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국의 과학기술이 두렵다.
현재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시대로 보는 사람이 많다. 중국이 많이 성장하다 보니,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중 간 불안감은 상존했는데, 반중 공약을 내세운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직접적으로 현실화되었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 패권을 차지할 수 없을 거라는 의견이 많이 보인다. 중진국 함정의 위험성, 지리적 제약, 과도한 부채성장, 관치경제의 한계, 일당 독재의 한계, 소프트파워의 부재, 인구구조 문제, 동맹국의 부실함 등 중국의 고질적 문제 떄문이다.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그런데 중국이 패권국이 될 하나의 확실한 시나리오가 있다면 어떨까. 바로 세계 최초로 과학기술을 기술적 특이점 수준으로 극도로 발전시키는 시나리오다.
중국은 선진국은 아니지만 세계 2위의 국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투자가 가능하므로,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기술 역량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적어도 양적인 면에선 여러 분야에서 세계 1위이며, 질적으로는 아직 세계 최강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정부가 잘만 하면 추월도 가능하다. 따라서 중국이 과학기술 발달의 승리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타국에 대해 기술적 우위를 누릴 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한 중국의 고질적 문제들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중국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만 들어보자.
1. AI와 자동화
- 인간의 일자리를 줄이거나 아예 완전 대체할 수도 있는데, 미래에 인구구조 문제로 고통받을 중국에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
- 고도로 발달한 AI를 정치에 활용하면, 중국은 관치경제를 유지하면서도 관치 특유의 비효율성과 부패 문제를 개선해 추가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부가 모든 경제현상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 경우, 냉전식 사회주의도 더 이상 공상이 아니게 될 수 있다. 과거에 실패한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적 요소 없이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2. 유전공학
- 유전자 조작을 통해 우수한 성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정부는 개개인으로 하여금 '우수한' 후손들을 낳게 할 것이고, 그러면 '양'적인 인구구조 문제를 개개인의 '질'적 향상으로써 돌파할 수 있다.
- 유전자 조작을 통해 독재정권 및 사회 유지에 방해가 되는 '반사회성', '과격함', '도전성' 등의 성질을 약화시킨 후손들을 만들 수 있다.
- 노화 방지 기술을 통해 노화를 늦춘다면 은퇴 연령을 늦출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인구절벽을 막고 연금 붕괴를 피할 수 있다.
- 또한 유전자 조작으로 인간 본성을 사회주의에 맞게 바꾸면, AI와 함께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하는 데서 더 보람을 느끼는 인류를 만든다던가,
3. 정보통신
- 정보통신의 발달로 정부의 완벽한 검열 및 도청이 가능해지면, 중국인 개개인에게는 디스토피아가 되겠지만,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성공이다. 이건 CCTV/얼굴 인식/황금방패 등을 통해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 사례들을 읽고 소름끼칠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인간성을 바꿔서 국가와 지배계층에 유리하도록 하자는 발상은 거부감이 강하게 드는 게 당연하므로.
이것이 내가 중국의 과학기술을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단언컨대 한국과 미국, 스웨덴, 독일 같은 나라는 절대 이렇게 못 한다. 하더라도 시행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런 국가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원칙을 중시하는 데다, 시민사회가 발달했기 때문에 이런 중대한 문제를 정부가 밀실에서 얼렁뚱땅 넘길 수 없다. 다양한 시민집단들이 논의에 참여해 각자의 의견을 내놓고, 신중하게 결론지을 것이므로.
하지만 중국은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밀실로 결정해서 명령하면 그만이므로, 이런 소름끼치는 발상을 손쉽고 빠르게 정당화하고 강제할 수 있다. 따라서 설령 중국이 과학기술 발전이 좀 늦더라도, 타국이 중국과의 교류를 막지 않는다면 중국은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기술을 현장에 바로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기술은 디스토피아적인 발상과는 별개로 어마어마하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에 복종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했다가, 복종만 하기 때문에 일체의 이견이나 창의성이 없는 기계같은 인류를 만들어버려 기업가정신이나 문화적 다양성이 완전히 죽어버릴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이유로 위험성은 언급조차 안 되거나 무시될 가능성도 있다. 정말 그렇게 되면 과학기술의 발달은 중국과 중국인들에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이렇게 패권을 장악한다면, 한국도 울며 겨자먹기로 중국의 과학기술들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중국과의 경쟁에서 반영구적으로 패할 것이므로. 이런 시나리오는 매우 위험한데, 과학기술의 장단점을 제대로 논의해보지도 못하고 떠밀려서 서둘러 도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의 민주주의, 자유, 인권과 같은 가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 과학기술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도 고생하게 될 것이고.
중국이 미래에 이 시나리오대로 움직일까. 미래 예측은 전문가도 자주 틀리는 분야인 데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므로 확답할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유력한 시나리오 중 하나 정도는 될 것임은 분명하다. 중국 바로 동쪽에 있으며 여러 산업 분야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한국 시민으로서, 이 시나리오를 국가 차원에서 생각해 보고 대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래야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가 올 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