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국가별 비교한 국회의원의 청년비율, 국회위원 평균연령 들고와서 한국 정치인의 고령화가 심각하며, 청년 정치인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는 시스템의 부재를 그 원인으로 뽑는다.

다 맞는 분석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에서 청년 정치인이 부족한 이유의 전부일까? 

내가 보기에 한국은 청년 정치인들이 많은 선진국과는 크게 다른 면이 셋 있다. 


1. 타 선진국에 비해 늦은 사회진출연령

학력 인플레이션+엄격한 징병제[각주:1]+고시제도와 이중노동시장으로 인한 취업기간의 장기화

이 세 콤보가 정말 크다. 세 요소 모두 한국이 선진국 중에서는 제일 심한 그룹에 들어간다. 

실제로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산모평균 연령이 제일 높은 나라이며, 한국의 극심한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개인적으로도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사회진출을 늦게 하는 나라'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는데, 검증해볼 사람 어디 없나. 


2.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대거 양산된 정치인들의 고착화

이건 나 말고도 설명한 사람이 많으니 패스. 다만 보충하자면, 한국은 민주화 시점(1987년)이 타 선진국들에 비해 늦었고, 이는 민주화 세대 정치인들의 후광이 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남아있을 개연성을 높인다.   


3. 근본적인 정치 시스템의 차이

한국은 미국, 키프로스와 더불어 선진국 중에선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의외로 이걸 모르는 한국인들이 많다. 원래 선진국에서는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일반적이다. 대통령제를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특성이 한국과 타 선진국의 정치 양상을 다르게 만듦은 분명하다.  

국가 지도자를 의회 내에서 선출하지 않고 국민이 직접 뽑으며, 내각도 대통령의 의중에 맞게[각주:2] 뽑는 대통령제 국가들에서는 모든 걸 국민이 뽑은 의회에서 다 하는 의원내각제만큼의 의회와 국회의원의 지위를 기대할 수 없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중간쯤 되는 제도로 평가받는 이원집정부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대통령제 국가에서 의회와 국회의원의 권력과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각주:3] 또, 의원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 국가들은 국회의원 자리의 중요성이 높기에, 정당이 국회의원에 기반한 정치인 육성 시스템을 발달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크다. 문제는 청년 정치인 통계는 전부 국회의원이 기준이라는 거다. 국가별 국회의원의 권력과 위상은 국가별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단순 1:1 비율비교에는 주의해야 한다.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국회의원 청년 비율이 낮더라도 한국같은 대통령제 국가는 상대적으로 문제가 덜 발생할 것이다.  

거기에 대통령제 특성상 정치인들의 카리스마가 중요한데, 이 경우 정당 내부에서 검증 끝났지만 인지도 낮은 인물을 내보내기 쉽지 않다. 한국처럼 국회에 대한 불신이 심한 나라는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도 국회의원 평균연령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며(다만 청년 정치인은 한국보단 확실히 많다), 미국 대선 유력후보였던 사람들 중 트럼프, 샌더스, 워런, 바이든, 블룸버그 모두 70세 이상이다. 물론 부티지지 같은 30대 대선후보도 있고 그런 면에선 한국보다 낫다. 하지만 대선 유력후보 전반의 연령대를 따지면 한국보다도 더 심하다. 정치인 고령화 소리 많이 나오는 한국도, 유력 대선후보들[각주:4] 모두 대선 시점 기준 (만으로) 50-60대임을 생각해 보자. 실제로 미국 청년들도 정치인 고령화를 유럽과 비교하며 한탄 중이다... 


위 요인들을 감안하면 한국에 청년 정치인들 비율이 낮은 게 자연스럽다고 본다. 나도 청년으로서 이 현실이 불편하긴 하지만, 개연성이 높아지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인위적인 조치로 청년 정치인 비율을 높이려 든다면 부작용이 클 것이다.  굳이 청년 정치인들이 필요하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1. 남성의 90% 이상이 1년 반 이상의 군복무 혹은 대체복무를 하는 나라는 선진국을 넘어, 개도국까지 포함해도 세계적으로 손에 꼽는다. [본문으로]
  2. 물론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선 이 과정에서 의회가 견제한다. [본문으로]
  3. 물론 정상적인 민주 대통령제 국가라면, 의회가 최소한의 지위는 가질 것이다. [본문으로]
  4. 황교안, 오세훈, 홍준표, 이낙연, 박원순, 이재명.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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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 맥락 이해를 위해 밑의 표현 일부를 수정했다)

독자는 4단계, 즉 세계를 생활수준으로 4등분할 때 제일 높은 단계의 삶을 이미 알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4단계 삶을 살 것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4단계 삶을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고소득층의 삶을 사는 사람은 다른 세 단계 삶 사이의 큰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4단계 사람이 다른 60억 인구의 현실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 

-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이창신 역, 김영사, 2019, p.58

당신은 특별한 나라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사실로 미뤄 당신은 아마 나와 마찬가지로 연소득이 1만6000달러 이상일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세계 인구의 상위 10%에 해당한다는 뜻이고, 이는 특별한 일이다.

- 윌리엄 맥어스킬, 『냉정한 이타주의자』, 전미영 옮김, 부키, 2017, p.42


옛날부터 독서를 즐겨온 입장에서, 출판사의 베스트셀러 홍보하는 데 흔히 쓰이는 문구가 "OO개국에서 ㅁㅁ개 언어로 번역!"이었던 걸 기억한다. ㅁㅁ의 숫자는 보통 10에서 시작했고, 많아도 보통 50을 넘기지 않았다. 참고로 세계 언어는 6-8천개 정도로 추정된다. 전세계적 베스트셀러조차 세계 언어의 1%를 포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구나. 그마저도 책을 살 구매력과 도서 인프라가 되는 선진국 언어에 집중될 거고. 

애독서가로서 씁쓸한 현실이다. 저소득층 도서를 지원하는 기부가 있으면 해봐야겠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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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기초연금이 도입되면서 자식들이 거기에 맞춰 용돈을 줄이는 부양의 책임전가현상이 나타났고

제도에 기대했던 효과가 일정부분 상쇄되었다고 한다. 


지자체 공무원에게 실제로 들은 이야기. 통계적으로 검증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일리있는 현상이다. 

물론 노령연금제도는 존치하는 게 맞지만, 생각보다는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데 유의해야 한다. 많이 줄었다지만, 한국은 여전히 노인 소득 상당부분이 자식의 용돈인 나라라 더더욱.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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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이 좋은지 말만 앞세우지 말고 그 우월함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정치인들이라면 민주주의, 자유, 인권을 앞세우는 정치인이 그렇지 않은 정치인보다 우월하다는 걸 현실정치에서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전세계적인 민주주의, 자유, 인권 후퇴를 보면서 "저걸 부정하는 미x 놈들은 뭐야?"하는 생각만 했었는데(왜 저런 생각을 하나 이해는 돼도),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에 회의적인 인간만 탓하기엔 상태가 많이 나빠졌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전세계 흐름이 그렇다. 왜 저들이 이상한 걸 우리가 바로잡아야 하냐 생각이 들 지 모르지만, 그걸 따지기 전에 가만히 있으면 상태가 더 나빠질 것임은 분명하다. 어떻게든 먼저 나서야 문제를 줄일 수 있고, 그 나서는 방법 중 제일 좋은 것은 상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의 위대함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을 앞세운 정치세력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게 사실이라 더 그렇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막상 정치 시작하면 위선적이고 비겁하고 무능한 부류들을 왜 신뢰해야 하는데? 몇십 년 전에나 통할 이야기가 머리속에 깊숙히 쳐박히고, 정책 담당자의 머릿속은 꽃밭, 현장은 그냥 개무시.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이니 앞세웠던 진보적인 개념들도 빛이 바랠 수밖에. 


이 정도까지 갈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만약에 민주주의, 자유, 인권 개념이 세계적으로 몰락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자유, 인권을 앞세운 무책임한 인간들 탓일 것이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의의를 가졌고, 여러 무시 못할 이점들이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적인 기류가 지속적으로 만연해진다면 그들 주장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강한 반감을 주는 옷을 억지로 입어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가 잘 해야 한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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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참석자들을 포함해 모든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볼 때, 약[제1차 세계대전 평화협정] 내용이 관련 지역 및 주민들에 대한 지식이나 그에 대한 고려 없이 결정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유럽에 부과된 조약 내용이 그 정도였으니 거리상으로도 멀고 생소한 중동 같은 지역에 부과된 내용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아서 밸푸어만 해도 평화회의에 참석한 윌슨, 로이드 조지, 클레망소ㅡ모리스 행키의 전문지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ㅡ를 가리켜 "이 전능하면서 또 전적으로 무지한 세 거두가 회의장에 앉아 어린애 같은 인물의 지도를 받으며 대륙들을 난도질하고 있다"고 꼬집어 말했고, 이탈리아의 외교관도 이렇게 썼다. "파리 평화회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세계의 이런저런 정치인들이 지도 앞에 서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도시나 강을 찾으려고 손가락으로 지도 위 그림을 더듬어가며 '그 빌어먹을 곳이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라고 투덜대는 모습이었다." 로이드 조지도 (성서의 구절을 빌려) 단에서 브엘세바(베에르셰바)까지의 팔레스타인은 영국이 통치해야 한다고 요구했지작 단이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다. 19세기 성서 지도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하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1년 후 앨런비 장군으로부터 단의 위치를 찾았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자신이 원하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경계선을 북쪽으로 더 이동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 데이비드 프롬킨, 『현대 중동의 탄생』, 이순호 역, 갈라파고스, 2015, p.609

서구 열강이 피식민국의 역사/지리에 무지했고 식민지배의 편리를 위해 국경을 자의적으로 그은 건 알고 있었지만, 주먹구구, 나이브함과 무책임함의 레벨이었을 줄은 몰랐네.

이건 문제가 안 생기는 게 신기한 수준이다. 중동이 분쟁지역이 된 건 예상된 바다.

+ 참고로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서구 정치인들이 세계 1차대전에서 중동지역에 저지른 뻘짓과 삽질은 책을 따로 써야 할 정도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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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낭만적 예찬을 넘어서 - 이미지 시대의 아동을 생각하다", 「창비어린이」, 2019년 봄호, p.27-36.

아쉽게도 인터넷에선 볼 수 없으니 직접 사거나 도서관에서 읽는 방법밖엔 없다. 


나도 트위터에서 알게 된 글인데, 진짜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욕 한 게 아니다. 진짜로 문장 하나하나가 명문이다. 보면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는 "이 사회는 OO 혐오가 심각하며 규제되어야 한다"는 신좌파식 진부한 레토릭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각주:1] 그는 흔한 먹물좌파식 이론으로 글을 쓰기 보다는 자신의 특수한 처지가 바탕이 된 아동과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그리고 아동혐오 현상을 '이미지 시대'라는 특이한, 신좌파들 이론보단 훨씬 맞아떨어지는 관점으로 분석한다. 흔해빠진 선악구도가 없는 건 덤이다. 

신좌파식 레토릭에 학을 뗀 나에게 단비같은 반가운 글이다. 신좌파에 반대한다면서 지금까지 이런 발상을 못했을까...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으니.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 흥미로웠던 부분만 인용해 보겠다.


1. 장애인의 입장에서 본 아동[각주:2]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아동기였다. 내가 어린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주로 만나 교류해야 할 동료들이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른 피부색, 신체, 정신 구조를 가진 존재와 함께 있을 때, 어린이는 결코 아무 획책도 모르는 존재가 아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어린이는 또래들 사이에서 놀림과 배척의 대상이다. 장애 아동은 또래가 아니라 성인과 있을 때 훨씬 행복하다.

 아동은 내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동료 시민이다. 길에서 만난 어린이들은 부모 손에 이끌려 곁을 지나쳐도 시야에서 내 휠체어가 사라질 때까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느라 몸을 비튼다. 먼 거리에서도 놓치지 않는다. "와, 장애인이다!" 세상에 태어나 자신과 다른 신체를 가진 존재를 처음 마주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이해하지만, 적응하기 쉽지 않다. 멀리서 아이 소리가 들리면 나는 가급적 마주치기를 피해 길을 돌아간다.

 그런데 사실 어린이가 나를 보고 "장애인이다!"라고 외치는 데에는, 내가 어린이에게서 몸을 피하는 이유와 정확히 같은 이유가 놓여 있다. 그 아이들이 태어난 동네나 다니는 학교에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인권 교육이나 영상을 통해 장애인의 이미지를 만나기 때문이다. 아예 이미지를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다면, 아이는 나를 '장애인'이라고 특정하게 지칭되는지도 모를 것이다. 

 나는 장애인과 어린이가 욕망을 가지고 부딪치고, 소란을 피우고, 진로에 방해가 되더라도 몸과 몸으로 더 자주 만나는 순간들을 상상하며 이 글을 쓰기로 한다. 소비자인 어른에게 '육성되는' 아동이 아니라, 한 명의 시민으로서 어른과 함께 자라는 아동을 떠올린다. 나를 보고는 "와, 장애인이다!"고 외치면서 부모에게 끌려가는 아이가 아니라, 내게 다가와 나에 대해 자신의 궁금증을 자기 입으로 질문하는 아이를 상상한다.

같은 책, p.27-29.

  흔히 아동 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혐오에 대한 반동으로 "아동보단 개저씨가 더 위험하지 않냐?"는 식으로 아동의 잠재적인 부정적 요인들을 무조건 실드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동들이 장애인에게 보이는 철없음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아동은 순수무결한 선한 피해자가 아니라, 소수자이면서도 동시에 성장기에 있는 존재로서 서투르고 답답한 존재다. 나는 그의 시선에 동의하며, 소수자에도 어둡고 음침한 면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소수자의 진정한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더 나아가, 아동의 부정적인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존재로 존중하려 시도한다. 아동들이 저러는 게 장애인을 교육이나 영상 같은 이미지로만 접했기 때문이라면서 이해하려 시도한다. 난 이 구절에서 그가 대단한 인물이며 믿음직스럽다고 느꼈다. 장애인으로서 아동들 때문에 힘든 일 많았을 텐데, 저런 포용적 태도를 보이는 건 어지간한 인품으론 못 할 짓이다. 소수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각주:3]을 핑계로 한 혐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귀감이 되기 좋은 인물이다. 

 

2. 이미지만 남은 소수자들

 아이를 양육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가치를 띠며 국가와 시장도 (최소한 규범적, 형식적으로는) 양육을 지원하고 배려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국가는 공적인 주체로서 아동을 보호하고 돌보며, 사회 구성원들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학대 및 성범죄 등이 알려질 때 분노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가 아동을 "혐오의 대상"으로 여긴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동 혐오라는 현상을 아동에 대한 물리적 학대로만 이해한다면, 현대 사회의 특징인 아동 배제 기제를 포착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아동을 특정한 속성으로 환원하고 그에 열광하면서도, 그 속성을 벗어난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면 어떨까? 국가 단위에서 그 속성이란 사회, 경제적 재생산의 상징, 미래의 인적 자원이자 소비자일 것이다. 사회 구성원 일반에게는, 바로 '귀여움'이다. 아동의 귀여움은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에 머물지 않고 전국 단위의 '공적인 것'으로 소비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정반대로 '귀엽지 않은 아동'에 대한 거부와 배제로 이어지고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아동은 귀엽고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울고, 소란을 일으키고, 먹고, 싸고, 부수는 생명이다. 

(중략)

 '프린세스 메이커'나 유튜브, TV에서 하루하루 귀여움을 더해 가며 성장하는 아이를 지켜볼 때와는 달리, 정말로 한 생명을 돌보고, 같이 살아가며, 성장에 함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모든 동물은 생존의 욕구를 가진 존재로서 부모에 의해서도 쉽게 통제되지 않고, 욕구가 해소되지 않으면 시끄럽게 소음을 내며 운다. 아동은 (이미지로 등장할 때와 달리) 아무런 위협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 바이러스와 세균을 지닌 인간이고, 먹고 배설하고, 피와 땀을 가진 '축축한' 존재다.

 현대 사회의 공적 공간은 점차 이러한 '축축한' 존재들을 추방시키고 있다. 장애인과 빈자, 특정 인종의 외국인들은 오래전부터 공적 공간에서 손쉽게 추방되던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아동이 그 차례를 맞았다. 아동들은 더 이상 어른들 사이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존재가 아니다. 노인은 어떤가? 노인들은 지하철과 공공장소에서 기초 규범을 지키지 않는 존재로 지목되면서 젊은이들에게 혐오받는 대상이 되었다. 공적 공간은 점점 젊고, 건강하고, 세련된 행위 규범을 익한 존재들만의 세계가 되어 가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이미지로서의' 소수자들이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비교적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 사회다. 아동 유튜버들의 인기와 노키즈존의 병존은, 이처럼 이미지는 있되 물적 존재로의 몸은 마주치기 어려운 시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같은 책, p.31-34.

보면서 감탄만 나오는 명문이다. 

특히 맨 마지막 문단은 보면서 머리를 두들겨맞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현대 사회의 분노와 혐오, 정치적 올바름 등등 소수자 이슈 전반을 잘 요약해준 명문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현실을 적확하게 설명한 글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요즘 사회풍조가 너무 윤리적 결벽증에 빠진 건 아닌가 싶었던 나로선, 윤리적 결벽증이 이런 현상을 낳지 않았나 가설을 세워본다. 이건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글을 따로 써야겠다. 



+ 이 저자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고, 소수자의 존엄성을 담담하게 옹호하는 책도 썼다. 칼럼 보고 믿음이 생겨서 사 봤다. 서평도 곧 올려야겠다. 

  1. 특집으로 같이 기고된 나머지 글들은 죄다 그런 레토릭이었다. [본문으로]
  2. 저자 김원영은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을 받은 장애인이다. [본문으로]
  3. 냄새 난다, 잠재적 범죄자다, 이기적이다 등등...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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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재의 미흡한 친환경 기술을 서둘러 보급하면 어떤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독일의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 프로그램은 2050년까지 독일을 탄소 기반 연료에서 완전히 졸업시키도록 설계된 정책이고,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독일은 발전 용량이 40기가와트에 달하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이론적으로는 통상적인 전기 수요를 거의 모두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용량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지리적으로 높은 위도에 위치해 있고, 구름이 걷히는 때가 거의 없으며, 해가 나는 때가 거의 없다. 이 많은 태양광 패널이 생산하는 전기는 독일 총수요의 6퍼센트에 불과하다. 독일은 원자력 발전 시설을 대중이 우려한다는 이유로 폐쇄하고 있고, 지정학적 이유로 천연가스 연소 발전소를 줄이고 있다. 그러면 풍력 발전(장소 선정에 대한 우려 때문에 더 이상 개발할 지역이 동났다), 그리고 석탄 연소 방법밖에 남지 않는다.

태양광 발전은 독일에서는 대체로 불가능하므로 석탄과 갈탄(축축하고 질이 낮으며 독일에서 생산되는 석탄으로서 그 어떤 연료보다 높은 탄소 족적을 남긴다)이 현재 독일 전기 총수요의 42퍼센트를 생산하고 있다. 석탄/갈탄 연료 발전소를 가동하거나/가동 중지하려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 발전소들은 어쩌다 독일 전역에 깔린 태양광 패널이 가동되는 날에도 계속 연료를 태워야 한다. 그 결과 독일은 태양광 발전으로 탄소 배출량을 거의 줄이지 못했다. 2007-2009년 경기 침체가 없었다면, 에네르기벤데 프로그램 때문에 오히려 탄소배출량은 증가했을 것이다. 

- 피터 자이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홍지수 역, 김앤김북스, 2019, p.511 

독일 탈원전의 폐해는 한국 탈원전 정책 논의과정에서 어느정도 알려진 것 같은데, 에너지정책 전반이 이 정도로 문제있을 줄은 몰랐네. 디젤게이트는 빙산의 일각이었나.

확실히 한국에선 독일이 친환경국가라는 선입견이 강하구나. 나도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니.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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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안그래도 출산율 추락으로 우울한데 진짜 짜증나게 만드네.


https://www.ppomppu.co.kr/zboard/zboard.php?id=freeboard&no=6182160&extref=1


나탈리아 카넴 유엔인구기금(UNFPA) 사무총재는

 

한국의 급격히 낮아지는 출산율에 대해

 

"최악의 상황을 넘어서고 일반적인 통계학을

 

따질수 없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라고 우려를 표했다.


출처도 없어서 위 구절을 정말로 한 게 맞나 검색해봤더니 출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검색해서 나오는 건 죄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펌글이고, 그나마 있는 뉴스사이트 하나는 공신력 없는 듣보사이트라 인터넷 반응 베껴 올린 걸수도 있고... 

실제로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느낌이 가짜뉴스이다. 문단 띄어쓰기부터 뭔가 이상하게 돼 있고..  


여담이지만 나탈리아 카넴은 한국의 인구구조가 유례 없이 급격하게 변했다고 할 뿐, 그 이상의 표현은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한국의 급격한 발전을 칭찬한 적도 있었다. 



https://www.fmkorea.com/1452997397

확실하진 않지만 위도 출처를 찾을 수 없어 주작같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학술적인 문서를 찾아볼 급의 사람들이 정확한 출처를 안 밝힌다는 게 이상하다.  



https://www.fmkorea.com/1499262009

위 글은 아예 동명의 사이트에서 주작이라 결정났고,

https://www.fmkorea.com/1499574087 





진짜 출생아 수나 출산율이 어찌될지 궁금하면 차라리 오늘 발표된 통계청의 인구추계를 봐라.




물론 한국 출산율이 재앙 수준인 건 부정 못하고, 저런 말이나 예측이 실제로 있었어도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저런 소리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와 누가 실제로 저런 말을 했다는 건 천지 차이이다. 

이런 게 바로 가짜 뉴스다. 


인용문이나 캡처짤이 출처 없이 돌아다닌다면 가짜뉴스일 확률이 높다.

원문을 검색해서 찾을 때까진 일단 판단을 유보해라.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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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수자원(water)을 두고 이웃나라들과 다투고 있다는 사실을 추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중국의 영토 안쪽에 존재하는 티베트 고원은 세계에서 북극과 남극을 제외하면 담수 보유량이 3위의 지역이다. 실제로 티베트는 "제3의 극"이라고도 불린다. 티베트는 아시아를 흐르는 대형 강들인 브라마푸트라강, 이라와디강, 메콩강, 사르윈강, 수틀레지강, 양자강, 황하 등의 기원이기도 하다. 이 강들 중 대부분은 여러 나라를 거쳐 흐르고 있으며 수백 만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수 년 동안 중국 정부는 이 강들이 흐르는 방향을 인구가 많이 거주하는 동쪽과 북쪽으로 바꾸는 데 큰 관심을 보여왔다. 이를 위해 중국은 운하, 댐, 관개시설과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 이들 계획은 초기 단계에 있으며 아직 강물의 흐름을 심각한 상태로 바꿔 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그러한 행동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강들의 하류에 있는 중국의 이웃나라들은 자기 나라를 흐르는 강물의 수량이 현격하게 줄어드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이는 그들의 경제 및 사회를 파탄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서 중국은 브라마푸트라강의 흐름을 북쪽으로 향하게 해서 황하와 연결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일이 현실화되는 경우 인도와 특히 방글라데시는 심각한 문제에 당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메콩강의 흐름도 바꾸려 하는데, 그럴 경우 동남아시아 국가들인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베트남 등이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티베트 고원에서 연원한 강물의 물줄기를 바꾸려는 중국의 노력은 일방적인 것이며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야기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기구 등의 설치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에서 물이 점차 희귀한 자원이 된다는 현실에서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화될 것이며,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이는 중국과 이웃나라들 사이의 전쟁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 존 J. 미어샤이머,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 이춘근 역, 김앤김북스, 2017, p.501-502.



참고) 


부라마푸트라강




메콩강





티베트에서 발원하는 브라마푸트라 강을 멀리 있는 황하로 연결시키는 게 가능할지는 둘째치고,  

자국을 위해서라면 주변국 국가기반을 문자 그대로 말려죽이려 안달이 낫구나.


중국 너 참 대단하다.

저런 마인드로 외교정책을 펴니 미세먼지 문제에도 뻔뻔하게 나섰겠지.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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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년간 유지된 헤게모니가 전방위적으로 붕괴되면서 생긴 무질서가 아닐까.


당장 한국만 해도,


1. 현행 방식의 징병제에 대한 저항이 극심해짐 


2. 주류 정치인들의 수준 저하와 사법농단 사태 등으로 인한 정치권과 관료엘리트에 대한 신뢰 붕괴. 정치혐오야 고래부터 있어온 현상이지만, 그래도 예전엔 관료엘리트에 대한 충성심과 믿음은 있었는데 이젠 이마저도 붕괴되는 느낌.


3.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낫다는 믿음의 붕괴


4. 혈통적인 단일민족주의의 붕괴


5. 기성 성역할, 가족주의와 정상가족 패러다임의 붕괴


6. 기술 수준이 올라가고 문화 컨텐츠의 발달로 인한 공통의 대중 문화라는 개념의 붕괴


7. 수도권-지방격차 심화와 이에 대응한답시고 만드는 지방분권으로 인한 중앙집중적 국민의식 붕괴


8. 박근혜의 몰락으로 말미암은 박정희주의라는 시민종교의 붕괴


9. 한국의 국가 위상이 올라가고 서구 선진국과 일본이 몰락하면서, 더 이상 서구 선진국과 일본을 '추앙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음. 


등등.... 붕괴중인 구조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



국제정치도 그러하다. 


1. 중국, 인도, 러시아 등 비서구사회가 부상하면서 서구사회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약화됨.


1-1. 미국이 점점 고립주의적인 정책을 씀. 심지어 이게 트럼프 당선 이전부터 지속적인 현상이었다는 의견도 존재함.


1-2. 이로 인해 세계가 서구식 민주주의, 인권만이 답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함.


2. 세계화가 경제적이든 사회문화적이든 여러 부작용을 낳음.


2-1. 이민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인, 정체성으로서의 혼란 -> 민족주의, 정체성 정치의 활발화.


2-2. 서구 선진국의 빈부격차 가속화. 


2-3. 초국가적 기구들(EU, NATO, WTO 등)의 영향력을 국가들이 갈수록 내정간섭으로 여기고 있음.. 

 

3. (2와도 관련되지만) 2008 금융위기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음. 몇 년 안에 금융위기가 재발한다는 예측도 있는데, 그게 정말 현실화된다면 세계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혼란에 빠질 것임.


4. 기후변화 문제가 있다. 개발도상국이나 열대/건조지역 국가들은 자칫 국가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



국내든 국제든 무질서화는 막을 수 없는 일인데... 이 무질서가 어디로 향하고 어떻게 해결될지 감이 안 선다.

문제는 역사가 여러차례 증명했듯 어떤 질서든 간에 붕괴되어 무질서가 되면 크나큰 혼란이 발생하며, 혼란을 해소할 새로운 질서가 괜찮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생략하지만, 개인적인 견해론 새 질서가 유토피아일 가능성보단 디스토피아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물론 두 가능성 모두 높진 않고, 제일 높은 가능성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세상이지만. 


최소한 내 가족이나 나라만이라도 난리로부터 최대한 자유롭기를 바라는 수밖에.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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