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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비평을 전공하는 지인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다. SF하면 흔히 떠올리는 '기발한 상상력을 뽐내는' 작품들은 한 물 갔고, 지금은 상상력의 전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거나 과학기술 이면의 인간 사회의 모습을 풍자하는 게 유행한다고. 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아 얼마나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직 SF 거장인 테드 창의 작품들은 그랬으며, 지금 소개하는 김초엽의 작품들도 그렇다. 둘의 문체, 소재와 문제의식은 확실히 다르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좋은 작품인지 확신을 하지 못했다. 책 띠지와 출판사 책 소개글의 내용들을 보고 '정치적 올바름'의 냄새가 많이 느껴졌다. 소수자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는다라... 오해하지 말라. 나는 정치적 올바름의 주장의 큰 틀엔 동의하며, 소수자들을 불쾌하게 할 언행은 삼가려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문제삼고 싶은 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사유에 과도하게 집착해서 이 세상에 정치적 올바름만 존재하는 양 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옳은 주장을 많이 하지만, "소수자들을 혐오와 억압으로부터 구원하자"는  뻔한 구호 이상을 생각할 수 없으며, 과도하게 투쟁적이고 과도하며 엉뚱한 언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이 잘못은 아니지만, 공허한 사고를 가졌기에 과격하고 교조적이기만 하니 문제다.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예술작품들도 비슷하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주장을 하긴 하지만 그 뿐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가치 말고는 알맹이 없는 공익광고같은 진부함을 보여주며, 정치적 올바름에 박혀 개성 없이 완성도 낮은 작품성만 드러날 뿐이다. 나는 이 소설집도 그런 부류가 아닐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정치적 올바름에서 이야기하는 문제의식이 글 곳곳에서 묻어났지만, 저자는 그러면서도 완성도 높고 기발한 SF작품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소개글에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집엔 작가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유전자 조작 실험의 피해자와 개량된 '신인류'에 대비되는 약자들(「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경제적 이해타산의 논리로 항로가 폐선되어 우주 너머의 가족을 볼 수 없게 된 안나(「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모성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고통받은 어머니(「관내분실」), 잘못을 했지만 여자라 더 공격받은 재경 우주비행사(「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등등.. 소수자가 소설 전개를 주도하는 부분도 많았다. 주역인 여성 등장인물들이 많았으며, 레즈비언도 나타나고 심지어 두 미혼모와 이들의 네 자녀로 구성된 비정상가족[각주:1](「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소수자성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집은 소수자성과 정치적 올바름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 장치들은 서사의 한 요소로서 드러날 뿐이었으며, 저자가 이 장치를 쉽게 느끼지 못하도록 설계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세계를 풀어나가는 SF소설이라는 양식 덕분인지, 사회적 소수자는 서사 표면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제대로 읽기 위해 서사를 한 가닥 걷어내서야 주제의식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는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연민과 사랑의 정서에서 더 확실해진다. 이 소설집은 SF소설이지만 과학기술 못지 않게 개개인과 사람 간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등장인물들의 가족력, 개인 사정, 성격, 취향, 정서 전체를 깊게 훑어본다. 그리고 거기에서 암시된 방식으로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알아가고, 가까워지고, 오해하고, 싸우고, 감정을 품으나, 끝에 가서는 이해와 인정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스펙트럼」과 「공생 가설」이 좋은 예시이다. 이 두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외계의 존재를 인식하며 이해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기초적인 의사소통조차 되지 않는 존재들이라 결말에 가서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듯 하나, 서로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볼 수 있었다. 인류가 문자 그대로 외계의 존재조차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희망을 보여준 것이다. 심지어 부조리해 보이는 사람들의 언행이나 사회현실조차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이런 사고를 잘 드러낸 작품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차별화, 신분화된 세계를 개탄한 릴리는 기계적 조작을 통해 차별도 혐오도 없는 대안적인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올리브는 그런 이상향조차 인간미 없는 불완전한 세계일 뿐이며, 떠난 세계에는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만다. 결국 올리브는 원래 세계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곳에서 같이 맞서겠다고 다짐한다.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는 걸 넘어, 무작정 차별과 혐오를 없애려는 유토피아적인 시도에도 반발하다니. 더 나아가 저 너머에 억압받는 존재와 연대하려 하다니. 투쟁과 분노를 앞세우기보다는 깊이있는 생각과 따스함을 앞세운 사고는,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보기 힘들다 보니 그립게 느껴질 정도다. 개인적으로 소설집 전체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구절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또한 이 소설들의 신개념 과학기술들은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며, 이는 소설의 미묘한 정체성을 만들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나온 안나를 좌절시킨 경제논리는 2020년의 세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며,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 재경 우주비행사의 자격에 대한 논란은 이소연을 향한 논란을 연상시켰다. 이소연을 모티브로 해서 쓴 단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감정의 물성」 에피소드는 내일 바로 이 지구에 현실화되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래서 이 소설집은 순수한 장르 SF문학보다는 SF문학이라는 언어를 빌려 쓴 사회비평소설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위에도 써놨듯 SF문학이 순수한 과학기술의 공상력을 뽐내던 시절은 떠난 듯 하지만. 

 전반적으로 높은 완성도와 깊은 생각이 느껴진 좋은 작품이었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소설들이 '약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에만 치중했다는 거다. 약자에 대한 문제의식은 중요하지만, 단편들 한두어개 빼고 전부 약자들 문제를 언급하니 읽다보면 살짝 싫증난다. 작가의 문제의식, 소재 고르는 능력과 서사 전개 능력이 워낙 뛰어나서 그 감정이 상쇄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다음 작품엔 더 재미있는 소재와 발상을 통해 더 간접적으로 드러냈으면 좋겠다. 첫 작품을 이 수작으로 낸 작가는 분명 할 수 있다. 


  1. 정상가족은 전통적인 가정 형태, 즉 두 이성애자 남녀 부부와 자식들로 구성된 가정의 형태를 말한다. 이런 가족만이 정상으로 인정받는 사회에선 미혼모, 동거 커플, 동성애자 부부 등 이질적인 형태의 가정은 인정받지 못한다. 비정상가족을 이를 넘어선 형태의 가족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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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학계의 석학으로서, 중국은 서구와 다른 독특한 국가 모델을 가졌음을 자신있게 설파하는 책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홍콩 사태는 잦아들 일이 없는 상황에서, 중국을 제대로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어 읽어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중국 정부, 학자, 일반인들이 정치와 사회, 역사에 대해 내놓는 의견을 들으면, 저들과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산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독재정권에 우호적이고 중화사상에 강한 이들을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인상이 더 확실해졌다. 중국인들과 중국 정부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을 수용하지 않으며, 동북아시아 및 서구 선진국과 그 점에서 확실히 다르다. 단순히 한 학자의 견해로 치부할 수도 없다. 이 책은 중국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으며, 여러 베스트셀러를 저술했고 여러 상을 수상받았고 여러 요직에 있는 중국 '석학'에 의해 쓰여졌다. 중국의 정치 시스템 특성상, 저자의 견해가 중국 공산당과 크게 충돌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편의상 이 책의 내용을 중국 정부의 공식 견해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대체 어떤 나라인가? 저자에 따르자면, 현대 중국은 수천년에 걸쳐 형성된 중국 특유의 역사, 민족, 인구, 문화에 근거한 민족주의를 통해 형성된 문명형국가다. 중국은 고대 4대 문명 중 유일하게 후대로 이어진 문명이며[각주:1], 진한 시대에 이르러 세계 최초의 거대 제국을 이뤄내는 성과를 이뤄냈고, 전통적으로 인구/영토/민족/문화의 규모가 엄청났으며, 서구에 앞서면 앞섰지 절대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타 국가와는 구분되는 고유한 문명성을 지닌다. 이렇게 독특한 역사적 특징에 근거한 국가를 문명국가라고 하며, 중국의 이러한 문명국가로서의 특성은 근대를 거치면서 전체 인민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묶는 민족국가 개념과 결합되어 문명형국가로 발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인류 보편이라 여겨지는 가치관을 추구하기보다는, 타 문명과 구분되는 중국만의 독특함과 저력에 근거하며, 이에 근거하여 정치/경제/사회/역사/문화/가치관 등 시스템 전반을 만들었다. 수천 년 간 서구 전체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저력을 가졌던 중국인으로서의 포부가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중국의 기본적 특징을 정의한 후, 중국의 세부적인 문명성을 전통적인 중국철학 및 국가 시스템에 근거하여 설명하며, 이를 현대 중국의 시스템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관점에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적 국가시스템과 가치관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논하며, 중국식 시스템과 가치관의 위대함을 설파한다. 대충 기억나는 몇몇 핵심만을 묘사해보자면...

- 중국은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무리하게 민주화했다가 국가 자체가 붕괴하여 하나의 중국이 해체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 중국은 과거의 과거제도의 예를 따라 현능주의(meritocracy - 쉽게 말해 능력주의) 방식으로 엘리트를 선발하며, 이는 서구의 정치제도보다 우수하다. 

- 중국은 중용과 실용성, 점진주의에 근거하여 마오쩌둥 때처럼 과도한 혁명은 지양하고, 장기적이며 점차적인 틀에서 국가를 발전시키고 있다.  

- 서구식 민주주의는 정치제도의 '형식'에만 얽매여,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실제 정치의 내용에는 무관심하다. 실제로도 섣불리 민주화한 개발도상국들 상당수가 엉망진창인 내정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선진국 정치조차 여러 혼란을 겪고 있다.  민주 대 독재의 구도가 아니라 좋은 정치 대 나쁜 정치로 봐야 한다. 

- 위의 관점에서, 중국은 민생을 중시하며 민본주의를 주창하며 국민들의 의식주 문제 해결에 매우 출중한 좋은 정치를 하고 있다. 

- 그 외 셀 수 없이 많은, 중국 고전을 인용한 정치 철학과 제도들. 

읽어보면 알겠지만 중국의 문명성과 시스템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흐르며, 자기들을 서구중심주의적인 가치관으로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서구의 '오만함'에 대한 반발심리가 글 곳곳에서 느껴진다. 위에서도 말했듯 한 두 번 본 견해가 아니라, 중국인들의 이런 마인드는 숙명인가 싶을 정도다. 저런 마인드로 국가를 운영하니 서구와 주변국들과 충돌하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런 국수주의적 중국인들의 견해는 올바른가? 개인적으론 많이 회의적이다. 몇몇 주장들은 분명 예리한 지적이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런 수준으로 중국식 시스템을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와 1:1 대결을 하면 질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을 가졌고, 중국 주변국 거주자로서 중국과 좋든 나쁘든 많이 투닥거린 역사를 가진 시민으로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크게 네 가지 문제가 있다. 

1. 모호한 단어 사용 및 실증의 부족으로 인한 엄밀한 논의의 실종

좋은 단어들을 죄다 끌어왔지만 뜯어보면 무의미한 수사 수준인 게 많다. 한 예로, 이 책은 정치 제도를 볼 땐 서구처럼 민주 대 독재가 아니라 좋은 정치 대 나쁜 정치로 보자는데, 사실 서구건 중국이건 한국이건 인류 모두가 '좋은 정치'를 추구한다. 좋다는 것은 지향해야 할 것임을 언어적으로 함축하니까 당연하다. 그러니 좋은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건 '빨간 개미는 빨갛다'는 동어반복밖에는 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이상하지만 더 살펴보자. 좋은 정치는 민본주의에 입각하여 민생을 추구하고... 백성이 근본이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게 좋은 정치인가? 원래 인류 정치 대부분은 의식주 해결이 근본이며 목적인 게 아닌가? 그렇다면 중국의 정치는 그것들과 무엇이 다른가? 이 책엔 이런 식의 논리전개가 한둘이 아니다. 제대로 된 논증 없이, 하나마나한 수준의 논증이다. 물론 당연한 것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쓴 글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이 책은 도덕교과서 수준에 불과하다. .   

또, 서구와 중국의 정치제도를 비교하면서 중국의 우위를 주장하는 부분 상당수는 제대로 된 정량화 없이 사변적으로만 진행된다. 그래서 서구와 직접적으로 1:1 비교하면 승산이 날까 싶은 분야조차 '서구도 나름의 문제 있으니까 너네나 우리나 거기서 거기다!'는 억지스런 전개가 많이 보인다. 현능주의적인 정치제도가 서구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려면 일단 관료들의 효율성이나 부패를 수치화해서 미국과 중국을 1:1 비교하는 통계부터 가져오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하지만 저자는 제대로 된 통계 들지 않고 자기 시스템이 우월하다고만 한다. 물론 저자는 아직 중국이 개도국 탈출하고 미국 뛰어넘으려면 멀었다고 보는 입장이긴 하다. 하지만 비교해서 불리할 거면 그냥 '서구보다 우월하다'는 말은 하지 말던가. 우리는 '나름의 방법'으로 발전할 거다 수준이면 모를까, 되도 않는 부심 부리는 건 정말 추한 짓이다. 밑에서 언급할 요인들 때문에 더 추하기도 하고. 

2. 국가의 발전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국가 간 1:1 비교

1에서 파생된 문제다. 보통 국가의 경제발전 단계를 볼 때, (경제성장 초기에 기반이 잘 갖춰졌다는 전제 하에서지만) 저소득 시절에는 급성장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성장이 둔화된다. 이 단계를 넘지 못하면 그 유명한 '중진국 함정'에 빠지며, 이것도 되게 어렵지만 설사 이 단계를 무사히 넘기더라도 옛날만큼의 고성장은 불가능한 현실이 된다. 선진국 중 제일 경제성장률 높은 미국조차도 경제성장률 3%면 낮은 게 결코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서구 선진국과 중국 및 중국식 모델로 고속성장하는 개발도상국을 1:1 비교하면서 전자의 성장이 더디니 후자 모델이 전자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소리를 하고 있다. 이게 제대로 된 비교인가? 중국의 상대적 고속성장으로 중국의 상대적인 국력이 커졌다고 주장한다면 모를까, 서로 다른 상황에 있는 국가들 모델의 수준을 1:1로 비교하는 건 뭐하자는 건가 싶다. 이런 식이라면, 민주국가들이 평균적으로 독재국가들보다 잘 사니 민주화만 되면 무조건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저자가 그토록 비판하는 '서구중심주의적인' 결론도 낼 수 있다.   

3. 과도하게 국수주의적이고 오만한 역사관

중국의 위대한 문명형국가성을 너무 치켜세운 나머지, 비중국인으로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오만한 구절들이 많았다. 위에서 말한 '고대 문명 중 후대로 계승된 건 황하문명 뿐이라'는 사실관계조차 애매한 주장부터 시작해서, 중국의 위대한 철학적 신조를 가지지 못한 다른 민족 문화들은 폭력범죄가 성행하고 경제 발전이 더디다는 구절도 있었고,  찬란한 그리스 문명은 일개 소국이었으며 빨리 멸망했다는 이유로 평가 절하한 부분도 있었다! 6.25 때 미국이 먼저 위협했다며 북한을 도왔던 군사 개입을 옹호한 구절도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이 부분은 좋게 넘어가기 어렵다. 

서구의 계몽사상과 같은 근대성은 중국의 민본주의나 과거제도같은 개념에서 도출된 것이라며 중국에 공을 돌려야 된다던가, 그리스 문명이 이집트에서 온 거라면서 순수하게 서구의 것은 아니라는 부분에 이르어서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저자 말대로 중국 문명은 세계 최초로 통일왕조를 만들어 효과적으로 통치했다는 의의가 있고, 그 거대한 규모에서 나온 정치, 경제, 철학, 문화적 유산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 자체로 이미 위대하다. 중국 외 사학계에서 진지하게 취급받는지 의문인 중국판 환빠 주장까지 안 해도 충분하다.  

저자는 수도 없이 서구의 제국주의적 과거와 서구중심주의적인 편견을 반박하지만, 이런 수준으로 논다면 대체 저들과 다를 게 뭔가? 적어도 서구는 이런 면에서 어느정도 반성하고 극복하고 있다.    

4.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인 가치관

저자의 책을 읽으면 정치에는 경제성장과 국가 안정만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과연 인간들이 그런 물질주의적인 욕망 충족에 만족하는 존재였던가? 수많은 서구의 정치이론에 따르면, 생활수준이 올라가면 어느 순간부터 인간들은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 관용, 세계시민주의같은 탈물질주의적인 가치들을 읊기 시작한다. 지금 중국인들도 생활수준이 계속 높아지면 언젠가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 관용, 세계시민주의같은 '영혼이 깃든' 사회를 원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한국도 선진국치곤 물질주의가 꽤 심한 나라지만, 그래도 민주화 운동이 일어 민주화에 성공했고, 그 후엔 웰빙 열풍이 불었으며, 지금은 워라밸과 페미니즘이 유행할 수준의 탈물질주의적 기반은 갖춰진 나라다. 중국도 한국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국은 타 국가들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다. 내가 아는 국제적 가치관 조사에선 중국이 세계에서 제일 물질주의가 심한 나라로 뽑혔으니까. 하지만 이에는 댓가가 분명 따를 것이다. 적어도 진보적인 가치관들이 많이 들어온 서구 선진국들은 이 나라를 부정적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중국 정부는 일당독재와 인권 탄압으로 이미 서구 선진국에서 평판이 많이 나쁘다. 동북아 선진국인 한국과 대만에서도 별로 좋지 않고. 또 이렇게 되면 중국식 모델은 물질주의가 덜한 다른 개발도상국에선 안 통할 것이라는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물론 이 책이 옳게 주장하고, 더 나아가 서구사회가 잘못 판단한 주장들도 있다. 

1. 중국이 문명형국가라는 분석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중국은 그 자체로 서구 전체나 인도와 맞먹는 급의 대규모 문명이며, 세계 최초로 통일되고 중앙집권화된 제국을 건설했다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외에도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사상 등으로 전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투사한 위대한 존재다. 지금의 중국의 독특함은 그런 수천년의 역사의 반복이자 연장일지도 모른다. 한국과 대만과는 달리 국력이 너무 커서 국제적인 압박으로 정치체제를 무너트릴 수 없는 거대한 나라니. 압박을 시도했다가는 중국에 압박'당할'것이다. 중국은 그 규모를 통해 그 자체로 보편인 거대한 체제를 만들었을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자유민주주의가 인류 역사의 최종 단계라는 도발적인 주장은 중국 앞에선 틀린 소리였을지도...    

2. 저개발국에 민주주의는 해로울 수도 있으며, 경제발전 및 안정엔 중앙집권형 독재가 나을 수도 있다는 분석

실제로 비서구 개발도상국들 중 선진국까지 성장하거나 그 길을 그대로 밟는 국가 절대다수는 강력한 독재국가에 의해 경제발전을 한 나라들이다. 한국, 대만은 이를 위해(?) 한때 독재정치의 길을 밟았으며, 중국과 싱가포르, 베트남은 현재진행형으로 독재체제이다. 일본도 독재정치까진 아니었지만(적어도 세계 2차대전 후에는) 자민당이 장기간 집권하고 및 관료주도경제를 통해 강한 국가주도경제를 운영했다. 세계적으로 제일 성공한 경제발전사례였던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전부 중국식 중앙집권형 독재 시스템 하에 가능했다. 절반의 성공이지만 스탈린 시대의 소련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평가받는데, 다 알다시피 이 때 소련은 그냥 독재체제였다.

반면 인도나 필리핀, 러시아, 소위 '아랍의 봄' 국가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 상당수는 민주화에 (한때) 성공했지만 경제발전과 안정엔 별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도로 독재체제로 돌아가거나 무정부상태로 전락한 나라들도 많다. 이런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서구 선진국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대추구나 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집단들에게 악용되었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들은 민주주의이냐 아니냐에만 신경썼지, 실제로 민주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서구 안에서도 있는 반성이다. 이런 국가들이 중국식 중앙집권형 독재를 부러워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독재국가가 항상 경제발전과 안정을 잘 해내는 건 아니다. 북한이나 마오쩌둥 당시의 중국, 이디 아민 당시의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짐바브웨, 미얀마 등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위에서 소개한 반례들은 독재가 무조건 나쁜가?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들기엔 충분하다. 중국의 현재 시스템은 적어도 거기엔 성공했다. 그 이상으론 못 나가는 것 같지만. 



위에 길게 논박했듯 문제점이 많은 책이다. 개인적으론 6/10점 이상의 점수를 주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중국 정부의 공식 의견 비스무레한 걸 읽고 싶다면 추천한다. 서구사회의 시선이 아닌 중국 석학이 직접 쓴 책이니 '직접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데는 정말 좋다. 읽고 비평하는 건 다른 문제이니 말이다. 

덤으로 말하자면, 중국식 모델이 옳지 않으며 그런 게 용인될 세상이 두렵다면,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모델을 갈고 다듬어 매력적으로 만드는 전략을 쓰는 게 좋다. 요즘 개발도상국은 막론하고 서구 선진국에서조차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다. 실제로 저자와 후쿠야마 간 대담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옹호자 후쿠야마는 '아랍의 봄'이 성공적일 것이라 했으나 저자는 사회 불안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저자의 우려대로 되었다. 개인적으론 이 부분이 특히 아프게 다가온다. 진정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아낀다면 다들 자유민주주의의 매력에 안 빠져들 수 없게 괜찮은 자유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중국식 독재 모델을 물리칠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1. 이 부분은 중국 학자로서 자뻑이 과도한 편협한 견해로 보인다. 나일강 문명을 고대 이집트 문명과 완전히 단절시킬 수 있는가?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문명은 후대와 어느정도 단절이 있었던 게 맞긴 하지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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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경제적으로 전례없는 눈부신 성장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절대빈곤은 크게 줄었으며, 1인당 gdp와 평균수명은 크게 향상되었고, 모성/유아 사망률은 크게 낮아졌다. 근데 거기에서도 특출난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지역이 있다. 바로 아시아, 더 나아가자면 동북아시아 지역이다. 19세기 초만 해도 한국, 일본, 대만은 세계적으로 가난한 지역이지만, 현제 세 국가는 경제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발전했다. 중국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들 국가들의 경로를 밟는 중이다. 고난의 행군으로 국가 체제가 붕괴되어 세계 최빈국 라인에 낀 북한만이 유일한 예외다. 

어떻게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경제 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동북아시아는 서구의 시장 자유주의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국가가 경제 전반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유럽과 북미가 처음부터 자유시장경제로 시작한 양 묘사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잘못되었으며, 유럽의 중상주의 시대와 특히 일본의 모델이 된 독일식 경제발전을 예시로 들면서 서구 선진국들도 초기엔 국가주도 및 보호정책으로 발전했음을 설명한다. 동북아시아는 서구 발전 초기의 국가주도 및 보호정책을 그대로 밟아야 하며, 밟았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성공했다고 역설한다. 반면 시장자유주의자들의 말에 홀려 위 과정 없이 바로 자유시장 단계에 돌입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국가경제 발전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자유시장경제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일단은 어느 정도 발전한 후에야 자유시장이 성립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자유시장을 해도 될 때까지는 임시적으로 관치경제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찌보면 장하준과 비슷한 주장이나[각주:1], 저자는 무조건적인 국가주도 및 보호정책이 답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경제 발전의 필요조건이지만, 후술할 여러 조건 하에서 제대로 실시해야 하며, 국가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면 현재의 서구 선진국들처럼 자유시장경제로 반드시 이행해야 함을 명심하라고 강조한다. 현재 동북아시아 국가들을 극찬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생겼음을 뼈아프게 지적했다.   

그리고 국가는 위 마인드를 가진 채로, 다음 세 가지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1. 토지개혁을 통해 가족농을 형성한다.

규모의 경제 개념에 익숙한 우리에겐 의외의 이야기인데, 생활수준이 낮을 땐 소규모 가족농이 기업농/플렌테이션과 농업생산성이 큰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더 높다. 그리고 가족농은 국가경제 발전 초기에 여러 순기능을 한다. 일단 개인 단위로 생산성이 높아지면 저축률이 높아져 향후 성장의 기반이 되고, 농촌의 소비기반이 형성된다. 또 농수산물 수입을 줄여 유출될 외화를 최소화하며, 국가적 복지정책이 미흡한 저소득 국가에서 사회안전망 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강제적인 방식으로 토지를 재분배하는 개혁을 거쳐야 한다.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선 보통 대지주에 농업 생산수단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일본, 대만은 토지개혁에 성공해 가족농 형성에 성공했으며, 중국도 부족하긴 했지만 성공한 축이다. 그리고 정부는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가족농이 소출을 손쉽게 올릴 수 있게 농기계/농약/대출자금 등을 지원하는 농업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토지개혁을 시도했으나 지주의 반발 및 내부의지 부족으로 근본적인 수준의 개혁에 실패했고, 그나마 형성된 가족농도 정부가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 빈곤으로 떠밀렸고 향후 경제발전에 충분히 도움되지 못했다.  

2. 수출 경쟁을 전제한 제조업 육성정책을 펼쳤다. 

제조업은 낮은 기술수준에서도 시작할 수 있고, 고용하는 인원이 많기 때문에 초기단계의 경제발전에 적합하다.[각주:2] 정부는 초기 단계에서 국가주도 및 보호 정책을 통해 제조업 기반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정부주도라는 형식을 이용해서 기업들이 타국의 기업들과 수출경쟁을 하며 이에 실패하는 기업은 과감히 도태시키는 등 경쟁력 발전을 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수출규율이라 한다. 실제로 한국의 박정희 정부는 수출규율에 따르지 않는 기업인들을 감옥에 가두고 협박했다고 하는데, 처음에 이 일화 들었을 땐 이게 독재정권 클라스인가 싶었지만 발상의 방향성 자체는 맞았다는 게 놀라웠다. 이것이 없으면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 정경유착, 관세/비관세 장벽 등을 통한 혜택에 안주하여 산업 경쟁력 향상엔 소홀하고, 부동산이나 도박같은 상대적으로 비생산적이나 투기적인 분야에 치중하여 국가경제기반에 문제가 된다. 실제로 동남아 국가들은 위 이유로 제조업 기반 창출을 시도했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경제발전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3. 1과 2를 목표로 한 국가주도 금융정책을 실시했다.

가족농과 제조업기반을 육성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돈이 매우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의 역할이 필수적인데, 금융이 엇나가지 않고 본래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가주도의 금융이며, 절대 서구 선진국식 자유시장 금융은 안 된다. 국가경제 발전 수준이 낮을 때 자유시장적인 금융을 실시하면 금융기관들이 기업에 포획되어 사금고화될 위험이 있으며,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기 쉬워 금융위기의 위험성만 높아진다. 동남아 국가들은 실제로 자유시장 금융을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1997년에 금융위기를 맞았고, 이를 손쉽게 극복해내지 못했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했으나 산업기반이나 경제 수준이 높았기에 그나마 피해가 덜했으며, 한국처럼 금융위기는 없었어도 자유금융을 더 빨리 도입해 부작용이 왔던 대만보다 더 빠른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주류경제학의 '무조건 시장경제' 마인드는 문제였으며, 미국이나 경제학자들 조언만 믿고 자유시장 정책을 도입한 국가들은 실패하고, 그들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국가주도 및 보호정책을 실시한 국가들은 성공했다고 한탄한다.[각주:3] 토지개혁과 제조업 육성 및 국가주도 금융을 무시하는 마인드가 세계 경제학계와 국제기관에 아직도 만연하기에, 한, 일, 대만 더 나아가 중국같은 성공 사례는 다시 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


이렇게 보면 흔한 좌파들의 주류경제학 비판 서적 같지만, 경제학을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까는 3류 양산형 서적은 아니다. 주류경제학의 풍조를 비판하면서도 주류경제학적 원리 자체는 긍정하 기 때문이다. 리뷰에 쓰진 않았지만 가족농 단원에선 사회주의식 집산농장도 효율이 낮았다고 비판했다.[각주:4] 또 그는 좌파들의 무조건적인 보호무역정책은 동남아시아를 예로 들어 비판한다. 그저 수출경쟁 하지 말고 관세장벽 걸어둔 채로 수입품을 자급자족하자는 수입대체산업화를 비판할 뿐. 3류 양산형 서적들때문에 주류경제학 비판한다는 서적 자체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책만은 예외다. 리뷰는 하지 않았지만 과거에 읽은 로버트 앨런[각주:5]의 『세계경제사』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니[각주:6] 더 신뢰가 든다. 

그리고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인 비결이 핵심 주제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한국, 일본, 대만을 비교하는 부분[각주:7]이 사이사이 있었는데 이 부분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한국, 일본, 대만을 비교하는 데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다 성공 사례지만 대만의 토지개혁이 제일이었고 한국은 제일 덜 성공적이었다던가[각주:8], 대만이 국영기업 문제[각주:9]/수출규율의 상대적 저조함/자체기술 부족으로 한국 일본보다 제조업 수준이 낮다던가, 한국 일본 대만 모두 제각기 다른 금융발전을 겪었다던가[각주:10]... 이쪽 주제로 책이 나오면 꼭 읽어보고 싶다.  

또 중국의 경제성장도 따로 다루는데 흥미로웠다. 자본주의적 원리를 도입했으나 '명목'은 사회주의 국가인 일당독재국가인 중국경제의 이력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국영기업 위주의 경제성장을 통해 몇몇 문제에도 불구하고 잘해온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 금융위기는 과장이나, 국영기업 위주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법치의 부재 및 인구구조 문제는 도전이 될 거라 했는데... 이 책의 원서가 6년 전(2013년)에 나왔던데 지금 봐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시진핑 집권하고 권위주의화되는 지금 특히 더 와닿는다. 

또 간결하면서도 심도있게 분석된 책이다. 세계 곳곳을 돌아나니면서 풀어내는 재미있는 썰도 있고. 덕분에 어려운 책이지만, 가볍게 읽을 사람과 심도 있게 공부할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키는 매우 완벽한 구성을 갖췄다. 

내용도, 구성도 매우 완벽하면서도 신선한 책에 10점 만점에 10점을 안 줄 이유가 없다.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와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발에 관심 있는 사람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1. 실제로 책에선 장하준의 말이 인용되어 있고, 참고문헌란에 장하준 저서가 여러 권 있다. [본문으로]
  2. 그에 따르면 인도는 농업에서 제조업을 건너뛰고 바로 서비스업으로 나아간 잘못된 사례다. 인도가 IT산업로 유명하나 IT 고용 규모는 전체의 1%에 불과하다. [본문으로]
  3. 이 부분이 재미있는 게, 흔히 반미 좌파들이 한국 엘리트들을 '너무 친미적이고 미국에 고분고분 따른다'고 비판하는데, 한국 엘리트들은 이런 면에선 맹목적 친미가 아니었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본문으로]
  4.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을 대만으로 축출하고 벌인 초기 토지개혁은 의외로 효율성 관점에서 대성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적 야망을 품고 집산화를 시작하고나서 재앙이 시작되었다. [본문으로]
  5. 세계 경제사가 석학으로서 학술적 권위를 무시할 수 없는 학자다. [본문으로]
  6. 거기서는 국가주도적 경제발전을 빅 푸시(big push)라 한다. [본문으로]
  7. 원랜 중국도 비교했지만 경제발전 수준이 한일대만과 워낙 다르므로 임의로 뺐다. [본문으로]
  8. 너무 국가주도적이어서 농민의 참여가 저조했고, 토지개혁에 뜸을 들이는 바람에 지주들이 그새 토지를 팔아치우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토지개혁 후에도 불법적인 형태로 소작제는 유지됐었고. [본문으로]
  9. 그나마 대만 국영기업 문제가 타국보단 폐해가 적은 편이라 한다. [본문으로]
  10. IMF를 겪었으나 효과적으로 극복한 한국. 금융버블로 잃어버린 30년에 시달리는 일본. 한일과 달리 금융위기는 없었으나 너무 이른 금융개발이 탈이 되어 경제발전이 더딘 대만.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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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리뷰한 엑소더스 저자의 또 다른 책이다. 워낙 좋은 책이어서 이것도 읽어 봤는데 전반적으로 괜찮다. 세부적으로는 동의 못 하는 면도 있지만. 아쉽게도 출간된 지 좀 된 책이다. 원서 기준으로 2007년 출간됐기 때문에, 그 때와 지금 간의 시대 차이에 유의해서 읽어야 한다. 경제위기 전후로 정치질서와 경제질서가 많이 달라졌다. 

원제 The Bottom Billion(밑바닥 10억 명)과 부제 '극빈국 10억 인구의 위기'에서 알 수 있듯, 제목에서 빈곤은 '세계의 최빈곤층 10억 명'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프리카의 굶어가는 아이들' 이미지를 상상하면 얼추 맞는다. 

그렇다면 세계 밑바닥 국가들의 빈곤은 도대체 왜 문제일까? 국민들이 여유로운 삶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힘든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이 비참함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들 국가들은 생활수준이 몇 십 년 동안 제자리걸음 수준이며, 콩고민주공화국처럼 치명적 내전을 겪은 몇몇 국가는 오히려 악화되기까지 했다. 또 지금처럼 한다면 앞으로도 비참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예측된다. 

더 비참한 것은 다른 국가들은 몇십 년 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당장 한국, 대만, 중국, 베트남, 인도의 과거와 현재만 비교해도 답이 나온다. 정도는 좀 약하지만 동남아시아나 구 공산권 국가들도 많은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그러나 최빈국들은 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소외되어 뒤쳐지고 있다. 이 경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밀라노비치의 연구에 따르자면, 1988-2008년 사이 세계적으로 생활수준이 크게 증가했지만 이 경향에서 예외적인 두 집단이 있는데, 바로 포퓰리즘의 주동세력으로 지목받는 선진국 빈곤층과, 이 책에서 말하는 세계 최빈곤층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는 건 도의적으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옛날 책이라 언급은 안 됐지만 시리아 내전만 봐도 그렇다. 시리아가 최빈곤국은 아니지만 내전으로 최빈곤국처럼 삶이 고달파지자 많은 시리아인이 유럽에 난민으로 몰려갔는데, 이는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을 불러일으켰으며, 난민 받기 꺼려하는 국가들이 서로 갈등을 빚는 등 유럽 선진국들에 혼란을 불러왔다. 


그렇다면 왜 세계 최빈곤국들은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하는가? 저자는 최빈곤국의 고질병 네 요인을 지적한다. 첫 번째는 나라를 분열시키는 내전이다. 빈곤국들은 국가 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경제적 충격에도 바로 내전에 빠질 수 있다. 이 경우 국가 기반 전체가 전쟁에 총동원되고, 사람들이 기아와 학살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기란 어렵다. 설령 내전이 끝나더라도 무시못할 확률로 재발한다. 이러니 경제성장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거기에 반란세력은 겉으론 독립운동처럼 고상해 보일지라도 속살을 들추면 사리사욕을 위한 군벌의 무자비한 폭력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서방에서 이미지만 보고 반란세력들의 내란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는데, 이런식의 폭력은 늘 그렇듯 명분이 있어보여도 폭력은 폭력이라는 내 사고만 더 확실해졌다. 

두 번째는 흔히 자원의 저주라 말하는 천연자원. 천연자원이 발견되고 수출되면 화폐 가치가 상승해 기존 상품들의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네덜란드 병이라 한다. 또 천연자원은 선진적인 국가체제를 만드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국가가 천연자원을 차지한 경우 국가가 별 노력 없이도 국민들을 경제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부패하고 무능하고 비민주적인 시스템에 안주하게 만든다. 또 최빈곤국들에서 천연자원은 자칫 천연자원을 재정적 기반으로 할동하는 반란세력만 키울 수 있다.[각주:1] 

세 번째는 내륙국으로서의 지리적 한계이다. 세계 최빈곤국 상당수는 해안이 없는 내륙국이며, 이는 국제 무역에 있어 매우 불리하다. 육로는 해운보다 운송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데다, 세계 최빈곤국들은 인프라가 극악이기 때문에 운송비용이 더더욱 치솟는다. 거기에 최빈곤국들은 주변국가들도 최빈곤국들인 경우가 많으므로,  주변 국가의 경제성장으로부터 상호 이득을 얻기는 커녕 옆 나라의 내전에 말려들기 십상이다.  

마지막은 최빈곤국들의 엉망진창인 내정이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빈곤국 정부의 부패, 무능, 폭정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최빈곤국인 차드에선 재무부가 여러 기관을 거쳐 지방 보건소에 국비를 지원하는데, 조사 결과 지방 보건소에 실제로 도달한 액수는 재무부 국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부패로 공공자금의 99% 이상이 증발한 셈이다. 이정도면 국민들에게 국가라는 개념은 없다고 봐야 한다.


 최빈곤국들이 이런 비참함에서 탈출할 방법은 있을까? 다행히 희망은 있다고 한다. 현명하고 득이 되는 원조정책, 군사적 개입, 법률과 헌장을 통한 최빈곤국 국가시스템의 선진화, 무역 정책 개혁이 그 답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서구 선진국들이 이미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소극적이었기 대문에 제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빈곤국들이 빈곤을 탈출하려면 더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선진국들은 국가 간 외교 혹은 국제단체를 통해 최빈곤국들과 적극적으로 공조하며 경우에 따라선 내정에 개입할 필요도 있다고 한다. 

 글이 너무 길어지니 원조정책과 무역정책 개혁만 예로 들어보자. 최빈곤국들에 원조를 하는 경우, 부정부패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게 원조 지원국의 내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원조는 많이 하면서도 원조 지원국을 감시하는 데 소홀해왔기 때문에 원조의 제 효과를 못 봤다. 또 원조정책을 담당하는 조직은 파워나 발언권이 약해 현장의 목소리가 상부에 제대로 닿지 못하고, 상위 조직의 결정에 끌려다니게 되었다. 기존의 무역정책도 문제가 많았다. 선진국 좌파들은 개발도상국들을 위한답시고 고관세 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최빈곤국들의 경제적 행위자들이 자유무역에서 보호받게 되어 과도한 지대를 누리도록 만들었다. 또 자국 산업을 보호한답시고 고관세 정책을 펼친 선진국도 있는데, 이는 빈곤국의 농업/산업이 발달할 기회를 박탈하고 말았다. 

 이렇게 현실파악 없이 좋은 의도만 앞세워서는 안 되며, 진정으로 최빈곤국들을 위한 경제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최빈곤국들이 제자리걸음하는 이유는 잘 짚어냈으나, 그 해답이 비현실적이며 이 시대엔 더더욱 실현 불가능하다고 본다. 해답이라고 내 놓은 것들이 원조정책의 현실화나 무역 정책 개혁과 같은 걸 제외하면 뜬구름 잡는 수준의 이야기다.  스스로 내놓은 정책이나 어젠다를 더 구체화해서 이야기해야 했지만 저자는 그러지 못했다. 

또한 이런 해결책들은 국제정치의 활성화와 선진국들이 최빈곤국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섬을 전제하는데, 아쉽게도 현재 국제정세와 국제경제는 아예 정반대로 가고 있다. 책 출간 당시는 2007년이었는데 그 때는 국제정치 문제가 지금처럼 심하지도 않았고, 자유시장과 선진국의 선의를 통한 경제발전에 대한 믿음이 팽배했던 시기다. 그러나 2008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경기불황으로 선진국들마저 내 코가 석자가 되어 옛날만큼 최빈곤국들에 관심과 재원을 쏟아붓기 어려워졌다. 또 세계적으로 포퓰리즘 정치가 유행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기존의 자유주의적인 국제정치가 위협받고 있다. 

현재 서구권 선진국들은 어느 정도 민주주의나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에만 원조하고 투자하나(위에서 말했듯 감시를 안 하긴 하지만), 중국은 그냥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국가거나 부패가 심한 국가일지라도 투자하고 원조한다. 이는 국가 시스템을 선진화시켜야하는 최빈곤국들의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게 만든다. 당장 12년 된 이 책에서도 중국의 무책임한 국제경제정책은 비판받은 바 있는데, 이는 개선되기는커녕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더 악화되었으며, 아예 민주주의와 인권 챙기는 서구적인 국제경제정책과 1대 1로 비견될만큼 중국의 경제정책은 체급이 커져버렸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변화는 최빈곤국들의 경제발전을 방해할 것이다. 만약 저자의 주장들과 예언이 다 맞다면, 최빈곤국들은 앞으로도 발전하지 못할 것이며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우울한 예측이 그려진다. 아니 제자리걸음 정도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최빈곤국들은 높은 출산율로 인구가 급증하고 있으며, 그 상황에서 기후변화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을 것이다.[각주:2] 이 경우 국가기반이 위태로워져 대기근, 내전, 국가 붕괴를 불러올 확률이 높아진다. 최악의 예측이긴 하지만, 최빈곤국들이 몰려있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남아공 보츠와나 같은 몇몇 멀쩡한 나라를 제외하면 지역 단위로 한꺼번에 붕괴할 수도 있다. 


다만 저자의 해결책이 빗나간 것은 저자의 잘못만은 아니다. 옛날 책이기에, 현재의 세계질서 변화까지 고려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부적으론 아쉬움이 있지만, 저자 입장에선 차선 정도의 해결방안과 미래예측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어지간한 학자들보다 최빈곤국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고. 특히 원조/무역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것을 고려해서 10점 만점에 8점을 주겠다. 


+ 진보좌파들은 읽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위에서 말한 잘못된 무역정책 건도 크지만, 불의에 대한 항거라는 레토릭에 속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내전을 미화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빈곤국들에 실재하는 가난 문제를 경시했다. 성장만능주의라면 모를까, '최빈곤국에는 성장이 중요하다'는 수준의 논문에 국제단체들이 반발했다던데 이게 제정신인가? 애 다섯 낳으면 한 명은 어릴 때 떠나보내야 하고, 흉년 나면 친족 중 누군가가 굶어죽어야 하고, 내전나면 소년병으로 끌려가고 질병으로 죽어가는 삶이 그리 낭만적으로 보이나. 다행히 요즘 진보좌파는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진정 최빈곤국들의 삶을 돌보는 진보좌파가 되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


  1. 최근만 해도, 이라크 북부지역의 석유자원을 경제적 바탕으로 삼은 ISIS의 사례가 있다. [본문으로]
  2. 예전에 쓴 글에서도 말했지만, 최빈곤국들은 기후의 관점에서 사람 살기 힘든 지역인 경우가 절대다수다. 기후가 조금이라도 변화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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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1389482

중동이 종교적 광신, 빈곤, 독재, 종파 갈등, 내전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분쟁지역이 된 근원을 다룬 책. 3-4년 전에 사놓고 어제야 다 읽었다. 

이 책에선 중동이 분쟁지역이 된 것은 오스만 제국이 세계 1차대전 직후 멸망하고 여러 국가들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그 기간인 1910-1922년의 중동 역사를 900페이지에 매우 상세하게 설명했다. 

주제가 딱딱해 보이는데도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다. 1910-22년 사이의 중동사를 정치인과 국가들의 시점에서 몰입감 있고 재미있게 묘사해간 저자와 깔끔하게 번역해낸 번역자 덕분이다. 덕분에 900페이지짜리 두꺼운 책을 비교적 쉽게 완독할 수 있었다. 보석같은 책 내용을 머리 속에 솔솔 들어오도록 한 저자와 번역자에게 감사한다. 


그렇다면 왜 중동은 지금같은 분쟁지역이 되었을까? 900페이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자면, 

중동에 관여했던 행위자들 전부 상상 이상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새x들이어서. 


저때 중동엔 국가 단위든 정치인 단위든 관료 조직 단위든 제대로 된 행위자들이 하나도 없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만 (오스만에서의) 아랍 독립세력 전부 다. 보면서 한숨나오고 뒷골땡기고 뒷목잡은 부분이 한 두 구절이 아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 '제국주의 열강들이 중동지역의 역사나 지리와 무관한, 자기들 이익에 맞춘 자의적인 국경선을 그은 것이 중동 재앙의 시작이었다' 정도의 지식은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로 무능하고 무책임했을 줄은 몰랐다. 전에 인용했던 이 구절은 수많은 막장행태 모음집의 하나일 뿐이다.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문제만도 아니라 더 놀라울 따름이다. 문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다. 얼마나 일이 엉망으로 돌아갔냐면, 현대 중동이 지금보다도 더한 극한상황이어도 충분히 납득됐을 정도다. 심지어 영국과 프랑스는 책 읽고 인상이 더 나빠졌다. 이게 위대한 제국들의 속살인가 싶었다.  

일일히 인용하기엔 너무 많으니, 문제가 된 행태들의 패턴만 언급해보자. 

1. 내부 조율의 부재. 국가 내에서 의견 통일이 좀체 되질 않는다. 아니 국가 내 정도면 양반이고 조직 내부에서도 온갖 내분이 일어난다. 건설적이지 못하며 문제해결을 방해할 정도로. 

2. 명령/지휘체계의 무력화. 조직의 중간관리자가 상부 보고 없이 제 멋대로 행동한다. 

3. 정확한 정보통신의 부재. 통신 문제로 명령이 제대로 하달되지 않아 엉뚱한 지꺼리를 하고 만다.   

4. 상식을 뛰어넘는 무모한 군사작전들. 아무리 20세기 초였다지만 정말 정신 나간 작전이 많았다.

5. 상대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의 부재. 그 위대한 대영 제국에서, 세계 1차대전 발발 시점에 (전쟁 상대국) 오스만의 역사나 문화를 상세하게 설명한 책이 한 권 뿐이었다는 게 말이 되냐? 

6. 모호하며 수도 없이 바뀌는 동맹과 적. 세계 1차대전 일어나기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어느 나라가 누구랑 한 편을 맺을 지 확실하지 않았으며, 세계 1차대전 중엔 러시아에서 혁명이 벌어지고 터키에서 술탄과 신흥세력이 대립하면서 기존의 동맹-적 구도가 완전히 꼬여버렸다. 

7. 타국과 중요한 협약을 맺는 데 실무 경험 없는 신입 공무원을 두기.  

8. 기초적인 사실관계 파악도 안 하고 대충대충 약속하고 협약 맺기.

8-1. 그리고 몇 달 만에 괜히 약속/협약 맺었다고 후회하기.   

9. 자기 이익을 위해 손바닥 뒤집듯 말 바꾸기. 

10. 약속/협약을 모호하게 맺어 해석으로 2라운드 분쟁 벌어지게 하기.


이런 식의 행태를 모든 행위자들이 상습적으로 해댔으니 중동이 멀쩡한 게 더 이상할 거다. 여기 나온 행위자 모두 경영학/MBA 수업 시간에 '실패한 조직'의 사례로 내밀어도 할 말 없다. 3,6번이야 외부 조건이 안 좋았다 쳐도, 나머지는 실드를 쳐 줄 수가 없다. 이렇게 면밀하게 따져들어가면 문제 없는 조직이 없겠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물론 행위자들이 병x이라서 중동이 이렇게 된 것만은 아니다. 중동은 서구 열강들과는 여러모로 이질적인 지역이며, 아예 세상 돌아가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아니 달랐다 정도도 순화된 표현이고, 동은 굳이 유럽인이 아니더라도 외부인이 통치하고 관리하기 정말 어려운 지역이었다.

확실한 역사와 영토, 내부 시스템을 갖춘 국민국가로 가득한 유럽과 달리, 세계 1차대전 직전까지만 해도 중동엔 오스만이나 이란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 형태 갖춘 나라들이 없었다. 그나마 오스만 이란 모두 제국이라 유럽식 국민국가는 아예 없고,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동엔 이집트 정도를 제외하면 오스만과 이란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역사를 지닌 지역이 없었다. 그렇다고 중동 전 지역을 오스만과 이란 이집트 차지로 만들 수도 없었다. 두 나라 모두 점차 영토를 잃고 몰락해가면서, 중동 지역 상당 부분이 무질서화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아예 영국이 가져갔고. 거기에 아라비아 반도 남쪽은 헤자즈[각주:1]의 후세인 세력과 리야드[각주:2]의 사우드 세력이 서로 아라비아 반도의 패권을 장악하겠다고 싸워대는 혼란의 상황이었다. 거기에 중동인들은 서구식 세속주의를 원하지 않았으며, 이슬람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으며 비무슬림이 자기 지역 지도자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심지어 사우드 세력은 이슬람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와하비즘의 계승자였다. 

이런 식이었으니, 서구 열강이 중동 지역을 재편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최소한의 지식도 없이 중동을 다루려 했고, 자기 이해관계를 위해 중동을 이용하려 들다 문제를 악화시킨 건 백 번 까여야 마땅하지만, 유럽의 행태가 약간이나마 이해는 간다.


분량이 정말 많은데 정말 내용이 알차다. 읽기에도 편하고. 내 인생의 책으로 꼽을만한 명저다. 10점 만점에 10점. 분량이 많고 비싸지만, 현대 중동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책이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1. 아라비아 반도의 중서부 해안지역. 이슬람의 두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위치해 있다. [본문으로]
  2. 아라비아 반도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 현재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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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7130287


기후변화 90% + 미세먼지 10%로 구성된 지구환경 입문서적. 

실생활에서 중요한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이슈를 중심으로 쓴 책이라 재미있게 읽힌다. 글을 딱딱하지 않고 쉽게 썼으면서도 구체적인 수치, 연구자료, 논문 등을 인용해 깊이있는 논의를 펼치는 게 좋다. 주제는 핫이슈지만 읽다보면 어느 새 지구환경 기초지식을 갖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괜찮은 입문서적이라 개인적으론 8/10점. 왜 미세먼지가 이리 심하고 어찌 해결해야 할지, 기후변화가 어떻게 돌아가며 뭘 해야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특히 추천한다. 개인적으론 미세먼지 심할 때 인공강우를 하는 게 효과적이지 못한 이유를 언급한 부분이 특히 인상깊었다. 요즘 이슈와 여론에 제일 직접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미세먼지에 대한 분량이 적은 건 아쉬웠다. 요즘 핫이슈인데 좀 분량 많고 깊이 있게 다뤘으면 어땠을까 쉽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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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대만 여행가서 서점에서 보고 번역만을 기다린 책이었는데, 드디어 출판되었구나. 예전에 TED 영상 보고 알게 된 사람이라 특히 기대가 됐었다. 출간되자마자 바로 사서 3일만에 다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의학자 겸 통계학자이다. 그는 의사와 통계학자로 활동하면서 본 수많은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세상이 진짜 돌아가는 모습에 대해 우리가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사실 충만함을 나타내는 제목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서 볼 수 있듯, 그는 거짓 정보나 오해를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사실로 가득 채운다. 더 나아가, 왜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 제언했다.


시작하기 전에 한 문제를 풀어보자.


문제)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A) 거의 2배로 늘었다.
B) 거의 같다.
C)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정답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보고 각주버튼을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자.[각주:1]

혹시 틀렸는가? 틀렸다고 좌절하지 마라. 
이거 맞춘 사람은 조사 대상자의 7%에 불과하니까.


그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세계의 평균수명, 출산율, 인구예측, 교육수준같은 삶의 양상과 관련된 통계지표를 A,B,C 3지선다형으로 내놓고 맞추게 하면, 사람들은 많이 틀리는 걸 넘어 정답률이 1/3 미만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A, B, C 중 무작위로 찍어맞추는 침팬지보다 못한 정답률을 보인 셈이다. 무식한 일반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직, 정치인, 학자들에게 물어봐도 일반인과 하등 다르지 않은 형편없는 정답률을 보인다. 

그럼 왜 우리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오해하는 걸까? 그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고, 저자는 다음과 같은 10가지를 제시한다.  

1) 간극 본능 -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편향
2) 부정 본능 - 세상이 무조건 갈수록 나빠진다고 보는 편향
3) 직선 본능 - 앞으로의 추세가 지금처럼 쭉 갈거라 보는 편향 
4) 공포 본능 - 언론에 노출된 비관적인/극단적인/공포스러운 일에만 신경쓰는 편향
5) 크기 본능 - 숫자/사건 하나하나에 일회일비하는 편향
6) 일반화 본능 - 몇몇 사례를 들어 집단 전체를 일반화하거나, 특정 집단의 성향을 보편의 성향처럼 일반화하는 편향
7) 운명 본능 - 특정 사회, 국가, 문화권은 영원히 현 상태로 남아있을 거라 간주하는 편향
8) 단일 관점 본능 -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든 것을 평가하려는 편향
9) 비난 본능 - 모든 잘못된 일을 특정인/특정 집단 탓으로 돌리려는 편향
10) 다급함 본능 - 지금 아니면 영원히 늦는다면서 조급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편향


그런데 위 10가지 본능은 사실 하나의 본능으로 수렴한다. 
10가지 본능은 그 본능의 원인이나 구체적인 예시에 불과하다고 봐도 무관하다. 
저자는 대놓고 언급하지 않았지만, 400여페이지 되는 책 전체를 이 관점 비판에 할애하고 있다. 

바로 2)본능, 즉 세상이 갈수록 나빠진다고 보는 편향이다. 

이 편향과는 달리, 저자는 세상은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확실히 좋아졌음을 책 전체에 걸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설명한다. 당장 이 책의 부제부터가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다. 
1인당 gdp(ppp), 평균 기대수명, 아동 사망률, 교육 수준(여성들을 포함해서!), 전쟁 사망자 비율 등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눈부시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위 10가지 본능, 특히 2번 부정 본능은 그러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고, 세상이 갈수록 나빠진다고 잘못 생각하게 만든다. 

세상을 선진국 vs 개도국의 구도로 보니 개도국들도 많이 발전해왔다는 걸 무시하게 되며, 
인구폭발같은 위험한 추세가 앞으로 계속 갈거라 생각하니 미래가 암울해 보이며,
매일같이 극단적인 범죄나 테러, 자연재해, 안전사고를 접하게 되니 세상이 끔찍해지는 것처럼 보이며,
큰 숫자나 극단적인 사건 하나하나에 일회일비하니 세상이 지옥처럼 보이며[각주:2]
개도국을 빈곤, 테러, 부패, 전쟁 같은 이미지로만 보니 개도국들의 빠른 발전을 보지 못하며[각주:3]
개도국은 운명적으로 빈곤하며 전통적인 구습이 지속될 거라 보니 희망 없는 지옥으로 보며,
한 가지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니 세상의 진보를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며[각주:4],  
세상이 망가진다는 분노는 특정 인종이나 종교, 정치인, 금융인과 기업인을 적으로 돌리면서 더 심해지며,
비관론에 기초한 조급증은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 자기실현적으로 세상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위 생각들은 전부 잘못되었으며, 문제가 있을지라도 세상은 확실히 여러 면에서 좋아졌으니까. 

워낙 글빨도 좋고 근거가 워낙 탄탄해서 어지간해서 딴지걸긴 정말 어려울 것이다.




다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저자가 7)의 운명 본능을 비판하면서 개도국도 빈곤에서 탈출하고 문화적 구습에서 멀어졌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부분이다. 내가 보기엔 근거가 좀 부실하게 제시됐다. 저자가 물질적인 삶의 발전에 초점을 맞춘 탓에, 생활수준으로 환원하기 애매한 문화적 현상에 대한 설명은 좀 소홀했다. 예를 들자면, 저자는 애를 많이 낳는다고 알려진 이슬람권 같은 지역에서도 저출산이 확산된다는 걸 문화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근거로 삼는데, 출산율은 문화도 문화지만 물질적 생활수준과 환경의 영향이 크게 작동한다. 이것만 봐선 생활 수준의 향상 때문인지 정말 충분히 문화가 바뀌어서인지 파악하기 애매하다. 여성의 권리가 올라가서 출산율이 낮아진 면도 있겠지만, 그 영향이 컸다면 이슬람권에서 히잡 의상이 유행/강제화되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확산되는 것과 같은 문화적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더 심해진 사례들을 설명할 수 없다.


설령 이런 개도국의 긍정적인 변화가 실재했다 하더라도, 앞으로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의 진보는 서구의 민주주의/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의 확산과 세계 2차대전 이후의 어마어마한 경제성장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류학적 실존의 위기까지 거론되며,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서구식 보편적인 가치의 확산이 서구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인도 등의 성장으로 인해 점점 애매해지며, 세계화와 포퓰리스트적 사고로 인해 정체성 정치가 유행하고 문화적 충돌이 빈번해지는 지구촌에서도 빈곤 탈출과 문화 개선이 계속될지는 많이 의문이다. 나는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낙관적이지만도 않다.   



위에 저자의 순진해 보이는 시각을 비판하긴 했지만, 저자가 무책임한 낙관론자인 건 절대 아니다. 수는 많이 줄었으나 지구촌엔 여전히 기본적인 생활도 못 누리는 빈곤층들로 가득하고, 현재 지구촌은 기후 변화와 전쟁, 금융위기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지구촌의 과거와 현재를 사실에 기반하여 제대로 이해해야만 가능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위의 10가지 본능에 의한 그릇된 문제 인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자칫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위의 구절을 통해 저자는 요즘 유행하는 좌우파 포퓰리스트들의 무책임한 언행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무조건적인 분노 조장, 필요 이상의 비관론, 특정인/특정 집단을 적으로 돌리는 행동, 세상에 대한 이분법적인 시야 등등...  포퓰리즘의 시대에 정말 절실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인간들이 세상을 잘못 인식하게 된 것도 단순히 언론이나 정치인처럼 특정 부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분명 잘못된 현실인식을 퍼트리곤 있지만, 이들의 일은 업무의 성격 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위의 10가지 본능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발전해온 본능임을 인정한다. 그저 본능을 통한 인식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으니 고치자고 할 뿐이다.  



블로그 역사 처음으로 이 책에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겠다. 책의 주제나 내용도 정말 좋으나 그 전에 저자의 담담하고 책임있는 태도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아니다 싶은 부분도 있었고 위에 길게 지적했지만, 이런 태도를 느끼자마자 저자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데이터를 본 저자 입장에서 대중이나 엘리트의 오해가 참 답답할 법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걸 특정인/특정 집단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반은 어쩔 수 없다며 침착하게 받아들인다. 모든 문제가 OO 때문이라고 보는 무책임한 사기꾼이나 포퓰리스트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말 보기 힘든 부류의 사람이다. 저자 한스 로슬링은 이 시대의 대인이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맺음말과 작가 소개를 보니 몇 년 전에 별세했다고 한다. 뒤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세상의 어두움과 위험을 인식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전 세계에 불어닥치는 불안감과 포퓰리즘의 위험에 맞설 유일한 힘이 되리라.

  1. 정답은 C다. [본문으로]
  2.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남편/남자친구에게 죽임당하는 여자가 1년에 100명이나 된다"는 식의 레토릭이 여기 포함된다. [본문으로]
  3. 개인적으로 작년의 예멘 난민 수용 논란에서 이걸 크게 느꼈다. 유명한 수용 반대 근거 중에 "핸드폰 가진 부유해 보이는 사람이 진짜 난민 맞느냐?"는 식의 주장이 있었는데, 이는 개발도상국, 심지어 예멘처럼 최빈국 수준의 국가에서도 휴대폰 사용률이 수십%에 이른다는 현실을 무시한 발언이다. 예멘이 고질적으로 불안한 지역이었고 이번 내전으로 지옥도가 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많은 생활수준 향상이 있어왔다. [본문으로]
  4. 저자가 든 예시에는 개발도상국에선 민주주의보다 독재정치가 생활수준 향상에 더 기여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애착이 강한 서구 좌파들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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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을 수 있는 한국경제사 서적이다.


시대순으로 한국경제사를 설명하지만 흥미로운 키워드(예: 한국 중세의 특수성, 고려의 노비, 조선의 곡물저장,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등) 위주로 서술하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교과서처럼 지루하지도 않고 심심풀이로 읽을 만하다. 입문용 서적이지만 여러 논문과 최신 학계동향을 언급하는 등 내용은 충분히 알차며, 한국사에 특정 현상이나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충분히 이해가도록 잘 서술했다. 글을 재미있게 쓰는 글솜씨는 덤.

한국사의 '경제적 측면'에 집중한 책이라 그렇게 느끼는 면도 있지만, 덕분에 한국사가 좀 새롭게 다가왔다. 


이렇게 좋은 책을 읽다보니, 한국의 역사교육이 재미없는 이유를 확실히 알겠다. 역사는 왜 이러한 현상/사건이 벌어졌는지 큰 틀에서 보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교과서 분량이 적으니 앞뒤배경 전부 짜르게 되어 인과관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결국 남는 건 영문도 모르고 무작정 외우게 시키는 것.

거기에 학계에서는 이미 반박된 이론들이나 오해들(예-토지조사사업은 조선인 수탈용이다)이 교과서에 버젓이 실리니, 역사교육이 유익하기는 커녕 오히려 잘못된 이해를 조장하는 면까지 존재한다.


한국경제사 입문용으로 딱 좋은 책이다. 더불어 한국의 역사교육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10점 만점에 8점.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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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0189


정치외교 전문 칼럼리스트인 로버트 카플란 책은 『지리의 복수』라는 책 이후 두 번째다. 국제정치 설명에 있어 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명저로서, 국제정치나 지리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강추하는 아주 좋은 책이었다. 카플란 이름값을 따라 이 책까지 알게 되었다.  


미리 말하자면, 이 책은 굉장히 재수없는 책이다. 출판된 지 2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책인데도, 책에서 내놓은 경고나 예측들 절대다수가 맞아떨어졌고, 이 대부분은 사람 불편하게 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안 그래도 카플란의 냉소적이고 직설적인 문체 때문에 그 특성이 더 심하게 다가온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로버트 카플란은 평화나 민주주의같은 이상적 가치도 좋으나 그 이전에 국제정치가 권력투쟁의 장임을 명심해야 하며, 국익증진을 최우선의 목표로 하여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극렬 현실주의자다. 또한 카플란은 국가의 지리적인 특색이 정치, 경제, 사회문화 그리고 외교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며, 국가는 지리적 운명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고 보는 지리 결정론자이다. 딱 봐도 대중에게 인기있을 성향은 아니며, 이게 그의 문제의식과 결합되어 더 심해졌다.  


저자가 책을 쓴 90년대엔[각주:1] 소련이 해체되면서 자유민주주의가 체제대결에서 확실하게 승리했으며, 세계화를 통해 전 세계가 골고루 풍요로워지며 평화를 누릴 거라는 장밋빛 예측이 만연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토마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나 『세계는 평평하다』같은 유명한 책들은 그런 풍조 속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카플란은 그런 장밋빛 예측을 단호하게 거부하며, 오히려 냉전 시대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가 터져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새무얼 헌팅턴의 『문명과 충돌』[각주:2] 같은 책과 일맥상통하는데, 불행히도 2019년 시점에서 볼 때 국제정세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예측에 더 가깝게 움직였다.



책에서 펼쳐놓은 주요 분석이나 예측들을 살펴보자면.


1. 냉전 이후 개발도상국들은 점점 무질서의 영역으로 빠져들 것이다. 개발도상국은 인구 폭증, 환경 파괴 및 기후 변화, 무분별한 도시화로 인한 슬럼 문제, 부족주의와 문화적 충돌 등의 문제를 앓고 있으며, 이는 안 그래도 취약한 체제를 가진 개발도상국을 위협하는 걸 넘어 국가 자체를 붕괴시키거나 재정립시킬 수 있다. 그렇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격차는 더 커질 것이며, 이런 분열은 선진국조차 위협할 수 있다.


2. 민주주의를 단순히 도덕적으로 올바르다고 세계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경제적으로 중산층 수준의 생활 수준에 도달했거나, 정치적으로 국민들이 통합되었으며 중앙관료체제가 제대로 돌아가는 동네에서나 기대해볼 만하다. 그렇지 않은 지역에 함부로 민주주의를 강요했다가는 민주주의가 부족주의적 욕망에 악용되거나 국가를 껍데기만 남은 무질서체제로 만들 수 있다. 그런 민주주의보단 차라리 중국이나 싱가폴처럼 '적절하게 국가를 운영하는' 독재체제가 더 낫다. 


3. 홀로코스트나 제노사이드 같은 반인륜적 범죄를 막기 위해선 전범재판을 벌이거나 타국가에 군대를 파병하기보다는 권력 집단 간 세력 균형[각주:3]을 이루는 게 더 좋다. 그것이 더 확실하며 국민 여론의 눈치를 덜 볼 수 있는 방법[각주:4]이다.


4. 선진국 엘리트들은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개발도상국에 파견나간 엘리트조차 자기 거주지 바깥의 삶은 직접 접하기 힘들며, 선진국스러운 사상과 이념이 강하게 뿌리박혀 실제 현장에서 목격한 내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선진국 엘리트들은 개발도상국을 분석하면서도 자기들이 이해가능하며, 입맛에 맞는 부분만 본다. 따라서 이들은 왜 개발도상국에서 민주주의 붕괴, 내전, 학살 등의 문제가 반복되며. 국민들이 왜 천박한 마음가짐을 가졌으며 일상보다는 차라리 전쟁터에서의 영웅스러운 삶을 원하는 지경이 되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5. 다문화주의를 통해 이질적인 국민들이 유입되고, 세계화로 엘리트들이 애국심이 줄어들며 생활양식이나 가치관이 서민들과 분리되고,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매스컴이 대중의 문화를 경박하고 자극적인 것으로 가득 채우는 현상은 선진국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장기간의 평화 속에서 이런 현상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연예인같은 지도자를 양산하여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


6. 무조건적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해롭다. 무조건 평화만 추구하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다른 가치들을 포기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쟁을 통해 인류는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의 적을 인식함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고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만들 수도 있다. 


7. UN은 국가들 간의 합의체이기 때문에, 제 기능을 하려면 국가들 전체 즉 세계 전체가 똑같은 가치관과 사고로 통일되어야 한다. 이는 불가능한 데다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이것이 UN이 유명무실한 기관이 된 이유이다. 



보다시피 이 주장들은 전부 맞는 것으로 결정난 듯 하다. 1은 시리아, 이라크, 예멘, 아프간, 나이지리아, 리비아 등의 내전을 통해 분명해졌고, 2.는 아랍의 봄이 튀니지 빼고 죄다 실패로 끝난 데서 확인할 수 있고, 3.은 각종 전쟁 범죄에 국제기관이 무력한 걸 보면 짐작할 수 있으며, 4.는 르완다를 GGI 지표를 핑계로 '미국보다 성평등한 사회'라는 식의 뻘한 분석이나 내놓는 세계 메이저 언론들을 보면 알 수 있으며, 5.는 설명이 필요없는 수준이고, 6.은 한국 진보좌파를 보면 어느정도 동의가 되며, 7.은 논리를 보면 자동으로 끄덕거려진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전부 사실로 드러난 내용이기에 반박도 할 수가 없으니, 보는 독자들은 힘이 빠질 뿐이다. 




다만 세부적으로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 읽으면 알겠지만, 까놓고 말해서 저자가 좀 '꼰대 틀딱' 성향이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으며 현대 사회에 찾기 힘든 희대의 명저라 한 걸 보면 말끝마다 삼국지를 강조하는 한국의 중장년 남성들이 연상된다. 그리고 대중매체로 인해 현대사회가 타락했다는 투의 내용은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도 많이 나와 너덜너덜해진 주장인데다, '게임이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식의 논리가 자꾸 연상이 된다. 


극단적이어서 동의하기 힘든 주장도 있었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에겐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나으며, 독재국가가 의외로 민주국가보다 부패가 적다는 식의 주장이 있었는데, 그건 독재자가 리콴유, 박정희, 피노체트, 장제스처럼 민주주의를 억압하더라도 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개념인일 때나 성립하는 주장이다. 나라를 도탄에 빠트린 마오쩌둥, 뒤발리에 부자, 차베스와 마두로, 사담 후세인, 이디 아민 같은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었나? 


또 저자가 국제정세에 대한 비관론을 설파한 건 1990년대의 발칸반도나 서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여러 내전을 보고서인데, 이들 국가에서의 분쟁은 현재 대부분 해결되었으며, 나름의 노력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아주 비관적인 건 아니다. 현재 벌어지는 내전들도 잘만 하면 예전에 벌어졌던 분쟁처럼 잘 봉합될 수 있다. 



그래도 저자가 남긴 메세지는 현재 시점에서 의미심장한 것들이 많으며,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포퓰리즘과 정체성 정치가 유행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점에선 더더욱 그렇다. 20년 뒤의 미래를 예측하고, 20년 뒤에도 의미심장하게 읽을 글을 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카플란은 그걸 해낸 정말 통찰력 있는 칼럼리스트이다.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10점 만점에 9점은 줄 좋은 책이다.  

  1. 출판은 원서 기준 2000년에 이뤄졌으나, 이 책은 그가 90년대에 쓴 칼럼과 논문들을 집대성한 책이다. [본문으로]
  2. 냉전 시기엔 자본주의vs 공산주의의 대결이었다면, 냉전이 지난 시대엔 서로 다른 문화나 가치관을 가진 '문명'들로 세계가 나뉘어 분쟁을 벌일 것이라는 게 요지이다. [본문으로]
  3. (신)현실주의에서 단골메뉴처럼 내놓는 평화 유지 방법. [본문으로]
  4. 처음에는 국민이 인류애적인 측면에서 파병을 원할 지 몰라도, 자국민 전사자가 발생하면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된다고 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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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8975967


이안 브레머는 세계적인 정치 연구자로, J커브 이론[각주:1]과 G-Zero 세계[각주:2] 등의 도발적인 이론을 제시하여 인기를 끈 학자이다. 그의 저서 중 『리더가 사라진 세계 - G제로 세계에서의 승자와 패자』는 명저로서, 현재 국제질서를 이해하려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브렉시트도 트럼프 열풍도 없던 2012년에 출간된 책[각주:3]이라고 믿기지 않는 통찰력과 예지력을 지녔다. 서평단에 지원한 것도 저자가 이 책에서도 눈부신 통찰력을 보여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참고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Ian Bremmer 계정이 있으니 한번 구독하길 바란다. 사회 현안에 대한 통찰력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위트가 넘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기대에 못 미친 책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별로일 책은 아니다. 뒷부분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일단 내가 이 책을 별로라 생각한 이유부터 설명해 보겠다.


일단 책 제목과 내용 간에 괴리가 좀 있다. 한국어로는 『우리 대 그들』, 원서로는 더 직관적인 『US vs THEM』이다. 서평단 광고나 책 표지만 보면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언급할 것 같은 책인데, 포퓰리스트들이 스스로를 '우리 인민을 위하는 정치인[각주:4]'으로 표방하고 이에 대비되는 '가공의 적'을 만들어 우리 편을 결집시키고 상대를 악마화한다는 전략을 쓴다는 건 많이 알려진 터라, 제목 자체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문제는 이게 세계적인 포퓰리즘 현상과 그 양상을 묘사한다기보다는, 포퓰리즘이 유행하는 이유들을 설명하는 책에 가깝다는 거다. 세계화가 국가 내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이민자 유입되면서 국가 정체성 위기가 생겨 국민들은 불만에 빠졌으며,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자극되었다. 그 결과 세계화에 반대하는 포퓰리즘이 세계적으로 양산되었다는 게 책의 요지이다. 포퓰리스트들이 어떻게 '우리 대 그들을' 가르고 이 대립을 이용하는지는 뒷부분에 가야 나타나며, 그나마도 현황이 이렇고 앞으로 이렇게 된다는 식으로 짤막하게 언급되었다. 포퓰리즘의 패턴과 전략 및 역사와 같은 구체적인 분석은 없다. 제목만 보고 책을 산 사람 중 실망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언 브레머는 이 책의 제목을 세계화와 포퓰리즘 같은 걸로 바꿨어야 했다.


내용도 사실 진부한 부분이 많았다.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과 이민 유입이 포퓰리즘을 양산했고, 포퓰리즘이 우리 대 그들 구도를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거라 자부하지만 문제 해결은 커녕 새로운 문제를 양산할 뿐이라는 분석은 하도 많이 나와 지겨울 지경이다.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아 기사든 칼럼이든 책이든 많이 읽은 사람 입장에선 더더욱. 참신하지 않다면 깊이있게라도 분석했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해결책이라고 내세운 것도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고, 배제하는 사람 없는 포괄적인 사회시스템을 짜자는 뻔한 내용밖엔 없었다. 현실성도 많이 의심스럽고. 고전적인 좌파들이 내놓았을 방안인데, 세계화로 인한 바뀐 현실을 얼마나 반영한 건지 의심스럽다. 저자가 내놓은 해결책이 실현 가능했다면 왜 그렇게 못 했을까 하는 생각만 자꾸 든다. 가망이 없어서 그냥 자포자기 식으로 내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책이 이렇게 된 제일 큰 이유는 아마 분량이 너무 적어서였을 것이다. 미주를 빼면 겨우 250페이지 남짓인데, 포퓰리즘은 깊게 파고들면 분량이 충분히 길어질 주제다. 그걸 250페이지로 압축해서 썼으니 세부적인 내용 상당부분이 빠져나가는 부작용이 벌어질 수밖에. 자가 『리더가 사라진 세계 - G제로 세계에서의 승자와 패자』에서 보여준 통찰력을 생각하면, 분량이 두 배였으면 언급한 문제가 상당 부분 없어지지 않았을까... 



그래도 책에서 건질 내용이 분명 있다.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파괴 문제를 제기한 것과, 개발도상국을 포퓰리즘 유행에 특히 취약하다고 진단한 것이 그것이다.


알파고와 4차 산업혁명 문제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저자가 그런 불안감을 잘 설명해주었다. 특히 '자동화가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속설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자동화 전과 후의 일자리 구성은 분명 다르므로 노동자들이 사회 변화에 적응 못해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저자의 통찰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걱정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벌어진 수준의 자동화로도 서구 선진국들이 난리가 났는데, 앞으로 있을 변화엔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또 포퓰리즘 유행을 서구 선진국에만 국한시켜 분석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개발도상국과 권위주의 국가에 확장시켜 설명했다. 포퓰리즘은 단순 선진국만의 현상은 아니며, 정체(政體)라기보단 정치적 스타일에 가깝다보니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국가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 개발도상국과 권위주의 국가는 세계화로 인한 폐해를 해결할 사회적인 부, 신뢰, 인프라, 시스템 등 문제해결능력이 부족해 더 위험하다는 걸 지적한 것이 인상 깊었다. 나만 하던 생각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몇몇 개발도상국 사례까지 들어 언급하니 더 실감이 잘 났다. 



그럼 왜 이 책이 모두에게 별로인 것이 아니냐? 지금까지 쓰여진 내용은 국제정치에 관심 많고 책 많이 읽는 계층의 시선에서 쓰여진 서평이기 때문이다. 부실하고 뻔한 책 내용은 그런 독자들에겐 큰 문제이지만, 세계적인 포퓰리즘 현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거나 책을 잘 읽지 않는 독자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들에게는 이 책이 괜찮은 책일 수 있다. 이론보다는 실화 위주고, 분량도 짧아서 읽기에도 편하며 어렵지 않은 책이기 때문이다. 만약 저자가 이런 사람들을 노리고 책을 쓴 거라면 나쁜 책은 아니다.



개인적인 평점은 7/10점. 아쉬운 점이 많지만 좋은 지적도 있어서 나쁘지는 않게 줬다. 다시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분량만 좀 많았으면 좋았을 책이다.

  1. 한 국가의 개방성과 안정성과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 [본문으로]
  2.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이 세계 패권국으로서 책임을 기피하여 국제질서의 리더가 공백이 된 세계. [본문으로]
  3. 원서 기준. [본문으로]
  4. 반공 이념으로 한국에선 금기시된 단어지만, 이 상황에선 국가의 존재를 전제하는 '국민'보다 더 적합한 말이라 생각해 '인민'이라고 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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