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미국이 21세기에도 현재와 똑같은 형태로 존속할지는 분명치 않다. 미국은 다민족 사회이기 때문에 독일과 일본처럼 보다 동질적인 사회에 비해 깨지기가 쉽다. 1992년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게재된 제임스 커스의 글에 따르면, 민족국가 사회는 대규모 징병제도에 의한 군대와 표준화된 공립학교 제도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해 '다문화적 국가체제'는 전적으로 지원병에 의존하고 첨단기술을 갖춘 군대를(나는 경쟁관계에 있는 가치관을 가르치는 사립학교들도 포함시키고 있다) 특징으로 한다. 그런 다문화적 국가체제는 국제언론매체와 오락산업이 '국내 정치세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문화 속에서 작동한다. 바꿔 말하자면 민족국가란 모든 구성원이 비슷한 노선에 따라 교육받고, 국민이 지도자를 본받으려 하며, 모든 구성원(최소한 모든 남성)이 혹독한 군복무를 체험하는 공간, 그럼으로써 애국심 고취가 쉽게 되도록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 로버트 카플란, 『무정부시대가 오는가』, 장병걸 역, 코키토, 2001, p.72-73.


 구절 자체는 민족국가와 다문화국가를 대조하는 부분이지만, 민족국가를 설명한 구절을 보니 너무 한국 이야기라 깜짝 놀랐다. 아마 한국처럼 위 구절들을 적확히 맞추는 나라를 찾기 힘들지 않을까.


1) 민족국가 ->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동질적인 인구구성을 가진 나라다.

2) 엄격한 징병제 -> 기형적인 수준이라 문제가 될 정도.

3) 지도자를 본받고자 하는 마음 -> 가부장적인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박정희적인 마인드는 적어도 기성세대엔 강하다. 

4) 표준화된 공립학교 -> 굳이 설명이 필요한가?

 

예전부터 어렴풋이 생각하던 내용인데, 

한국은 피식민 국가 중 민족국가로서 제일 성공한 케이스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문제라면 저출산 고령화와 이민, 징병제와 과도한 입시교육에 대한 반발 등으로 이런 체제가 지속되기 힘들어보인다는 것. 

Posted by 유월비상
,

 국내의 평화가 오래 지속되면 비극적 역사에 대한 기억이 없는, 따라서 지혜가 부족한 지도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 지도자들이 역사적 경험 부족을 진지한 독서로 메울 것 같지도 않다. 오락과 편리성을 숭배하는 장기간의 평화는 갈수록 천박한 지도자들을 배출할 것이다. 대중사회인[각주:1]은 지배하는 동시에 지배를 받을 것이다. 이런 어린애 같은 지도자들은 지혜보다 전문성을 중시하는 풍토 때문에 지혜로운 보좌관을 곁에 두기도 어려울 것이다. 장차 평화시의 지도자들을 보좌하는 사람들은 '과학의 사제단'을 위시한 사회과학 분야 전문가들일 것이다. 그들은 난해한 특수분야 논문이나 전문용어에는 익숙하지만 위대한 철학들에는 문외한들이다. 미국의 국내적 평화가 60년쯤 계속된 후 젊은 백악관 보좌관들의 사고방식이 어떨지를 생각해보라. 그러면 평화가 60년간은 지속된다 해도 61년째에는 깨질 수밖에 없을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천박한 지도자와 보좌관들은 지혜와 경험의 부족으로 결국 끔찍한 계산 착오를 범해 전면전을 초래할 수 있다. 20세기 초의 역사적 경험은 이런 비극적 역사의 자기수정 사이클이 여전히 작동중임을 보여준다. 나폴레옹 전쟁 후 수십 년간 지속된 유럽의 평화는 과거에 대한 비극적 감각이 결여된 통치자들을 낳았고, 그들은 결국 휘청거리며 제1차 세계대전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 로버트 카플란, 『무정부시대가 오는가』, 장병걸 역, 코기토, 2000/2001[각주:2], p.194-195. 





첫째문단은 완전히 현실화됐고, 둘째문단이 어떻게 되느냐가 관건인데... 제발 둘째문단처럼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19년 전 나온 책인데도, 현 시대를 놀라울 정도로 통찰력 있게 서술하는 책이라 더 불안해진다. 


책 읽다 이렇게까지 소름끼친 건 오랫만이다.

  1. 개성을 잃고 매스미디어의 영향을 받는 사람. [본문으로]
  2. 현지 출판 기준. 한국어판 출판은 2001년.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

바닥 밑엔 지하실이 있다는 걸 깨닫고, 

어지간한 비참함, 부조리함, 잔혹함엔 익숙해져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흔히 개도국의 사회문제 하면 전쟁, 빈곤, 독재, 부패, 인권 탄압, 후진적인 가치관 등을 떠올린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문제가 개도국 국민들의 일상생활 곳곳에 포괄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건 모르는 것 같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한국인들은 위 발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일단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근데 단순한 분노를 넘어섰다.


이 짤은 인터넷의 '사탄조차 거를 발상' '사탄 1패' '사탄: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같은 사탄 드립의 기원이 되었다. 

도저히 사람xx가 할 발상이 아니라, 악마의 대명사 사탄도 거르지 않겠느냐는 소리가 나올 급의 미친 발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적어도 한국인들은 저런 말도 안 되는 발상엔 격렬하게 반발한다.




그런데 저런 사탄도 거를 일이 일상생활에 버젓이 벌어지는 나라가 있다면 어떨까?



위 짤처럼, 공무원의 이름[각주:1]으로 '없던 규정도 만들어서' 약자들을 갈취하는 부패문화는 인도, 베네수엘라, 카메룬 같은 개도국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공무원의 횡포에 저항하면 어떻게 되냐고?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 다음 그냥 경찰서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 경찰서에선 무자비한 고문과 열악한 구치소가 기다리고 있다. 누명을 벗을 수 있다고? 재판 한 번 걸리는데 몇 년이 소요되고, 사법부가 노골적으로 경찰 비호 안 한다는 보장이 없는 나라에선 쉽지 않다. 



 

개도국 국민들에겐 미안한 소리일 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은 현실이 픽션보다 더하다는 슬픈 예시였다. 


개도국을 곤궁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끔찍한 현실부터 인정해야 할 것이다. 

  1. 원 글에선 공무원을 '사칭'하므로 실제 공무원이 저러는 개도국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거 말고는 완전 동일하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

요즘 들어 상대더러 남자로 산다는 것, 수도권에 산다는 것, 비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의 특권을 인정하라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미국 PC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니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국제 좌파의 새로운 트렌드인가 싶다.


개인적으로 특권이 존재한다고 본다. 여자로서 치안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 비수도권의 열악한 인프라, 특별한 일 없으면 외출도 못하는 장애인의 리스크는 정말 크고, 직접 여자/비수도권 거주자/장애인이 되지 않으면 인지조차 힘든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꼴갑떤다는 생각밖엔 안 드는 게, 그들에게 21세기에 살며, 한국 국적을 가졌다는 특권부터 인정하라 하면 인정은 커녕 화부터 낼 것이기 때문이다.


왜 감사함을 느끼라는 걸 강요하는거냐, 구조적 억압이냐 하며 난리를 피우는데, 

그게 바로 니들 행동이 남들에게 비춰지는 모습인 건 꿈에서도 모르겠지?



+ 참고로 한국에서 남자/수도권 거주자/비장애인으로 사는 특권보다 21세기에 살며, 한국 국적을 가졌다는 특권이 훨씬 크다. 전자의 특권이 없으면 삶의 질이 나빠지거나 기껏해야(?) 인간다운 삶이 어려운 정도라면, 후자의 특권이 없으면 문자 그대로 생존만 하거나 그 생존조차 위협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Posted by 유월비상
,

한국은 확실한 저성장 고소득국가다. 


욜로와 소확행 신드롬에서 보이듯 자기 행복을 위해 여행과 물품에 돈을 쓸 수 있고, 여유시간을 보낼 수 있고, 어찌보면 사소한 것들에 만족한다는 건 고소득국가 국민들의 삶의 단면이다. 이걸 자연스레 여기는 청년들이 많겠지만, 사회에 여가 및 소비문화가 활성화되야 이런 삶의 양식이 가능한데, 생활수준이 일정 이상 높아져야만 가능하다.[각주:1]


반면 욜로와 소확행 신드롬은 계층이동이 어려워지고 '미래의 내가 지금보다 잘 살 것이다'는 희망이 없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면도 있다. 그게 가능하다면 굳이 욜로와 소확행을 찾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더 나은 가족과 나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말지. 이건 저성장국가 국민들의 삶의 단면이다. 


아 신드롬을 청년들이 행복을 알았다며 대단한 것인 양 격찬하거나, 아니면 청년들의 암울한 현실을 암시한다며 개탄하는 것 모두 현실을 반쪽만 보는 사람들이다. 

욜로와 소확행 신드롬은 고소득이라는 한국 사회의 명(明), 저성장이라는 한국 사회의 암(暗)이 동시에 공존하는 현상이다. 

  1. 당장 한국에 해외여행이 유행한 게 언제부터인지 생각해 보자. 한국인이 어느정도 먹고살수 있는 1990년대 초반부터 한 번 유행했고, 확실한 선진국이 된 2010년대 초중반부터 다시 유행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

흔히 예체능이 폐쇄적이라는 수준으로만 알고 있는데, 그 폐쇄적인 이유를 포함해서 부조리 문제를 자세히 써보자면.



1. 예술처럼 정답이 없거나 체육처럼 신체를 이용하는 예체능 특성상, 누구나 똑같이 가르칠 수 있는 보편적인 커리큘럼을 만들기 어렵다. 코치만의 독특한 철학, 노하우와 기술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한 도제식 교육으로 갈 수밖에 없다. 


=> 클래식 애호가로서 말하자면, OOO 귀국 독주회 같은 데 가서 연주자 프로필 보면 'OO으로부터 사사받았다'는 말이 반드시 나온다. 이런 프로필이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 이전에, 선생 한 명 한 명이 예술가에게 굉장히 중요한 존재임을 암시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프로가 되기 위해 스승에 의존하는 구조에선 스승이 제자를 통제하고 갑질을 부려대는 현상이 발생하기 쉽다. 물론 세상엔 좋은 스승도 많지만, 스승이 대놓고 나쁜 짓을 시도했을 때 막기가 참 어려운 구조다. 특히 법적이나 사회적인 제재 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면 더 그렇다. 



2. 집단 활동이 필수적인 예체능 분과가 많다보니, 집단을 규율할 수단이 필요하다.


=> 문제는 이런 통제 시도가 손쉽게 갑질, 똥군기, 가혹행위로 전락하기 십상이라는 거다. 한국의 군대문화나 권위주의적인 위계질서 특성상 그런 잠재력이 충분하다. 

초등학교 시절에 수영 강습을 받은 적 있었는데, 하루는 한 강사가 수영장 반대편에서 무슨 일인지 수강생들을 야단치고, 수강생 한 명 한 명씩 엉덩이에 수영용 킥보드를 날려서 경악했던 적이 있었다. 저들은 왜 이런 데서까지 단체기합을 받아야 했을까? 다른 사람들 다 노는 수영장이라 저들이 수영 선수들도 아닐 것이다. 평범한 수강생들에게도 저랬으니 수영 선수들에겐 오죽할까.



3. 진로를 상대적으로 어릴 때 정하고, 오로지 예체능에만 전념하다보니, 예체능계를 떠나면 먹고살 길이 없다.


=> 그러다보니 스승이 성폭력을 저질러도 굶어죽지 않으려면 참을 수밖에 없다. 오랜 연습이 필요한 예체능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는데, 엘리트교육은 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4. 종사자가 적은 예체능 분과가 많고, 이 경우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 '카르텔'이 형성된다. 이는 1.에 의해 더 심해진다.


=> 부조리에 항의하거나 내부고발을 하여 구성원 누군가에게 '찍히게' 되면, 바로 그 집단에서 왕따가 되고 만다.  




심석희가 조재범을 고발했다는 뉴스 보고 생각나서 써 봤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옴부즈만이나 신문고 제도를 운영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체능계의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도제식 제도를 없애거나 집단생활을 제한한다면 자칫 예체능 활동의 기반을 파괴할 수도 있다. 집단 구성원이 적다고 규제할 수도 없고, 엘리트체육 폐지하는 것도 부작용이 있고....  



+ 대학원생 인권 문제와도 겹치는 사항이 많은 듯. 

Posted by 유월비상
,
모든 정치행동은 결국 악일 수밖에 없다는 비극적 현실을 인정할 때만 더하고 덜한 악을 구분하고 그중 덜한 악을 택함으로써 이 죄 많은 세상에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며 살 수 있다.

정치와 윤리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여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과학도, 윤리도, 정치도 아니다. 권력을 택할 것인가 선행을 택할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잘 행동하라는 것은 결국 정치적 기술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라는 것이며, 그것이 곧 정치적 지혜이다. 모든 정치적 행동은 악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은 도덕적 용기이다. 현실 속에서 불가피한 행동을 취하되 그 중 해악이 가장 덜한 행동을 택하는 것은 도덕적 판단이다. 정치적 지혜와 도덕적 용기, 그리고 도덕적 판단을 조합함으로써 인간은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운명과 도덕적 운명 사이에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와 같은 조화가 불편하고 불안하며 심지어 모순적인 일시적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사람들은 결국 허울 좋은 조화에 만족하여 인간의 삶에 따르는 비극적 모순을 외면하고 왜곡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Morgenthau, Hans Joachim. Scientific man vs. power politics. 1st ed.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6. (김태현 역, 『과학적 인간과 권력정치』. 파주: 나남, 2010, pp.259-260).

출처: http://sonnet.egloos.com/4632737

예전에 봤을 땐 현실세계의 잔혹함에 대한 냉소적 표현으로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일점일획의 가감도 없는 정확한 묘사다. 

저런 말이 공감될 때가 오다니 내가 진짜 어른이 된 걸까... 

Posted by 유월비상
,

부모를 포함해 40대 이상의 어른들과 이야기를 종종 나누는데,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어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식이 있다. 

바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인식이다. 

나는 어른들에게서 "한국은 옛날엔 못살았고 한국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은 듣보잡 국가였는데, 이제 한국은 많이 잘살게 된 데다 많이 알려진 대단한 나라가 됐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봤다. 

사실 어른들의 생애를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이들이 어렸을 때 한국은 지금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못 살았고, 한국산 물품과 문화는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순수 내수용(?)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도 별로 없었다. 가부장적 가치관, 가정폭력, 똥군기 등 문화적인 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기성세대가 된 현재 한국은 선진국으로 인식되고, 한국산 전자제품과 K-POP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한국인이 유엔사무총장과 인터폴 총장 등 세계 방방곳곳에 진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여전히 부족하다곤 해도 문화적인 문제도 많이 개선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들에게 한국의 현재 위상은 전혀 당연한 게 아니다. 웃어른들과 자기 세대가 다들 노력해서 겨우 일궈낸 성과이다. 

반면 청년들은 한국의 현재 위상을 특별히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한국이 못 살고 인지도 낮던 시절에 살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컸을 때 한국은 이미 일본과 생활수준 차이가 별로 없고, 전세계에 영향력을 펼치며 문화적 문제도 어느정도 개선된 나라가 되었다. 그들에게 한국이 잘살고 전세계에 영향력을 펼친다는 건 상수이다. 

기성세대와 청년 간 세대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아마 이 갈등 대부분은 가치관이나 청년들의 경제적 문제에서 왔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재 위상에 대한 평가 차이는 이 갈등을 격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한국 청년들에게 과거 어려운 시절을 기억하고, 그때보다 많이 나아졌음을 명심하라고 하는 건 꼰대짓임과 동시에, 자기들에게 경험도 없는 과거를 강요한다는 과거팔이로만 생각될 것이다. 안 그래도 현재 청년들은 취업난 및 불안정한 미래전망으로 한국 사회에 불만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자세는 있는 갈등만 크게 할 뿐이다. 

한국은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어왔기에 세대 간 사회인식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뻔한 말이지만 서로가 살아온 삶이 다르다는 걸 이해하는 데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Posted by 유월비상
,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책이나 기사, 칼럼들을 종합하자면. 


국제적 요인

1. 중국, 인도, 일본 등 비서방 패권국들이 부상하면서 기존 패권구도가 흔들림.

2. 미국이나 EU 등의 서방세력이 내 코가 석자라며 세계 패권으로서 책임을 기피하려 듦.

3. 세계화의 확산으로 불평등, 이민문제가 생겨났다. 

4. 세계 금융위기와 그 휴유증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5. 국제기관, 다국적 기업, 사법부 등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 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민주권이 위협받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됨.  

6. 옛날의 폭압적인 독재정권들이 실패로 끝나면서, 독재자들은 국민의 인기가 바탕이 되는 포퓰리즘 독재를 시도하고 있다. 


국내적 요인

1. 기성 정치세력의 역량이 점점 떨어지고 무능해지면서, 국민들이 기성 정치를 실망하고 냉소함.


기술적 요인

1.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기존에는 비주류였던 정치세력이나 가치관도 매체를 통해 쉽게 세를 불릴 수 있게 되었다.. 

2. 인터넷과 SNS는 개개인이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타인과 교류한다는 특성이 있어, 확증편향과 집단 간 양극화를 부채질한다. 이는 극단적인 정치성향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 


가치관적 요인

1. 이슬람 사회의 쇠퇴, 열악함에 대한 해법이랍시고 이슬람 원리주의가 유행하고 있음. 더불어 반서구 이슬람 테러리즘도 인기를 끔.

2. 탈권위적인 가치관 확산으로 인해 기성 권력에 대한 권위가 실추됨. 

3. 사회담론을 주도했던 기성 좌파 학술계가 힘을 잃기 시작함.


크게 따지자면 이 정도가 될 듯? 

단순히 현재의 세계정치 혼란을 경기불황이나 세계화, 이민 문제 정도로만 보는 사람들이 많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더 넓은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Posted by 유월비상
,
기성 학술계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옛날만 못함을 느낀다. 특히 좌파성향 강하며 사회담론과 밀접한 인문학-사회학 쪽은 아예 존재감 없어져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기성 사회집단에 대한 불신과 기술 발달로 인한 매체 다양화가 합쳐져 나타난 결과일까.

남탓만 하지 말고, 기성 학술계는 어떻게 영향력을 부활시킬지 고민할 때이다.


Posted by 유월비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