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식은 거칠고 소홀하며 허위에 가득 차 있고 태만한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국의 역사에 대해서조차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상(=한국)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국을 분석하는데 당위와 연역과 도덕과 외과수술적인 언설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내재적으로 자국을 이해하려고 하는 소수의 성실한 언설은 부당하게 무시되거나 경멸되고 있었다.


- 오구라 기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조성환 역, 모시는 사람들, 2017, p.251-252


이 점에 유의하면서 한국의 (경제학, 사학) 연구자들이 보이는 공통의 결함을 지적하자면, 그들은 한국의 경제체제를 제약하고 있는, 그것의 비교적 특질을 깊숙이 각인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역사로부터 물려받은 비공식적 제도와 규범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적절한 관심조차 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중략)... 한국경제의 유형적 특질에 대한 국내의 논의가 경험적이라기보다 규범적이며, 전체적이라기보다 부분적이며, 심층적이라기보다 표피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음도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 이영훈 엮음, 『한국형 시장경제체제』,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p.25


(자칭) 지식인들이 쓴 한국사회 비평을 보면서 한숨나왔던 적이 많았는데, 그 이유를 위 두 구절이 너무나 잘 요약한 것 같다. 둘이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거 보면, 나와 비슷한 감상을 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보기에, 한국 지식인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가(How the world should work)'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이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How the world really works)'는 별로 논하고 있지 않다. 설령 논하더라도 그 수준은 별로 높지 않다. 개연성, 설명력이 떨어지거나, 근거로서 든 예시들의 사실관계가 틀려먹은 경우가 허다하다. 

'왕은 인의에 기초하여 정치를 하여야 한다',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적인 판단으로 구성된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일까.



물론 과거 한국은 빈곤과 억압으로 점철되었기에 당위적인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한국은 부패한 정치인, 빈곤, 독재 등의 거대악이 존재하는,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사회였으니. 그 요구를 정치인들이 받아들인 덕에 한국 사회가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처럼 거대악도 없고, 복잡한 사회에서 당위만 운운하는 건 문제다. 당위에 사로잡히면, 사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 소홀해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기 십상이다. 또 자기들끼리는 통할지 몰라도 남이 보기엔 터무니없는 도그마에 빠지기 쉽다. 이는 세상을 당위에 맞게 개선시키는 데 방해만 될 것이다. 



이제 한국 지식인은 당위를 일단 제쳐놓고, 자국을 엄밀하고 실증적인 방식으로 연구할 때가 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한국을 연구해볼 생각이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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