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서적

한스 로슬링 外,『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유월비상 2019. 3. 17. 18:33



서지정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4564546



예전에 대만 여행가서 서점에서 보고 번역만을 기다린 책이었는데, 드디어 출판되었구나. 예전에 TED 영상 보고 알게 된 사람이라 특히 기대가 됐었다. 출간되자마자 바로 사서 3일만에 다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의학자 겸 통계학자이다. 그는 의사와 통계학자로 활동하면서 본 수많은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세상이 진짜 돌아가는 모습에 대해 우리가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사실 충만함을 나타내는 제목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서 볼 수 있듯, 그는 거짓 정보나 오해를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사실로 가득 채운다. 더 나아가, 왜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 제언했다.


시작하기 전에 한 문제를 풀어보자.


문제)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A) 거의 2배로 늘었다.
B) 거의 같다.
C)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정답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보고 각주버튼을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자.[각주:1]

혹시 틀렸는가? 틀렸다고 좌절하지 마라. 
이거 맞춘 사람은 조사 대상자의 7%에 불과하니까.


그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세계의 평균수명, 출산율, 인구예측, 교육수준같은 삶의 양상과 관련된 통계지표를 A,B,C 3지선다형으로 내놓고 맞추게 하면, 사람들은 많이 틀리는 걸 넘어 정답률이 1/3 미만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A, B, C 중 무작위로 찍어맞추는 침팬지보다 못한 정답률을 보인 셈이다. 무식한 일반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직, 정치인, 학자들에게 물어봐도 일반인과 하등 다르지 않은 형편없는 정답률을 보인다. 

그럼 왜 우리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오해하는 걸까? 그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고, 저자는 다음과 같은 10가지를 제시한다.  

1) 간극 본능 -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편향
2) 부정 본능 - 세상이 무조건 갈수록 나빠진다고 보는 편향
3) 직선 본능 - 앞으로의 추세가 지금처럼 쭉 갈거라 보는 편향 
4) 공포 본능 - 언론에 노출된 비관적인/극단적인/공포스러운 일에만 신경쓰는 편향
5) 크기 본능 - 숫자/사건 하나하나에 일회일비하는 편향
6) 일반화 본능 - 몇몇 사례를 들어 집단 전체를 일반화하거나, 특정 집단의 성향을 보편의 성향처럼 일반화하는 편향
7) 운명 본능 - 특정 사회, 국가, 문화권은 영원히 현 상태로 남아있을 거라 간주하는 편향
8) 단일 관점 본능 -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든 것을 평가하려는 편향
9) 비난 본능 - 모든 잘못된 일을 특정인/특정 집단 탓으로 돌리려는 편향
10) 다급함 본능 - 지금 아니면 영원히 늦는다면서 조급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편향


그런데 위 10가지 본능은 사실 하나의 본능으로 수렴한다. 
10가지 본능은 그 본능의 원인이나 구체적인 예시에 불과하다고 봐도 무관하다. 
저자는 대놓고 언급하지 않았지만, 400여페이지 되는 책 전체를 이 관점 비판에 할애하고 있다. 

바로 2)본능, 즉 세상이 갈수록 나빠진다고 보는 편향이다. 

이 편향과는 달리, 저자는 세상은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확실히 좋아졌음을 책 전체에 걸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설명한다. 당장 이 책의 부제부터가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다. 
1인당 gdp(ppp), 평균 기대수명, 아동 사망률, 교육 수준(여성들을 포함해서!), 전쟁 사망자 비율 등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눈부시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위 10가지 본능, 특히 2번 부정 본능은 그러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고, 세상이 갈수록 나빠진다고 잘못 생각하게 만든다. 

세상을 선진국 vs 개도국의 구도로 보니 개도국들도 많이 발전해왔다는 걸 무시하게 되며, 
인구폭발같은 위험한 추세가 앞으로 계속 갈거라 생각하니 미래가 암울해 보이며,
매일같이 극단적인 범죄나 테러, 자연재해, 안전사고를 접하게 되니 세상이 끔찍해지는 것처럼 보이며,
큰 숫자나 극단적인 사건 하나하나에 일회일비하니 세상이 지옥처럼 보이며[각주:2]
개도국을 빈곤, 테러, 부패, 전쟁 같은 이미지로만 보니 개도국들의 빠른 발전을 보지 못하며[각주:3]
개도국은 운명적으로 빈곤하며 전통적인 구습이 지속될 거라 보니 희망 없는 지옥으로 보며,
한 가지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니 세상의 진보를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며[각주:4],  
세상이 망가진다는 분노는 특정 인종이나 종교, 정치인, 금융인과 기업인을 적으로 돌리면서 더 심해지며,
비관론에 기초한 조급증은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 자기실현적으로 세상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위 생각들은 전부 잘못되었으며, 문제가 있을지라도 세상은 확실히 여러 면에서 좋아졌으니까. 

워낙 글빨도 좋고 근거가 워낙 탄탄해서 어지간해서 딴지걸긴 정말 어려울 것이다.




다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저자가 7)의 운명 본능을 비판하면서 개도국도 빈곤에서 탈출하고 문화적 구습에서 멀어졌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부분이다. 내가 보기엔 근거가 좀 부실하게 제시됐다. 저자가 물질적인 삶의 발전에 초점을 맞춘 탓에, 생활수준으로 환원하기 애매한 문화적 현상에 대한 설명은 좀 소홀했다. 예를 들자면, 저자는 애를 많이 낳는다고 알려진 이슬람권 같은 지역에서도 저출산이 확산된다는 걸 문화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근거로 삼는데, 출산율은 문화도 문화지만 물질적 생활수준과 환경의 영향이 크게 작동한다. 이것만 봐선 생활 수준의 향상 때문인지 정말 충분히 문화가 바뀌어서인지 파악하기 애매하다. 여성의 권리가 올라가서 출산율이 낮아진 면도 있겠지만, 그 영향이 컸다면 이슬람권에서 히잡 의상이 유행/강제화되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확산되는 것과 같은 문화적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더 심해진 사례들을 설명할 수 없다.


설령 이런 개도국의 긍정적인 변화가 실재했다 하더라도, 앞으로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의 진보는 서구의 민주주의/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의 확산과 세계 2차대전 이후의 어마어마한 경제성장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류학적 실존의 위기까지 거론되며,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서구식 보편적인 가치의 확산이 서구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인도 등의 성장으로 인해 점점 애매해지며, 세계화와 포퓰리스트적 사고로 인해 정체성 정치가 유행하고 문화적 충돌이 빈번해지는 지구촌에서도 빈곤 탈출과 문화 개선이 계속될지는 많이 의문이다. 나는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낙관적이지만도 않다.   



위에 저자의 순진해 보이는 시각을 비판하긴 했지만, 저자가 무책임한 낙관론자인 건 절대 아니다. 수는 많이 줄었으나 지구촌엔 여전히 기본적인 생활도 못 누리는 빈곤층들로 가득하고, 현재 지구촌은 기후 변화와 전쟁, 금융위기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지구촌의 과거와 현재를 사실에 기반하여 제대로 이해해야만 가능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위의 10가지 본능에 의한 그릇된 문제 인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자칫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위의 구절을 통해 저자는 요즘 유행하는 좌우파 포퓰리스트들의 무책임한 언행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무조건적인 분노 조장, 필요 이상의 비관론, 특정인/특정 집단을 적으로 돌리는 행동, 세상에 대한 이분법적인 시야 등등...  포퓰리즘의 시대에 정말 절실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인간들이 세상을 잘못 인식하게 된 것도 단순히 언론이나 정치인처럼 특정 부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분명 잘못된 현실인식을 퍼트리곤 있지만, 이들의 일은 업무의 성격 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위의 10가지 본능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발전해온 본능임을 인정한다. 그저 본능을 통한 인식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으니 고치자고 할 뿐이다.  



블로그 역사 처음으로 이 책에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겠다. 책의 주제나 내용도 정말 좋으나 그 전에 저자의 담담하고 책임있는 태도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아니다 싶은 부분도 있었고 위에 길게 지적했지만, 이런 태도를 느끼자마자 저자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데이터를 본 저자 입장에서 대중이나 엘리트의 오해가 참 답답할 법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걸 특정인/특정 집단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반은 어쩔 수 없다며 침착하게 받아들인다. 모든 문제가 OO 때문이라고 보는 무책임한 사기꾼이나 포퓰리스트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말 보기 힘든 부류의 사람이다. 저자 한스 로슬링은 이 시대의 대인이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맺음말과 작가 소개를 보니 몇 년 전에 별세했다고 한다. 뒤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세상의 어두움과 위험을 인식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전 세계에 불어닥치는 불안감과 포퓰리즘의 위험에 맞설 유일한 힘이 되리라.

  1. 정답은 C다. [본문으로]
  2.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남편/남자친구에게 죽임당하는 여자가 1년에 100명이나 된다"는 식의 레토릭이 여기 포함된다. [본문으로]
  3. 개인적으로 작년의 예멘 난민 수용 논란에서 이걸 크게 느꼈다. 유명한 수용 반대 근거 중에 "핸드폰 가진 부유해 보이는 사람이 진짜 난민 맞느냐?"는 식의 주장이 있었는데, 이는 개발도상국, 심지어 예멘처럼 최빈국 수준의 국가에서도 휴대폰 사용률이 수십%에 이른다는 현실을 무시한 발언이다. 예멘이 고질적으로 불안한 지역이었고 이번 내전으로 지옥도가 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많은 생활수준 향상이 있어왔다. [본문으로]
  4. 저자가 든 예시에는 개발도상국에선 민주주의보다 독재정치가 생활수준 향상에 더 기여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애착이 강한 서구 좌파들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