰가 자동적으로 획득되는 것으로 여기지만, 서구에서는 상대방이 지닌 속성이나 행위 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및 검증이 완료되고, 상대방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수반 되어야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한성열(2005)은 한국 사회에서의 신뢰란 가족을 기반으로 하여 1차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며 따라서 가족을 넘어선 다른 일반적인 대상들에 대한 신뢰 역시 가족을 향한 한국 사람들의 신뢰를 고려하는 가운데 이해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Kim(2003) 역시 한국 사람들은 타인의 속성에 근거하여, 타인과의 신뢰를 구성한다기보다는 타인과 나 사이에 맺어진 관계 그 자체로부터 신뢰감을 느낀다고 주장 하였다. 그에 따르면 정부나 기업 등에 대한 신뢰는 해당 기관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로부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얼마나 관련이 있다고 지각하는지 여부에 따라 신뢰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이에 더해, 신뢰에 대한 기존 조사들은 참조 집단 효과(Reference Group Effect)라는 비교 문화조사에서의 중요한 요인을 고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Heine, Lehman, Peng과 Greenholtz(2002)는 주관적인 리커트 척도를 활용하여 비교문화 연구를 진행할 경우, 참조 집단 효과가 발생하여 연구 결과가 오염될 가능성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사람들은 태도, 가치관 등에 대한 자기보고식 문항들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각각 참조 집단으로 삼는다(Peng, Nisbett, & Wong, 1997). 예를 들어, 한국인은 한국인들을 참조 집단으로 삼아 자신의 태도, 가치관의 상대적 크기를 추정하며, 미국인은 자신이 속 한 미국 사회의 구성원들을 참고 집단으로 삼게 된다. 결과적으로 비교문화 연구에서 각 문화권 실험 참여자들의 참조 집단이 서로 상이하다면, 측정된 리커트 척도 점수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왜냐하면 참조 집단, 즉 측정치의 높고 낮음을 판단하는 데 활용되는 기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뢰에 대한 국제 통계 조사 결과들 역시 객관적이고 타당한 기준이 부재한 채,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난 리커트 응답값만을 단순 비교하는 수준에 머물렀으므로 한국인들의 신뢰 인식이 다른 국가들에서 보고된 신뢰 인식보다 더 떨어진다고 단순히 판단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실제 인식 조사로 나타난 사회적 진단은 그 결과해석에 유의하여야 하며, 그 인식형성에서 사용된 참조 집단 또는 비교기준을 조사하는 학술적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중략)


 본 연구에서는 부모, 사법부 및 정치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신뢰 기준을 각각 확인하고, 대상들에 대한 신뢰 기준들의 차이가 실제 신뢰 수준 및 가족확장성 수준과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특히 추가적 으로 가족확장성의 역할을 실험적으로 검증하였다. 구체적인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인들은 전반적으로 사법부, 정치인, 정부 등에 대해 자신의 부모와 유사 하거나 혹은 더 높은 수준의 신뢰 기준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정치인에 대한 신뢰 기준은 부모에 대한 신뢰 기준보다 높았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 기준과 부모에 대한 신뢰 기준 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신뢰 기준 내 관계 요인에 있어서는 부모에 대한 신뢰 기준 보다 사법부 및 정치인에 대한 신뢰 기준이 더 낮았지만 신뢰 기준 내 대상 요인에 있어서는 부모에 대한 신뢰 기준보다 사법부 및 정치인에 대한 신뢰 기준이 더 높았다. 
 둘째, 사법부, 정치인에 대한 신뢰 기준이 높을수록 각 대상에 대한 실제 신뢰 수준은 낮았다. 히 부모에 비해 사법부, 정치인에 대해 더 높은 신뢰의 기준을 갖고 있을수록 이들 대상에 대한 신뢰 수준이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정부, 기업 등 다양한 사회 조직들을 하나의 거대한 가족 체계로 이해하려는 성향인 ‘가족확장성’ 수준이 높을수록, 부모보다는 사법부와 정치인에 대해 더 높은 신뢰 기준을 나타냈다. 그리고 가족확장성 수준이 높을수 록 사법부, 정치인에 대한 상대적 신뢰 수준 (부모 대비) 또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시나리오를 통해 가족확장성의 수준을 조작한 후, 집단 간 부모-정부에 대한 상대적 신뢰 기준 간 차이가 유의미한지를 확인한 결과, 가족확장성이 높은 집단은 가족확장성이 낮은 집단에 비해 부모-정부 간 상대적 신뢰 기준 간 차이가 유의미하게 적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선 사법부 및 정치인에 대해 부모에 준하거나, 심지어 부모보다 더 높은 신뢰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는 본 연구의 결과는 한국인들의 신뢰 인식에 관한 기존 문화심리학적 연구들의 관점과 일치하는 것이다.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가족이나 친구 등 친밀한 관계를 토대로 신뢰감 및 신뢰의 기준을 형성하며, 이렇게 획득된 신뢰 인식은 사회 제도나 정부, 기업, 언론, 사법부 등 비교적 거시적인 사회 조직들에 대한 신뢰감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박영신, 김의철, 2005; 최상진 등, 2003; 한성열, 2005). 그리고 사법부 및 정치인에 대해 더 높은 신뢰 기준을 가지고 있을수록 실제 각 대상에 대한 신뢰 수준이 낮았다는 본 연구의 결과는, 한국 사회 내 ‘저신뢰’ 현상에서 여타 국가의 국민들보다 한국인들이 사법부와 정치인에 대해 더 높게 가지고 있는 신뢰 기준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 한다면, 현재 OECD 등에서 보고된 국가 간 신뢰 인식 상의 비교 결과들을 토대로 성급하게 한국 사회를 ‘저신뢰 사회’로 규정짓기는 어려운 일이라 판단된다.  왜냐하면 각 국가별 정부, 기업, 사법부, 정치인 등 주체들에 대한 신뢰 인식 상의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이거나, 혹은 고유한 신뢰의 기준들을 규명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사법부, 정치인에 대한 상대적 신뢰 기준(부모 대비)은 가족확장성과 유의미한 정적 상관을 나타냈다. 즉, 가족확장성이 높을 수록 한국인들은 사법부, 정치인에 대해 부모에 준하거나, 심지어 부모보다 더 높은 신뢰 기준을 가지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가족확장성을 높게 가지고 있던 이들일수록 정부에 대한 신뢰 기준이 부모에 대한 신뢰 기준에 보다 가까워졌다. 결과적으로 이는 집단주의적 역사, 가족을 중시하던 유교적 가치의 지속 등에 따라 한국인들이 지니게 된 가족확장성이라는 독특한 문화적 성향이 한국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저신뢰 현상에 대한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 허용회, 박선웅, 허태균 (2017). 「저신뢰 사회를 만드는 고신뢰 기대? 가족확장성과 신뢰기준의 역할」. 한국심리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 23(1), p. 75-96


 흔히 한국의 저신뢰를 분석한 글들은 저신뢰 현상을 역사적 혼란, 부정부패, 양극화 등 부정적인 사회현상에 대한 객관적 반응으로 분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인으로 하여금 저신뢰라는 결론을 내리게 한 '신뢰'의 주관적 정의와 기준 그 자체를 분석한 글은 처음 본다. 독특한 해석이라 가져왔다.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라 이 논문이 학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의하는 편이다. 신뢰라는 개념과 신뢰할 만하다는 심리적 판단 자체가 주관적인데, 어떻게 단순한 신뢰도 수치만 가지고 저신뢰다, 고신뢰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싶었다. 국가별, 문화권별 인식 차이가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읽으면서 마음이 다 후련해지네. 

 내가 국뽕이라 그런 걸 수도 있지만, 한국이 콜롬비아 같은 나라랑 사회신뢰도가 동급이거나 낮다는 식의 연구결과를 보면 '아니 한국이 그렇게 개허접한 국가였던가?' 하는 의문이 조건반사처럼 튀어나왔다. 그걸 가지고 '한국 사회 수준은 콜롬비아급!'과 같은 식의 결론이 나오면 더더욱. 

  1. 가족확장성이란 지역사회, 기업, 정부, 언론 등 거시적인 사회 체계들을 곧 가족 체계로 이해하고자 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가족 확장성이 높은 이들은 사회 내 조직들의 형태 가 운영 방식이 곧 가족의 형태 및 운영 방식 과 유사해야 한다고 여긴다. 또한 기업가-종업원, 대통령-국민 등의 관계를 곧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이해하고자 하며, 따라서 기업가나 대통령 등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아랫사람을 돌봐야 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알려 져 있다. [이 논문 안에서 인용함]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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