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흔히 개발도상국이 선진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높고, 그 힘으로 개도국이 선진국 생활수준을 따라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고,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역사가 뇌리에 박혔다보니 더 그렇다. 현재진행형인 중국/인도/베트남의 성장사례가 있다보니 더더욱. 하지만 과연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 

내가 읽었던 책 세 권이 나이브한 통념을 반박했기에 그 내용을 소개한다.  


1.

 인구 가중치를 둔 1인당 소득(1인당 GDP)의 수렴 현상은 자료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는 최근 글로벌 불평등이 감소한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구 가중치를 두지 않은 각국의 1인당 GDP 자료에서는 21세기의 첫 10년을 제외하고는 소득 수렴을 확인할 수 없다. 즉 '전통적인 정의에 따른 절대적 수렴'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1970년대 GDP 대비 1970년~2013년 각국 GDP의 평균 증가율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그것이 억측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도표 4-3-a>는 아시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1970년 소득 수준과 그 후 증가율을 보여준다. 1970년 1인당 GDP 수준에 따라 장기 증가율이 상승하거나 하락하지 않고 있다. 회귀선을 그려본다면 1인당 GDP 증가율이 2%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수평을 그린다. 이는 고소득국가와 저소득국가가 같은 속도로 성장했음을 시사한다. <도표 4-3-b>는 아시아와 서유럽, 미국, 오세아니아(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한 서구 국가의 추세를 보여준다. 이 경우에는 회귀선이 매우 뚜렷이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모양을 그린다. 예외 없이 아시아 지역에 있던 최빈국들은 43년 동안 서구 국가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인구가중 수렴뿐 아니라 비가중 수렴 역시 아시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아시아 국가만이 고소득국가의 소득을 따라잡고 있다.

-브랑코 밀라노비치,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서정아 역, 21세기북스, 2017, p.232-233

<도표 4-3-a>와 <도표 4-3-b>

<도표 4-3-b>에서 볼 수 있듯, 아시아에서도 동아시아/동남아시아/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특히 높다.

한국 주변국가들이 특별히 경제성장을 잘 하는 셈이다. 태평양 서쪽 지역에 특출난 무언가가 있나? 

개인적인 가설을 내세우자면 동아시아/동남아시아/남아시아 국가들의 내정이 개도국치곤 그나마 안정된 편이라 그러지 않을까 싶다. 이 지역들은 적어도 중동/아프리카처럼 부족/종교/종파 문제로 내전을 벌이거나, 구 소련 지역처럼 소련 해체 후유증 수습에 급급하거나, 중남미처럼 극심한 정치분쟁으로 내전 벌이고 사회주의 정책으로 경제를 말아먹진 않았다. 

<표 4-1> 

인용문에서 언급한 자료는 아니지만 내용적으로 직접 관련된 표라 올려본다.  

보시다시피 아시아의 경제성장이 특별하고, 전세계에서 제일 경제성장률이 낮은 지역은 제일 못 사는 아프리카다. 『빈곤의 경제학』 서평에서 논한 최빈곤국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2.

 균제상태[각주:1]가 기존의 경제여건이나 초기의 조건과 무관하다는 첫 번째 성질은 경제성장에 잇어서의 수렴(convergence), 즉 소득이 낮은 국가가 높은 국가보다 성장속도가 더 빠를 것이고 그 결과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국가간 소득격차가 줄어들 것임을 예측한다. (중략) 그러나 [그림 18-6]에서 볼 수 있듯이 소득이 낮은 국가가 소득이 높은 국가보다 빨리 성장할 것이라는 절대적 수렴(absolute convergence)은 실제 경험에 의해 지지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솔로우 모형의 예측은 틀린 것일까? 

 [그림 18-7]은 1965년 당시 21개 OECD 국가의 일인당 국민소득수준과 1965년-1990년 기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여주는데, 터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각주:2] 절대적 수렴에 관한 솔로우 모형의 예측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결과는 OECD 국가들과 같이 경제적 환경이 유사한 국가들간에는 수렴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를 조건부 수렴(conditional convergence)이라 한다.

- 김경수, 박대근 저, 『거시경제학 제5판』, 박영사, 2016, p.610.

[그림 18-6], [그림 18-7]


+ 3. (2019.05.15 추가) 

 1820년부터 현재까지 각국의 소득 격차는 몇몇 예외적 경우 말고는 계속 벌어졌다. 1820년에 가장 부자였던 국가들이 가장 많이 성장했다. 오늘날 선진국의 소득은 평균 2만 5000달러~3만 달러이고, 대부분의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소득은 평균 5000~1만 달러인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소득은 고작 1387달러이다. 이러한 격차의 확대 현상은 그림1에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의 가로축을 따라 오른쪽으로 갈수록 1820년에 소득이 높았던 지역들이고, 이들의 성장률이 제일 높았다. 반면 왼쪽의 지역들은 초기의 소득이 낮은 지역들인데 성장률이 더 낮았다. 유럽과 영국의 식민지들은 1820년에서 2008년까지 소득이 17~25배 증가했다. 동유럽과 대부분의 아시아 지역은 초기의 소득이 낮았고 같은 기간에 소득이 10배 증가했다. 남아시아, 중동, 그리고 대부분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운이 나빴다. 1820년에도 가장 가난했고 같은 기간에 소득 증가도 3~6배에 불과했다. 이 지역들은 서구에 비해 더욱 뒤쳐진 것이다. 그림1의 '분기식(divergence equation)'은 이러한 패턴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소득 격차의 확대에도 예외가 존재한다. 동아시아가 가장 중요하다. 이 지역은 세계적인 추세와 반대로 지위가 개선된 유일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20세기의 가장 대단한 성공 사례이다. 일본은 1820년에는 분명히 가난한 나라였지만 서구와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또다른 극적인 사례는 한국과 대만의 성장이다. 비록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소련도 성공 사례에 속한다. 오늘날 중국은 이러한 사례를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로버트 C. 앨런, 『세계경제사』, 이강국 역, 교유서가, 2017, p.11-15

그림1


결론은 1.과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30년이 아닌 200년 단위로 경제성장을 비교했고, 그래서인지 잘사는 나라들이 경제성장을 오히려 더 잘했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



1,2,3에서 봤듯 개발도상국이 선진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아 생활수준이 국제적으로 수렴할 거라는 가설은 잘 봐줘야 애매하게 맞는 수준이다. 설령 맞는 편이라 할지라도 반례가 많이 나타나므로 모든 개도국들이 눈부신 경제성장 하는 양 이야기하지는 말자.

물론 이는 지역별 상대적인 경제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며,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절대적인 경제성장 및 생활수준 향상 자체는 『팩트풀니』 서평에서도 언급했든 사실이므로 오해하지 말자. 절대적인 경제성장/생활수준 향상이 특정 개도국들이나 지역에 집중된다는 게 문제다. 


  1. 솔로우의 유명한 경제성장모델에서, 생산함수 y=F(K,L)이 정해져 있을 때(K-자본량, L-노동량) 1인당 GDP는 장기적으로 특정 지점에 수렴하게 되는데, 이 때 균제상태에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2. 터키가 OECD 국가들 중에선 1인당 국민소득이 제일 낮은 편이라는 데 주목.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