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국, 일본 남성들이 가정일 안 한다고 욕먹는데,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잘 언급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여자들도 가정일 별로 안한다는 것. 

남자는 여자보다 더 안 하기 때문에 한일 남자의 가사분담률은 낮게 나오지만, 한일 여자들이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가사일에 치여사는 건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개인적인 추론으로는,

1. 남녀를 막론하고 일하는 시간이 길어서.  

2. 주거문화 특성상 집안일 많이 안해도 되서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또 다른 이유엔 어떤 게 있을까 싶다.


+ 위 관점에서, 진짜 비판받아야 할 쪽은 인도와 터키 남자다. 여자는 세계적으로도 뼈빠지게 일하는 수준인데 남자는 한일 수준으로 꿀빨고 있으니... 물론 인도 터키는 남자들의 외벌이가 많아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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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기후의 특징을 뽑자면 대륙성기후의 영향으로 인한 심한 연교차, 냉온대기후치곤 많은 강수량, 장마로 인한 큰 계절별 강수량 편차 등이 있지만, 더 근본적인 특징이 있다. 


한반도 대부분 지역이 겨울이 건조한 냉대동계건조기후(쾨펜 기준으로 Dw)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남부지방 일부와 동서해안 일부를 제외하면 냉대기후로 분류된다

기준을 최한월 평균기온 -3도로 잡느냐 0도로 잡느냐에 따라 조금 달라지지만,

어떻게 분류하든 한반도 중부/북부지역 대부분이 -3도 이하이기에 한반도 대부분이 냉대기후로 분류된다.

 

그런데 한반도는 주지하다시피 겨울에 건조하고 강수량이 적으며 반대로 여름엔 습하고 강수량이 높다. 이 특성 때문에 한반도 대부분 지역은 냉대동계건조기후(Dw 계열)로 분류된다. 


근데 이런 기후는 전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유형이다. 


냉대기후(D) 계열 중 아극지역(맨 끝 알파벳이 c 또는 d)을 제외하고 나타낸 지도인데, 대부분은 냉대습윤(Df 계열), 다시말해 겨울에도 어느정도 습하고 강수량/강설량이 비교적 많은 지역이다.


겨울이 건조한 Dw계열은 세계적으로 드물며, 실질적으로 한반도와 만주지역에만 존재하는 유형이다. 굳이 찾자면 티베트 일부, 미국 내륙 일부 정도?




+ 여기서 궁금한 점 하나. 건조한 겨울은 좋은 쪽에 가까울까 나쁜 쪽에 가까울까? 

겨울에 습하면 같은 온도라도 더 쌀쌀하게 느낀다니, 건조한 기후가 한반도의 대륙성 강추위를 버티는 덴 좋을 것이다. 습하면 꼬여대는 해충들 막는 데도 좋고.

대신 건조하다보니 피부에 좋지 않으며, 겨울엔 각종 산불에 시달려야 하고 예쁜 설경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건조한 겨울의 장단점엔 또 어떤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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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기초연금이 도입되면서 자식들이 거기에 맞춰 용돈을 줄이는 부양의 책임전가현상이 나타났고

제도에 기대했던 효과가 일정부분 상쇄되었다고 한다. 


지자체 공무원에게 실제로 들은 이야기. 통계적으로 검증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일리있는 현상이다. 

물론 노령연금제도는 존치하는 게 맞지만, 생각보다는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데 유의해야 한다. 많이 줄었다지만, 한국은 여전히 노인 소득 상당부분이 자식의 용돈인 나라라 더더욱.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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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들은 흔히 개발도상국이 선진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높고, 그 힘으로 개도국이 선진국 생활수준을 따라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고,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역사가 뇌리에 박혔다보니 더 그렇다. 현재진행형인 중국/인도/베트남의 성장사례가 있다보니 더더욱. 하지만 과연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 

내가 읽었던 책 세 권이 나이브한 통념을 반박했기에 그 내용을 소개한다.  


1.

 인구 가중치를 둔 1인당 소득(1인당 GDP)의 수렴 현상은 자료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는 최근 글로벌 불평등이 감소한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구 가중치를 두지 않은 각국의 1인당 GDP 자료에서는 21세기의 첫 10년을 제외하고는 소득 수렴을 확인할 수 없다. 즉 '전통적인 정의에 따른 절대적 수렴'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1970년대 GDP 대비 1970년~2013년 각국 GDP의 평균 증가율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그것이 억측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도표 4-3-a>는 아시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1970년 소득 수준과 그 후 증가율을 보여준다. 1970년 1인당 GDP 수준에 따라 장기 증가율이 상승하거나 하락하지 않고 있다. 회귀선을 그려본다면 1인당 GDP 증가율이 2%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수평을 그린다. 이는 고소득국가와 저소득국가가 같은 속도로 성장했음을 시사한다. <도표 4-3-b>는 아시아와 서유럽, 미국, 오세아니아(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한 서구 국가의 추세를 보여준다. 이 경우에는 회귀선이 매우 뚜렷이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모양을 그린다. 예외 없이 아시아 지역에 있던 최빈국들은 43년 동안 서구 국가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인구가중 수렴뿐 아니라 비가중 수렴 역시 아시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아시아 국가만이 고소득국가의 소득을 따라잡고 있다.

-브랑코 밀라노비치,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서정아 역, 21세기북스, 2017, p.232-233

<도표 4-3-a>와 <도표 4-3-b>

<도표 4-3-b>에서 볼 수 있듯, 아시아에서도 동아시아/동남아시아/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특히 높다.

한국 주변국가들이 특별히 경제성장을 잘 하는 셈이다. 태평양 서쪽 지역에 특출난 무언가가 있나? 

개인적인 가설을 내세우자면 동아시아/동남아시아/남아시아 국가들의 내정이 개도국치곤 그나마 안정된 편이라 그러지 않을까 싶다. 이 지역들은 적어도 중동/아프리카처럼 부족/종교/종파 문제로 내전을 벌이거나, 구 소련 지역처럼 소련 해체 후유증 수습에 급급하거나, 중남미처럼 극심한 정치분쟁으로 내전 벌이고 사회주의 정책으로 경제를 말아먹진 않았다. 

<표 4-1> 

인용문에서 언급한 자료는 아니지만 내용적으로 직접 관련된 표라 올려본다.  

보시다시피 아시아의 경제성장이 특별하고, 전세계에서 제일 경제성장률이 낮은 지역은 제일 못 사는 아프리카다. 『빈곤의 경제학』 서평에서 논한 최빈곤국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2.

 균제상태[각주:1]가 기존의 경제여건이나 초기의 조건과 무관하다는 첫 번째 성질은 경제성장에 잇어서의 수렴(convergence), 즉 소득이 낮은 국가가 높은 국가보다 성장속도가 더 빠를 것이고 그 결과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국가간 소득격차가 줄어들 것임을 예측한다. (중략) 그러나 [그림 18-6]에서 볼 수 있듯이 소득이 낮은 국가가 소득이 높은 국가보다 빨리 성장할 것이라는 절대적 수렴(absolute convergence)은 실제 경험에 의해 지지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솔로우 모형의 예측은 틀린 것일까? 

 [그림 18-7]은 1965년 당시 21개 OECD 국가의 일인당 국민소득수준과 1965년-1990년 기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여주는데, 터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각주:2] 절대적 수렴에 관한 솔로우 모형의 예측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결과는 OECD 국가들과 같이 경제적 환경이 유사한 국가들간에는 수렴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를 조건부 수렴(conditional convergence)이라 한다.

- 김경수, 박대근 저, 『거시경제학 제5판』, 박영사, 2016, p.610.

[그림 18-6], [그림 18-7]


+ 3. (2019.05.15 추가) 

 1820년부터 현재까지 각국의 소득 격차는 몇몇 예외적 경우 말고는 계속 벌어졌다. 1820년에 가장 부자였던 국가들이 가장 많이 성장했다. 오늘날 선진국의 소득은 평균 2만 5000달러~3만 달러이고, 대부분의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소득은 평균 5000~1만 달러인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소득은 고작 1387달러이다. 이러한 격차의 확대 현상은 그림1에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의 가로축을 따라 오른쪽으로 갈수록 1820년에 소득이 높았던 지역들이고, 이들의 성장률이 제일 높았다. 반면 왼쪽의 지역들은 초기의 소득이 낮은 지역들인데 성장률이 더 낮았다. 유럽과 영국의 식민지들은 1820년에서 2008년까지 소득이 17~25배 증가했다. 동유럽과 대부분의 아시아 지역은 초기의 소득이 낮았고 같은 기간에 소득이 10배 증가했다. 남아시아, 중동, 그리고 대부분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운이 나빴다. 1820년에도 가장 가난했고 같은 기간에 소득 증가도 3~6배에 불과했다. 이 지역들은 서구에 비해 더욱 뒤쳐진 것이다. 그림1의 '분기식(divergence equation)'은 이러한 패턴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소득 격차의 확대에도 예외가 존재한다. 동아시아가 가장 중요하다. 이 지역은 세계적인 추세와 반대로 지위가 개선된 유일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20세기의 가장 대단한 성공 사례이다. 일본은 1820년에는 분명히 가난한 나라였지만 서구와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또다른 극적인 사례는 한국과 대만의 성장이다. 비록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소련도 성공 사례에 속한다. 오늘날 중국은 이러한 사례를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로버트 C. 앨런, 『세계경제사』, 이강국 역, 교유서가, 2017, p.11-15

그림1


결론은 1.과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30년이 아닌 200년 단위로 경제성장을 비교했고, 그래서인지 잘사는 나라들이 경제성장을 오히려 더 잘했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



1,2,3에서 봤듯 개발도상국이 선진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아 생활수준이 국제적으로 수렴할 거라는 가설은 잘 봐줘야 애매하게 맞는 수준이다. 설령 맞는 편이라 할지라도 반례가 많이 나타나므로 모든 개도국들이 눈부신 경제성장 하는 양 이야기하지는 말자.

물론 이는 지역별 상대적인 경제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며,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절대적인 경제성장 및 생활수준 향상 자체는 『팩트풀니』 서평에서도 언급했든 사실이므로 오해하지 말자. 절대적인 경제성장/생활수준 향상이 특정 개도국들이나 지역에 집중된다는 게 문제다. 


  1. 솔로우의 유명한 경제성장모델에서, 생산함수 y=F(K,L)이 정해져 있을 때(K-자본량, L-노동량) 1인당 GDP는 장기적으로 특정 지점에 수렴하게 되는데, 이 때 균제상태에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2. 터키가 OECD 국가들 중에선 1인당 국민소득이 제일 낮은 편이라는 데 주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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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212764

전에 리뷰한 엑소더스 저자의 또 다른 책이다. 워낙 좋은 책이어서 이것도 읽어 봤는데 전반적으로 괜찮다. 세부적으로는 동의 못 하는 면도 있지만. 아쉽게도 출간된 지 좀 된 책이다. 원서 기준으로 2007년 출간됐기 때문에, 그 때와 지금 간의 시대 차이에 유의해서 읽어야 한다. 경제위기 전후로 정치질서와 경제질서가 많이 달라졌다. 

원제 The Bottom Billion(밑바닥 10억 명)과 부제 '극빈국 10억 인구의 위기'에서 알 수 있듯, 제목에서 빈곤은 '세계의 최빈곤층 10억 명'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프리카의 굶어가는 아이들' 이미지를 상상하면 얼추 맞는다. 

그렇다면 세계 밑바닥 국가들의 빈곤은 도대체 왜 문제일까? 국민들이 여유로운 삶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힘든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이 비참함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들 국가들은 생활수준이 몇 십 년 동안 제자리걸음 수준이며, 콩고민주공화국처럼 치명적 내전을 겪은 몇몇 국가는 오히려 악화되기까지 했다. 또 지금처럼 한다면 앞으로도 비참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예측된다. 

더 비참한 것은 다른 국가들은 몇십 년 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당장 한국, 대만, 중국, 베트남, 인도의 과거와 현재만 비교해도 답이 나온다. 정도는 좀 약하지만 동남아시아나 구 공산권 국가들도 많은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그러나 최빈국들은 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소외되어 뒤쳐지고 있다. 이 경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밀라노비치의 연구에 따르자면, 1988-2008년 사이 세계적으로 생활수준이 크게 증가했지만 이 경향에서 예외적인 두 집단이 있는데, 바로 포퓰리즘의 주동세력으로 지목받는 선진국 빈곤층과, 이 책에서 말하는 세계 최빈곤층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는 건 도의적으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옛날 책이라 언급은 안 됐지만 시리아 내전만 봐도 그렇다. 시리아가 최빈곤국은 아니지만 내전으로 최빈곤국처럼 삶이 고달파지자 많은 시리아인이 유럽에 난민으로 몰려갔는데, 이는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을 불러일으켰으며, 난민 받기 꺼려하는 국가들이 서로 갈등을 빚는 등 유럽 선진국들에 혼란을 불러왔다. 


그렇다면 왜 세계 최빈곤국들은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하는가? 저자는 최빈곤국의 고질병 네 요인을 지적한다. 첫 번째는 나라를 분열시키는 내전이다. 빈곤국들은 국가 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경제적 충격에도 바로 내전에 빠질 수 있다. 이 경우 국가 기반 전체가 전쟁에 총동원되고, 사람들이 기아와 학살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기란 어렵다. 설령 내전이 끝나더라도 무시못할 확률로 재발한다. 이러니 경제성장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거기에 반란세력은 겉으론 독립운동처럼 고상해 보일지라도 속살을 들추면 사리사욕을 위한 군벌의 무자비한 폭력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서방에서 이미지만 보고 반란세력들의 내란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는데, 이런식의 폭력은 늘 그렇듯 명분이 있어보여도 폭력은 폭력이라는 내 사고만 더 확실해졌다. 

두 번째는 흔히 자원의 저주라 말하는 천연자원. 천연자원이 발견되고 수출되면 화폐 가치가 상승해 기존 상품들의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네덜란드 병이라 한다. 또 천연자원은 선진적인 국가체제를 만드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국가가 천연자원을 차지한 경우 국가가 별 노력 없이도 국민들을 경제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부패하고 무능하고 비민주적인 시스템에 안주하게 만든다. 또 최빈곤국들에서 천연자원은 자칫 천연자원을 재정적 기반으로 할동하는 반란세력만 키울 수 있다.[각주:1] 

세 번째는 내륙국으로서의 지리적 한계이다. 세계 최빈곤국 상당수는 해안이 없는 내륙국이며, 이는 국제 무역에 있어 매우 불리하다. 육로는 해운보다 운송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데다, 세계 최빈곤국들은 인프라가 극악이기 때문에 운송비용이 더더욱 치솟는다. 거기에 최빈곤국들은 주변국가들도 최빈곤국들인 경우가 많으므로,  주변 국가의 경제성장으로부터 상호 이득을 얻기는 커녕 옆 나라의 내전에 말려들기 십상이다.  

마지막은 최빈곤국들의 엉망진창인 내정이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빈곤국 정부의 부패, 무능, 폭정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최빈곤국인 차드에선 재무부가 여러 기관을 거쳐 지방 보건소에 국비를 지원하는데, 조사 결과 지방 보건소에 실제로 도달한 액수는 재무부 국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부패로 공공자금의 99% 이상이 증발한 셈이다. 이정도면 국민들에게 국가라는 개념은 없다고 봐야 한다.


 최빈곤국들이 이런 비참함에서 탈출할 방법은 있을까? 다행히 희망은 있다고 한다. 현명하고 득이 되는 원조정책, 군사적 개입, 법률과 헌장을 통한 최빈곤국 국가시스템의 선진화, 무역 정책 개혁이 그 답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서구 선진국들이 이미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소극적이었기 대문에 제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빈곤국들이 빈곤을 탈출하려면 더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선진국들은 국가 간 외교 혹은 국제단체를 통해 최빈곤국들과 적극적으로 공조하며 경우에 따라선 내정에 개입할 필요도 있다고 한다. 

 글이 너무 길어지니 원조정책과 무역정책 개혁만 예로 들어보자. 최빈곤국들에 원조를 하는 경우, 부정부패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게 원조 지원국의 내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원조는 많이 하면서도 원조 지원국을 감시하는 데 소홀해왔기 때문에 원조의 제 효과를 못 봤다. 또 원조정책을 담당하는 조직은 파워나 발언권이 약해 현장의 목소리가 상부에 제대로 닿지 못하고, 상위 조직의 결정에 끌려다니게 되었다. 기존의 무역정책도 문제가 많았다. 선진국 좌파들은 개발도상국들을 위한답시고 고관세 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최빈곤국들의 경제적 행위자들이 자유무역에서 보호받게 되어 과도한 지대를 누리도록 만들었다. 또 자국 산업을 보호한답시고 고관세 정책을 펼친 선진국도 있는데, 이는 빈곤국의 농업/산업이 발달할 기회를 박탈하고 말았다. 

 이렇게 현실파악 없이 좋은 의도만 앞세워서는 안 되며, 진정으로 최빈곤국들을 위한 경제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최빈곤국들이 제자리걸음하는 이유는 잘 짚어냈으나, 그 해답이 비현실적이며 이 시대엔 더더욱 실현 불가능하다고 본다. 해답이라고 내 놓은 것들이 원조정책의 현실화나 무역 정책 개혁과 같은 걸 제외하면 뜬구름 잡는 수준의 이야기다.  스스로 내놓은 정책이나 어젠다를 더 구체화해서 이야기해야 했지만 저자는 그러지 못했다. 

또한 이런 해결책들은 국제정치의 활성화와 선진국들이 최빈곤국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섬을 전제하는데, 아쉽게도 현재 국제정세와 국제경제는 아예 정반대로 가고 있다. 책 출간 당시는 2007년이었는데 그 때는 국제정치 문제가 지금처럼 심하지도 않았고, 자유시장과 선진국의 선의를 통한 경제발전에 대한 믿음이 팽배했던 시기다. 그러나 2008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경기불황으로 선진국들마저 내 코가 석자가 되어 옛날만큼 최빈곤국들에 관심과 재원을 쏟아붓기 어려워졌다. 또 세계적으로 포퓰리즘 정치가 유행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기존의 자유주의적인 국제정치가 위협받고 있다. 

현재 서구권 선진국들은 어느 정도 민주주의나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에만 원조하고 투자하나(위에서 말했듯 감시를 안 하긴 하지만), 중국은 그냥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국가거나 부패가 심한 국가일지라도 투자하고 원조한다. 이는 국가 시스템을 선진화시켜야하는 최빈곤국들의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게 만든다. 당장 12년 된 이 책에서도 중국의 무책임한 국제경제정책은 비판받은 바 있는데, 이는 개선되기는커녕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더 악화되었으며, 아예 민주주의와 인권 챙기는 서구적인 국제경제정책과 1대 1로 비견될만큼 중국의 경제정책은 체급이 커져버렸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변화는 최빈곤국들의 경제발전을 방해할 것이다. 만약 저자의 주장들과 예언이 다 맞다면, 최빈곤국들은 앞으로도 발전하지 못할 것이며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우울한 예측이 그려진다. 아니 제자리걸음 정도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최빈곤국들은 높은 출산율로 인구가 급증하고 있으며, 그 상황에서 기후변화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을 것이다.[각주:2] 이 경우 국가기반이 위태로워져 대기근, 내전, 국가 붕괴를 불러올 확률이 높아진다. 최악의 예측이긴 하지만, 최빈곤국들이 몰려있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남아공 보츠와나 같은 몇몇 멀쩡한 나라를 제외하면 지역 단위로 한꺼번에 붕괴할 수도 있다. 


다만 저자의 해결책이 빗나간 것은 저자의 잘못만은 아니다. 옛날 책이기에, 현재의 세계질서 변화까지 고려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부적으론 아쉬움이 있지만, 저자 입장에선 차선 정도의 해결방안과 미래예측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어지간한 학자들보다 최빈곤국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고. 특히 원조/무역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것을 고려해서 10점 만점에 8점을 주겠다. 


+ 진보좌파들은 읽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위에서 말한 잘못된 무역정책 건도 크지만, 불의에 대한 항거라는 레토릭에 속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내전을 미화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빈곤국들에 실재하는 가난 문제를 경시했다. 성장만능주의라면 모를까, '최빈곤국에는 성장이 중요하다'는 수준의 논문에 국제단체들이 반발했다던데 이게 제정신인가? 애 다섯 낳으면 한 명은 어릴 때 떠나보내야 하고, 흉년 나면 친족 중 누군가가 굶어죽어야 하고, 내전나면 소년병으로 끌려가고 질병으로 죽어가는 삶이 그리 낭만적으로 보이나. 다행히 요즘 진보좌파는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진정 최빈곤국들의 삶을 돌보는 진보좌파가 되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


  1. 최근만 해도, 이라크 북부지역의 석유자원을 경제적 바탕으로 삼은 ISIS의 사례가 있다. [본문으로]
  2. 예전에 쓴 글에서도 말했지만, 최빈곤국들은 기후의 관점에서 사람 살기 힘든 지역인 경우가 절대다수다. 기후가 조금이라도 변화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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