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생활 패턴이 점점 인싸화되는 느낌이다.

- 머리를 나름의 스타일로 꾸미는 등 외모에 관심이 생겼고
- 산책이나 자전거 타기 등 야외 활동을 많이 하고
- 사람들 더 자주 만나고 연락하고
- 평소에 관심 없었던 가요를 듣게 되고
- 술을 마실 줄 알게 되고
....

평생 갈 것 같은 내 성격에도 변화가 오는구나. 이렇게 계속 가면 내 나쁜 면들도 많이 고쳐질 듯?

생활 패턴을 바꿔서인지 삶의 질이 높아진 것 같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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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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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참석자들을 포함해 모든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볼 때, 약[제1차 세계대전 평화협정] 내용이 관련 지역 및 주민들에 대한 지식이나 그에 대한 고려 없이 결정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유럽에 부과된 조약 내용이 그 정도였으니 거리상으로도 멀고 생소한 중동 같은 지역에 부과된 내용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아서 밸푸어만 해도 평화회의에 참석한 윌슨, 로이드 조지, 클레망소ㅡ모리스 행키의 전문지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ㅡ를 가리켜 "이 전능하면서 또 전적으로 무지한 세 거두가 회의장에 앉아 어린애 같은 인물의 지도를 받으며 대륙들을 난도질하고 있다"고 꼬집어 말했고, 이탈리아의 외교관도 이렇게 썼다. "파리 평화회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세계의 이런저런 정치인들이 지도 앞에 서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도시나 강을 찾으려고 손가락으로 지도 위 그림을 더듬어가며 '그 빌어먹을 곳이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라고 투덜대는 모습이었다." 로이드 조지도 (성서의 구절을 빌려) 단에서 브엘세바(베에르셰바)까지의 팔레스타인은 영국이 통치해야 한다고 요구했지작 단이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다. 19세기 성서 지도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하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1년 후 앨런비 장군으로부터 단의 위치를 찾았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자신이 원하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경계선을 북쪽으로 더 이동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 데이비드 프롬킨, 『현대 중동의 탄생』, 이순호 역, 갈라파고스, 2015, p.609

서구 열강이 피식민국의 역사/지리에 무지했고 식민지배의 편리를 위해 국경을 자의적으로 그은 건 알고 있었지만, 주먹구구, 나이브함과 무책임함의 레벨이었을 줄은 몰랐네.

이건 문제가 안 생기는 게 신기한 수준이다. 중동이 분쟁지역이 된 건 예상된 바다.

+ 참고로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서구 정치인들이 세계 1차대전에서 중동지역에 저지른 뻘짓과 삽질은 책을 따로 써야 할 정도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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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낭만적 예찬을 넘어서 - 이미지 시대의 아동을 생각하다", 「창비어린이」, 2019년 봄호, p.27-36.

아쉽게도 인터넷에선 볼 수 없으니 직접 사거나 도서관에서 읽는 방법밖엔 없다. 


나도 트위터에서 알게 된 글인데, 진짜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욕 한 게 아니다. 진짜로 문장 하나하나가 명문이다. 보면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는 "이 사회는 OO 혐오가 심각하며 규제되어야 한다"는 신좌파식 진부한 레토릭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각주:1] 그는 흔한 먹물좌파식 이론으로 글을 쓰기 보다는 자신의 특수한 처지가 바탕이 된 아동과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그리고 아동혐오 현상을 '이미지 시대'라는 특이한, 신좌파들 이론보단 훨씬 맞아떨어지는 관점으로 분석한다. 흔해빠진 선악구도가 없는 건 덤이다. 

신좌파식 레토릭에 학을 뗀 나에게 단비같은 반가운 글이다. 신좌파에 반대한다면서 지금까지 이런 발상을 못했을까...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으니.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 흥미로웠던 부분만 인용해 보겠다.


1. 장애인의 입장에서 본 아동[각주:2]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아동기였다. 내가 어린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주로 만나 교류해야 할 동료들이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른 피부색, 신체, 정신 구조를 가진 존재와 함께 있을 때, 어린이는 결코 아무 획책도 모르는 존재가 아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어린이는 또래들 사이에서 놀림과 배척의 대상이다. 장애 아동은 또래가 아니라 성인과 있을 때 훨씬 행복하다.

 아동은 내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동료 시민이다. 길에서 만난 어린이들은 부모 손에 이끌려 곁을 지나쳐도 시야에서 내 휠체어가 사라질 때까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느라 몸을 비튼다. 먼 거리에서도 놓치지 않는다. "와, 장애인이다!" 세상에 태어나 자신과 다른 신체를 가진 존재를 처음 마주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이해하지만, 적응하기 쉽지 않다. 멀리서 아이 소리가 들리면 나는 가급적 마주치기를 피해 길을 돌아간다.

 그런데 사실 어린이가 나를 보고 "장애인이다!"라고 외치는 데에는, 내가 어린이에게서 몸을 피하는 이유와 정확히 같은 이유가 놓여 있다. 그 아이들이 태어난 동네나 다니는 학교에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인권 교육이나 영상을 통해 장애인의 이미지를 만나기 때문이다. 아예 이미지를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다면, 아이는 나를 '장애인'이라고 특정하게 지칭되는지도 모를 것이다. 

 나는 장애인과 어린이가 욕망을 가지고 부딪치고, 소란을 피우고, 진로에 방해가 되더라도 몸과 몸으로 더 자주 만나는 순간들을 상상하며 이 글을 쓰기로 한다. 소비자인 어른에게 '육성되는' 아동이 아니라, 한 명의 시민으로서 어른과 함께 자라는 아동을 떠올린다. 나를 보고는 "와, 장애인이다!"고 외치면서 부모에게 끌려가는 아이가 아니라, 내게 다가와 나에 대해 자신의 궁금증을 자기 입으로 질문하는 아이를 상상한다.

같은 책, p.27-29.

  흔히 아동 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혐오에 대한 반동으로 "아동보단 개저씨가 더 위험하지 않냐?"는 식으로 아동의 잠재적인 부정적 요인들을 무조건 실드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동들이 장애인에게 보이는 철없음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아동은 순수무결한 선한 피해자가 아니라, 소수자이면서도 동시에 성장기에 있는 존재로서 서투르고 답답한 존재다. 나는 그의 시선에 동의하며, 소수자에도 어둡고 음침한 면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소수자의 진정한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더 나아가, 아동의 부정적인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존재로 존중하려 시도한다. 아동들이 저러는 게 장애인을 교육이나 영상 같은 이미지로만 접했기 때문이라면서 이해하려 시도한다. 난 이 구절에서 그가 대단한 인물이며 믿음직스럽다고 느꼈다. 장애인으로서 아동들 때문에 힘든 일 많았을 텐데, 저런 포용적 태도를 보이는 건 어지간한 인품으론 못 할 짓이다. 소수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각주:3]을 핑계로 한 혐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귀감이 되기 좋은 인물이다. 

 

2. 이미지만 남은 소수자들

 아이를 양육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가치를 띠며 국가와 시장도 (최소한 규범적, 형식적으로는) 양육을 지원하고 배려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국가는 공적인 주체로서 아동을 보호하고 돌보며, 사회 구성원들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학대 및 성범죄 등이 알려질 때 분노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가 아동을 "혐오의 대상"으로 여긴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동 혐오라는 현상을 아동에 대한 물리적 학대로만 이해한다면, 현대 사회의 특징인 아동 배제 기제를 포착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아동을 특정한 속성으로 환원하고 그에 열광하면서도, 그 속성을 벗어난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면 어떨까? 국가 단위에서 그 속성이란 사회, 경제적 재생산의 상징, 미래의 인적 자원이자 소비자일 것이다. 사회 구성원 일반에게는, 바로 '귀여움'이다. 아동의 귀여움은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에 머물지 않고 전국 단위의 '공적인 것'으로 소비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정반대로 '귀엽지 않은 아동'에 대한 거부와 배제로 이어지고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아동은 귀엽고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울고, 소란을 일으키고, 먹고, 싸고, 부수는 생명이다. 

(중략)

 '프린세스 메이커'나 유튜브, TV에서 하루하루 귀여움을 더해 가며 성장하는 아이를 지켜볼 때와는 달리, 정말로 한 생명을 돌보고, 같이 살아가며, 성장에 함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모든 동물은 생존의 욕구를 가진 존재로서 부모에 의해서도 쉽게 통제되지 않고, 욕구가 해소되지 않으면 시끄럽게 소음을 내며 운다. 아동은 (이미지로 등장할 때와 달리) 아무런 위협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 바이러스와 세균을 지닌 인간이고, 먹고 배설하고, 피와 땀을 가진 '축축한' 존재다.

 현대 사회의 공적 공간은 점차 이러한 '축축한' 존재들을 추방시키고 있다. 장애인과 빈자, 특정 인종의 외국인들은 오래전부터 공적 공간에서 손쉽게 추방되던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아동이 그 차례를 맞았다. 아동들은 더 이상 어른들 사이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존재가 아니다. 노인은 어떤가? 노인들은 지하철과 공공장소에서 기초 규범을 지키지 않는 존재로 지목되면서 젊은이들에게 혐오받는 대상이 되었다. 공적 공간은 점점 젊고, 건강하고, 세련된 행위 규범을 익한 존재들만의 세계가 되어 가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이미지로서의' 소수자들이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비교적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 사회다. 아동 유튜버들의 인기와 노키즈존의 병존은, 이처럼 이미지는 있되 물적 존재로의 몸은 마주치기 어려운 시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같은 책, p.31-34.

보면서 감탄만 나오는 명문이다. 

특히 맨 마지막 문단은 보면서 머리를 두들겨맞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현대 사회의 분노와 혐오, 정치적 올바름 등등 소수자 이슈 전반을 잘 요약해준 명문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현실을 적확하게 설명한 글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요즘 사회풍조가 너무 윤리적 결벽증에 빠진 건 아닌가 싶었던 나로선, 윤리적 결벽증이 이런 현상을 낳지 않았나 가설을 세워본다. 이건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글을 따로 써야겠다. 



+ 이 저자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고, 소수자의 존엄성을 담담하게 옹호하는 책도 썼다. 칼럼 보고 믿음이 생겨서 사 봤다. 서평도 곧 올려야겠다. 

  1. 특집으로 같이 기고된 나머지 글들은 죄다 그런 레토릭이었다. [본문으로]
  2. 저자 김원영은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을 받은 장애인이다. [본문으로]
  3. 냄새 난다, 잠재적 범죄자다, 이기적이다 등등...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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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재의 미흡한 친환경 기술을 서둘러 보급하면 어떤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독일의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 프로그램은 2050년까지 독일을 탄소 기반 연료에서 완전히 졸업시키도록 설계된 정책이고,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독일은 발전 용량이 40기가와트에 달하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이론적으로는 통상적인 전기 수요를 거의 모두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용량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지리적으로 높은 위도에 위치해 있고, 구름이 걷히는 때가 거의 없으며, 해가 나는 때가 거의 없다. 이 많은 태양광 패널이 생산하는 전기는 독일 총수요의 6퍼센트에 불과하다. 독일은 원자력 발전 시설을 대중이 우려한다는 이유로 폐쇄하고 있고, 지정학적 이유로 천연가스 연소 발전소를 줄이고 있다. 그러면 풍력 발전(장소 선정에 대한 우려 때문에 더 이상 개발할 지역이 동났다), 그리고 석탄 연소 방법밖에 남지 않는다.

태양광 발전은 독일에서는 대체로 불가능하므로 석탄과 갈탄(축축하고 질이 낮으며 독일에서 생산되는 석탄으로서 그 어떤 연료보다 높은 탄소 족적을 남긴다)이 현재 독일 전기 총수요의 42퍼센트를 생산하고 있다. 석탄/갈탄 연료 발전소를 가동하거나/가동 중지하려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 발전소들은 어쩌다 독일 전역에 깔린 태양광 패널이 가동되는 날에도 계속 연료를 태워야 한다. 그 결과 독일은 태양광 발전으로 탄소 배출량을 거의 줄이지 못했다. 2007-2009년 경기 침체가 없었다면, 에네르기벤데 프로그램 때문에 오히려 탄소배출량은 증가했을 것이다. 

- 피터 자이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홍지수 역, 김앤김북스, 2019, p.511 

독일 탈원전의 폐해는 한국 탈원전 정책 논의과정에서 어느정도 알려진 것 같은데, 에너지정책 전반이 이 정도로 문제있을 줄은 몰랐네. 디젤게이트는 빙산의 일각이었나.

확실히 한국에선 독일이 친환경국가라는 선입견이 강하구나. 나도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니.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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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안그래도 출산율 추락으로 우울한데 진짜 짜증나게 만드네.


https://www.ppomppu.co.kr/zboard/zboard.php?id=freeboard&no=6182160&extref=1


나탈리아 카넴 유엔인구기금(UNFPA) 사무총재는

 

한국의 급격히 낮아지는 출산율에 대해

 

"최악의 상황을 넘어서고 일반적인 통계학을

 

따질수 없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라고 우려를 표했다.


출처도 없어서 위 구절을 정말로 한 게 맞나 검색해봤더니 출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검색해서 나오는 건 죄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펌글이고, 그나마 있는 뉴스사이트 하나는 공신력 없는 듣보사이트라 인터넷 반응 베껴 올린 걸수도 있고... 

실제로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느낌이 가짜뉴스이다. 문단 띄어쓰기부터 뭔가 이상하게 돼 있고..  


여담이지만 나탈리아 카넴은 한국의 인구구조가 유례 없이 급격하게 변했다고 할 뿐, 그 이상의 표현은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한국의 급격한 발전을 칭찬한 적도 있었다. 



https://www.fmkorea.com/1452997397

확실하진 않지만 위도 출처를 찾을 수 없어 주작같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학술적인 문서를 찾아볼 급의 사람들이 정확한 출처를 안 밝힌다는 게 이상하다.  



https://www.fmkorea.com/1499262009

위 글은 아예 동명의 사이트에서 주작이라 결정났고,

https://www.fmkorea.com/1499574087 





진짜 출생아 수나 출산율이 어찌될지 궁금하면 차라리 오늘 발표된 통계청의 인구추계를 봐라.




물론 한국 출산율이 재앙 수준인 건 부정 못하고, 저런 말이나 예측이 실제로 있었어도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저런 소리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와 누가 실제로 저런 말을 했다는 건 천지 차이이다. 

이런 게 바로 가짜 뉴스다. 


인용문이나 캡처짤이 출처 없이 돌아다닌다면 가짜뉴스일 확률이 높다.

원문을 검색해서 찾을 때까진 일단 판단을 유보해라.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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