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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0.27 아르스노바 마지막 공연 - 아르스노바(2006-2018)를 떠나보내며... 2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 롤란트 클루티히(Roland Kluttig)

협연 - 타베아 치머만(Tabea Zimmermann) 


프로그램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 다섯 개의 관현악곡

요르크 횔러(York Holler) - 비올라 협주곡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 소년의 노래

마르크-앙드레 달바비(Marc-Andre Dalbavie) - 오케스트라를 위한 연주회



원래 공연 리뷰를 블로그에 올릴 생각은 없었지만, 

마지막 아르스노바 공연이라는 의의 때문에 올려본다. 



연주 시작하기 전에, 서울시향은 그동안 아르스노바를 아껴주신 관객들께 감사하다면서 유명 음악인들의 인터뷰가 올라간 Adieu영상을 스크린으로 보여줬다.

그거 보고 갑자기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아르스노바를 계획했으나 서울시향과의 갈등 속에서 환멸을 느끼고 서울시향을 떠난 진은숙, 경제성 문제로 나가리된 아르스노바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가 한꺼번에 일어서다.

더불어 오늘이 아르스노바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이 머리속에 다시 한번 각인되었다. 


그리고 바로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 - 다섯 개의 관현악곡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현대음악 소개하는 자리에서 왜 이 사람 곡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쇤베르크가 현대음악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이 사람은 현대음악의 고전이다.

음반도 많이 발매고 초연을 넘어[각주:1] 연주 자체가 현대음악치곤 꽤 많이 이뤄지고, 이제는 옛 기법 취급받는 12음기법을 쓰는 작곡가를 굳이 아르스노바에 올릴 필요가 있었을까?

작년 아르스노바엔 베르그 곡[각주:2]도 있긴 했었지만...   


관객들이 치는 박수 속에서, 앞에 서 있는 연주자들의 수에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말러 교향곡 스케일의 연주자가 단순 관현악곡에 있는거지? 

팜플렛을 보니 이게 원래 계획보다 줄어든거란다.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일단은 들어봤다.


첫번째 곡은 오케스트라의 각 부분이 번갈아가며 곡을 끌다 Tutti라는 전체 스케일에 이르는 서사가 멋졌다.

두번째 곡은 나름의 서정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세번째 곡은 드뷔시같은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가 있었다.

네번째 곡은 불안해서 조금만 건드리면 폭발할 분위기가 났고,

다섯번째 곡은 딴생각을 많이 했지만 이것도 독특한 분위기었다.



개인적으로 쇤베르크를 음악사적 의의는 인정하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12음기법 특성상 음가가 완전 무작위로 주어지기 때문에, 그 속에서 음악적 유기성을 찾고 즐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정화된 밤은 좋지만, 12음기법에 완전히 빠지기 전의 초기 곡이라 가능한 면도 있고.  


하지만 이 연주는 그런 선입견을 완전히 깨 주었다.

그는 12음기법 속에서도 충분히 독특하고, 감정의 오르내림이나 서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작년에 들었던 베르그 곡에서 느꼈던 감정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베르크가 쇤베르크보단 서사와 감정 표현이 확실하긴 했는데, 쇤베르크라고 해서 그런 게 메마른 건 아니었구나. 



요르크 횔러 - 비올라 협주곡


곡 자체는 사실 재미있지는 않다. 

화려한 카덴차가 있는 곡도 아니고, 셈여림이 전반적으로 여리고, 오케스트라와 비올라 간에 대립하거나 주고받는 느낌이 확실하지도 않고, 오케스트라 전체가 한번에 연주하는 TUTTI부분이 적어서 음향적으로 화려하지 않다.  

좀 과장하자면 비올라와 관현악기 몇 개의 선율이 합쳐진 화음의 연속이다. 

개인적으로도 들으며 딴 생각을 많이 했고, 따분하게 느낄 사람이 많을 곡이다.


하지만 협연자 타베아 지머만의 열연은 그 지루함을 잊게 했다.

연주 장면 하나하나가 그녀의 대단한 연륜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비올라를 연주하다 활을 미끄러지듯 내려놓는 장면은 정말 대단했다.


덕분에 소박하며, 곡이 끊어질 듯 하면서 안 끊어지는 곡의 매력을 충분히 확인했다.

또 소박한 곡에서도 협연자가 충분히 연륜과 기교를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앵콜로는 잘 모르는 애수 담긴 소곡(?)을 연주했다. 이 곡도 소박했지만 그녀가 대단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 소년의 노래

 

위 쇤베르크 곡처럼 이것도 이미 고전이라 왜 아르스노바에 나오는지 이해가 안 됐다.

전자음악은 컴퓨터와 신디사이저 등의 등장으로 더 이상 새롭지 않은데..


그래도 막상 들으니 재미있었다.

음향이 신선하기보다는 공감각을 느낄 수 있었던 게 신선했다.


전자음악이라 오케스트라 없이 그냥 양옆에 있는 스피커 4개로만 연주하는데,

비상구 불빛 말고는 아무 빛도 없는 상태에서[각주:3] 소리만 들리니 소리의 위치, 즉 공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소리가 네 스피커에서 고르게 나오는 것도 아니라 

어떤 소리는 오른쪽 앞 스피커에서 나오고 어떤 소리는 왼쪽 뒤 스피커에서 나오고 위치가 제각각이라 

공간성을 더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소리가 어디서 나올지 맞추고 예상하는 재미가 있었을 정도였으니. 

거기에 전자음향과 소년의 목소리[각주:4]가 번갈아가면서, 혹은 섞이면서 나오다보니 복합적인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을 흔히 시간 속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이 실험음악은 공간 속의 예술이기도 했다.

어떤 관점에서는 시공간의 종합예술을 일군 셈이다. 



마르크-앙드레 달바비(Marc-Andre Dalbavie) - 오케스트라를 위한 연주회


예전에 아르스노바 연주회에서 들었던 작곡가인데, 이번에도 나왔다.

아방가르드까진 아니지만 독특한 음색, 음향을 추구하는 작곡가로 기억했다.


연주할 때를 보니 악기편성이 특이했다.

원래는 오케스트라가 반원 형태로 모이는데 이번엔 직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모였으며, 평범한 관현악곡에 피아노가 나오고, 쳄발로와 하프 하나는 관중석 기준에서 오른쪽 앞부분에 위치하는 등 평범하지가 않았다.


악기편성이 괜히 특이한 게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는지, 음악적 서사도 범상치 않았다.

이 곡을 들으면서,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초반의 곡 서사를 생각해보면, 현악단 절반이 선율을 내며 연주하고, 그 다음에 관악단 절반과 타악기군이 선율을 내어 연주하고, 그 다음에 현악단 나머지 반쪽이 연주하고... 

어느 순간을 들어도 오케스트라의 일부만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한 악기군이 자기 파트를 마치면 다른 악기군에 바통을 넘기는 식으로 연주를 했을 뿐이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한꺼번에 연주하는 튜티(Tutti)는 처음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나의 오케스트라단이 연주한다기보다는 여러 악기군이 자기 파트를 연주한다음 그걸 하나로 합쳤다고 해석하는 게 더 그럴듯해보인다. 


그러다가 곡 후반으로 가니 슬슬 튜티(Tutti)가 등장했다. 하지만 튜티는 거의 있으나마나한 베이스선율이었을 뿐이었다. 진짜 중요한 선율은 악기군이 돌아가며 연주하는 선율에 있었다. 그러다 곡 거의 끝날 쯤에야 화려한 튜티가 나타나서 곡을 최후의 폭발로 몰고갔고, 폭발과 거의 동시에 곡이 끝났다.


오케스트라는 악기군(부분)의 합이면서 동시에 악기군(부분)의 합을 넘어선 전체이다.

작곡가는 그 사실을 악상으로 삼았고, 그 악상을 와닿도록 작곡하는 데 성공했다.

부분의 합 vs 전체라는 구도는 우리가 학술이나 예술에서 많이 쓰는 주제 아닌가.  

그런 면에서 평범하면서도 독특한 오케스트라 곡이 만들어진 셈이다.


덕분에 오케스트라에 대한 통념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었다.

정말 독특한 음색, 음향을 추구하는 작곡가가 맞긴 한 듯.

 


모든 연주가 끝나고, 아르스노바 정신은 계속된다는 스크린과 함께 이 연주회가 완전히 끝이 났다.

그리고 12년간 지속된 아르스노바도 완전히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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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정기적으로 연주회에 가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내가 아르스노바를 즐긴 건 불과 3년밖엔 되질 않는다.


나의 첫 아르스노바가 LG아트센터에서 있었던 2016년도의 두 번째 아르스노바 연주회였으며, 

그걸 포함해서 여태까지 7번만 갔다왔을 뿐이다. 수십번은 족히 갔을 진짜배기 클래식 애호가엔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스노바 연주회는 나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어쩌다 현대음악에 빠진 나에게, 제대로 현대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진경험을 해준 유일한 정기 연주회였기에.

현대음악 연주회 자체도 많지 않았지만, 이렇게 관현악 협주곡 실내악을 모두 커버하면서 어느정도 수준 되는 곡들을 들을 수 있는 연주회는 아르스노바밖엔 없었다. 

그리고 현대음악은 작곡가나 곡들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실험적인 예술의 특성상 아무렇게나 들었다가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괜찮은 작곡가와 곡들을 추천받는 과정이 감상에 굉장히 중요하다. 나에게 아르스노바가 그 역할을 했다. 아르스노바에서 소개한 크리스토퍼 베르트랑의 현기증(Vertigo), 힐보리(Hillborg)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은 지금도 종종 듣는다. 


 

이런 아르스노바가 없어진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이유도 아니라 아르스노바의 기획자가 안 좋은 일로 틀어지고, 경제성이 딸리게 되어 없어진 거라 더더욱.

나는 이제 어디서 현대음악을 들어야 하나. 

현대음악을 의무적으로 레파토리에 넣어야 하는 일신홀에서만 들을 수 있을까?



끝나기 직전 스크린에 나온대로, 

아르스노바가 없어지더라도 아르스노바 정신은 계속되길 빈다. 

  1. 사실 현대음악은 수가 많은데다 인지도가 낮아, 초연 끝나고 곡의 존재가 잊혀지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본문으로]
  2. 베르그 - 오케스트라를 위한 세 모음곡 Op.6 [본문으로]
  3. 무대 위에 불빛이 안 들어오니... [본문으로]
  4. 성경의 다니엘서 3장을 노래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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