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사회를 꽃밭처럼 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가능하지도 않다.
청년들에게 평생을 좌우할 공간의 한 면만 가르치는 것은 기만이며, 무책임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안 가르쳐도 사회생활이나 언론을 통해 다들 어두운 면을 인지하게 된다. 옛날처럼 정보가 통제된 사회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학생들은 "어른들(기득권)이 우리를 속였다"는 배신감에 사로잡히기 쉬우며, 이는 극단적인 운동과 사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대한 교육은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세상의 어두운 면을 숨기고 싶겠지만, 어느 정도는 고백하듯 말해야 정의로우며 청년에게 제일 바람직하다.
사회문제를 인식함으로서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길러내고,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자세를 배우고,
더 나아가 사회문제에 개인적으로 맞닥드렸을 때 적극적인 대처 능력을 길러낸다.
이런 교육은 정의로우며, 청년들에게도 최선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은 시민의식을 함양하고 사회를 개선하려는 건설적인 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회를 꽃밭처럼 가르치는 교육만큼이나 문제적이다.
다름아닌 미국의 최근 교육이 그렇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정치 관련 분야에서, 많은 교수들이 학생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 분야의 교수들은 미국 정치제도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보다, 우선 학생들이 정치제도에서 많은 부정의와 위선을 찾도록 하는 일에 전념한다.
이런 반사 작용에는 각 학문 분야마다 다른 형태를 띤다. 많은 영문학과에서는 고전 작품에서 인종차별주의, 식민주의, 가부장제를 들춰냄으로써 계몽의 가치를 해체한다. 역사학과에서는 정치 발전의 담론이 거짓임을 밝히고, 자유민주주의가 엄청난 부정의를 양산했음을 증명한다. 사회학과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빈곤 문제와 미국의 약점에 주목하며, 미국에 남아있는 차별적인 양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학과별로 보여주는 이러한 접근은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의 결합된 효과는 학생들에게 우리의 정치제도를 무시하는 것이 지적 교양의 증표라고 느끼게 한다. 영어를 전공한 발고 호기심 많은, 어느 여학생이 이런 부분에 있어 나에게 매우 혼란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는 민주주의가 계몽주의의 창조물이고, 민주주의는 계몽주의의 가치가 널리 받아들여졌을 때 작동한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몽주의가 매우 잔인했었고, 계몽주의의 가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이것은 계몽주의에 대해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해야 함을 뜻하는가, 아니면 민주주의에 대한 무의식적인 헌신을 버려야 함을 뜻하는가?
나는 그녀가 발견한 갈등들이 실재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또한 민주주의와 계몽주의 모두를 믿거나 또는 믿지 말하야 한다는 의견도 절대적으로 옳다. 물론,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만들어낸 지적 전통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그녀가 결국 깨닫기를 바랐다.
(중략)
결과적으로 많은 곳에서, 시민이 반(反)시민이 되어 버렸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만연한 부정의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에 젖어들고, 계몽주의의 '문제적인' 가치들을 해체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교사와 교장들은 학생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자랑스런 수호자가 되도록 북돋는 시민 교육을 하기가 어렵다.
- 『위험한 민주주의 - 새로운 위기, 무엇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야스차 뭉크 지음, 함규진 역, 와이즈베리, 2018. p.317-319.
위에서 보듯, 무분별한 사회비판 교육은 학생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주입시켜 학생들이 버려서는 안 될 가치나 사상을 버리게 만들고, 가져서는 안 될 가치나 사상을 가지게 만들 수 있다. 인용한 글에 나오는 예시를 들자면,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와 관용을 포기하고, 권위주의 정부를 옹호하거나 적이라 인식되는 소수자 집단에 대한 권리 탄압을 원하게 만들 수 있다. 1
이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청년들에 이제 익숙해진 헬조선론이나 레디컬 페미니즘은 위 잘못된 선례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회에 대한 무분별하고 근거 부족한 분노와 혐오를 충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헬조선론이나 레디컬 페미니즘이 거론한 사회문제들엔 실제로 심각한 문제인 것도 몇 있다. 그러나 그런 주제에서도 이들은 민주시민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걱정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된 시민 청년들이 나타날 수 있을까.
- 청년들이 기성세대보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회의를 가지고 극단주의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것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위와 같은 그릇된 교육도 일조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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