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의 밑바닥엔 끝이 없다.
어떤 곤궁과 비참함을 생각하든 그 이상의 비참함이 존재하는 곳이 과거와 현재의 지구촌이다. 문자 그대로 생존만 하는 삶 밑에는 굶어죽는 삶이 존재하며, 전쟁에서 총살당하는 삶 밑에는 전쟁에서 흉기로 고통스럽게 고문당하다 살해당하는 삶이 있다. 이렇게 문자 그대로 생존만 하거나 생존조차 위협받는 사람들이 지구촌에 10억 명이 넘는다. 그렇다고 세상이 나빠진 것도 아니며, 오히려 2에서도 말해냈지만 그나마 개선된 게 이 지경이다. 세상을 더 밝게 만들려면,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끔찍한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2. 인류는 분명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뤄냈다.
세계 어느 곳이든 평균수명, 영아 사망률, 교육 수준, 구매력 소득 등 거의 모든 물질적 지표는 100년 간 엄청나게 개선되었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면 이를 인정하고, 이 발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3. 선진국에서 당연한 현상들이 개발도상국에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선진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개발도상국에선 버젓이 일어난다. 일상 공무를 처리하려면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게 필수적이라던가, 군부가 국가 경제 상당수를 장악하고 있다던가, 글자도 못 읽는 사람들(특히 여자)이 넘쳐나거나, 통합된 국민 개념이 존재하지 않거나, 국가의 공권력이 국토 전역에 미치지 못하고 민병대가 날뛴다거나, 복수심에 불타 이웃국가와 잘 지내긴 커녕 상대국을 고의로 골탕먹이려는 외교를 펼친다던가... 우리가 당연시한 개념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4. 개발도상국은 선진국과는 다른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치관적 기반을 가졌기에, 선진국에서나 통할 정책이나 개념을 개발도상국에 함부로 이식하려 하면 안 된다.
선진국들의 역사 및 시스템은 일단 서구의 것이다.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중국과 미국의 가족문화가 다르며, 독일과 파키스탄의 정치시스템이 다르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서구권 국가들에게 서구식 정책/개념/시스템을 도입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 잘 해 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며, 이식하는 국가의 사회구조와 잘못 얽혀버리면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3과는 다른 이야기다. 3은 가치 판단이 들어간 선진국스러움의 문제라면, 4는 그냥 가치 판단과 무관한 차이를 말한다.
5. 개발도상국 사람이나 집단이 선하고 고결할 거라 기대하지 말라.
좌파식 언더도그마의 영향 때문인지 약자 진영에 환상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슬프게도 진상은 정반대에 가깝다. 적어도 선진국들의 행위자들은 추태를 벌이더라도 최소한의 가면은 쓰지만, 개발도상국은 대놓고 추태를 벌인다. 개발도상국에선 추한 모습을 볼 각오를 하는 것이 좋다. 선진국 기준에서 후진적이고 천박한 가치관을 드러내는 데 서슴치 않는 사람들, 겉치르르한 명분을 내세우나 내부적으론 탐욕과 부패에 찌든 집단들을 수많이 목격할 것이다. 개발도상국에 관심을 가지려면 이런 모습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6. 우선 힘의 역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발도상국에선 사회가 노골적인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경향이 강하다. 슬프게도 사회의 윤리, 도덕적 수준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이 현실을 이해해야 사회 개선을 하든 뭘 할 수 있다. 윤리와 도덕을 따지자면, 선진국 기준에서 제대로 된 인간이나 집단을 찾아보기 힘들기에 더 그렇다.
7. 무질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비선진국은 선진국에 비해 사회질서가 취약하기에,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진다. 이 경우 억제된 금기의 욕망들이 죄다 분출되면서 경제 붕괴, 파괴, 고문, 살인, 강간이 일상이 되는 지옥도가 열린다. 유고슬라비아나 르완다 내전은 그 극단적인 사례이다. 정도는 좀 덜하지만 소련의 붕괴도 그랬고.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제일 고통받는 순간은 이런 무질서의 상황이다. 그러므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내정에 개입할 땐 어떤 방식으로든 질서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무질서보다는 통제된 폭력이 훨씬 낫다.
8. 성급하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위의 요소들 때문에 개발도상국은 살짝만 삐끗하면 바로 위험해질 수 있다. 1,2에서 말했듯 개발도상국 사정이 시궁창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지금이 최악도 아니다. 그러니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고, 목표도 소박하게 잡은 다음, 개발도상국이 다음 단계로 무사히 이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신중하게 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진정 개발도상국을 위한 행동이다.
9. 위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적 사고는 안 된다.
개발도상국이 이런 비참한 신세를 피하지 못한 건 지리적, 자연적인 난점과 운의 요소도 크게 작용한다. 진짜 좋은 조건에서 망해버린 나라들도 있지만, 성장 기회를 자신도 모르게 놓치거나 단순히 터가 안 좋은 데 세워져 가난한 나라들도 정말 많다. 스웨덴,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들도 아프리카 대륙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지리조건이 경제성장에 여러모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의 무능함과 한심함에 대해 비판할 건 비판하더라도, 이들의 조건을 생각해 무작정 깎아내려선 안 된다.
10. 지옥처럼 보이는 세상에서도 삶의 의미는 있다.
이들의 삶의 수기를 읽어보면 진짜 눈물겹다. 이들은 비참한 현실에서도 더 나은 가족들의 삶, 더 나은 공동체, 더 나은 나라를 위해 죽기살기로 생활한다. 그리고 사회의 눈부신 발전에 공헌한다. 이런 노력을 보면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게으르다는 편견도 싹 사라진다. 더불어 고통으로 가득찬 삶의 진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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