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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브레머는 세계적인 정치 연구자로, J커브 이론[각주:1]과 G-Zero 세계[각주:2] 등의 도발적인 이론을 제시하여 인기를 끈 학자이다. 그의 저서 중 『리더가 사라진 세계 - G제로 세계에서의 승자와 패자』는 명저로서, 현재 국제질서를 이해하려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브렉시트도 트럼프 열풍도 없던 2012년에 출간된 책[각주:3]이라고 믿기지 않는 통찰력과 예지력을 지녔다. 서평단에 지원한 것도 저자가 이 책에서도 눈부신 통찰력을 보여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참고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Ian Bremmer 계정이 있으니 한번 구독하길 바란다. 사회 현안에 대한 통찰력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위트가 넘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기대에 못 미친 책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별로일 책은 아니다. 뒷부분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일단 내가 이 책을 별로라 생각한 이유부터 설명해 보겠다.


일단 책 제목과 내용 간에 괴리가 좀 있다. 한국어로는 『우리 대 그들』, 원서로는 더 직관적인 『US vs THEM』이다. 서평단 광고나 책 표지만 보면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언급할 것 같은 책인데, 포퓰리스트들이 스스로를 '우리 인민을 위하는 정치인[각주:4]'으로 표방하고 이에 대비되는 '가공의 적'을 만들어 우리 편을 결집시키고 상대를 악마화한다는 전략을 쓴다는 건 많이 알려진 터라, 제목 자체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문제는 이게 세계적인 포퓰리즘 현상과 그 양상을 묘사한다기보다는, 포퓰리즘이 유행하는 이유들을 설명하는 책에 가깝다는 거다. 세계화가 국가 내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이민자 유입되면서 국가 정체성 위기가 생겨 국민들은 불만에 빠졌으며,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자극되었다. 그 결과 세계화에 반대하는 포퓰리즘이 세계적으로 양산되었다는 게 책의 요지이다. 포퓰리스트들이 어떻게 '우리 대 그들을' 가르고 이 대립을 이용하는지는 뒷부분에 가야 나타나며, 그나마도 현황이 이렇고 앞으로 이렇게 된다는 식으로 짤막하게 언급되었다. 포퓰리즘의 패턴과 전략 및 역사와 같은 구체적인 분석은 없다. 제목만 보고 책을 산 사람 중 실망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언 브레머는 이 책의 제목을 세계화와 포퓰리즘 같은 걸로 바꿨어야 했다.


내용도 사실 진부한 부분이 많았다.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과 이민 유입이 포퓰리즘을 양산했고, 포퓰리즘이 우리 대 그들 구도를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거라 자부하지만 문제 해결은 커녕 새로운 문제를 양산할 뿐이라는 분석은 하도 많이 나와 지겨울 지경이다.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아 기사든 칼럼이든 책이든 많이 읽은 사람 입장에선 더더욱. 참신하지 않다면 깊이있게라도 분석했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해결책이라고 내세운 것도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고, 배제하는 사람 없는 포괄적인 사회시스템을 짜자는 뻔한 내용밖엔 없었다. 현실성도 많이 의심스럽고. 고전적인 좌파들이 내놓았을 방안인데, 세계화로 인한 바뀐 현실을 얼마나 반영한 건지 의심스럽다. 저자가 내놓은 해결책이 실현 가능했다면 왜 그렇게 못 했을까 하는 생각만 자꾸 든다. 가망이 없어서 그냥 자포자기 식으로 내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책이 이렇게 된 제일 큰 이유는 아마 분량이 너무 적어서였을 것이다. 미주를 빼면 겨우 250페이지 남짓인데, 포퓰리즘은 깊게 파고들면 분량이 충분히 길어질 주제다. 그걸 250페이지로 압축해서 썼으니 세부적인 내용 상당부분이 빠져나가는 부작용이 벌어질 수밖에. 자가 『리더가 사라진 세계 - G제로 세계에서의 승자와 패자』에서 보여준 통찰력을 생각하면, 분량이 두 배였으면 언급한 문제가 상당 부분 없어지지 않았을까... 



그래도 책에서 건질 내용이 분명 있다.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파괴 문제를 제기한 것과, 개발도상국을 포퓰리즘 유행에 특히 취약하다고 진단한 것이 그것이다.


알파고와 4차 산업혁명 문제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저자가 그런 불안감을 잘 설명해주었다. 특히 '자동화가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속설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자동화 전과 후의 일자리 구성은 분명 다르므로 노동자들이 사회 변화에 적응 못해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저자의 통찰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걱정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벌어진 수준의 자동화로도 서구 선진국들이 난리가 났는데, 앞으로 있을 변화엔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또 포퓰리즘 유행을 서구 선진국에만 국한시켜 분석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개발도상국과 권위주의 국가에 확장시켜 설명했다. 포퓰리즘은 단순 선진국만의 현상은 아니며, 정체(政體)라기보단 정치적 스타일에 가깝다보니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국가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 개발도상국과 권위주의 국가는 세계화로 인한 폐해를 해결할 사회적인 부, 신뢰, 인프라, 시스템 등 문제해결능력이 부족해 더 위험하다는 걸 지적한 것이 인상 깊었다. 나만 하던 생각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몇몇 개발도상국 사례까지 들어 언급하니 더 실감이 잘 났다. 



그럼 왜 이 책이 모두에게 별로인 것이 아니냐? 지금까지 쓰여진 내용은 국제정치에 관심 많고 책 많이 읽는 계층의 시선에서 쓰여진 서평이기 때문이다. 부실하고 뻔한 책 내용은 그런 독자들에겐 큰 문제이지만, 세계적인 포퓰리즘 현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거나 책을 잘 읽지 않는 독자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들에게는 이 책이 괜찮은 책일 수 있다. 이론보다는 실화 위주고, 분량도 짧아서 읽기에도 편하며 어렵지 않은 책이기 때문이다. 만약 저자가 이런 사람들을 노리고 책을 쓴 거라면 나쁜 책은 아니다.



개인적인 평점은 7/10점. 아쉬운 점이 많지만 좋은 지적도 있어서 나쁘지는 않게 줬다. 다시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분량만 좀 많았으면 좋았을 책이다.

  1. 한 국가의 개방성과 안정성과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 [본문으로]
  2.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이 세계 패권국으로서 책임을 기피하여 국제질서의 리더가 공백이 된 세계. [본문으로]
  3. 원서 기준. [본문으로]
  4. 반공 이념으로 한국에선 금기시된 단어지만, 이 상황에선 국가의 존재를 전제하는 '국민'보다 더 적합한 말이라 생각해 '인민'이라고 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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