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11개월의 시간이 이렇게 끝났구나.

복무가 끝나면 막 신날 줄 알았는데 막상 맞으니까 허무하네.


빨리 사회인 될 준비를 해야겠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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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샤오핑은 경제 개혁과 사회 개방에 신속히 착수했다. 그는 본인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고 정의 내린 것을 추구하기 위해 중국 민족에게 잠재되어 있던 에너지를 일깨웠다. 한 세대가 다 지나가기도 전에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국가가 되었다. 반드시 확신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은 이 극적인 변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국제기구에 가입하고 기존의 (베스트팔렌 체제라고 불리는)[각주:1] 세계 질서 규칙들을 받아들였다.

 중국이 베스트팔렌 체제에 참여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는 모순이 내포되어 있었다. 중국을 국제적인 국가 체계에 편입시킨 역사에서 비롯된 모순이었다. 중국은 처음에 자국의 역사적 이미지[각주:2]와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기존의 국제 질서와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실제로 그 국제 질서는 베스트팔렌 체제의 공언된 원칙이나 다름없었다. 국제 체계의 게임 규칙과 책임을 준수해야 한다는 권고에 고위 지도자들을 포함한 많은 중국인들의 본능적인 반응은 중국이 그 체계의 규칙을 만드는 데 참여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처음에는 자신들과 전혀 관계가 없던 규칙들을 지키라고 요구받았다. 그리고 신중하게 그렇게 하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상의 국제규칙 제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지배적인 일부 규칙을 수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제 질서가 발전하리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조만간 이러한 기대에 근거하여 행동할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베이징은 점점 더 적극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해 왔다.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 국가로 발전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모든 국제회의는 중국의 의견과 지원을 얻으려 했다. 중국은 19세기와 20세기에 국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잡았다. 올림픽을 주최했고 주석들이 유엔에서 연설을 했다. 그리고 전 세계 대표적인 국가들의 정부 수반들과 상호 방문도 성사되었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중국은 가장 영향력이 컸던 그 시절만큼의 위상을 다시 찾았다. 이제 문제는 중국이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현재의 세계 질서를 추구하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다.

-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이현주 역, 최형익 감수, 민음사, 2016, p.255-257.

 세계적인 대국으로 부활한 중국은 수천 년의 전통이었던 '조공체제'를 21세기에 맞게 부활시키고 싶어하지만, 국가 간 대등함과 주권 중시를 원칙으로 하는 '베스트팔렌 체제'에 익숙한 주변국들은 이를 거부한다. 중국이 외교를 오만하고 무례하게 한다는 주변국들의 불평불만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외교관(觀)의 충돌로도 해석될 수 있다.  

 원저로는 2014년에 출간된 책이라 '조만간 이러한 기대에 근거하여 행동할 것이다'고만 서술되었는데, 다들 알다시피 중국은 저자의 예언 그대로 행동했다. 그 결과로 남은 건 주변국들의 반중 감정 뿐이라는 게 문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중국이 낙관론자의 말대로 계속 성장해 미국을 추월하더라도 '21세기판 조공체제'가 부활할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이 국력을 지금보다 더 빨리 증진시켰고[각주:3], 자유민주주의나 사회주의[각주:4]와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 하다못해 중화 소프트파워라도 제대로 내세울 수 있었다면 역사적 기억이 남아있는 주변국들에 조공체제를 부분적으로나마 도입시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은 둘 다 실패했고, 그 결과가 이렇다. 


+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은 자국 국가주권의 측면에선 베스트팔렌 체제의 열혈한 지지자이다. 중국의 일당독재와 인권 문제, 티베트나 대만 홍콩 문제를 공식선상에서 조금이라도 비판해 봐라. 중국으로부터 바로 격한 어조로 '내정간섭 하지 말라'는 반발이 날아온다. 저자는 책에서 중국의 이런 모순적인 면모도 지적한다.


  1. 원문엔 없었지만 본인이 문맥 이해를 위해 임의로 삽입했다. 쉽게 말해 각 국가들의 주권을 중시하고, 국가 간 대등함을 원칙으로 하는 체제다. [본문으로]
  2. 중국을 세계 중심에 위치한 대국으로 전제하고 '하위에 있는' 타국과 외교를 하는 '조공 체제'를 말한다. 보다시피 베스트팔렌 체제와는 상극이다. [본문으로]
  3. 적어도 '중일전쟁 직후'부터 고속성장을 시작한다는 급은 되야 할 것 같다. 물론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같은 참사는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된다. [본문으로]
  4. 지금으로선 이딴 게 인류 보편 가치라는 게 믿기지 않겠지만, 냉전 초중기만 해도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사상의 두 축이었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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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진지하고 학술적인 글만 썼으니 일상도 좀 이야기해보자.


얼마 전 칵테일바에 인생 처음으로 들르게 되었다. 인생 처음으로 칵테일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바 분위기가 뭔가 독특해서 흥미로웠다. 소주나 막걸리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달콤한 맛도 그렇고, 은은하게 어두운 조명도 그렇고, 오는 사람들도 흥미로웠는데, 내가 주목한 건 바텐더들이었다. 

이 바엔 바텐더가 여럿 있었는데, 남자 바텐더는 여럿이고 여자 바텐더는 단 한 명이었다. 그런데 남자 바텐더들은 손님들이랑 가볍게라도 이야기를 하는데 여자 바텐더는 진짜 무뚝뚝하게 일만 했다. 심지어 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이. 

왜 그럴까 생각했었는데, 머릿속으로 내린 결론은 씁쓸했다. 

"조금만 적극적으로 말 걸고 미소 보여주면 작업걸고 말 막하는 진상들 때문에 일부러 저러는 것" 

안 그래도 개별 메뉴판 겉표지에 '바텐더도 사람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하주세요'라는 식의 간곡한 부탁까지 적혀 있었던지라 그렇게 해석이 되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이런 쪽에 더 취약하겠지. 남녀공용 진상짓에 더해서 성희롱이나 작업까지 당할 테니. 

그래서 기분을 살짝 잡쳤다. 그리고 여자 바텐더에게 말 걸 타이밍만 기다렸다가 대화를 나눴는데... 

여자여기서 일하는 게 바텐더 인생 첫 날이었다.


진상짓에 대한 적응 이전에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하니 표정이 저럴 수밖에..  

다행이면서도 뭔가 마음이 허탈해졌다. 

====================================================================

물론 저 추측이 맞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그 가능성은 중요하지 않는 게, '매사에 진지하다'는 지적을 듣는 인간인지라, 그런 지적이 맞는 말이라는 확증만 더 생겨 버렸다. 여성 바텐더의 무뚝뚝한 표정에서 진상 손님 문제를 바로 생각해냈으니 더더욱. 머리속이 착잡하기까지 했었던지라 빼도 박도 못한다.  

매사에 너무 진지한 걸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 그러고보니 이 글도 너무 진지빨고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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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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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 맥락 이해를 위해 밑의 표현 일부를 수정했다)

독자는 4단계, 즉 세계를 생활수준으로 4등분할 때 제일 높은 단계의 삶을 이미 알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4단계 삶을 살 것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4단계 삶을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고소득층의 삶을 사는 사람은 다른 세 단계 삶 사이의 큰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4단계 사람이 다른 60억 인구의 현실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 

-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이창신 역, 김영사, 2019, p.58

당신은 특별한 나라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사실로 미뤄 당신은 아마 나와 마찬가지로 연소득이 1만6000달러 이상일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세계 인구의 상위 10%에 해당한다는 뜻이고, 이는 특별한 일이다.

- 윌리엄 맥어스킬, 『냉정한 이타주의자』, 전미영 옮김, 부키, 2017, p.42


옛날부터 독서를 즐겨온 입장에서, 출판사의 베스트셀러 홍보하는 데 흔히 쓰이는 문구가 "OO개국에서 ㅁㅁ개 언어로 번역!"이었던 걸 기억한다. ㅁㅁ의 숫자는 보통 10에서 시작했고, 많아도 보통 50을 넘기지 않았다. 참고로 세계 언어는 6-8천개 정도로 추정된다. 전세계적 베스트셀러조차 세계 언어의 1%를 포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구나. 그마저도 책을 살 구매력과 도서 인프라가 되는 선진국 언어에 집중될 거고. 

애독서가로서 씁쓸한 현실이다. 저소득층 도서를 지원하는 기부가 있으면 해봐야겠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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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6438732&start=slayer

중국 학계의 석학으로서, 중국은 서구와 다른 독특한 국가 모델을 가졌음을 자신있게 설파하는 책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홍콩 사태는 잦아들 일이 없는 상황에서, 중국을 제대로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어 읽어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중국 정부, 학자, 일반인들이 정치와 사회, 역사에 대해 내놓는 의견을 들으면, 저들과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산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독재정권에 우호적이고 중화사상에 강한 이들을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인상이 더 확실해졌다. 중국인들과 중국 정부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을 수용하지 않으며, 동북아시아 및 서구 선진국과 그 점에서 확실히 다르다. 단순히 한 학자의 견해로 치부할 수도 없다. 이 책은 중국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으며, 여러 베스트셀러를 저술했고 여러 상을 수상받았고 여러 요직에 있는 중국 '석학'에 의해 쓰여졌다. 중국의 정치 시스템 특성상, 저자의 견해가 중국 공산당과 크게 충돌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편의상 이 책의 내용을 중국 정부의 공식 견해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대체 어떤 나라인가? 저자에 따르자면, 현대 중국은 수천년에 걸쳐 형성된 중국 특유의 역사, 민족, 인구, 문화에 근거한 민족주의를 통해 형성된 문명형국가다. 중국은 고대 4대 문명 중 유일하게 후대로 이어진 문명이며[각주:1], 진한 시대에 이르러 세계 최초의 거대 제국을 이뤄내는 성과를 이뤄냈고, 전통적으로 인구/영토/민족/문화의 규모가 엄청났으며, 서구에 앞서면 앞섰지 절대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타 국가와는 구분되는 고유한 문명성을 지닌다. 이렇게 독특한 역사적 특징에 근거한 국가를 문명국가라고 하며, 중국의 이러한 문명국가로서의 특성은 근대를 거치면서 전체 인민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묶는 민족국가 개념과 결합되어 문명형국가로 발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인류 보편이라 여겨지는 가치관을 추구하기보다는, 타 문명과 구분되는 중국만의 독특함과 저력에 근거하며, 이에 근거하여 정치/경제/사회/역사/문화/가치관 등 시스템 전반을 만들었다. 수천 년 간 서구 전체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저력을 가졌던 중국인으로서의 포부가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중국의 기본적 특징을 정의한 후, 중국의 세부적인 문명성을 전통적인 중국철학 및 국가 시스템에 근거하여 설명하며, 이를 현대 중국의 시스템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관점에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적 국가시스템과 가치관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논하며, 중국식 시스템과 가치관의 위대함을 설파한다. 대충 기억나는 몇몇 핵심만을 묘사해보자면...

- 중국은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무리하게 민주화했다가 국가 자체가 붕괴하여 하나의 중국이 해체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 중국은 과거의 과거제도의 예를 따라 현능주의(meritocracy - 쉽게 말해 능력주의) 방식으로 엘리트를 선발하며, 이는 서구의 정치제도보다 우수하다. 

- 중국은 중용과 실용성, 점진주의에 근거하여 마오쩌둥 때처럼 과도한 혁명은 지양하고, 장기적이며 점차적인 틀에서 국가를 발전시키고 있다.  

- 서구식 민주주의는 정치제도의 '형식'에만 얽매여,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실제 정치의 내용에는 무관심하다. 실제로도 섣불리 민주화한 개발도상국들 상당수가 엉망진창인 내정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선진국 정치조차 여러 혼란을 겪고 있다.  민주 대 독재의 구도가 아니라 좋은 정치 대 나쁜 정치로 봐야 한다. 

- 위의 관점에서, 중국은 민생을 중시하며 민본주의를 주창하며 국민들의 의식주 문제 해결에 매우 출중한 좋은 정치를 하고 있다. 

- 그 외 셀 수 없이 많은, 중국 고전을 인용한 정치 철학과 제도들. 

읽어보면 알겠지만 중국의 문명성과 시스템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흐르며, 자기들을 서구중심주의적인 가치관으로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서구의 '오만함'에 대한 반발심리가 글 곳곳에서 느껴진다. 위에서도 말했듯 한 두 번 본 견해가 아니라, 중국인들의 이런 마인드는 숙명인가 싶을 정도다. 저런 마인드로 국가를 운영하니 서구와 주변국들과 충돌하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런 국수주의적 중국인들의 견해는 올바른가? 개인적으론 많이 회의적이다. 몇몇 주장들은 분명 예리한 지적이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런 수준으로 중국식 시스템을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와 1:1 대결을 하면 질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을 가졌고, 중국 주변국 거주자로서 중국과 좋든 나쁘든 많이 투닥거린 역사를 가진 시민으로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크게 네 가지 문제가 있다. 

1. 모호한 단어 사용 및 실증의 부족으로 인한 엄밀한 논의의 실종

좋은 단어들을 죄다 끌어왔지만 뜯어보면 무의미한 수사 수준인 게 많다. 한 예로, 이 책은 정치 제도를 볼 땐 서구처럼 민주 대 독재가 아니라 좋은 정치 대 나쁜 정치로 보자는데, 사실 서구건 중국이건 한국이건 인류 모두가 '좋은 정치'를 추구한다. 좋다는 것은 지향해야 할 것임을 언어적으로 함축하니까 당연하다. 그러니 좋은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건 '빨간 개미는 빨갛다'는 동어반복밖에는 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이상하지만 더 살펴보자. 좋은 정치는 민본주의에 입각하여 민생을 추구하고... 백성이 근본이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게 좋은 정치인가? 원래 인류 정치 대부분은 의식주 해결이 근본이며 목적인 게 아닌가? 그렇다면 중국의 정치는 그것들과 무엇이 다른가? 이 책엔 이런 식의 논리전개가 한둘이 아니다. 제대로 된 논증 없이, 하나마나한 수준의 논증이다. 물론 당연한 것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쓴 글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이 책은 도덕교과서 수준에 불과하다. .   

또, 서구와 중국의 정치제도를 비교하면서 중국의 우위를 주장하는 부분 상당수는 제대로 된 정량화 없이 사변적으로만 진행된다. 그래서 서구와 직접적으로 1:1 비교하면 승산이 날까 싶은 분야조차 '서구도 나름의 문제 있으니까 너네나 우리나 거기서 거기다!'는 억지스런 전개가 많이 보인다. 현능주의적인 정치제도가 서구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려면 일단 관료들의 효율성이나 부패를 수치화해서 미국과 중국을 1:1 비교하는 통계부터 가져오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하지만 저자는 제대로 된 통계 들지 않고 자기 시스템이 우월하다고만 한다. 물론 저자는 아직 중국이 개도국 탈출하고 미국 뛰어넘으려면 멀었다고 보는 입장이긴 하다. 하지만 비교해서 불리할 거면 그냥 '서구보다 우월하다'는 말은 하지 말던가. 우리는 '나름의 방법'으로 발전할 거다 수준이면 모를까, 되도 않는 부심 부리는 건 정말 추한 짓이다. 밑에서 언급할 요인들 때문에 더 추하기도 하고. 

2. 국가의 발전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국가 간 1:1 비교

1에서 파생된 문제다. 보통 국가의 경제발전 단계를 볼 때, (경제성장 초기에 기반이 잘 갖춰졌다는 전제 하에서지만) 저소득 시절에는 급성장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성장이 둔화된다. 이 단계를 넘지 못하면 그 유명한 '중진국 함정'에 빠지며, 이것도 되게 어렵지만 설사 이 단계를 무사히 넘기더라도 옛날만큼의 고성장은 불가능한 현실이 된다. 선진국 중 제일 경제성장률 높은 미국조차도 경제성장률 3%면 낮은 게 결코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서구 선진국과 중국 및 중국식 모델로 고속성장하는 개발도상국을 1:1 비교하면서 전자의 성장이 더디니 후자 모델이 전자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소리를 하고 있다. 이게 제대로 된 비교인가? 중국의 상대적 고속성장으로 중국의 상대적인 국력이 커졌다고 주장한다면 모를까, 서로 다른 상황에 있는 국가들 모델의 수준을 1:1로 비교하는 건 뭐하자는 건가 싶다. 이런 식이라면, 민주국가들이 평균적으로 독재국가들보다 잘 사니 민주화만 되면 무조건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저자가 그토록 비판하는 '서구중심주의적인' 결론도 낼 수 있다.   

3. 과도하게 국수주의적이고 오만한 역사관

중국의 위대한 문명형국가성을 너무 치켜세운 나머지, 비중국인으로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오만한 구절들이 많았다. 위에서 말한 '고대 문명 중 후대로 계승된 건 황하문명 뿐이라'는 사실관계조차 애매한 주장부터 시작해서, 중국의 위대한 철학적 신조를 가지지 못한 다른 민족 문화들은 폭력범죄가 성행하고 경제 발전이 더디다는 구절도 있었고,  찬란한 그리스 문명은 일개 소국이었으며 빨리 멸망했다는 이유로 평가 절하한 부분도 있었다! 6.25 때 미국이 먼저 위협했다며 북한을 도왔던 군사 개입을 옹호한 구절도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이 부분은 좋게 넘어가기 어렵다. 

서구의 계몽사상과 같은 근대성은 중국의 민본주의나 과거제도같은 개념에서 도출된 것이라며 중국에 공을 돌려야 된다던가, 그리스 문명이 이집트에서 온 거라면서 순수하게 서구의 것은 아니라는 부분에 이르어서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저자 말대로 중국 문명은 세계 최초로 통일왕조를 만들어 효과적으로 통치했다는 의의가 있고, 그 거대한 규모에서 나온 정치, 경제, 철학, 문화적 유산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 자체로 이미 위대하다. 중국 외 사학계에서 진지하게 취급받는지 의문인 중국판 환빠 주장까지 안 해도 충분하다.  

저자는 수도 없이 서구의 제국주의적 과거와 서구중심주의적인 편견을 반박하지만, 이런 수준으로 논다면 대체 저들과 다를 게 뭔가? 적어도 서구는 이런 면에서 어느정도 반성하고 극복하고 있다.    

4.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인 가치관

저자의 책을 읽으면 정치에는 경제성장과 국가 안정만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과연 인간들이 그런 물질주의적인 욕망 충족에 만족하는 존재였던가? 수많은 서구의 정치이론에 따르면, 생활수준이 올라가면 어느 순간부터 인간들은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 관용, 세계시민주의같은 탈물질주의적인 가치들을 읊기 시작한다. 지금 중국인들도 생활수준이 계속 높아지면 언젠가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 관용, 세계시민주의같은 '영혼이 깃든' 사회를 원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한국도 선진국치곤 물질주의가 꽤 심한 나라지만, 그래도 민주화 운동이 일어 민주화에 성공했고, 그 후엔 웰빙 열풍이 불었으며, 지금은 워라밸과 페미니즘이 유행할 수준의 탈물질주의적 기반은 갖춰진 나라다. 중국도 한국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국은 타 국가들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다. 내가 아는 국제적 가치관 조사에선 중국이 세계에서 제일 물질주의가 심한 나라로 뽑혔으니까. 하지만 이에는 댓가가 분명 따를 것이다. 적어도 진보적인 가치관들이 많이 들어온 서구 선진국들은 이 나라를 부정적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중국 정부는 일당독재와 인권 탄압으로 이미 서구 선진국에서 평판이 많이 나쁘다. 동북아 선진국인 한국과 대만에서도 별로 좋지 않고. 또 이렇게 되면 중국식 모델은 물질주의가 덜한 다른 개발도상국에선 안 통할 것이라는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물론 이 책이 옳게 주장하고, 더 나아가 서구사회가 잘못 판단한 주장들도 있다. 

1. 중국이 문명형국가라는 분석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중국은 그 자체로 서구 전체나 인도와 맞먹는 급의 대규모 문명이며, 세계 최초로 통일되고 중앙집권화된 제국을 건설했다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외에도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사상 등으로 전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투사한 위대한 존재다. 지금의 중국의 독특함은 그런 수천년의 역사의 반복이자 연장일지도 모른다. 한국과 대만과는 달리 국력이 너무 커서 국제적인 압박으로 정치체제를 무너트릴 수 없는 거대한 나라니. 압박을 시도했다가는 중국에 압박'당할'것이다. 중국은 그 규모를 통해 그 자체로 보편인 거대한 체제를 만들었을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자유민주주의가 인류 역사의 최종 단계라는 도발적인 주장은 중국 앞에선 틀린 소리였을지도...    

2. 저개발국에 민주주의는 해로울 수도 있으며, 경제발전 및 안정엔 중앙집권형 독재가 나을 수도 있다는 분석

실제로 비서구 개발도상국들 중 선진국까지 성장하거나 그 길을 그대로 밟는 국가 절대다수는 강력한 독재국가에 의해 경제발전을 한 나라들이다. 한국, 대만은 이를 위해(?) 한때 독재정치의 길을 밟았으며, 중국과 싱가포르, 베트남은 현재진행형으로 독재체제이다. 일본도 독재정치까진 아니었지만(적어도 세계 2차대전 후에는) 자민당이 장기간 집권하고 및 관료주도경제를 통해 강한 국가주도경제를 운영했다. 세계적으로 제일 성공한 경제발전사례였던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전부 중국식 중앙집권형 독재 시스템 하에 가능했다. 절반의 성공이지만 스탈린 시대의 소련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평가받는데, 다 알다시피 이 때 소련은 그냥 독재체제였다.

반면 인도나 필리핀, 러시아, 소위 '아랍의 봄' 국가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 상당수는 민주화에 (한때) 성공했지만 경제발전과 안정엔 별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도로 독재체제로 돌아가거나 무정부상태로 전락한 나라들도 많다. 이런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서구 선진국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대추구나 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집단들에게 악용되었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들은 민주주의이냐 아니냐에만 신경썼지, 실제로 민주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서구 안에서도 있는 반성이다. 이런 국가들이 중국식 중앙집권형 독재를 부러워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독재국가가 항상 경제발전과 안정을 잘 해내는 건 아니다. 북한이나 마오쩌둥 당시의 중국, 이디 아민 당시의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짐바브웨, 미얀마 등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위에서 소개한 반례들은 독재가 무조건 나쁜가?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들기엔 충분하다. 중국의 현재 시스템은 적어도 거기엔 성공했다. 그 이상으론 못 나가는 것 같지만. 



위에 길게 논박했듯 문제점이 많은 책이다. 개인적으론 6/10점 이상의 점수를 주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중국 정부의 공식 의견 비스무레한 걸 읽고 싶다면 추천한다. 서구사회의 시선이 아닌 중국 석학이 직접 쓴 책이니 '직접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데는 정말 좋다. 읽고 비평하는 건 다른 문제이니 말이다. 

덤으로 말하자면, 중국식 모델이 옳지 않으며 그런 게 용인될 세상이 두렵다면,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모델을 갈고 다듬어 매력적으로 만드는 전략을 쓰는 게 좋다. 요즘 개발도상국은 막론하고 서구 선진국에서조차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다. 실제로 저자와 후쿠야마 간 대담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옹호자 후쿠야마는 '아랍의 봄'이 성공적일 것이라 했으나 저자는 사회 불안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저자의 우려대로 되었다. 개인적으론 이 부분이 특히 아프게 다가온다. 진정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아낀다면 다들 자유민주주의의 매력에 안 빠져들 수 없게 괜찮은 자유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중국식 독재 모델을 물리칠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1. 이 부분은 중국 학자로서 자뻑이 과도한 편협한 견해로 보인다. 나일강 문명을 고대 이집트 문명과 완전히 단절시킬 수 있는가?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문명은 후대와 어느정도 단절이 있었던 게 맞긴 하지만.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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