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서적

조 스터드웰, 『아시아의 힘』

유월비상 2019. 7. 7. 01:16


서지정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5170175

 세계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경제적으로 전례없는 눈부신 성장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절대빈곤은 크게 줄었으며, 1인당 gdp와 평균수명은 크게 향상되었고, 모성/유아 사망률은 크게 낮아졌다. 근데 거기에서도 특출난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지역이 있다. 바로 아시아, 더 나아가자면 동북아시아 지역이다. 19세기 초만 해도 한국, 일본, 대만은 세계적으로 가난한 지역이지만, 현제 세 국가는 경제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발전했다. 중국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들 국가들의 경로를 밟는 중이다. 고난의 행군으로 국가 체제가 붕괴되어 세계 최빈국 라인에 낀 북한만이 유일한 예외다. 

어떻게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경제 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동북아시아는 서구의 시장 자유주의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국가가 경제 전반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유럽과 북미가 처음부터 자유시장경제로 시작한 양 묘사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잘못되었으며, 유럽의 중상주의 시대와 특히 일본의 모델이 된 독일식 경제발전을 예시로 들면서 서구 선진국들도 초기엔 국가주도 및 보호정책으로 발전했음을 설명한다. 동북아시아는 서구 발전 초기의 국가주도 및 보호정책을 그대로 밟아야 하며, 밟았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성공했다고 역설한다. 반면 시장자유주의자들의 말에 홀려 위 과정 없이 바로 자유시장 단계에 돌입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국가경제 발전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자유시장경제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일단은 어느 정도 발전한 후에야 자유시장이 성립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자유시장을 해도 될 때까지는 임시적으로 관치경제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찌보면 장하준과 비슷한 주장이나[각주:1], 저자는 무조건적인 국가주도 및 보호정책이 답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경제 발전의 필요조건이지만, 후술할 여러 조건 하에서 제대로 실시해야 하며, 국가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면 현재의 서구 선진국들처럼 자유시장경제로 반드시 이행해야 함을 명심하라고 강조한다. 현재 동북아시아 국가들을 극찬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생겼음을 뼈아프게 지적했다.   

그리고 국가는 위 마인드를 가진 채로, 다음 세 가지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1. 토지개혁을 통해 가족농을 형성한다.

규모의 경제 개념에 익숙한 우리에겐 의외의 이야기인데, 생활수준이 낮을 땐 소규모 가족농이 기업농/플렌테이션과 농업생산성이 큰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더 높다. 그리고 가족농은 국가경제 발전 초기에 여러 순기능을 한다. 일단 개인 단위로 생산성이 높아지면 저축률이 높아져 향후 성장의 기반이 되고, 농촌의 소비기반이 형성된다. 또 농수산물 수입을 줄여 유출될 외화를 최소화하며, 국가적 복지정책이 미흡한 저소득 국가에서 사회안전망 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강제적인 방식으로 토지를 재분배하는 개혁을 거쳐야 한다.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선 보통 대지주에 농업 생산수단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일본, 대만은 토지개혁에 성공해 가족농 형성에 성공했으며, 중국도 부족하긴 했지만 성공한 축이다. 그리고 정부는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가족농이 소출을 손쉽게 올릴 수 있게 농기계/농약/대출자금 등을 지원하는 농업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토지개혁을 시도했으나 지주의 반발 및 내부의지 부족으로 근본적인 수준의 개혁에 실패했고, 그나마 형성된 가족농도 정부가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 빈곤으로 떠밀렸고 향후 경제발전에 충분히 도움되지 못했다.  

2. 수출 경쟁을 전제한 제조업 육성정책을 펼쳤다. 

제조업은 낮은 기술수준에서도 시작할 수 있고, 고용하는 인원이 많기 때문에 초기단계의 경제발전에 적합하다.[각주:2] 정부는 초기 단계에서 국가주도 및 보호 정책을 통해 제조업 기반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정부주도라는 형식을 이용해서 기업들이 타국의 기업들과 수출경쟁을 하며 이에 실패하는 기업은 과감히 도태시키는 등 경쟁력 발전을 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수출규율이라 한다. 실제로 한국의 박정희 정부는 수출규율에 따르지 않는 기업인들을 감옥에 가두고 협박했다고 하는데, 처음에 이 일화 들었을 땐 이게 독재정권 클라스인가 싶었지만 발상의 방향성 자체는 맞았다는 게 놀라웠다. 이것이 없으면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 정경유착, 관세/비관세 장벽 등을 통한 혜택에 안주하여 산업 경쟁력 향상엔 소홀하고, 부동산이나 도박같은 상대적으로 비생산적이나 투기적인 분야에 치중하여 국가경제기반에 문제가 된다. 실제로 동남아 국가들은 위 이유로 제조업 기반 창출을 시도했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경제발전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3. 1과 2를 목표로 한 국가주도 금융정책을 실시했다.

가족농과 제조업기반을 육성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돈이 매우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의 역할이 필수적인데, 금융이 엇나가지 않고 본래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가주도의 금융이며, 절대 서구 선진국식 자유시장 금융은 안 된다. 국가경제 발전 수준이 낮을 때 자유시장적인 금융을 실시하면 금융기관들이 기업에 포획되어 사금고화될 위험이 있으며,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기 쉬워 금융위기의 위험성만 높아진다. 동남아 국가들은 실제로 자유시장 금융을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1997년에 금융위기를 맞았고, 이를 손쉽게 극복해내지 못했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했으나 산업기반이나 경제 수준이 높았기에 그나마 피해가 덜했으며, 한국처럼 금융위기는 없었어도 자유금융을 더 빨리 도입해 부작용이 왔던 대만보다 더 빠른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주류경제학의 '무조건 시장경제' 마인드는 문제였으며, 미국이나 경제학자들 조언만 믿고 자유시장 정책을 도입한 국가들은 실패하고, 그들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국가주도 및 보호정책을 실시한 국가들은 성공했다고 한탄한다.[각주:3] 토지개혁과 제조업 육성 및 국가주도 금융을 무시하는 마인드가 세계 경제학계와 국제기관에 아직도 만연하기에, 한, 일, 대만 더 나아가 중국같은 성공 사례는 다시 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


이렇게 보면 흔한 좌파들의 주류경제학 비판 서적 같지만, 경제학을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까는 3류 양산형 서적은 아니다. 주류경제학의 풍조를 비판하면서도 주류경제학적 원리 자체는 긍정하 기 때문이다. 리뷰에 쓰진 않았지만 가족농 단원에선 사회주의식 집산농장도 효율이 낮았다고 비판했다.[각주:4] 또 그는 좌파들의 무조건적인 보호무역정책은 동남아시아를 예로 들어 비판한다. 그저 수출경쟁 하지 말고 관세장벽 걸어둔 채로 수입품을 자급자족하자는 수입대체산업화를 비판할 뿐. 3류 양산형 서적들때문에 주류경제학 비판한다는 서적 자체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책만은 예외다. 리뷰는 하지 않았지만 과거에 읽은 로버트 앨런[각주:5]의 『세계경제사』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니[각주:6] 더 신뢰가 든다. 

그리고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인 비결이 핵심 주제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한국, 일본, 대만을 비교하는 부분[각주:7]이 사이사이 있었는데 이 부분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한국, 일본, 대만을 비교하는 데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다 성공 사례지만 대만의 토지개혁이 제일이었고 한국은 제일 덜 성공적이었다던가[각주:8], 대만이 국영기업 문제[각주:9]/수출규율의 상대적 저조함/자체기술 부족으로 한국 일본보다 제조업 수준이 낮다던가, 한국 일본 대만 모두 제각기 다른 금융발전을 겪었다던가[각주:10]... 이쪽 주제로 책이 나오면 꼭 읽어보고 싶다.  

또 중국의 경제성장도 따로 다루는데 흥미로웠다. 자본주의적 원리를 도입했으나 '명목'은 사회주의 국가인 일당독재국가인 중국경제의 이력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국영기업 위주의 경제성장을 통해 몇몇 문제에도 불구하고 잘해온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 금융위기는 과장이나, 국영기업 위주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법치의 부재 및 인구구조 문제는 도전이 될 거라 했는데... 이 책의 원서가 6년 전(2013년)에 나왔던데 지금 봐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시진핑 집권하고 권위주의화되는 지금 특히 더 와닿는다. 

또 간결하면서도 심도있게 분석된 책이다. 세계 곳곳을 돌아나니면서 풀어내는 재미있는 썰도 있고. 덕분에 어려운 책이지만, 가볍게 읽을 사람과 심도 있게 공부할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키는 매우 완벽한 구성을 갖췄다. 

내용도, 구성도 매우 완벽하면서도 신선한 책에 10점 만점에 10점을 안 줄 이유가 없다.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와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발에 관심 있는 사람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1. 실제로 책에선 장하준의 말이 인용되어 있고, 참고문헌란에 장하준 저서가 여러 권 있다. [본문으로]
  2. 그에 따르면 인도는 농업에서 제조업을 건너뛰고 바로 서비스업으로 나아간 잘못된 사례다. 인도가 IT산업로 유명하나 IT 고용 규모는 전체의 1%에 불과하다. [본문으로]
  3. 이 부분이 재미있는 게, 흔히 반미 좌파들이 한국 엘리트들을 '너무 친미적이고 미국에 고분고분 따른다'고 비판하는데, 한국 엘리트들은 이런 면에선 맹목적 친미가 아니었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본문으로]
  4.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을 대만으로 축출하고 벌인 초기 토지개혁은 의외로 효율성 관점에서 대성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적 야망을 품고 집산화를 시작하고나서 재앙이 시작되었다. [본문으로]
  5. 세계 경제사가 석학으로서 학술적 권위를 무시할 수 없는 학자다. [본문으로]
  6. 거기서는 국가주도적 경제발전을 빅 푸시(big push)라 한다. [본문으로]
  7. 원랜 중국도 비교했지만 경제발전 수준이 한일대만과 워낙 다르므로 임의로 뺐다. [본문으로]
  8. 너무 국가주도적이어서 농민의 참여가 저조했고, 토지개혁에 뜸을 들이는 바람에 지주들이 그새 토지를 팔아치우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토지개혁 후에도 불법적인 형태로 소작제는 유지됐었고. [본문으로]
  9. 그나마 대만 국영기업 문제가 타국보단 폐해가 적은 편이라 한다. [본문으로]
  10. IMF를 겪었으나 효과적으로 극복한 한국. 금융버블로 잃어버린 30년에 시달리는 일본. 한일과 달리 금융위기는 없었으나 너무 이른 금융개발이 탈이 되어 경제발전이 더딘 대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