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이야기/단순한 사변

수도권 청년들이 지방의 현실에 무감각한 진짜 이유

유월비상 2018. 11. 27. 22:17

지방분권, 수도권-지방 담론이 활발하다 보니, 수도권 거주자들이 지방의 암울한 현실을 모르며 수도권에 산다는 것이 특권임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수도권 청년들의 인식 이야기가 많다. 상식이 의심될 정도로 지방에 무지한 모습을 보여준다던가[각주:1], 지방 거주자들을 놀려대고 비하한다던가[각주:2]... 물론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수도권 청년들이 지방의 현실을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 한국 사회가 고도성장을 하면서 생겨난 긍정적인 변화에서 온 면도 크기 때문이다.  


- 현대 수도권 청년 절대다수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 수도권에 살았다. 중장년층은 그래도 어렸을 때 지방이나 시골에 살았던 기억을 가진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시골에서 도시로,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이촌향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으니. 하지만 현재는 이촌향도가 옛날처럼 흔하지 않다. 지방이나 시골 떠날 사람은 이미 많이 떠났으니까. 그렇게 자신의 기억속에 지방, 시골에서의 생활풍경이 없는 청년들이 생겨나고, 이는 지방, 시골에 대한 무지를 악화시킨다.  

- 갈수록 명절을 쇠는 가정이 줄어들고 있다. 아직은 친척집이 먼 지방에 있는 경우가 많아, 명절을 쇠면 바로 시골, 지방으로 내려가서 그곳의 삶의 경험을 짧게나마 하게 된다. 그런데 명절을 점점 덜 쇠면서 잠시나마의 체험도 어려워지고 있다. 

- 국내여행 문화가 쇠퇴하고 해외여행 수요가 늘었다. 물론 여행가서 느끼는 지역의 풍경과 실제로 살면서 느끼는 지역의 풍경은 정말 차이가 크다. 하지만 국내여행 쇠퇴로 수도권 거주자들은 여행가서 느끼는 류의 지방조차 경험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위 세 변화는 모두 '수도권 청년들의 지방에 대한 무지'라는 사회문제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위 세 변화를 만들어낸 요인들이 어떤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보자. 

1. 생활수준의 고도화, 도시화. 

2. 구시대적으로 여겨지는 제사 문화 쇠퇴, 개인주의적인 삶의 양식 확산. 성차별적인 명절 문화에 대한 저항.

3. 생활수준의 향상, 여가 문화 발달

이런 좋은 것들을 어떤 바보가 반대하겠는가? 청년들이 지방을 제대로 인식하게 만드는 댓가로 위의 것들을 포기하라고 하면 다들 정신 나갔냐고 욕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이 어려운 것이다. 수도권 청년들의 지방에 대한 무지를 해결하겠다고 이촌향도를 다시 유행시키거나, 명절 문화를 부활시키거나, 국내여행을 다시 증진시키는 건 기껏해야 어려운 일이며 불가능하거나 더 나아가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하다. 


위에서 살펴봤듯, 사회문제들은 역설적이게도 긍정적인 사회현상 때문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회 문제가 복잡하고 해결이 어려운 건 이런 아이러니함에서 온 면도 크다. 우리는 사회문제를 논할 때 이를 인지하고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보다 건설적이며 사실에 부합하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 놓을 수 있다.

  1. 다른 도시도 아니고 전주에 '영화관'은 있냐고 물어본다던가, 여수와 부산을 단순한 관광도시로 인식한다던가.. [본문으로]
  2. 강원도 출신에게 감자드립을, 제주도 출신에게 감귤과 돌하르방과 제주도 사투리 드립을 치는 식으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