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서적

폴 콜리어, 『빈곤의 경제학』

유월비상 2019. 4. 27. 15:01

서지정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212764

전에 리뷰한 엑소더스 저자의 또 다른 책이다. 워낙 좋은 책이어서 이것도 읽어 봤는데 전반적으로 괜찮다. 세부적으로는 동의 못 하는 면도 있지만. 아쉽게도 출간된 지 좀 된 책이다. 원서 기준으로 2007년 출간됐기 때문에, 그 때와 지금 간의 시대 차이에 유의해서 읽어야 한다. 경제위기 전후로 정치질서와 경제질서가 많이 달라졌다. 

원제 The Bottom Billion(밑바닥 10억 명)과 부제 '극빈국 10억 인구의 위기'에서 알 수 있듯, 제목에서 빈곤은 '세계의 최빈곤층 10억 명'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프리카의 굶어가는 아이들' 이미지를 상상하면 얼추 맞는다. 

그렇다면 세계 밑바닥 국가들의 빈곤은 도대체 왜 문제일까? 국민들이 여유로운 삶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힘든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이 비참함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들 국가들은 생활수준이 몇 십 년 동안 제자리걸음 수준이며, 콩고민주공화국처럼 치명적 내전을 겪은 몇몇 국가는 오히려 악화되기까지 했다. 또 지금처럼 한다면 앞으로도 비참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예측된다. 

더 비참한 것은 다른 국가들은 몇십 년 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당장 한국, 대만, 중국, 베트남, 인도의 과거와 현재만 비교해도 답이 나온다. 정도는 좀 약하지만 동남아시아나 구 공산권 국가들도 많은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그러나 최빈국들은 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소외되어 뒤쳐지고 있다. 이 경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밀라노비치의 연구에 따르자면, 1988-2008년 사이 세계적으로 생활수준이 크게 증가했지만 이 경향에서 예외적인 두 집단이 있는데, 바로 포퓰리즘의 주동세력으로 지목받는 선진국 빈곤층과, 이 책에서 말하는 세계 최빈곤층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는 건 도의적으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옛날 책이라 언급은 안 됐지만 시리아 내전만 봐도 그렇다. 시리아가 최빈곤국은 아니지만 내전으로 최빈곤국처럼 삶이 고달파지자 많은 시리아인이 유럽에 난민으로 몰려갔는데, 이는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을 불러일으켰으며, 난민 받기 꺼려하는 국가들이 서로 갈등을 빚는 등 유럽 선진국들에 혼란을 불러왔다. 


그렇다면 왜 세계 최빈곤국들은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하는가? 저자는 최빈곤국의 고질병 네 요인을 지적한다. 첫 번째는 나라를 분열시키는 내전이다. 빈곤국들은 국가 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경제적 충격에도 바로 내전에 빠질 수 있다. 이 경우 국가 기반 전체가 전쟁에 총동원되고, 사람들이 기아와 학살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기란 어렵다. 설령 내전이 끝나더라도 무시못할 확률로 재발한다. 이러니 경제성장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거기에 반란세력은 겉으론 독립운동처럼 고상해 보일지라도 속살을 들추면 사리사욕을 위한 군벌의 무자비한 폭력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서방에서 이미지만 보고 반란세력들의 내란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는데, 이런식의 폭력은 늘 그렇듯 명분이 있어보여도 폭력은 폭력이라는 내 사고만 더 확실해졌다. 

두 번째는 흔히 자원의 저주라 말하는 천연자원. 천연자원이 발견되고 수출되면 화폐 가치가 상승해 기존 상품들의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네덜란드 병이라 한다. 또 천연자원은 선진적인 국가체제를 만드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국가가 천연자원을 차지한 경우 국가가 별 노력 없이도 국민들을 경제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부패하고 무능하고 비민주적인 시스템에 안주하게 만든다. 또 최빈곤국들에서 천연자원은 자칫 천연자원을 재정적 기반으로 할동하는 반란세력만 키울 수 있다.[각주:1] 

세 번째는 내륙국으로서의 지리적 한계이다. 세계 최빈곤국 상당수는 해안이 없는 내륙국이며, 이는 국제 무역에 있어 매우 불리하다. 육로는 해운보다 운송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데다, 세계 최빈곤국들은 인프라가 극악이기 때문에 운송비용이 더더욱 치솟는다. 거기에 최빈곤국들은 주변국가들도 최빈곤국들인 경우가 많으므로,  주변 국가의 경제성장으로부터 상호 이득을 얻기는 커녕 옆 나라의 내전에 말려들기 십상이다.  

마지막은 최빈곤국들의 엉망진창인 내정이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빈곤국 정부의 부패, 무능, 폭정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최빈곤국인 차드에선 재무부가 여러 기관을 거쳐 지방 보건소에 국비를 지원하는데, 조사 결과 지방 보건소에 실제로 도달한 액수는 재무부 국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부패로 공공자금의 99% 이상이 증발한 셈이다. 이정도면 국민들에게 국가라는 개념은 없다고 봐야 한다.


 최빈곤국들이 이런 비참함에서 탈출할 방법은 있을까? 다행히 희망은 있다고 한다. 현명하고 득이 되는 원조정책, 군사적 개입, 법률과 헌장을 통한 최빈곤국 국가시스템의 선진화, 무역 정책 개혁이 그 답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서구 선진국들이 이미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소극적이었기 대문에 제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빈곤국들이 빈곤을 탈출하려면 더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선진국들은 국가 간 외교 혹은 국제단체를 통해 최빈곤국들과 적극적으로 공조하며 경우에 따라선 내정에 개입할 필요도 있다고 한다. 

 글이 너무 길어지니 원조정책과 무역정책 개혁만 예로 들어보자. 최빈곤국들에 원조를 하는 경우, 부정부패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게 원조 지원국의 내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원조는 많이 하면서도 원조 지원국을 감시하는 데 소홀해왔기 때문에 원조의 제 효과를 못 봤다. 또 원조정책을 담당하는 조직은 파워나 발언권이 약해 현장의 목소리가 상부에 제대로 닿지 못하고, 상위 조직의 결정에 끌려다니게 되었다. 기존의 무역정책도 문제가 많았다. 선진국 좌파들은 개발도상국들을 위한답시고 고관세 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최빈곤국들의 경제적 행위자들이 자유무역에서 보호받게 되어 과도한 지대를 누리도록 만들었다. 또 자국 산업을 보호한답시고 고관세 정책을 펼친 선진국도 있는데, 이는 빈곤국의 농업/산업이 발달할 기회를 박탈하고 말았다. 

 이렇게 현실파악 없이 좋은 의도만 앞세워서는 안 되며, 진정으로 최빈곤국들을 위한 경제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최빈곤국들이 제자리걸음하는 이유는 잘 짚어냈으나, 그 해답이 비현실적이며 이 시대엔 더더욱 실현 불가능하다고 본다. 해답이라고 내 놓은 것들이 원조정책의 현실화나 무역 정책 개혁과 같은 걸 제외하면 뜬구름 잡는 수준의 이야기다.  스스로 내놓은 정책이나 어젠다를 더 구체화해서 이야기해야 했지만 저자는 그러지 못했다. 

또한 이런 해결책들은 국제정치의 활성화와 선진국들이 최빈곤국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섬을 전제하는데, 아쉽게도 현재 국제정세와 국제경제는 아예 정반대로 가고 있다. 책 출간 당시는 2007년이었는데 그 때는 국제정치 문제가 지금처럼 심하지도 않았고, 자유시장과 선진국의 선의를 통한 경제발전에 대한 믿음이 팽배했던 시기다. 그러나 2008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경기불황으로 선진국들마저 내 코가 석자가 되어 옛날만큼 최빈곤국들에 관심과 재원을 쏟아붓기 어려워졌다. 또 세계적으로 포퓰리즘 정치가 유행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기존의 자유주의적인 국제정치가 위협받고 있다. 

현재 서구권 선진국들은 어느 정도 민주주의나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에만 원조하고 투자하나(위에서 말했듯 감시를 안 하긴 하지만), 중국은 그냥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국가거나 부패가 심한 국가일지라도 투자하고 원조한다. 이는 국가 시스템을 선진화시켜야하는 최빈곤국들의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게 만든다. 당장 12년 된 이 책에서도 중국의 무책임한 국제경제정책은 비판받은 바 있는데, 이는 개선되기는커녕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더 악화되었으며, 아예 민주주의와 인권 챙기는 서구적인 국제경제정책과 1대 1로 비견될만큼 중국의 경제정책은 체급이 커져버렸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변화는 최빈곤국들의 경제발전을 방해할 것이다. 만약 저자의 주장들과 예언이 다 맞다면, 최빈곤국들은 앞으로도 발전하지 못할 것이며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우울한 예측이 그려진다. 아니 제자리걸음 정도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최빈곤국들은 높은 출산율로 인구가 급증하고 있으며, 그 상황에서 기후변화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을 것이다.[각주:2] 이 경우 국가기반이 위태로워져 대기근, 내전, 국가 붕괴를 불러올 확률이 높아진다. 최악의 예측이긴 하지만, 최빈곤국들이 몰려있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남아공 보츠와나 같은 몇몇 멀쩡한 나라를 제외하면 지역 단위로 한꺼번에 붕괴할 수도 있다. 


다만 저자의 해결책이 빗나간 것은 저자의 잘못만은 아니다. 옛날 책이기에, 현재의 세계질서 변화까지 고려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부적으론 아쉬움이 있지만, 저자 입장에선 차선 정도의 해결방안과 미래예측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어지간한 학자들보다 최빈곤국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고. 특히 원조/무역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것을 고려해서 10점 만점에 8점을 주겠다. 


+ 진보좌파들은 읽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위에서 말한 잘못된 무역정책 건도 크지만, 불의에 대한 항거라는 레토릭에 속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내전을 미화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빈곤국들에 실재하는 가난 문제를 경시했다. 성장만능주의라면 모를까, '최빈곤국에는 성장이 중요하다'는 수준의 논문에 국제단체들이 반발했다던데 이게 제정신인가? 애 다섯 낳으면 한 명은 어릴 때 떠나보내야 하고, 흉년 나면 친족 중 누군가가 굶어죽어야 하고, 내전나면 소년병으로 끌려가고 질병으로 죽어가는 삶이 그리 낭만적으로 보이나. 다행히 요즘 진보좌파는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진정 최빈곤국들의 삶을 돌보는 진보좌파가 되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


  1. 최근만 해도, 이라크 북부지역의 석유자원을 경제적 바탕으로 삼은 ISIS의 사례가 있다. [본문으로]
  2. 예전에 쓴 글에서도 말했지만, 최빈곤국들은 기후의 관점에서 사람 살기 힘든 지역인 경우가 절대다수다. 기후가 조금이라도 변화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