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생활 경험으로 책까지 낸 한 유명한 의사가 있다.

그는 우연찮게 악명높은 살인사건 피해자를 응급처치하게 되었고, 그는 상상 이상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은 피해자를 안타까워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로인해 좋아요 17만7천개라는 엄청난 조회수와 반응을 퍼트렸다.

안그래도 살인수법이 매우 잔혹했고, 살인의 동기도 매우 어처구니없어 대중의 분노를 산 사건이라 매우 큰 반향을 보였다. 경찰의 무능하게 대처했다는 논란까지 덮친 사건이라 더 그랬다. 


https://www.facebook.com/ihn.namkoong/posts/1901714823215259 

해당 글 링크. 묘사가 매우 노골적이고 잔인하니 주의. 심약자는 읽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관심을 위해 의사로서의 직업윤리를 내버렸다는 비판이 많다. 

이게 의사가 가질 태도인가 하며, 적나라한 묘사가 과연 피해자와 그 유족이 원하는 것이었냐며. 

또 단순 잔인함을 넘어 포르노스러운 이야기를 대중에 필터링 없이 보여도 되느냐하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난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고 싶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의 잠재적인 위험요소를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에는 이런 자극적인 사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기 어려웠다.

왜나하면 과거엔 정부가 기성 언론을 엄격하게 검열했으며, 당시 매체 수준의 한계로 문제적인 사진과 동영상을 언론매체에 올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 법조계, 경찰, 의사 등 엘리트 집단이 대중과 거리가 멀고 권위가 살아있던 시절이었기에, 이런 문제적인 정보에 대한 내부 단속도 쉽게 이루어졌다. 전문가들만 아는 정보를 감히 대중 주제에 알 필요가 없다는 사고관이 만연했으니. 

거기에 당시엔 기성 언론이 대중 매체의 전부였기에, 기성언론만 통제만 잘 되면 대중에 문제적인 정보가 들어갈 일이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있는 시절에는 그게 불가능하다.

언론 검열도 없이 과거보다 쉽게 언론사를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아예 Youtube나 페이스북 같은 개인 매체까지 만들어지는 지경이다. 그리고 매체 수준이 발달하면서 문제적인 사진과 동영상도 쉽게 올릴 수 있다.

거기에 사회가 민주화를 맞으면서, 엘리트 집단도 권위로 모든 걸 뭉갤 수 없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아는 정보를 대중도 알아야 한다는 사고가 만연해졌다. 그리고 대중과 소통하려는 엘리트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대중 매체의 발달은 이 현상을 부채질했다. 


물론, 매체의 다양화와 사회의 민주화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켜내야 할 사회 진보의 성취이다. 

문제는 이런 사회진보가 예상치 못한 사회문제를 불러왔다는 거다.



첫째 문제가 자극적인 정보와 극단적인 감정이다. 

자극적인 정보를 매체에 올리기 쉬워졌고, 대중들도 전문가처럼 알 권리가 있다는 사고관 때문에 

과도하게 자극적인 정보가 돌아다니게 되었다. 이로인해 사람들이 쉽게 극단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이게 굳이 알아야 할 정보인가, 극단적인 감정을 가져도 되는가 하는 대중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둘째 문제가 가짜 뉴스이다.

모두가 수준 높은 매체를 가진 상황에서는 악의를 가진 사람이나 이해관계자들도 날뛰기 쉽다. 

그들은 자기 목표를 위해 허위 사실을 매체로 유포한다. 이것이 가짜 뉴스이다.


셋째 문제가 엘리트에 대한 신뢰 실추이다.

민주화로 인해 엘리트들의 권위가 약해지고, 엘리트들의 무능이나 비위행위가 검열 없이 매체를 통해 쉽게 드러나고, 국민들도 매체를 통해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사회에선 엘리트들이 옛날같은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이는 매체를 통한 정보 유통을 통제불능으로 만들어, 자극적이고 허위 정보가 돌아다니는 현상을 타파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가짜 뉴스, 과도한 자극적인 정보를 비판하면 부패한 엘리트 꺼지라는 식의 원색적인 비판만 쏟아질 테니. 


넷째 문제가 극단적인 정치인이나 정치 이념의 득세이다. 이는 앞서 말한 세 문제 때문에 가능하다. 

극단적인 정치인도 매체를 가지고 자극적인 정보와 가짜뉴스를 퍼트려 극단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면 유명세를 끌 수 있다. 거기에 엘리트들 권위가 약해져 극단적인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엘리트 비판이 쉽게 먹히게 되었다. 



현대사회 문제 개론(?)은 이제 건너뛰고, 일단 의사의 행위와 관련된 자극적인 정보와 극단적인 감정 문제만 논해 보자.


요즘 세상이 과거보다 폭력적이고 잔인했다는 통념이 있는데, 이 통념은 틀렸다.

실제로 인류가 폭력으로 살해될 확률은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젔고, 가정 학교 군대 등의 미시적인 폭력도 크게 줄었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점은 사람들이 폭력적이고 잔인한 사건에 대한 자극적인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거다. 옛날이 덜 폭력적이었다고 쉽게 착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전근대 사회에도 연쇄살인은 많았다. 하지만 언론과 일반인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어 모두가 악명높은 연쇄살인마 이름과 그 악행을 알게 된 건 과거와 다르다.  

IS의 참수 비디오가 등장하기 전에도 참수 살인은 많았다. 그러나 매스컴의 발달로 타국에 사는 사람도 그 끔찍한 광경을 볼 수 있게 된 건 과거와 다르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전에도 잔인한 살인사건은 많았다.[각주:1] 하지만 그 끔찍한 사건 현장이나 시신 상태를 전국민이 알게 된 건 과거와 다르다.


자극적인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되면, 판단력이 흐려져 극단적인 감정으로 이어지고 그릇된 결정을 할 수 있다. 사람이 죽어가거나 강간당하는 광경을 보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사이코패스나 가능할 것이다. 이는 나머지 문제와 결합되어 큰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다음 가정을 생각해 보자.


이 사건 가해자가 파키스탄 외노자이거나 예멘 난민이었다면? 


감이 바로 올 것이다. 

안 그래도 외국인 살인범죄는 외국인 혐오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인데, 살해과정의 잔혹함까지 더해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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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사가 글을 올린 게 나쁜 선택이기만 한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글을 읽어보면 국민들의 알 권리인 부분도 분명 있고,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 부분도 분명 있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복잡하게 얽힌 현대사회에서 위험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했다는 거다.


만약 이 위험한 감정이 악화되어 사회문제를 일으켰다면, 그는 자신의 위험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한다.

그 정도 지위에 오른 사람이면 자신의 언행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가짜 뉴스와 무분별한 분노, 포퓰리스트들로 골치를 앓는 국제사회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1. 개인적으로는 이 피해자보다 더 끔찍하게 죽은 사람에 대한 묘사를 많이 봤다. 전쟁이나 산업재해, 증오범죄 관련 기록을 보면 정말 인간이 얼마나 끔찍하게 죽을 수 있는지를 절로 체감한다. 묘사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이기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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