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특히나 정치 각성에 즉각 반응할 수 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이들을 자국의 정치 현실에서 해방시켜 주기 때문에 이들 역시 무장 투쟁에 가장 이끌리기 쉬운 정치 집단이다. 따라서 현재 많은 지역의 수많은 대학생들은 과거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에 해당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는 산업시대 초기 무산 근로자로서,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찬 이념 투쟁과 혁명에 동원되기 쉬운 집단이었다. 매스미디어를 통한 정치 선동은 손쉽게 그들의 미숙한 감정을 단순하고 목표의식이 뚜렷한 행동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그런 행동이 특정 대상에 대한 분노와 감정에 바탕을 둘수록, 이들은 정치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당연히 민주주의와 법치, 종교적 관용에는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흑백 논리가 이들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의 인종, 민족, 종교가 모욕을 받았다고 느끼면 거기에 반응하고, 이런 주관적인 느낌이 이들이 가진 흑백 논리의 뿌리다. 1979년 이란에서 일어난 혁명이 그랬다. 흑백 논리는 젊은이들의 감정에 잘 맞을 뿐만 아니라 보복 행위도 정당화시킨다. 


-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략적 비전』, p.43-44, 아산정책연구원, 2016


원래는 제3세계 청년들의 운동을 설명하는 구절인데, 현대 선진국들의 청년들에 적용하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인터넷을 바탕으로 한 가짜 뉴스의 유행, 포퓰리스트들의 정치적 선동과 득세, 인터넷 사이트에서 폭발하는 분노와 혐오, 한 편에서는 이민자 배척, 다른 편에서는 무조건적인 PC와 페미니즘으로 하는 비자유주의적인 사회움직임, 양극화된 정치구도. 


물론 청년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분노하는 게 당연히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분노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청년들의 운동이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꿀 것이라면서 낙관하면 안 된다.


빨간 밑줄 쳐진 부분처럼, 청년들의 분노가 비자유주의적이고, 타인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검은 밑줄로 쳐진 매스미디어의 성격 때문에 더 심해진다.


얼굴도 모르는 남성에게 비하적인 표현을 쓰는 워마드 회원. 

무개념 여자들을 다 죽여버려야 한다는 여성혐오자.

문재인을 비판하는 언론들을 적폐로 몰아가는 문빠.

직접적 원한도 없는 타 인종에 폭력을 행사하는 인종주의자(racist).

축구선수가 경기에서 졸전했다고 사형시키라는 국민청원을 올리는 한국 네티즌. 

이슬람교만이 답이며 무신론자들을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무슬림.


이것은 한국에서, 타 선진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분노가 폭발하는 방식이다.

사회 비판의 형식을 띤 분노가 무조건적인 파괴의 에너지로 전이되고 있다. 

파괴의 에너지는 개선을 제일 목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더 위험하다.


분노의 힘만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치자.

그래도 분노는 잘 축적하고 저장했다가 사용할 시점과 장소를 잘 맞춰서 배출시켜야 한다. 

그래야 분노의 파괴적인 에너지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고, 분노의 원인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다들 분노를 건전하게 키울 참을성이 없어져서 그런지,

분노를 사회 혁명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좌파들마저 분노 처리에 서툴러 보인다. 

무고한 사람이나 집단을 공격하려 하거나, 분노 조절을 못하고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분노가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예상을 못하는 사람이 많아, 위 현상은 더욱 강화된다.

분노가 사회문제의 중심을 향할 거라 막연히 기대하기도 한다.

좌파들 절대다수는 아랍의 봄이 시위라는 형식을 통해 아랍 지역을 자유민주주의적으로 만들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중동의 독재정권이 붕괴되고 나타난 세력은 여성과 성소수자, 무신론자를 억압하려는 이슬람주의자들이었다. 이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무조건적인 분노를 방관하거나 방조하는 태도는 

결국 사회 전체를 초토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이다.


남는 게 아무것도 없을 세상을 과연 누가 원할까. 

이 사실은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분노에 미쳐 모든 걸 파괴하려는 자에도 적용된다. 


더 파괴할 게 없게 되면 욕구불만에 빠지거나 허무해지기 십상이니까.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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