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상대적 우위가 떨어지고, 공산주의 체제(구 소련, 마오쩌둥 당시의 중국 등), 권위주의 체제[각주:1](현 중국, 러시아 등)나 신정국가(이란, 사우디[각주:2] 등)같은 비서구의 대안'''으로 보이는''' 체제들이 매력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현대문명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최고로 평가되는 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의무론적 이유 -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제일 좋은 체제이다. 

2. 공리주의적 이유 - 사회 안정[각주:3]과 경제적 번영[각주:4]에 있어 제일 좋은 체제이다.  

이 중에 비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실질적인 타격이 되는 건 2이다. 1과 같은 순수한 윤리학이야 뭐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들에겐 안 먹힐 것이고, '혼란스러운 전체를 구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존엄성이 약간 희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우겨서라도 면피할 수 있다. 국제정치에서 윤리는 공허한 외침으로 취급받을 때도 종종 있고. 

그러나 2는 비자유민주주의 체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다. 심지어 체제의 지도자들에게도. 자유민주주의의 공리주의적 유리함을 함부로 무시했다가는 경제 파탄이나 대중의 반발로 체제가 파탄날지도 모른다. 1과는 달리 확실한 실질적인 영향력을 지녔고, 그 영향력이 비자유민주주의 체제 지도자들에게 향한다,  


실제로 2는 비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지도자들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고, 수많은 비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실패했거나 부분적으로 자유민주주의적 요소를 도입했다. 실제로 공산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해지자 고르바초프는 개혁을 시도했고(실패로 끝나 결국 소련은 무너졌지만), 헌법상 사회주의 체제인 국가들도[각주:5]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제적 개방을 감행했다. 

한국의 세 독재정권을 포함해, 세계의 수많은 권위주의 정부는 국민들의 반발로 붕괴로 끝났다. 

신정국가인 이란과 사우디도 국제 투자를 받아 현대화된 기술과 기업 단지를 도입하거나, 국제 표준과 여론에 맞게 신정체제 요소를 완화하는 등 부분적으로나마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승리는 과학기술로 끝이 날 수도 있는데, 최근에 나타났거나 등장할 걸로 예측되는 AI/자동화, 유전공학, 사이보그, 수명 연장[각주:6]과 같은 과학기술은 현대문명과 인간 본성의 기틀을 뒤바꿀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인류는 사회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위해 자유민주주의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방향으로 인간이나 사회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시를 들기 위해 중국 과학기술의 가능성에 대해 쓴 을 다시 언급해 보겠다. 

개인적으로 2019년 현재 중국의 일당독재체제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보다 낫다는 주장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적어도 이 체제가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여러 사회문제가 형성되고 있으며 시민들이 각성하기 시작했는데, 이 문제를 기존의 체제로는 감당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과학기술이 월등히 발달하면 안 통할 수도 있다. 

 중국은 AI를 통해 관치경제의 고질적 문제 즉 비효율과 부패로 경제성장을 제한하며 혁신을 억제한다는 단점을 없애버릴 수 있으며, 유전공학을 통해 독재 체제에서도 사회를 안정시킬 국민들이 형성될 수 있으며, 감시검열 기술을 통해 반란세력의 씨를 말리면 체제의 정당성과 상관없이 사회 안정을 누릴 수 있다. 즉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본성이 바뀌어서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도 사회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이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비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생각해봐도 결론은 비슷하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자유민주주의에 비해 열위에 있는 다른 정치 시스템들을 현실적이며 효율적인 체제로 만들어버렸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붕괴까진 아니더라도 자유나 인권을 약간이나마 침해하거나 증진을 방해할 과학기술은 수도 없이 많다. 예를 들어 인공자궁이 발달하면 여성의 출산으로 인한 커리어상의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여성 경력단절을 해결하려는데 여성들을 법이나 제도로 배려하기 싫어하는 몇몇 국가나 기업은 여성들에게 인공자궁 사용을 강제할 수 있다. 여성 권리 향상을 회피하기 위한 방식으로 과학기술이 악용되는 셈이다. 또 AI/자동화를 통해 노동력 수요가 줄어들 수 있는데, 그러면 저출산 고령화로 고생하는 나라들도 이민 유입을 할 필요가 줄어들거나 없어진다. 이민자들에게 경제적인 기회를 제공하길 원하는 이타주의자나, 자국이 타국이나 타 문화에 포용적이기 바라는 탈민족/다문화주의자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따라서 21세기의 과학기술은 자유민주주의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전을 던져준다.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아도 사회가 괜찮게 굴러간다면, 왜 굳이 자유민주주의를 따라야 하는가? 과거엔 인류를 위하여 체제를 개조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면, 과학기술이 특이점 수준으로 발달하면 체제를 위해 사람들을 개조하는 방법도 생기게 된다. 여기서 후자를 선택하지 말아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 비자유민주주의엔 여전히 1의 문제는 남지만, 이는 가치관 자체가 다른 인간들에겐 안 먹힐 수도 있다.  


이런 세계관이 디스토피아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게 21세기의 잠재적인 도전이 될 수 있다고 인지하고 맞서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좋아하는 사람들 중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일단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 비슷한 발상을 한 것 같긴 한데... 그나마 목소리 높이는 사람도 과학기술이 독재체제를 정당화할지 모른다 정도로 단순하게만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심각해질 수 있는 문제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1. 공산주의 체제는 거의 예외 없이 권위주의 체제였지만, 공산주의적이지 않으면서 권위주의 체제인 나라들도 많으므로 별도로 표시했다. [본문으로]
  2. 사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신정국가라 하기 애매하다. 사우디는 태초부터 종교집단인 와하비스트들과 정치집단인 사우드 가의 합작으로 이뤄낸 나라라, 지배자인 사우드 왕가 자체는 종교가문이 아니다. 그러나 왕가 자체는 와하비스트들의 영항력을 크게 용인하고 있고, 법과 체제에 있어 종교적 영향력이 매우 크므로 사우디를 편의상 신정국가로 분류했다. [본문으로]
  3. 무분별하게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할 경우, 정치적 반란세력만 키워서 대규모 시위나 내전과 같은 소요사태를 이끌 수 있다. [본문으로]
  4. 믿기지 않는다면 공산주의 국가들의 결과적인 실패를 보라. [본문으로]
  5. 중국, 베트남, 라오스, 북한, 쿠바 등. [본문으로]
  6. 120살을 넘어, 300살/500살 심지어 영생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현재로선 황당무계하게 들리지만 현재 과학기술 발달의 불확실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되더라도 놀랄 게 없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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