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국가별 비교한 국회의원의 청년비율, 국회위원 평균연령 들고와서 한국 정치인의 고령화가 심각하며, 청년 정치인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는 시스템의 부재를 그 원인으로 뽑는다.
다 맞는 분석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에서 청년 정치인이 부족한 이유의 전부일까?
내가 보기에 한국은 청년 정치인들이 많은 선진국과는 크게 다른 면이 셋 있다.
1. 타 선진국에 비해 늦은 사회진출연령
학력 인플레이션+엄격한 징병제+고시제도와 이중노동시장으로 인한 취업기간의 장기화 1
이 세 콤보가 정말 크다. 세 요소 모두 한국이 선진국 중에서는 제일 심한 그룹에 들어간다.
실제로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산모평균 연령이 제일 높은 나라이며, 한국의 극심한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개인적으로도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사회진출을 늦게 하는 나라'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는데, 검증해볼 사람 어디 없나.
2.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대거 양산된 정치인들의 고착화
이건 나 말고도 설명한 사람이 많으니 패스. 다만 보충하자면, 한국은 민주화 시점(1987년)이 타 선진국들에 비해 늦었고, 이는 민주화 세대 정치인들의 후광이 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남아있을 개연성을 높인다.
3. 근본적인 정치 시스템의 차이
한국은 미국, 키프로스와 더불어 선진국 중에선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의외로 이걸 모르는 한국인들이 많다. 원래 선진국에서는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일반적이다. 대통령제를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특성이 한국과 타 선진국의 정치 양상을 다르게 만듦은 분명하다.
국가 지도자를 의회 내에서 선출하지 않고 국민이 직접 뽑으며, 내각도 대통령의 의중에 맞게 뽑는 대통령제 국가들에서는 모든 걸 국민이 뽑은 의회에서 다 하는 의원내각제만큼의 의회와 국회의원의 지위를 기대할 수 없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중간쯤 되는 제도로 평가받는 이원집정부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대통령제 국가에서 의회와 국회의원의 권력과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2 또, 의원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 국가들은 국회의원 자리의 중요성이 높기에, 정당이 국회의원에 기반한 정치인 육성 시스템을 발달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크다. 문제는 청년 정치인 통계는 전부 국회의원이 기준이라는 거다. 국가별 국회의원의 권력과 위상은 국가별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단순 1:1 비율비교에는 주의해야 한다.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국회의원 청년 비율이 낮더라도 한국같은 대통령제 국가는 상대적으로 문제가 덜 발생할 것이다. 3
거기에 대통령제 특성상 정치인들의 카리스마가 중요한데, 이 경우 정당 내부에서 검증 끝났지만 인지도 낮은 인물을 내보내기 쉽지 않다. 한국처럼 국회에 대한 불신이 심한 나라는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도 국회의원 평균연령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며(다만 청년 정치인은 한국보단 확실히 많다), 미국 대선 유력후보였던 사람들 중 트럼프, 샌더스, 워런, 바이든, 블룸버그 모두 70세 이상이다. 물론 부티지지 같은 30대 대선후보도 있고 그런 면에선 한국보다 낫다. 하지만 대선 유력후보 전반의 연령대를 따지면 한국보다도 더 심하다. 정치인 고령화 소리 많이 나오는 한국도, 유력 대선후보들 모두 대선 시점 기준 (만으로) 50-60대임을 생각해 보자. 실제로 미국 청년들도 정치인 고령화를 유럽과 비교하며 한탄 중이다... 4
위 요인들을 감안하면 한국에 청년 정치인들 비율이 낮은 게 자연스럽다고 본다. 나도 청년으로서 이 현실이 불편하긴 하지만, 개연성이 높아지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인위적인 조치로 청년 정치인 비율을 높이려 든다면 부작용이 클 것이다. 굳이 청년 정치인들이 필요하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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