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에 책임이 덜한 개발도상국이 제일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 최근에 서평을 쓴 『팩트풀니스』에선 개발도상국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곤 했는데, 편의상 관례대로 선진국-개발도상국 분류를 쓰겠다. 편하게 이 글에 나오는 1-3단계를 개발도상국, 4단계를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자. )
나는 기후 변화로 인류 문명이 붕괴된다는 극단적인 예측엔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부족하게나마 있는 데다, 과학기술이 발달해 그 피해를 상쇄할 거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선진국들은 그렇다.
물론 변덕스럽고 극단적인 날씨가 일상화되고, 식품값 폭등이 잦아지는 정도의 불편함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참으라고 하면 못 할 건 없는 수준이라고 본다. 온실효과를 차단하는 노력과 동시에, 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지 별 수 있겠나.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은 다르다. 그들은 기후가 변화하면 기아나 내전으로 국가 기반이 붕괴되는 대재앙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몇몇 분쟁국가나 최빈국에선 문자 그대로 문명이 붕괴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본다. 현재 시리아 내전도 기후변화로 가뭄이 만성화되면서 농촌이 붕괴되고 도시에 사람이 몰리게 되어 생긴 삶의 질 저하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http://harmless.egloos.com/3499833 참조.) 아직 평균기온이 1도밖에 안 올랐는데 벌써 내전으로 붕괴된 나라가 발생했다. 더 올라가면 얼마나 많은 국가가 분쟁에 휘말릴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예상하는 이유를 몇 가지 들자면.
- 선진국들은 싱가포르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냉대-온대기후에 위치하여 상대적으로 좋은 기후조건을 가졌다. 어지간히 기후가 변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못 사는 지역이 될 일은 없다.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건조기후나 열대기후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지역에선 조금의 기후 변화도 거주지를 사람 못 사는 지역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 개발도상국들은 생활수준이 낮고 축적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할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다.
- 개발도상국들은 부족/인종 갈등, 종교 간 충돌, 빈부격차, 국민의식의 부재 등으로 잠재적 갈등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높으며, 이를 피 흘리지 않고 해결할 사회적 합의/시스템은 더더욱 부족하다. 그렇기에 작은 외부의 충격에도 큰 사회적 격변이 벌어질 수 있다.
-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못 사는 나라 한정이지만, 출산율이 높아 인구가 폭증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의식주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기후변화로 식량/수자원이 부족해지기라도 한다면 문자 그대로 대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화석연료를 낭비할 여력이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최근에야 낭비하기 시작했기에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없거나 적다는 사실이 결부되면 위 비극은 더 심각해진다.
제발 내 우려가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화석연료 낭비하는 선진국이야 기후변화로 대재앙을 맞아도 '이기심의 대가를 치른다'는 도덕적 합리화라도 가능하지, 화석연료라는 문명의 이기도 누리지 못하다 선진국과 같은 지구에 산다는 이유로 대재앙을 맞는 개발도상국들은 대체 무슨 죄인가? 그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선진국들을 저주한다면 우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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