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서적

폴 콜리어, 『엑소더스 - 전 지구적 상생을 위한 이주 경제학』

유월비상 2019. 1. 8. 22:26


서지정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4796737


개발도상국/최빈국의 빈곤, 성장 문제를 연구하던 경제학자가 전세계적인 이민 문제에 대해 쓴 책이다. 


보통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이민 문제를 논할 땐 사회학, 정치학적인 분석이 많다. 이민자의 사회동화 문제, 이민 유입이 극우정당에 미치는 영향, 외국인의 범죄 문제 등등...  더군다나 연구가 많이 되서인지 수준도 어느정도 된다. 경제학적인 분석도 종종 나오지만, 대부분 수준이 기대 이하다. 기껏해야 이민 유입이 자국민 임금 떨어트린다는 근거는 없다, 인구절벽 찾아오니 이민자 대량 들여와 경제적 쇠퇴를 막자 이 정도다. 엄밀한 분석을 통한 결론이라면 모를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외국의 논의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일단 한국에서는 그렇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굉장히 신선했다. 안 그래도 경제학이 복수전공인지라 더. 다행히 이 책은 기대만큼 좋은 책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이민하면 흔히 생각하는 이민자와 이민한 나라의 원주민[각주:1]만 분석한 게 아니다. 개발도상국/최빈국 빈곤 문제가 전문인 경제학자라 그런지, 이민자가 나라를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까지 분석의 틀 안에 넣었다. 심지어 책 초반부엔 이 책이 원래 '이민가고 남겨진 사람들'을 중점에 둔 책이라고 말한다. 그 부분에서 저자의 개도국에 대한 온정이 느껴졌다. 그래 개도국들도 살긴 살아야지. 



핵심적이거나 주목할 만한 부분을 언급하자면, 


0-1. 이민율에는 크게 세 요소가 중점이 된다. 두 국가의 생활수준 격차, 이주의 경제·정치적 난이도, 이민가려는 나라에서 자기 국적의 디아스포라 규모. 생활수준 격차와 디아스포라 규모는 커질수록 이민율이 높아지며, 이주의 난이도는 낮아질수록 이민율이 높아진다. 일단 저자의 모델에 따르면 그렇다. 


0-2. 이민의 효과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현재의' 이민 총규모에서 손익을 따지는 게 아니라, '한계적으로(marginal)' 이민자가 추가로 유입됐을 때의 손익을 따져야 한다. 누가 경제학자 아니랄까봐 한계적인 분석을 하는군. 


1.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문화적 상대성 개념은 잘못되었고, 개도국 출신 이민자는 후진적인 가치관과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 신경 덜 쓰는 경제학자라 그런지, 놀라울 정도로 대담한 주장을 한다. 저자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의 빈곤함은 사회를 빈곤하게 만드는 사회시스템이나 문화. 가치관에 의해 기인했기 때문에, 빈곤국 이민자들도 '후진적인 사회의 가치관이나 문화'를 그대로 가졌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저자는 영국에 자메이카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폭력적인 범죄조직 문제로 골머리를 앎았다고 서술한다. 영국과 비교할 때 자메이카는 범죄율이 극도로 높고 범죄문화가 발달한 사회인데, 그 문화가 이민자를 통해 영국까지 들어온 것이다. 


2. 이민 유입은 사회적 통합성과 신뢰를 감소시킨다. 이민자들이 유입되면 저들과 내가 같은 시민이라는 생각이 옅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민자-원주민 간 신뢰뿐만 아니라 원주민 내의 신뢰까지 줄어든다. 이는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걸 넘어, 이민정책으로 사회갈등이 생겼을 경우 문제 해소를 어렵게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이 유럽보다 복지정책이 약한 이유가, 미국 이민자 비율이 유럽보다 높다보니 "왜 국민도 아닌 저 이민자에게 내 소중한 세금을 쏟아부어야하지?"하는 정서가 강해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2-1. 이민자들은 자기 정체성이 강하다보니 자기 국적끼리 똘똘 뭉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사이에서 원주민들은 불안감을 갖고 정체성을 재발견하면서 자발적으로 뭉치게 된다. 문제는 이게 통상적으로 외국인 혐오나 차별로 해석된다는 것. 


3. 보편적인 관점에서 동화정책이 다문화정책보다 옳다. 왜나하면 다문화정책은 동화되지 않은 디아스포라 이민자를 더 많이 만드는데, 이는 0.에서 설명했듯 이민율을 더 끌어모으고, 사회가 감당불가능한 수준까지 이민자를 끌어올 수 있다. 단, 사회적 차별과 소외는 이민자가 사회동화를 거부하게 만들 수 있으니 주의. 저자는 이를 모델과 그래프를 사용해서 일일히 증명했다. 


4. 극우들의 '이민자들이 우리 일자리 뺏어간다'는 선동은 거짓말이지만, 이민 유입의 경제적인 순효과가 환상 가질 정도로 크지 않으며, 장기적으로는 그 순효과도 줄어들어 0에 가까워진다. 또 최빈층의 경우는 이민자 유입으로 피해를 보게 된다. 최빈층의 일차리가 이민 유입으로 인한 피해가 클 뿐만 아니라, 자칫 최빈층이 받는 사회복지를 빈곤한 이민자가 가로챌 수 있다. 


4-1. 이민 유입은 자칫 숙련자를 육성해야 할 직종들이 그 과정을 이민자 유입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5. 이민으로 인한 개발도상국의 인재 유출이 개발도상국에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만약 이민유입국이 숙련직으로 이민을 제한할 경우,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교육열을 자극하여 국민들의 평균적 교육수준을 늘릴 수 있으며, 이민가고 모국의 친족에게 송금을 보내면 개도국에 이득이 된다. 또 외국으로 간 인재가 모국으로 다시 돌아오면 그 재능을 바탕으로 모국을 개발할 수 있으며, 이민국의 선진적인 사회 시스템이나 문화, 가치관을 가져와 사회 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 단, 너무 가난하거나 인구 규모가 작아 인재가 일할 기초적인 기반도 안 갖춰진 나라는 피해를 볼 수 있다. 


5-1. 이 경우 개발도상국에 제일 유익한 이민 시스템은, 초청 노동자 모델 즉 이민오게 해서 특정 기간만 일하게 한 다음에 돌려보내는 유형이다. 위의 이상적 시나리오에 딱 부합한다. 참고로 정치적 혼란으로 생긴 난민들도 개도국의 인재유출을 생각하면 '혼란이 잦아들면' 바로 돌려보내는 것이 이상적이라 한다.


6. 생활수준 격차가 크기 때문에 이민자는 보통 이익을 보지만, 정체성 혼란이나 차별, 외로움 등의 문제로 주관적인 만족도 향상은 생활수준 향상보다 덜 할 수 있다. 다만 연구가 많지 않아서 후속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위에 언급한 거 말고도 쟁점은 많지만, 저작권 문제도 있고 여기까지만.


갠적으로 의아했던 부분도 몇 있다. 예를 들어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는 이민이 덜 필요할 수 있다는 구절이 있는데, 한국이나 일본처럼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동네는 좀 다를 수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게 좋을 수 있어도, 갑작스런 인구 감소는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유입이 만능 열쇠는 아니더라도 좋은 대안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민의 여러 부분을, 그것도 경제학적인 모델과 실증결과를 통해 분석한 건 탁월하다. 무엇보다 이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나 환상을 깨버리고, 건조하게 사실위주로 언급해서 좋다. 이민 유입이 필요하지 않나 싶었던 나도, 보다 확실하게 이민의 득실을 알 수 있었다. 이민 문제에 대한 분석 중 이만큼 탁월한 걸 내가 본 적이 없다. 개인적인 평점은 9/10.


한국은 곧 닥칠 인구감소 문제로 인해 이민에 대한 논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 외국인 유입 정책이나 외국인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세우지 말자. 그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면, 공평하게 공신력 있는 자료를 찾아와서 논박하자. 서구 선진국에서 극우 및 외국인 혐오세력이 부흥한 건, 인종차별과 외국인혐오에 대한 터부로 기성 정당이 이민 유입으로 벌어진 문제를 제대로 논의할 수 없었음에 대한 반동이라고 저자는 뼈아프게 지적했다. 


+ 위에 언급한 내용엔 한국에 적용해 볼 부분이 많지만, 다 쓰자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나중에. 

  1. 책에선 자국민이 아닌 원주민이라는 표현을 썼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