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좌파 운동권들은 한국과 프랑스를 스펙트럼 속에서 양 극단에 놓고 둘을 비교했었다. 한국은 관용이 부족하지만 프랑스는 톨레랑스의 나라이며, 한국은 권위자들에 과도하게 순종적인 나라지만 프랑스는 조금만 잘못하면 바로 엎어버리는 다혈질의 나라고, 등등...

하지만 2019년 시점에서 보니 편향된 견해였던 것 같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 시스템의 양상과 수준의 관점에서, 한국과 프랑스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나라니까. 


- 오랜 중앙집권의 역사와 여기에서 파생된 심각한 수도권-지방 격차.[각주:1]  

- 권위가 강한 카리스마형 지도자들의 연속. 한국의 대통령제와 프랑스의 '대통령제같은' 이원집정부제는 이를 뒷받침한다. 

- 엘리트집단의 강력함과 국가주의, 관치 성향이 강한 국가운영 

- 정치 시스템에 왕이 없으며 없어야만 한다는 강한 공화국적 인식. 

- 경직된 노동시장과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의 과보호

- 최근 비슷해진 1인당 GDP(특히 PPP 기준)와 세후소득 등의 경제지표

- 낮은 사회적 신뢰수준[각주:2]과 엘리트-비엘리트 간의 심각한 불신

- 선진국치곤 강한 민족주의와 자국 문화에 대한 국수주의적 집착[각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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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이미지와 실상의 괴리가 가장 큰 선진국은 프랑스라고 보는데, 그 이유가 이것이다. 그나마 요즘은 옛날보다 이미지가 많이 나빠졌던데, 환상이 오래 갈 수 없기는 하지. 

잘 봐 줘야 한국 상위호환 수준의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을 가진 나라를 치켜세웠으니. 


+ 참고로 여기서 비판받는 프랑스 시스템의 허술함은 역사적인 것으로, 무려 프랑스 혁명까지 이어진다. 

흔히 프랑스 혁명을 과정이 매우 폭력적이었으나, 그래도 구제도의 모순을 혁파하고 자유, 평등, 박애, 진보와 같은 근대성을 제도화한 위대한 정치혁명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삐딱하게 보자하면 다른 시선도 가능하다. 구제도의 모순이 정변과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해결돼야만 했을까?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려면 과격함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국은 그러지 않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명예혁명을 통해 정치사회 시스템을 개선해나가는데 성공했으니까. 프랑스 혁명은 정치사회의 문제가 시스템 하에서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쌓이다가 터져버린 즉 기존 정치사회 시스템 수준의 허술함을 드러낸 사례이다. 프랑스 혁명의 의의는 물론 방대하나 이러한 측면을 잊으면 안 된다. 

안타깝게도 프랑스의 이 역사적 패턴과 고질병은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노란 조끼 시위를 포함해 현대 프랑스에 만연한 폭력시위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서 과격하게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면 폭력시위가 답이 아니라는 것조차 모르는 바보라는 해석밖엔 나오지 않는다. 

  1. 인구집중은 한국이 프랑스보다 훨씬 심하지만, 대도시 간 인구비나 수도권-지방의 경제력/생활수준 격차 등으로 보면 한국과 프랑스가 비슷한 급이거나 프랑스가 한 수 위이다. [본문으로]
  2. 한국이 저신뢰사회라는 분석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내놓아 유명해졌는데, 그 책에선 프랑스도 한국과 같은 저신뢰사회로 분류됐다! [본문으로]
  3. 예전에 프랑스가 외래어를 죄다 프랑스어식으로 번안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자기 문화를 아낄 줄 안다고 좋게 봤었는데, 지금 보면 그저 국수주의적인 뻘짓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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