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 해보자. 왜 선진국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중시하고, 타국과 경제적/문화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저개발국과 외교할 때 인권을 그렇게 신경쓸까? 

선진국들 절대다수가 자유, 평등, 민주주의, 인권을 중시하는 서구권 국가들이라서? 물론 그런 문화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왜 식민지기에 피식민국에 대해 그리 모질게 굴었는지를 설명하지 못 한다. 서구 선진국에 계몽주의의 확산은 식민지들 독립시키기 전에 이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자국이 과거 다른 나라에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역사적인 부채감에서 비롯된다. 현재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피식민지였던 한국과 대만 정도를 제외하면- 식민주의기에 식민지인들 혹은 '이질적인 국민들'을 대상으로 인종주의적 인식, 이로 인한 권리 박탈, 수탈, 학살 등 계몽주의의 이상을 더럽히는 만행들을 저지른 역사가 남아있다. 

미국은 미국 토착민, 흑인, 세계 2차대전 당시의 일본인[각주:1]에게, 프랑스는 알제리와 아이티 인도차이나 등에, 영국은 아일랜드와 인도 미얀마 등에, 벨기에는 콩고에, 일본은 한국과 대만, 중국에 셀 수 없이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계몽주의의 화신처럼 군 이들이, 타국에는 반-계몽주의적인 방식으로 잔혹하게 굴었던 것이다. 이 아이러니함은 결국 계몽주의를 배운 식민지 국민들이 계몽주의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식민지에 저항하게 만들었고, 식민국들은 처음엔 탄압과 회유로 대응했으나 결국엔 세계 2차대전 전후로 식민지들을 죄다 독립시키고 만다. 이러한 기조는 자국 내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주축이 된 민권 운동이 일어나 흑인들의 권리가 크게 향상되었다. 

이로 인해 식민국들은 자국의 만행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적어도 옛날처럼 공식적인 자리에서 식민주의나 인종주의를 정당화하지는 못하게 되었으며, 식민주의적 인식에 대한 비판을 다룬 탈식민주의는 인문학에서 큰 조류로 부상했다. 주지하다시피 제일 극적인 사례는 독일이다. 나치 시절 세계 최악의 인종주의적 학살국가로 전락했던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등 '타국 과거사 청산의' 모범국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물론 국가 차원의 사과는 홀로코스트에 국한되었으며, 독일 식민지였던 나미비아에서의 학살 등엔 사과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래도 독일이 과거사 청산으로 돋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러시아나 일본처럼, 타국에 대한 억압으로 가득 찬 과거사를 가졌는데도 성의있게 사과하거나 사과하려는 기미도 안 보이는 나라도 있는 게 현실이니. 

이렇게 선진국은 타국의 모범이 된 자유민주주의, 화해와 협력과 같은 진보적인 면모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역설적이게도, 위선 속에서 저지른 과거의 수치스러운 역사 덕분에 그와 아주 대조되는 성취를 얻은 것이다. 물론 최근엔 서구사회에서도 포퓰리즘과 같은 위험한 배타적인 움직임이 감지되었고, 정치적 올바름과 인권 개념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아직은 가치 자체가 훼손된 정도까진 아니다. 


그런데 개발도상국들은 그런 역사적 부채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타국에 영향력을 행사해 과오를 저지를 국력도 없었고, 행사했더라도 '계몽주의'라는 위선 속에서 저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국이 타국에 식민화되어 많은 것을 잃었다는 피해의식만 가득하다. 정치적 올바름, 인권과 같은 개념이 서구만큼 크지 못한 주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려면 자기들이 잘못했으며 잘못할 수 있다는 인식이 먼저 퍼져야 하는데, 그게 도통 이루어지질 않으니. 

이는 력이 커졌을 때 위험해지기 딱 좋은 발상이다. 자국이 타국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타국과 교류할 시 뻔뻔하게 나서거나, 약소국을 압박하거나 심지어는 전쟁범죄 등 여러 만행을 저지르는 외교를 할 위험성이 있다. 

현재 중국이 아주 좋은 예시이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서구 선진국과 달리 타국에 과오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계속 선전하는 중이다. 골치아프게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 반박하기도 어렵다. 티벳과 위구르 문제가 생각나긴 하지만 거긴 '일단은' 타국이 아니니까... 청나라까지의 타국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갖고 오기엔 전세계적인 일이었고, 서구처럼 계몽주의적인 위선 속에서 한 것도 아니니... 중화사상에 역사적 부채감의 부재까지 더해지니 주변국에 함부로 굴어도 된다는 오만한 인식이 생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 인식의 결과가 현재 중국의 뻔뻔한 외교이다. 

아마 전세계적인 경제성장이 계속되면, 중국과 비슷한 인식을 가진 개발도상국들이 국제정치의 장에 부상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뭐가 잘못인지도 모른 채 뻔뻔하게 외교를 할 위험성이 높다. 우리는 그런 국가들의 부상에 대비해야 한다. 

  1. 일본 제국에 동조할지 모른다며 수용소에 가두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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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은 단순히 개도국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행위 그 이상이다. 개도국에 예상되는 기후 변화의 피해를 줄이는데도 성장이 필요하다.

1. 경제 성장은 기후 변화에 대비할 자금과 인프라를 만들어낸다.  

2. 경제 성장은 보통 1차 산업의 비율을 낮추고 도시화를 촉하는데, 이러한 변화는 기후 변화에 노출되어 생기는 피해를 줄인다. 

내용 출처: 윌리엄 노드하우스, 『기후 카지노』, 황성원 역, 한길사, 2017


갑자기 생각나서 올려본다.

1은 예전부터 알았던 건데, 2는 좀 생경하게 다가왔다. 생각하면 당연한 거지만. 

'생태계 붕괴와 멸종의 시대인데도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고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UN에서 하소연했으나, 그녀 주장의 전제와는 달리 기후 변화의 시대에도 성장은 필요하다. 어쩌면 기후 변화의 시대라서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선진국이라면 몰라도 개발도상국들은 아직도 많은 성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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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우파들은 복지를 확대한다고 하면 곧바로 그리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꼴 날 것처럼 반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만 맞는 이야기다. 단순히 복지 확대한다고 그리스, 베네수엘라 꼴 나진 않는다. 북유럽 국가처럼 복지 시스템을 가지고도 잘 돌아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물론 북유럽 모델도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다른 나라는? 북유럽보다 확실히 낫다 할 나라가 몇이나 될까? 

북유럽 국가의 성공과 그리스-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의 실패라는 대조에서 볼 수 있듯, 복지국가 그 자체는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지 않는다. 복지 시스템을 국가 능력에 맞게 운용할 줄 아는 역량이 진짜 나라의 흥망을 좌우한다. 그 국가적 역량에는 크게 4가지가 있다. 

1. 생활수준 및 조세부담률에 걸맞는, 방만하지 않은 복지 시스템 운용하기 

2. 인구 구조, 경제 성장 등을 고려해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3. 비효율성 및 탈세/부패로 인한, 복지로 발생할 잠재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4. 특정 기득권만이 아닌 모두를 포용하는 복지 시스템 만들기.

슬프게도 그리스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복지 시스템은 1-4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그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다. 

 그리스는 여러 통계와 경험담을 종합할 때, 선진국 최악 수준으로 탈세 및 부패가 만연하였다. 또한 EU에 가입하여 자국 화폐(드라크마)에 비해 과도하게 고평가화된 유로화를 이용하여 복지제도를 운영하였다. 심지어 경제의 방만함을 감추기 위한 통계 조작도 서슴치 않았다. 또한 공무원이 전체 노동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이들은 소득대체율 100%[각주:1]에 달하는 연금을 받는 등 공공부문의 방만화가 심각했다. 태초부터 지속 불가능했던 시스템은 주지하다시피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붕괴되고 만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설명은 다음을 참고해 보자. 

라틴아메리카는 두 가지 영역에서 부진하다. 첫 번째는 평등이다.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에 있어 세계에서 첫손에 꼽힌다. 일부 국가에서는 21세기 들어 불평등 지수가 약간 나아지고 있지만, 불평등의 연혁은 놀랄 만큼 오래 되었다. 두 번째의 열악함은 법치주의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인기 없는 지도자들을 내칠 수 있는 선거제도와 민주적 책임성을 묻는 제도는 비교적 잘 갖추고 있으나, 정의 실현 정책은 대체로 변변치 못하다. 이는 빈약한 사회보장에서 높은 범죄율, 제 기능을 못하는 사법부, 약하거나 안전하지 못한 재산권,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비리 방치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점을 포괄한다.

이 두 가지 현상, 불평등과 약한 법치주의는 서로 관련이 있다. 법치주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매우 소수의 권익만을 지키는, 다시 말해서 대기업을 경영하거나 노조에 속한 사람들만 챙겨주는 경향이 있다. 페루, 볼리비아, 멕시코에서는 무려 60 내지 70퍼센트에 이르는 국민이 이른바 비공식적 부문에서 살아간다. 이들은 대개 무허가 건물에서 살고 미등록 상태로 일한다. 그들은 고용되더라도 노동조합의 일원이 되지 못하며, 따라서 공식적인 노동권 보호를 받지 못한다. 많은 브라질 빈민들은 '파벨라'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데, 이곳은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다. 파벨라에서는 사적인 심판이 이루어지고 조직 폭력단이 마음대로 사람들을 처벌한다. 법이 불공평하게 적용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부추겨지고 있는데, 파벨라 빈민가의 사람들은 대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파벨라에서는 집에 투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기 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범죄에 희생되어도 경찰에 도움을 청할 수 없다. 

이런 불평등의 원인은 찾기 어렵지 않다. 대체로 상속이다. 구 엘리트의 명문 귀족들은 대개 대지주이며, 대농장을 운영하고 그 부를 대대로 물려주는 일에 성공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여기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재정 정책이 이 불평등은 더욱 심화시킨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인 나라의 재정 제도는 대체로 부유한 국민에게서 가난한 국민에게로 소득을 재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누진세제(미국의 경우처럼)나, 소득 지원과 사회보장 지원을 해주는 방식(유럽의 경우처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반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재정 제도가 소득 재분배 역할은 거의 하지 않으며, 오히려 노조에 가입한 공공 부문 근무자나 대학생들 같은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소득 보전을 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공식 부문의 노동자들과 모든 유형의 엘리트들은 자신의 혜택과 보조금을 지킬 수 있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탈세를 하고 있다. 개인 누진세가 시퍼렇게 날이 선 미국과는 달리,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개인에게서는 세금을 많이 거두지 않는다. 부유한 라틴 아메리카인들은 자신의 실소득을 숨기거나 세금 징수의 손이 미치지 않는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데 능하다. 그것은 소비세, 관세, 부가가치세 등의 세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잔뜩 부과된다는 뜻이다.

- 프랜시스 후쿠야마, 『정치 질서의 기원』, 함규진 역, 웅진지식하우스, 2012, p.392-394

[각주:2]

중남미 세금 체계의 역진성을 보여주는 짤. 

위의 파란 정사각형이 세전 빈부격차(지니계수)고, 밑의 군청색(OECD)/빨간색(라틴 아메리카) 직사각형은 세후 빈부격차다. 보다시피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세전 빈부격차는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심한 편 정도에 불과하나, 여타 OECD 국가들과는 달리[각주:3] 세전-세후 빈부격차 차이 즉 소득의 재분배 효과가 거의 없어 세후 빈부격차는 OECD보다 훨씬 심한 수준으로 악화된다. 이렇게 제 기능을 못하는 복지제도는 결국 라틴 아메리카를 불평등으로 악명높은 지역으로 만들었다. 


위에서 보았듯, 한 국가가 복지국가를 원한다면 일단 해당 국가가 복지제도를 제대로 운용할 역량이 있나를 점검하고, 그게 증명된 후에도 시스템을 지속가능하고 부패/탈법행위로부터 자유롭고 복지정책이 모두를 포괄하도록 잘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국가는 그리스-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의 길을 밟을 것이다.

물론 한국은 복지국가를 한다고 문자 그대로 그리스,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의 운명을 되풀이하진 않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력이나 정치적 시스템은 미흡해도 이들 국가들보다는 확실히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유럽 국가들보다는 확실히 뒤떨어지며, 프랑스보다도 조금 낮고 이탈리아, 에스파냐, 포르투갈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 국가는 그리스나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과도한 공공지출, 방만한 복지운용, 경제활력 둔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이 만약 일찍이 복지국가화를 했다면 삶은 더 여유있을지 몰라도 이탈리아, 스페인 꼴이 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그리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화의 우려는 괴담일지 몰라도 이탈리아, 스페인화의 우려는 제법 현실화 있는 경고인 셈이다.  

사실 위 인용문에서 라틴아메리카의 구조적 결함 이야기를 했는데, 물론 거기보다는 확실히 약하지만 한국도 자유롭지 못한 문제들이다. 과보호받는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 과도한 복지의 보편화로 인한 빈곤층에 대한 약한 사회보장성, 선진국치곤 약한 법치주의와 재산권 보장은 한국도 가진 문제다. 그렇기에 복지국가 역량 문제가 더더욱 뼈저리게 다가온다. 라틴아메리카의 확실한 실패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진정한 복지국가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이런 문제를 점검하고 개혁해낸 이후에 복지국가화를 완료해야 한다.  


+ '한국은 국가의 복지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족주의를 강화해서 가족에 복지를 떠넘겼다'는 식의 주장이 보이는데, 위에 설명한 이유로 황당하게 느껴질 뿐이다. 선진국 인정받는 지금도 타 선진국에 비해 부실한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을 가졌는데, 생활수준도 낮고 정치 사회시스템이 더 엉망이었던 70-80년대에 복지국가화를 했다면 문자 그대로 그리스, 아르헨티나 꼴 났다. 아니 거긴 옛날엔 한국보다 확실히 잘 살았으니 베네수엘라화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베네수엘라와 달리 석유는 없었으니 자원의존성의 관점에선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1. 일하나 은퇴해서 연금받으나 들어오는 월급이 똑같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2. https://anticap.wordpress.com/2014/04/05/chart-of-the-day-322/ [본문으로]
  3. 스위스나 한국 정도만 예외다. 그나마 이 둘은 세전 지니계수라도 낮다는 데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는 다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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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좌파 운동권들은 한국과 프랑스를 스펙트럼 속에서 양 극단에 놓고 둘을 비교했었다. 한국은 관용이 부족하지만 프랑스는 톨레랑스의 나라이며, 한국은 권위자들에 과도하게 순종적인 나라지만 프랑스는 조금만 잘못하면 바로 엎어버리는 다혈질의 나라고, 등등...

하지만 2019년 시점에서 보니 편향된 견해였던 것 같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 시스템의 양상과 수준의 관점에서, 한국과 프랑스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나라니까. 


- 오랜 중앙집권의 역사와 여기에서 파생된 심각한 수도권-지방 격차.[각주:1]  

- 권위가 강한 카리스마형 지도자들의 연속. 한국의 대통령제와 프랑스의 '대통령제같은' 이원집정부제는 이를 뒷받침한다. 

- 엘리트집단의 강력함과 국가주의, 관치 성향이 강한 국가운영 

- 정치 시스템에 왕이 없으며 없어야만 한다는 강한 공화국적 인식. 

- 경직된 노동시장과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의 과보호

- 최근 비슷해진 1인당 GDP(특히 PPP 기준)와 세후소득 등의 경제지표

- 낮은 사회적 신뢰수준[각주:2]과 엘리트-비엘리트 간의 심각한 불신

- 선진국치곤 강한 민족주의와 자국 문화에 대한 국수주의적 집착[각주:3]

........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이미지와 실상의 괴리가 가장 큰 선진국은 프랑스라고 보는데, 그 이유가 이것이다. 그나마 요즘은 옛날보다 이미지가 많이 나빠졌던데, 환상이 오래 갈 수 없기는 하지. 

잘 봐 줘야 한국 상위호환 수준의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을 가진 나라를 치켜세웠으니. 


+ 참고로 여기서 비판받는 프랑스 시스템의 허술함은 역사적인 것으로, 무려 프랑스 혁명까지 이어진다. 

흔히 프랑스 혁명을 과정이 매우 폭력적이었으나, 그래도 구제도의 모순을 혁파하고 자유, 평등, 박애, 진보와 같은 근대성을 제도화한 위대한 정치혁명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삐딱하게 보자하면 다른 시선도 가능하다. 구제도의 모순이 정변과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해결돼야만 했을까?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려면 과격함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국은 그러지 않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명예혁명을 통해 정치사회 시스템을 개선해나가는데 성공했으니까. 프랑스 혁명은 정치사회의 문제가 시스템 하에서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쌓이다가 터져버린 즉 기존 정치사회 시스템 수준의 허술함을 드러낸 사례이다. 프랑스 혁명의 의의는 물론 방대하나 이러한 측면을 잊으면 안 된다. 

안타깝게도 프랑스의 이 역사적 패턴과 고질병은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노란 조끼 시위를 포함해 현대 프랑스에 만연한 폭력시위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서 과격하게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면 폭력시위가 답이 아니라는 것조차 모르는 바보라는 해석밖엔 나오지 않는다. 

  1. 인구집중은 한국이 프랑스보다 훨씬 심하지만, 대도시 간 인구비나 수도권-지방의 경제력/생활수준 격차 등으로 보면 한국과 프랑스가 비슷한 급이거나 프랑스가 한 수 위이다. [본문으로]
  2. 한국이 저신뢰사회라는 분석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내놓아 유명해졌는데, 그 책에선 프랑스도 한국과 같은 저신뢰사회로 분류됐다! [본문으로]
  3. 예전에 프랑스가 외래어를 죄다 프랑스어식으로 번안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자기 문화를 아낄 줄 안다고 좋게 봤었는데, 지금 보면 그저 국수주의적인 뻘짓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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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인구비율은 6.25 말기에도 이미 20%였고, 70년대 초중반에 30%, 88올림픽 무렵에 벌써 40%에 도달했다. 주지하다시피 현재는 50%. 

참고로 수도권 혹은 제1도시 광역권 인구 비율이 전체의 40%만 되도 세계적으로 꽤 높은 편이며[각주:1], 현재의 50%는 아예 (도시국가를 빼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각주:2]. 이 현상이 좋든 그르든, 국제 비교하면 그렇게 나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 수도권-지방 문제담론이 많이 나오는데, 적어도 인구비율로 볼 때 수도권 집중을 큰 부작용 없이 막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는 80년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저 때 한국은 서울 인구집중 처리하느라 서울 동북부에 아파트단지 짓고 1기신도시 만들고 쩔쩔맸던 시기긴 했다. 지방균형 담론이 나오기도 전이었고, 지방자치제도 아직 도입되기 전이었으니[각주:3], 그런 발상을 하기 쉽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지금 되돌아보니 아쉬움이 남네. 전두환-노태우가 그 때 지방균형을 실시했으면 수도권 집중이 얼마나 나아졌을까. 적어도 한국이 좀 살게 됐다 싶을 때가 그 무렵이었는데... 


물론 그렇게 했더라도, 수도권 인구 비율을 40% 이하로 낮추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이상으로 가면 불필요한 부작용만 속출했을 것이다. 말했지만 완전 초토화되었던 6.25 말기에도 20%였으니, 급속한 경제발전 속에서 20%p가 더 올라가는 것 정도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경제발전 과정에선 급격한 이촌향도를 통한 인구유입->값싼 대량의 노동력->도시 산업 발전->농촌 발전의 루트는 굉장히 일반적이며, 서울이라는 브랜드와 (한양) 상경 문화, 중앙집권 관료국가의 전통이 남아있는 한국은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1. 선진국끼리만 비교하자면 대만, 그리스, 아일랜드, 이스라엘 정도만 해당된다. [본문으로]
  2. 선진국끼리 비교하자면 이 정도로 인구집중이 심한 데는 아이슬란드밖에 없다. 그런데 그 나라는 인구가 35만으로 작다보니 한국과 1:1 비교하기 어렵다. [본문으로]
  3. 1995년에야 시행되었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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