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한국 사회에서 "서구 선진국에는 이런 좋은 문화와 시스템이 있다. 그러니 한국도 따라하자!"는 레토릭이 잘 통했다. 한국 사회는 서구 선진국에 대한 갈망이 컸기에 이게 왜 좋은지는 잘 설명하지 않고, 그냥 "서구가 이렇다니 옳은 거다!"고만 해도 많이들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게 앞으로는 무조건 통하지는 않을 거다. 

이게 왜 좋은지 대중에게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더더욱.


서구 선진국들은 한국보다 생활수준이 높고, 동성결혼 합법화라던가 개인주의 등 진보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구 선진국은 한국인들의 로망이 되었고, 이 로망은 대부분 사실이기도 했다. 물론 서구 선진국들도 과도한 복지비용, 불평등의 확대,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갈등처럼 여러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때는 사회문제들이 본격적으로 터지기 전이었다. 그리고 정보통신이 덜 발달했던 시기였기에, 이런 문제가 한국 사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관련자들이 의도적으로 관련 정보를 숨길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10년간 서구사회에서 2008 세계 금융위기, 남유럽 금융위기,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 등 포퓰리즘 유행, 유럽 난민 사태, IS의 연속 테러 등등 많은 사건들이 터졌다.

서구사회의 어두운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워낙 큼지막한 사건들이기에 엘리트들이 더 무시할 수 없다. 

과거와 달리 인터넷과 SNS 사용이 더 자유로워졌기에, 이를 숨길 수도 없게 되었다. 


이제는 서구의 진보적으로 여겨지는 정책이나 가치들을 예전처럼 마냥 좋게 볼 수 없다. 


짧은 노동시간은 임금 감소 및 투잡의 활성화, (일찍 문 닫는 가게들 속에서의) 불편한 일상생활이라는 댓가를 치른다. (이 현상은 노동시간 단축하는 한국에서도 일부나마 나타난다)

서구식 복지국가는 많은 비용을 초래하며, 저출산 고령화 속에서 지속되기 어렵다.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은 불평등을 가속화시키고, 극좌-극우를 유행시키는 문제를 불러왔다.

이민과 난민 유입(특히 무슬림)은 경제 및 사회문화적 갈등을 필연적으로 일으킨다.


거기에 한국은 최근 부패 정치인 박근혜를 평화적으로 탄핵시켰다. 이런 평화적인 운동은 포퓰리즘이 유행하는 서구사회에 희망이 되기까지 했다.

어떤 면에선 한국이 서구 선진국보다도 잘 한 것이다. 그러니 서구가 무조건 한국보다 낫다는 말은 더 통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 사회는 과도한 위계질서나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과 같은 문화적 결함들이 있기에, 서구적인 문화나 가치를 더 받아들여야 한다. 

더욱이 한국인들의 서구적인 문화나 가치에 대한 갈망은 아직 죽지 않았다. 낙태나 동성결혼, 개인주의, 복지국가에 대한 여론은 갈수록 호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인은 점점 서구인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옛날처럼 무조건적인 서구의 것 찬양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서구 선진국의 제도, 가치관, 문화를 도입하자고 한다면, 서구의 것이니 그냥 받아들이자고 하면 안된다. 

왜 이것이 한국에 필요한지, 한국에도 잘 적용될 수 있을지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안 그러면 "서구에서도 실패한 걸 왜 갖고 들어오냐?"는 핀잔만 받을 테니까. 


그리고 오만하게 국민을 계도하려는 태도는 버리고, 더 안다고 생각하면 친절하고 평등한 위치에서 이야기하라. 

그렇지 않으면 "니가 뭔데 아는 척이야"하는 국민들의 거센 반발과 분노를 맛볼 것이다.



+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나 난민 및 이민자 수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내가 보기엔 한국인들이 이 개념들에 대해서 특히 적대적이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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