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이야기/단순한 사변

광팬과 광신도들의 위험성

유월비상 2018. 11. 26. 20:56

광팬이나 광신도는 단순히 자신들의 우상을 광신적으로 지지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정도가 심한 경우, 광적으로 지지하는 이유가 된 자신들의 우상의 인품, 언행에 열광하는 걸 넘어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광적인 행위 자체에 몰입하기도 한다. 주객이 전도되는 셈이다. 그 정도가 되면 광신도들은 자신들의 우상 직접 말려도 듣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광신짓했던 인간을 배신자라면서 배척하고, 심지어는 죽이기도 한다. 자기들이 열광했던 우상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적으로 돌변한다. 

그 모범적인(?) 사례가 바로 이슬람 역사 극초기에 등장한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이며 최초의 이슬람 개종자 중 한 명인 알리는 원래 무함마드와 이슬람에 대한 헌신을 이유로 자신이 칼리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우스만을 암살한 자들의 도움으로 권력을 잡음으로써 의심의 눈길을 받게 되었다. 

알리의 등극은 파벌 간의 충돌을 야기했다. 맨 먼저 그에게 반기를 든 세력은 메카의 귀족 탈하와 주바이르 그리고 예언자 무함마드의 애처 아이샤가 이끌던 파벌이었다. 알리는 656년의 낙타 전투에서 반대파를 물리쳤다. 그 다음에는 우스만의 사촌이자 시리아 총독이던 무아위야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무아위야는 알리의 충성 요구를 거부하고 우스만을 위한 복수와 그 살인자 일당의 처형을 요구했다. 두 맞수와 그 군대는 시핀 전투(657)에서 격돌했다. 수개월에 걸친 일진일퇴와 협상 끝에 온건파의 주도로 양측은 우스만 암살의 정당성 여부의 문제를 조정하는데 합의했다. 그러자 하와리즈(이탈자들)라 불리는 알리의 지지세력 일부는 알리가 그런 조정에 합의한 것 자체가 그를 칼리프로 추대한 자신들의 희망을 저버리는 동시에 종교적 원칙에 반하는 행위라고 여겨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들의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유혈사태로 인해 알리에 대한 무슬림의 지지가 더욱 약화되었다. 

(중략) 알리가 하와리즈파에 의해 암살된 뒤, 무야위야는 자칭 칼리프를 선언했고 주요 세력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가 바로 우마이야의 왕조(661~750)의 시조이다.     

- 아이라 M. 라피두스, 『이슬람의 세계사 1』, 신연성 역, 이산, 2008, p.111-112.

초대 이맘으로 시아파에서 추앙받는 알리는 자기 광신도에 의해 허무하게 살해되었다. 결국 알리의 정적이었던 무야위야가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알리 광신도들의 초기의 바람과는 정반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폭력의 역사는 현대 이슬람계의 수니-시아파 갈등의 뿌리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광팬, 광신도들의 잠재력인 자폭능력은 어마무시하다. 단순히 광신도짓으로 자신들 우상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걸 넘어, 자신들 우상 자체를 직접적으로 해쳐버릴지 모른다. 위 사례처럼 파괴력이 반영구적으로 갈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미치도록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단순히 그들의 아첨에 빠져 맛이 간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넘어, 그들이 직접 당신을 해칠 수 있기에. 


+ 비슷한 사례로 흑인 분리운동을 추구했던 과거로부터 발을 뺐다가 배신당했다고 느낀 추종자에게 암살당한 맬컴 X, 홍위병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해먹었다가 통제불능의 존재가 되어 하방시켜야 했던 마오쩌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