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학자들은 존 롤스와 그의 『만민법Law of People(1999)』에 따라 글로벌 기회 평등이 중요한 사안이 아니며 글로벌 기회 평등을 옹호하는 주장은 한결같이 국민 자결의 원칙과 충돌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국가 간 부와 기회의 격차를 각국이 각자 다른 선택을 함에 따라 만들어진 산물로 간주한다. 

(중략)

롤스나 다른 국가주의자들은 가난한 사람은 자신보다 부유한 사람의 소득이나 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요구는 정의의 문제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이 재분배를 통해서든 부유한 사회로 이동할 권리를 통해서든 부유한 사회 구성원의 소득을 요구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반드시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한다. 그 결과 일부 국민이 집단적으로 무책임한 선택을 해버린 다음에 건실한 삶을 영위하거다 더 나은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소득을 분배하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국민 자결(어떤 나라의 시민권자 집단이 내린 결정)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이 롤스를 비롯한 국가주의자들의 주장이다.


- 브랑코 밀라노비치, 『왜 우리는 불평등해지는가』, 21세기북스, 2017, p.191


몇 달 전, 이 책을 읽다 충격받은 기억이 난다.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약자에 대한 복지정책을 옹호한 존 롤스.

하지만 그의 동정심은 국가 내 개인에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국가 전체가 빈곤한 약소국에는 보수 꼰대나 할 발상을 했다.


만약에 그가 약자에 대한 지원에 도덕적 해이나 개인의 책임성 문제를 언급하며 반대했다면, 그는 냉혹한 보수꼰대라는 혹평에 시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빈곤국에 대한 지원에 도덕적 해이나 국민자결을 운운하면서 반대했을 땐 그 누구도 그를 보수꼰대라고 하지 않았다.

뒷부분에 저자는 롤스의 이런 면모를 이중잣대다, 정의론과 상반된 소리를 한다, 국가와 개인이 그렇게 다르냐면서 비판한다. 나도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국가와 개인 행동의 본질은 그렇게 다른가. 

국가와 개인의 불평등이 상반되는 분석과 처방을 해야할 정도로 다른 성격인가. 


처음에는 롤스가 사회자유주의자, 진보 정치철학자일 줄로만 알았는데 실망이 참 크다. 

Posted by 유월비상
,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특히나 정치 각성에 즉각 반응할 수 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이들을 자국의 정치 현실에서 해방시켜 주기 때문에 이들 역시 무장 투쟁에 가장 이끌리기 쉬운 정치 집단이다. 따라서 현재 많은 지역의 수많은 대학생들은 과거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에 해당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는 산업시대 초기 무산 근로자로서,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찬 이념 투쟁과 혁명에 동원되기 쉬운 집단이었다. 매스미디어를 통한 정치 선동은 손쉽게 그들의 미숙한 감정을 단순하고 목표의식이 뚜렷한 행동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그런 행동이 특정 대상에 대한 분노와 감정에 바탕을 둘수록, 이들은 정치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당연히 민주주의와 법치, 종교적 관용에는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흑백 논리가 이들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의 인종, 민족, 종교가 모욕을 받았다고 느끼면 거기에 반응하고, 이런 주관적인 느낌이 이들이 가진 흑백 논리의 뿌리다. 1979년 이란에서 일어난 혁명이 그랬다. 흑백 논리는 젊은이들의 감정에 잘 맞을 뿐만 아니라 보복 행위도 정당화시킨다. 


-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략적 비전』, p.43-44, 아산정책연구원, 2016


원래는 제3세계 청년들의 운동을 설명하는 구절인데, 현대 선진국들의 청년들에 적용하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인터넷을 바탕으로 한 가짜 뉴스의 유행, 포퓰리스트들의 정치적 선동과 득세, 인터넷 사이트에서 폭발하는 분노와 혐오, 한 편에서는 이민자 배척, 다른 편에서는 무조건적인 PC와 페미니즘으로 하는 비자유주의적인 사회움직임, 양극화된 정치구도. 


물론 청년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분노하는 게 당연히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분노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청년들의 운동이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꿀 것이라면서 낙관하면 안 된다.


빨간 밑줄 쳐진 부분처럼, 청년들의 분노가 비자유주의적이고, 타인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검은 밑줄로 쳐진 매스미디어의 성격 때문에 더 심해진다.


얼굴도 모르는 남성에게 비하적인 표현을 쓰는 워마드 회원. 

무개념 여자들을 다 죽여버려야 한다는 여성혐오자.

문재인을 비판하는 언론들을 적폐로 몰아가는 문빠.

직접적 원한도 없는 타 인종에 폭력을 행사하는 인종주의자(racist).

축구선수가 경기에서 졸전했다고 사형시키라는 국민청원을 올리는 한국 네티즌. 

이슬람교만이 답이며 무신론자들을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무슬림.


이것은 한국에서, 타 선진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분노가 폭발하는 방식이다.

사회 비판의 형식을 띤 분노가 무조건적인 파괴의 에너지로 전이되고 있다. 

파괴의 에너지는 개선을 제일 목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더 위험하다.


분노의 힘만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치자.

그래도 분노는 잘 축적하고 저장했다가 사용할 시점과 장소를 잘 맞춰서 배출시켜야 한다. 

그래야 분노의 파괴적인 에너지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고, 분노의 원인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다들 분노를 건전하게 키울 참을성이 없어져서 그런지,

분노를 사회 혁명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좌파들마저 분노 처리에 서툴러 보인다. 

무고한 사람이나 집단을 공격하려 하거나, 분노 조절을 못하고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분노가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예상을 못하는 사람이 많아, 위 현상은 더욱 강화된다.

분노가 사회문제의 중심을 향할 거라 막연히 기대하기도 한다.

좌파들 절대다수는 아랍의 봄이 시위라는 형식을 통해 아랍 지역을 자유민주주의적으로 만들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중동의 독재정권이 붕괴되고 나타난 세력은 여성과 성소수자, 무신론자를 억압하려는 이슬람주의자들이었다. 이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무조건적인 분노를 방관하거나 방조하는 태도는 

결국 사회 전체를 초토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이다.


남는 게 아무것도 없을 세상을 과연 누가 원할까. 

이 사실은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분노에 미쳐 모든 걸 파괴하려는 자에도 적용된다. 


더 파괴할 게 없게 되면 욕구불만에 빠지거나 허무해지기 십상이니까. 

Posted by 유월비상
,

(상략)

그러나 나는 사회심리학자이기도 한 만큼, 그런 급격한 변화[각주:1]에는 격렬한 정치 분열이 뒤따르기 마련임을 잘 안다. 그렇다면 그 변화는 의미 있는 발전인가, 아니면 한 나라가 영혼을 잃어가는 과정일까. 새로운 성 역할은 과연 오래도록 미뤄진 여성해방을 이루는 길일까, 아니면 가정의 기반을 약화시킬 요인일까. 이는 아주 중대한 물음들로, 민주사회라면 반드시 논쟁을 통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하략)


- 조너선 하이츠, '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中 한국어판 서문, 왕수민 역, 2014, p.9


갑자기 2년 전 읽은 책의 글귀가 생각나서 올려본다.


처음에 이 문구를 읽었을때는 순간  "성평등이 국가의 영혼을 잃게 하고, 가정의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건 늙은 꼰대들이나 할 발상 아님? ㅋㅋ 이게 논쟁거리가 될 사안인가?" 싶었다.


지금 워마드 메갈리아 등에서 활동하는 넷페미, 제도권 페미니스트들의 행패를 보자 하면, 남녀평등이나 페미니즘의 공과를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위 책에서 언급한 성평등에 대한 반대, 우려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100% 동의는 못 해도 공론장에 들어올 자격은 있다.  

자칫하다간 남녀평등과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사회가 무너지겠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비속어와 혐오발언.

끈임없이 분출되는 페미니스트들의 분노와 불안함. 그리고 반사회성.

사회적 수용가능성 따윈 무시한 페미들의 트집잡기, 떼쓰기, 공격성.

무조건적이고 무책임한 비혼 비출산 장려. 


물론 이러한 태도가 유행한 건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반발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지금의 움직임은 광기 그 자체다. 이걸 통제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싫어진다.



스스로를 보수적인 면이 강하다고 생각해온 그런 나조차도, 진보와 사회개혁의 열망 속에서 순진하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구나.

  1. 이 글에선,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 사회의 급격한 발전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

세대 변화와 교실의 변화: "Me"세대의 교육(Med Educ, 2009)

Generational changes and their impact in the classroom: teaching Generation Me

Jean M Twenge




도입

INTRODUCTION


많은 교수들은 오늘날 학생들이 '좋은 옛 시절'의 과거와 달리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믿습니다.

Many faculty members believe that the students in their classrooms today behave very differently than they themselves did, back in the ‘good old days’ when they were students.


물론 이러한 태도 중 일부는 선택적 기억으로 추적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증거는 세대간에 진정한 차이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Certainly, some of these attitudes can be traced to selective memory: However, the evidence is mounting that there are real differences among the generations.


세대 간 차이는 전체적으로 문화의 변화를 반영합니다. 세대는 서로 다른 기간의 사회 문화적 환경을 위한 유용한 proxy이다.

Generational differences reflect changes in the culture as a whole. Generation is a useful proxy for the socio-cultural environment of different time periods.1,2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가장 큰 심리적 변화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움직임이다. 3-6 이것은 엄청난 장점이있다: 여성과 소수 민족의 개인적 권리가 마침내 인정되고, 개인 간의 차이가 더 많이 받아 들여지고 편견이 약해졌다. 부모는 어린이 개인의 희망을 키워주며, 이제는 더이상 가혹한 훈육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The largest psychological shift in the last few decades has concerned the movement toward focusing on the individual.3–6 This has enormous advantages: now that the individual rights of women and minorities have finally been recognised, differences among individuals are more accepted and prejudice has waned. Parents nurture children’s individual wants and are less likely to rely on harsh discipline.


그러나 너무 많은 개인주의와 자기 집중은 단점이 있습니다. 학부모, 교사 및 TV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진술로 자녀를 격려합니다. '자기자신을 믿고,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하라'

However, there are disadvantages to too much individualism and self-focus. Parents, teachers and TV programmes encourage children with statements such as: ‘Believe in yourself and anything is possible’


십대들은 이런 말을 듣는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Teenagers are told: ‘You shouldn’t care what other people think of you’


젊은 사람들은 다음을 믿는다: '당신의 꿈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Young people believe the exhortation: ‘You should never give up on your dreams.’


더 나중에 태어난 사람일수록, 그와 같은 구절을 믿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The later someone was born, the more likely he or she is to believe such phrases


이러한 경구와 다른 문화 매체를 통해, 젊은 세대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고, 자신감은 성공을 위해 필수적이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요지로 배웠습니다. 이것이 1970 년 이후, 특히 1980 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을 'Generation Me'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Through these aphorisms and other cultural mediums, younger generations have been taught to believe, in short, that everything is within reach, self-belief is essential for success, and other people’s opinions are rarely important. This is why I labelledthose bornafter 1970, and especially after 1980, as ‘Generation Me’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학 여성들은 스스로를 야심, 자기 주장, 독립성과 같이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agentic" 성격을 훨씬 더 많이 가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학 남성의 agentic 특성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하여 실제로 개인주의적 특성이 일반적으로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over time, college women described themselves as having significantly more ‘agentic’ traits, or those necessary to succeed inthe workplace, such as ambition, assertiveness and independence.9,10 However, college men’s agentic traits increased over time as well, suggesting the trend actually concerned a more general rise in individualistic traits.



이 연구에서는 다른 시점에서 잘 검증 된 심리 척도를 완료 한 샘플의 평균 점수를 수집하는 '교차 시간 메타 분석'이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This study used a method I named ‘cross-temporal meta-analysis’, which gathers the mean scores of samples who completed well-validated psychological scales at different time-points.



젊은 세대는 외향성 (나가는 것), 자기 존중, 심지어는 나르시시즘 점수조차 높다.11-13

younger generations score higher on extraversion (being outgoing), selfesteem and even narcissism11–13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자기 만족, 높은 기대, 물질주의, 미래의 성과에 대한 확신, 그리고 여가에 대한 욕구 14-16의 증가를 보였다.

high school students in the USA showed increases in self-satisfaction, high expectations, materialism, confidence in future performance, and a desire for leisure14–16



그러나 이 모든 자신감도 정신 건강을 향상시키지 못했습니다. 불안, 우울 증상 및 전반적인 정신 병리가 모두 대폭 상승했습니다 2.

All of this seeming self-confidence has not led to better mental health: anxiety, depressive symptoms and general psychopathology all rose sharply over the generations2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는 지능 검사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지 만, 책은 덜 읽는다.

Finally, younger generations score more highly on intelligence tests,18 but are less likely to read books.19


물론 이러한 결과는 너무 광범위하게 해석되어서는 안됩니다.

Of course, these results should not be interpreted too broadly.


대학 인구는 생각만큼 많이 변하지 않았다 : 1960 년대 이후로 학부모들의 평균 수입은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소수 집단minority의 입학률은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낮다. (토론을 위해 2 참조). 대학에는 여성이 더 많지만 성별로 데이터를 별도로 분석하면 이러한 변화가 쉽게 해결됩니다.

College populations have also not changed as much as one might think: the average income of students’ parents has stayed constant since the 1960s, and minority enrolments, although improved, are still relatively low (for a discussion, see 2). There are more women in college, but this change is easily addressed by analysing the data separately by gender.



성격 특성의 세대 간 변화에 관한 대부분의 데이터는 대부분 미국의 심리학 연구가 미국에서 실시되기 때문에 미국 표본에서 추출한 것이다.

Most of the data on generational change in personality traits are drawn from American samples, primarily because most psychological research is conducted in the USA.


아시아 문화 또한 현대적인 아이디어가 기존의 사고 방식을 대체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부 영역에서 서구의 사고 방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Asian cultures have also begun to shift toward Western ways of thinking in some realms, with modern ideas beginning to replace traditional thinking.


이 데이터의 대부분은 선형 변화를 보여줍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갑자기 변화하는 대신 변화가 점차 발생합니다.

Most of these data show linear changes. Instead of making sudden shifts from one generation to the next, changes occur gradually.


네 가지의 세대 변화 : 

  • 높은 기대치; 

  • 나르시시즘과 자격의 높은 수준; 

  • 불안과 정신적 문제 증가

  • 텍스트를 읽으려는 욕구가 줄어들었다.

Four generational changes : higher expectations; higher levelsof narcissism and entitlement; increases in anxiety and mental problems, and a decline in the desire toread long texts.



높은 기대치

HIGH EXPECTATIONS


Generation Me는 은 미래를 계획 할 때 스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많은 학생들이 너무 높은 목표를 세울 수 있다고합니다.

Members of Generation Me have been taught to aim for the stars when planning their future. Recent research suggests, however, that many students may be aiming too high.


고등학생의 75 %가 30 세까지 직업을 갖기를 기대하면서 '전문직'으로 일하기를 기대하는 학생의 수가 증가했지만 실제로는 약 20 %만이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The number of students who expected to work in a ‘professional’ job also increased, with 75% of high school seniors expecting to work in such a job by the age of 30 years, although only about 20% are likely to do so.


대학생들에 관한 데이터도 유사한 패턴을 보여줍니다. 1 학년 학부생 중 12 %는 MD를 취득 할 계획입니다 .2 물론, 실제로 약 1 % 만 그렇게 할 것입니다.

Data on college students show a similar pattern: Among Year 1 undergraduates, 12% plan to earn an MD.21 Of course, only about 1% will actually do so.


젊은 사람들은 또한 그들이 미래에 어떻게 perform할 것인지에 대해 점점 낙관적 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3 명 중 2 명은 2006 년에 '매우 우수한' 근로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1975 년에 추측 한 2명중 1명과 비교). 2006 년까지 2/3의 학생들은 학생들은 자신이 성인직업인구의 상위 20 %에서 수행 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16

Young people are also increasingly optimistic about how they will performin the future. two in three students predicted they would be ‘very good’ workers on a job in 2006 (compared with the one in two who guessed so in 1975). Thus, by 2006, twothirds of students were predicting that they would perform in the top 20% of the population in their adult jobs.16


이것이 긍정적 인 발전이라고 믿기를 바랍니다. 미국 문화는 성공하려면 자신감을 가져야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자존감은 성공을 예측하지 못한다. 실제로 과도한 자신감을 갖는 것(3 명 중 2 명이 상위 20 %에서 수행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더 큰 실패를 낳을 뿐이며, 그 이유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인해서 잘못 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개선해야 할 때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나르시시즘 척도를 사용하여 측정한 overconfidence는 코스를 수강하지 못한 사람에서 가장 높았으며, A 등급을받은 사람들에게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It is tempting to believe that this is a positive development. American culture teaches that one must be self-confident to be successful. However, self-esteem does not predict success.22 In fact, being overconfident – a fair description of a group in which two in three people expect to perform in the top 20% – actually leads to greater failure,23 perhaps because overconfident people do not recognise when they are doing badly and need to improve. One study showed that overconfidence – measured using a narcissism scale – was highest among those who failed a course and lowest among those who earned A-grades



이러한 변화는 기술보다 야망이 많은 대학 및 의과 대학 교실에서 많은 학생들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학생들은 자기가 모르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고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완벽주의는 이 세대, 특히 의학 교육 교실을 채우는 높은 성취 자들 사이에서 너무 높은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17 완벽주의는 실패 할 것을 두려워하는 학생들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These changes explain the appearance of so many students in college and medical school classrooms who have more ambition than skill. Students should also recognise that it is fine to admit that one doesn’t know something, and that one can learn from failure. Perfectionism has reached high levels among this generation, especially among the high achievers who fill medical education classrooms.17 Perfectionism can paralyse astudent who is afraid to fail. 


나르시시즘과 자격부여

NARCISSISM AND ENTITLEMENT



4 개의 서로 다른 출처의 4 개 데이터 세트는 세대에 따른 나르시즘의 현저한 증가를 암시합니다. 세 개 연구는 나르시스트적 성격 척도인 NPI (Narcissistic Personality Inventory) 점수의 변화를 조사합니다. NPI 점수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감이 뛰어나고 자기 중심적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합니다. 2006 년에는 4 명 중 1 명이, 1982 년에 7 명 중 한 명이 나르시스트 방향으로 대다수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Four datasets from four different sources suggest a marked rise in narcissism over the generations. Three examine changes in scores on the Narcissistic Personality Inventory (NPI), a measure of narcissistic traits; those who score high on the NPI are overconfident, self-centred, and lack empathy for others. By 2006, one in four answered the majority of questions in the narcissistic direction, up fromone in seven in 1982.13


마지막으로,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 (National Institutes of Mental Health)에 의해 수행 된 대규모 역학 연구는 NPD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에 대한 35,000 명 이상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조사되었으며, 더 심각한 임상 적 진단을 받았다.

Lastly, a large epidemiological study conducted by the National Institutes of Mental Health screened over 35 000 Americans for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NPD), the more severe, clinically diagnosed form of narcissism.26


예를 들어, 65 세의 노인은 25 세의 노인보다 NPD를 경험할 시간이 40 년이 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에 비해서 NPD가 있을 가능성이 1/3에 불과합니다.

For example, a 65-year-old has had 40 more years in which to experience NPD than a 25-year-old. Instead, rates among older people are only a third of those among younger people.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지금도 나르시시즘이 매우 높지는 않지만, "매우 높은 수준의 나르시시즘"에 도달한 개인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졌다.

Most young people are, even now, not very narcissistic, but there are now more individuals who reach a very high level of narcissism.


나르시시즘의 측면 중 하나는 entitlement(자격부여)이다. 이것은 세상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빚지고 있다는 느낌 ( '나는 최고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나는 A가 필요합니다')입니다. 나르시시즘이 증가함에 따라, '자격부여'가 더 자주 나타날 것입니다. 

  • 더 많은 학생들은 자신이 잘해서가 아니라, '시도해봤기 때문에'또는 '열심히 했기 때문에'를 위해 좋은 성적을 얻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최근의 한 연구는 학부생 중 3 분의 1이 단지 출석을 했기 때문에 최소한 B 이상을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 2/3는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을 교수에게 설명하면 특별한 배려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7 

  • 많은 학생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make-up시험을 볼 것이라고 기대한다. 

  • Greenberger 등 27)은 학생의 1/3은, 시험이 그들의 방학 계획을 방해한다면, 교수는 시험 시간 변경에 동의해야한다고 생각했다. 

  • 성적을 가지고 argue하는 것은 더 흔해질 것이며, 수업이 끝나고 추가 학점을 요구하는 등 더 창조적인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One of the facets of narcissism is entitlement, the sense that the world owes you something (‘I deserve the best’, ‘I need an A’). With narcissism on the rise, entitlement will appear more often. More students will expect to get good grades for ‘trying’ or ‘working hard’, not necessarily for good performance. One recent study found that a third of undergraduates believed they deserved at least a B just for attending class; two-thirds believed they should get special consideration if they simply explained to their professor that they were trying hard.27 More students will expect to sit make-up examinations administered at their convenience; Greenberger et al.27 found that a third of students believed that if an examination were to interfere with their vacation plans, the professor should agree to give the examination at a different time. Arguing over grades will be more common and will take more creative forms, such as asking for extra credit after the class is over.




2010 년대에 의대생이 될 2000 년대 고등학생들은 다른 이유로 entitlement를 느낀다: 이들은 덜 공부하고도 더 좋은 성적을 받았다. 고등학생이 주당 15 시간 이상 숙제를하지 못한 학생은 1976년에 비해서 2006년에 20% 감소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A학점을 받은 학생은 거의 두 배가되었습니다. 1976 년에 A 또는 A- 평균을 얻은 학생은 18 %에 불과했지만, 2006 년에는 A를 받았다고 응답한 학생이 33%였으며, 이는 83 % 나 증가한 것이다. Generation Me는 고등 교육의 도움을 받아 easy ride을 기대하게되었다.

Those in high school in the 2000s, who will be the medical students of the 2010s, feel entitled for another reason: they were given better grades for doing less work. A total of 20% fewer high school students did 15 or more hours of homework per week in 2006 than in 1976, and more did no homework at all. Yet the number of A-grade students has nearly doubled over the same period: whereas only 18% of students said they earned an A or A-average in 1976, 33% said they were A students in 2006, representing a whopping 83% increase in selfreported A-grade students.16 Generation Me has come to expect an easy ride, courtesy of their high school education.



나르시시즘과 entitlement의 증가가 필연적으로 나쁜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단기간의 퍼포먼스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을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을 지나치게 믿은 역효과로 고통을 겪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칩니다. 나르시시즘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고, 도전을 받을 때 분노하거나 공격성을 보이기 때문에 work relationship을 갉아먹는다. 경쟁적인 상황에서, 나르시시스트들은 위험에 대한 보상이 있을 때에는 잘하지만, 게임이 바뀌고, 더 어려워지면 그들의 risk-taking하는 스타일로 인해서 더 크게 실패하게됩니다. 예를 들어, 주식 시장 시뮬레이션은 나르시스 주의자가 강세장에서 크게 이기고, 하락장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잃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Is the increase in narcissism and entitlement necessarily a bad thing? For the most part, yes. Narcissists do better than others at public performance in the short-term, but in the long-term their performance suffers as their overconfidence backfires and they ruin their relationships with others. Narcissism is corrosive to work relationships, as narcissists lack empathy for others and lash out with anger or aggression when challenged. In competitive situations, narcissists do well when risk is rewarded, but when the game changes and becomes more challenging, their risk-taking style leads themto fail more spectacularly. For example, stock market simulations show that narcissists win big in bull markets but lose more than others when the market turns downward.


의학 교육에서 교수진과 교직원은 overconfidence와 과도한 risk-taking을 조절해줘야 한다. 학생들에게 그릇된 유능감을 보여주는 것보다,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는 것이 더 낫다고 가르쳐야 한다. 신중히 고려한다면, 위험이 좋을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너무 많은 위험은 환자 치료를 손상시킬 수 있음도 알려줘야 한다. 학생들의 참여 필요성을 충족시키고 과신을 조장하는 한 가지 방법은 교실 응답 시스템 (종종 '딸깍'이라고 함)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In medical education, it is vital that faculty and staff temper overconfidence and excessive risk-taking. Teach students that it is better to admit to lack of knowledge than to seem falsely competent. Demonstrate that risk can be good when it is carefully considered, but that too many risks can often compromise patient care. One way to satisfy students’ need for participation and to temper overconfidence is to use a classroom response system (often called ‘clickers’).



또 다른 결과는 많은 여가 시간에 대한 기대이다. 최근 세대들은 '일은 단지 생계유지를 위한 것이다'에 동의하며, 초과 근무가 필요하지 않고, 몇 주간의 휴가를 허용하는 직업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성형 외과 의사의 수는 1970 년대 중반 이후 세 배로 늘었지만 전체 의사 수는 두 배 늘었을 뿐이다. 2002 년 의대생은 1996 년보다 10배 더 피부과를 선택했고, 마취를 선택한 사람은 6 배, 방사선학을 선택한 사람은 2 배에 달했다. 동시에, 일반 외과 수술이나 가정 의학을 선택하는 의대생 수는 줄어들었다.

Another consequence of narcissism and entitlement is an expectation for plenty of leisure time. Recent generations are more likely to agree that ‘work is just making a living’ and to favour jobs that do not require overtime and allow for several weeks of vacation . Medicine is not immune to the lure of specialties that allow for less disruption of lifestyle.29The number of plastic surgeons, for example, has tripled since the mid-1970s, whereas the number of doctors has merely doubled. Ten times as many medical students in 2002 chose dermatology as did in1996, six times as many chose anaesthesiology, and twice as many chose radiology. At the same time, thenumbers of medical students choosing general surgery or family practice have declined.29



많은 전문 분야의 의사들은 이제 일을 덜 할수 있는 편을 선택합니다. 파트 타임으로 근무하는 의사 수는 2005 년에서 2007 년까지 불과 2 년 만에 46 % 나 급증했습니다 .30 일부 증가는 가족을 양육하고있는 여성에 대한 탄력적 인 일정 증가에 기인하지만, 타임 스케줄은 '관련없는 전문적 또는 개인적 추구'에 더 많은 시간을 원한다고 말했다. 의사로서의 정체성이 최우선이며, 나머지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는 끝났다.

Doctors in many specialties are now choosing to work less. The number of doctors working part-time jumped 46% in just 2 years from 2005 to 2007.30 Some of the increase derives from a rise in flexible schedules for women who are raising families, but almost a third of male doctors who moved to a part-time schedule said they wanted more time for ‘unrelated professional or personal pursuits’. The era of doctors who considered themselves to be doctors first and everything else second appears to be over.



어떤면에서 이것은 특히 의사가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보장하고 좋은 환자 치료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측면에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work-life balance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녀가없는 최근 졸업생 인 경우가 많습니다. 교사는 수련과 실습의 어려움에 대해 현실적인 태도를 가져야 하며, 적어도 잠시 동안은 자신의 업무가 다른 것들보다 우선 할 수도 있음을 학생들에게 알려야합니다. 그러나 여가 시간 증가 추세는 막을 수 없으며, 시스템이 먼저 망가질 것인지, Generation Me의 기대가 먼저 부서질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In some ways this is a good thing, particularly in terms of ensuring that doctors are able to spend time with families and that they get enough rest to provide good patient care. Yet those who talk about ‘work)life balance’ the most are often recent graduates who do not yet have children. Educators should be realistic with students about the challenges of residency and practice, and should let students know that, at least for a while, their work may take precedence over the rest of their lives. However, the trend toward increased leisure time may be unstoppable, and it remains to be seen whether the systemor Generation Me’s expectations will crack first.


정신건강문제

MENTAL HEALTH PROBLEMS


일부 대학 교수진은 권위있는 기관에 입학하는 학부생이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묘사했는데 두 가지 유형 중 어느 쪽도 좋지 않습니다. 

  • 'crispies'는 너무 많은 공부와 너무 많은 완벽주의로 인해 번아웃하며

  • 'teacups'은 겉으로는 완벽하지만 덜컹 거리면 쉽게 부서진다

그들이 의과 대학에 도착할 무렵에는 심지어 가장 강한 사람도 허약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Some university faculty describe the undergraduates entering prestigious institutions as falling into two types, neither of which is good: ‘crispies’ are burned out from too much work and too much perfectionism, and ‘teacups’ are perfect on the outside but easily broken if rattled. By the time they arrive at medical school, even the strongest may be feeling fragile.


그러나 이 점에 대해 논쟁이 있습니다. 1990 년대 초반과 2000 년대 중반 사이에 청소년 (15-24 세)의 자살률은 감소했다 (같은 기간 동안 항우울제 사용 증가를 반영 할 수도 있음)

However, there is debate on this point. Suicide rates in young people (aged 15–24 years) declined between the early 1990s and the mid-2000s (although this may reflect an increase in the use of antidepressants over the same period).


젊은 세대는 self-reliance도 낮았으며, 또 다른 red flag는 Generation Me는 소위 '헬기 (helicopter)'부모에 의해주의 깊게 감독되어, 독립성이 낮아졌다는 제안을 경험적으로 뒷받침한다.

The younger generation was also lower in self-reliance, another red flag, which represents empirical support for the suggestion that Generation Me has been carefully supervised by its so-called ‘helicopter’ parents, making its members less independent.


이 데이터와 일화 보고서에서 자립self-reliance의 감소가 나타나는 것은 현 세대의 학생들에게 구조와 정확한 방향을 제시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들은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며 애매한 지시가있을 때 스트레스를받습니다. 규칙과 요구 사항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Generation Me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The decline in self-reliance apparent in these data and in anecdotal reports suggests that the current generation of students needs to be given structure and precise directions. They like to know exactly what they need to do to earn good grades and they become stressed when given ambiguous instructions. Spell out the rules and requirements carefully, and you will get better results from Generation Me.



지적 기술

INTELLECTUAL SKILLS



오늘날의 학생들은 분명히 똑똑합니다. 평균적으로 젊은 세대는 지능 검사, 특히 추론 능력과 수학에 대해 더 높은 점수를받습니다. 그러나 IQ상승의 대부분은 상위권보다는 오히려 하위권에서 일어났습니다 .18 동시에 젊은이들이 책을 읽는 횟수가 줄어들어 텍스트의 긴 구절을 읽는 데 관련된 기술이 감소했음을 암시합니다 .

Today’s students are definitely smart. On average, younger generations score more highly on intelligence tests, particularly on reasoning ability and maths; however, much of the gain has taken place at the lower rather than the higher end of the IQ range.18 At the same time, fewer and fewer young people read books,19 which suggests a decline in the skills involved in reading long passages of text.


1990 년 이래로 태어난 사람들은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those born since 1990 barely remember a time when the Internet did not exist.


의학 교육은 항상 learning by doing을 강조해왔으며, 이것은 Generation Me가 선호하는 학습 스타일이기도 하다. Generation Me 학생들은 앉아서 듣는 것보다 스스로 무언가 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강의를 들을 때 이 학생들은 YouTube에있는 것과 같은 그림, 그래픽, 짧은 비디오 세그먼트에 반응합니다. 현대 기술을 교육에 사용할 수 있는 교수라면 이 세대의 학습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Medical education has always emphasised learning by doing, which is the preferred learning style of this generation. Generation Me students like doing things themselves better than sitting and listening to a lecture. When they must hear a lecture, these students respond to pictures, graphics and short video segments like those found on YouTube. Professors who can incorporate modern technology into their teaching can facilitate the learning of this group.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단점은 교과서가 결코 읽히지 않을 수도 있고, 단지 훑어보기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과서 출판사는 학부 교과서를 줄이고 소화하기 쉬운 덩어리로 자료를 더 많이 인쇄함으로써 세대 간 변화에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The downside of this is that the textbook may never be read, or may only be skimmed. Textbook publishers are beginning to respond to generational changes by shortening undergraduate textbooks and printing more material in easy-to-digest chunks.




그들은 웹 서핑을하면서 숙제를하고 친구들과 인스턴트 메시지를 교환하면서 멀티 태스킹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인지 심리학 연구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멀티 태스킹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멀티 태스킹은 인지 역량을 고갈시키는 방향으로 순차적으로 주의를 전환해야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전략이다 [34 ].)

they attempt to multi-task, doing homework while surfing the web and exchanging instant messages with friends. (I say ‘attempt to’ because research in cognitive psychology has demonstrated that people cannot truly multi-task; instead, they must sequentially switch their attention back and forth, which depletes cognitive resources. Thus multi-tasking is a poor strategy [see 34].)



무엇을 할 것인가

WHAT TO DO


교육자들은이 세대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 첫 번째 단계는 이 세대의 관점을 이해하고 그것이 현대 문화의 반영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Generation Me는 부모님, 선생님, 언론인이 가르쳐 준 것 만을 한다. 

  • 두 번째 단계는 강의를 짧은 덩어리로 만들고, 비디오를 사용하고, 실습 학습을 장려하여 이들을 그들의 홈그라운드에서 만나야 한다. 그러나 콘텐츠 및 학습 표준은 동일하게 유지되어야하며 모든 사람에게 공정해야합니다. 한 학생이 특별 대우를 요청하고 받게 되면, 나머지 학생들도 장기적으로 '특별대우를 받은'학생과 마찬가지로 변하게 된다 (특별 대우를 받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단지 요청만으로 특별대우가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서 성공하기 더 어려워질 뿐이다).

Educators can take several steps to better teach this generation. 

  • The first step is to understand its perspectives and realise that they are reflections of contemporary culture. Generation Me is doing exactly what it has been taught to by parents, teachers and media. 

  • The second step is to meet its members on their own ground by breaking lectures into short chunks, using video and promoting hands-on learning. However, standards for content and learning should remain the same, and should be fair to everyone. If one student asks for and receives special treatment, the rest of the class is shortchanged, as is the ‘special’ student in the long run (the longer he receives special treatment, the more difficult he will find it to succeed in a world that does not confer special treatment just for asking).



교육자는 배워야 할 자료를 compromise할 수는 없습니다. 학생들이 더 많은 entitlement를 느끼게 되면,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공부는 덜 하면서도 더 나은 성적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의학 교육에서 학생들이 배우지 않을 때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하는 것은 불공평 할뿐만 아니라 위험합니다.

Educators cannot compromise on the material that must be learned. As students feel more entitled, more will demand better grades for less work, just as they received in high school. In medical education, however, allowing students to earn good grades when they do not learn the material is not only unfair but dangerous.




오늘날의 학생들은 활동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필요로한다. 이전 세대는 의무감이라는 의식이 있었고 이유를 묻지 않고서도 지시받은 내용을 종종 수행했습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의무감에 호소한다고 그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왜 그들이 뭔가를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며,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개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Today’s students frequently need the purpose and meaning of activities spelled out for them. Previous generations had a sense of duty and would often do what they were told without asking why. Most young people no longer respond to appeals to duty; instead, they want to know exactly why they are doing something and want to feel they are having a personal impact.




이것은 기회입니다. 과제 뒤에있는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한다면, 그들의 에너지과 열정을 짊어 질 수 있습니다. 의학은 impact을 추구하는 사람들을위한 자연스러운 분야이며, 이러한 욕구는 의학 교육을 향상시키는 데 활용 될 수 있습니다. 자부심과 나르시시즘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르시시스틱한 사람들의 열정은 의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과 같이 좋은 목적을 위해 잠재적으로 활용 될 수 있습니다.

This is an opportunity: if young people understand the deeper meaning behind a task, they can bring their energy and passion to bear on it. Medicine is a natural field for people who seek to have an impact, and this desire can be harnessed to improve medical education. Although self-esteem and narcissism do not necessarily help people succeed, narcissistic people’s desire for attention can potentially be harnessed to good ends, such as that of helping others through medicine.




그러나 의학 교육자는 학생들이 overconfidence로 인해서 실패하지 않도록 하고, 덜 눈에 띄는 업무도 중요함을 강조해야합니다. 의학 교육은 적자 생존을 보장함으로써 보상을 준다는 점에서 진화와 유사합니다. 잘만 가르친다면, 이전 세대의 the fittest가 그랬던 것처럼 Generation Me의 the fittest도 성공할 것입니다.

However, medical educators must make sure that students’ overconfidence does not lead to failure, and that the importance of less visible tasks is emphasised. Medical education resembles evolution in that it rewards by ensuring the survival of the fittest. When taught properly, the fittest of Generation Me will succeed, just as the fittest members of previous generations have done in the past.



 2009 May;43(5):398-405. doi: 10.1111/j.1365-2923.2009.03310.x.

Generational changes and their impact in the classroomteaching Generation Me.

Author information

1
Department of Psychology, San Diego State University, San Diego, California 92182-4611, USA. jtwenge@mail.sdsu.edu

Abstract

CONTEXT:

Many faculty members believe that students today differ from those in the past. This paper reviews the empirical evidence for generational changes among students and makes recommendations for classroom teaching based on these changesGenerational changesare rooted in shifts in culture and should be viewed as reflections of changes in society.

METHODS:

This paper reviews findings from a number of studies, most of which rely on over-time meta-analyses of students' (primarily undergraduates') responses to psychological questionnaires measuring IQ, personality traits, attitudes, reading preferences and expectations. Others are time-lag studies of nationally representative samples of high school students.

RESULTS:

Today's students (Generation Me) score higher on assertiveness, self-liking, narcissistic traits, high expectations, and some measures of stress, anxiety and poor mental health, and lower on self-reliance. Most of these changes are linear; thus the year in which someone was born is more relevant than a broad generational label. Moreover, these findings represent average changes and exceptions certainly occur.

DISCUSSION:

These characteristics suggest that Generation Me would benefit from a more structured but also more interactive learning experience, and that the overconfidence of this group may need to be tempered. Faculty and staff should give very specific instructions and frequent feedback, and should explain the relevance of the material. Rules should be strictly followed to prevent entitled students from unfairly working the system. Generation Me students have high IQs, but little desire to read long texts. Instruction may need to be delivered in shorter segments and perhaps incorporate more material delivered in media such as videos and an interactive format. Given their heightened desire for leisure, today's students may grow into professionals who demand lighter work schedules, thereby creating conflict within the profession.



출처: http://dohwan.tistory.com/1405 [Passing the Torch : 의학을 가르치는 것은 횃불을 전달하는 것과 같다.]




Posted by 유월비상
,
인공지능 정치는 또다른 정치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정치하는 인공지능도 정치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치는 단순히 기계적인 효용극대화가 전부가 아니다. 효용이란 표현은 모호하여 여러가지로 해석 가능한 말인데다가, 바람직한 아젠다와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매길 여러 가치 중 하나일 뿐이다.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대신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정책이 있다 치면, 시행 여부는 효율과 형평 중 어느것을 중시할지에 달려있다. 인공지능은 이 문제를 우선 판단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인공지능은  정치적으로 설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정치 세력들이 가만히 지켜볼 리 없으며, 갈등은 필연이다. 그것도 역대급으로 격렬할 것이다. 이 갈등이 정치세력들의 영원한 미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갈등을 끝내려 만드는 인공지능을 위해 또다른 정치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선결문제의 오류가 발생하는 셈이다.
정치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인공지능 정치라는 개념은 현실적으로 형용모순이다.

정치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관이 충돌하는 공간이다. 이를 무시한 정치혐오적 발상은 어떠한 건설적인 결과도 내놓지 못할 것이다.


Posted by 유월비상
,

우선 위치부터 보자면,


- 동북아시아 국가로, 세계에서 가장 큰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있다. 여기서 타 대륙으로 가려면 동쪽으로 1만 km는 가야 한다. 

- 중국,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다. 

- 중국,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과는 거리가 꽤 먼 편이다. 

- 동중국해 안쪽으로 영토가 움푹 들어가 있어서, 외국인 입장에서 '항해하다 우연히 방문하기'가 참 어렵다. 북쪽과 서쪽은 중국이 막고, 동쪽으론 일본이 막고. 

- 거기에 반도지형이고, 대륙과 연결된 지역이 기후적으로 척박해서 외국인이 '육로로 우연히 방문하기'도 어렵다. 

 


기후, 지형을 보자면,


- 한반도의 대부분 지역은 냉대동계건조기후(Dw)로 분류되는데, 이런 기후를 지닌 지역은 전 세계에서 시베리아, 중국 북동부와 한반도뿐이다. 전세계 냉대기후 지역은 대부분 냉대습윤기후(Df)이다. 

- 한반도 대부분 지역의 연간 강수량이 1000mm 이상으로 꽤 많다. 열대, 아열대를 제외하면 제일 많은 축. 아니 열대, 아열대 국가 중에서도 여기보다 강수량이 적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강수량이 여름에 집중된다. 

- 연교차가 극심하다. 수도 기준으로 하면 서울, 평양 모두 연교차가 세계 10위 안에 들어간다. 여기보다 연교차가 큰 지역은 북미 내륙, 시베리아와 그 인접 지역밖엔 없다. 

- 쌀농사 문화권으로,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편이다. 

- 그러면서도 70-80%가 산지인 척박한 지형(이정도면 꽤나 비중이 큰 편이다)이라, 체감 인구밀도는 훨씬 더 크다. 



물론 대부분의 사항은 동북아시아 국가들 공통 특성이며, 외국도 따져보면 특이한 면모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한국은 지리적으로 특이한 나라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역사, 경제, 사회문화 시스템들을 뜯어보자면 전세계적으로 극단적이거나 혹은 독특하며 예외적인 사례가 많다. 이렇게 된 데는 특이한 지리조건이 많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타국의 지리를 잘 알지 못해서 이런 발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내 생각은 이러하다. 

Posted by 유월비상
,

0. 이를 위해 먼저 윤리의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1. 윤리는 사람들이 함께 사회를 바람직하게 운영하려 만든 공동의 합의이다.

따라서 다른 조건이 같다면 나, 너, 제3자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원칙적으로 내가 '나'라는 이유로 너, 제3자와 다른 윤리를 부여받는 이기주의적 행태는 허용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나 나지, 남에게는 그저 남이고 제3자가 보기엔 제3자일 뿐이다.

이걸 용인하면 모두가 '나'일 뿐이라 사회를 이룰 수가 없고, 사회 전체에 적용되는 윤리의 개념은 붕괴된다. 


1-1. 물론 성별, 연령, 소속 집단 등 조건에 따라 사람마다 윤리가 다르게 부여되는 경우도 있다.

(가부장제와 존비어 체계, 외국인의 선거권 유무 등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조건에 따라 윤리에 차등을 두어야 할 합리적인 이유(여기서는 남녀 분업, 권위 존중, 주권국가로서의 정체성)가 수반되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게되면 그 윤리는 몰락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가부장제가 퇴색하는데, 그 이유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맞벌이가 필수가 되고 남녀 모두 동등한 교육을 받는 등 사회구조가 바뀌면서, 여자가 남자와 다르게 대우받아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구성원들이 찾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 윤리는 'A는 a 행동을 해야한다/하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 당위, 즉 강제의 형태로 존재한다. 

단순히 'A는 a를 하는 것이 좋다/괜찮다'는 취향, 미학을 넘어선다. 

A는 무슨 일이 있어도 a 행동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며, 그것을 넘어설 경우 사회의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그래야 윤리의 원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A에게 '강도질은 안 하는게 좋지만, 해도 뭐라 하지 않겠다'면 윤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강도 문제를 해결하려 만든 것이 윤리인데, 남의 강도질은 규율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3. 이렇게 윤리는 보편적이며, 강제성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는 쌍방향적이며, 

서로 특정 행동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강제하며 서로를 규율한다.



4. 문제는 좌파들의 이념에 강제성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좌파들은 남에게 강제당하는 꼴을 보지 못한다. 이들은 윤리적 강제성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에게 직접적이고, 분명한 물리적 피해만 나지 않는다면 무조건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최대한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을 갈망한다. 

그래서 좌파들이 동성애, 혼전 성관계, 비혼, 사회에 대한 반항, 무신론, 히피적인 삶, 심지어 무정부주의까지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리는 위에 말했듯 쌍방향적이다.

내가 남에게 특정한 삶의 양식을 강제할 권리는 물론, 남이 나에게 강제할 권리까지 함축한다.

따라서 좌파들이 윤리를 강조한다면, 내가 남을 윤리의 명분으로 강제하는 동시에 남에게 윤리의 명분으로 강제당하게 된다. 이는 좌파의 이념에 어긋난다.



5. 요즘 국내외를 막론하고 좌파들이 PC운동에 혈안인데,

PC운동은 지켜야 할 윤리를 양산한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채식주의만이 올바른 생각이며, 이에 어긋나는 행동은 잘못되거나 어리석을 뿐이다'

'여자는 약자이므로 남자의 행동에 토를 달아도 되지만 그 반대는 안 된다' 

'백인들은 사회적 특권층이므로 늘 자신의 특권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등등...


몇몇은 보편성이라는 윤리의 전제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건 논외로 하자. (사실 PC운동 주장에서 이런 게 많다)

여기 목록들은 특정 집단을 높이 치켜세우거나, 특정 행동을 강제하거나 금지하려는 발상들의 총체이다. 

이런 생각들이 사회에서 활성화된다면, 위에서 말한대로 남은 물론 PC좌파 스스로도 윤리적으로 얽죄여질 것이다. 


한 예를 들자면, 몇몇 PC좌파들은 특권계층이라는 의식 때문에 죄책감을 안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PC좌파들도 고통을 겪는 셈이다. 아직까지는 PC좌파들이 그렇게 크게 고통받진 않지만, PC운동이 거세지면 좌파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6. 사실 나도 PC운동의 큰 틀엔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PC좌파들은 기존의 사회적 인식으로 소외당하는 소수자들을 위해주는데, 

이들의 소외, 고통은 곰곰히 생각하면 합리화되기 어렵다. 단순한 인습과 편견, 공포에서 기원한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1에서 말한 사회적으로 폐기되어야 할 윤리들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윤리를 해체하면 될 뿐이다. 


'남자는 남자라서 A를 하고, 여자는 여자라서 B를 해야 한다' 

'채식주의자는 그저 있는 척하는 위선자일 뿐이다'

'동성애는 사회기강을 문란시키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무식하고 게으르고 냄새나는 것들이다'


이런 사회적 구습들, 편견들 말이다. 

현재 한국 사회 수준을 생각하면 이 윤리들만 해체해도 엄청난 개선이 될 것이다.


굳이 윤리들을 새롭게 만들어 억압을 창조하면서까지 PC운동을 할 필요가 있나?

그것보다 훨씬 덜한 강도로, 부작용도 없이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데 말이다.



7. 좌파들이나 PC운동가들은 왜 자신이 좌파적인 이념을 지지하는지 다시 곰곰히 생각해야한다. 

원래 의도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기 목적을 손쉽게 이룰 수 있다.


좌파들에게 필요한 것은 윤리의 양산이 아닌, 비합리적인 윤리의 해체이다.



p.s. 글이 좀 부자연스러워서 좀 정리했다.

Posted by 유월비상
,

요약하자면, 역설적이지만 여성 위상이 많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전세계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면서 이제 왠만한 국가들은 여성들도 선거권/피선거권이 있으며, 여성들도 남자만큼 교육을 받으며[각주:1], 여성들도 이제는 법률상으로 남성과 동등하게 대접받으며, 유리천장을 부수고 고위직에 올라간 여성 사례들은 계속 나오는 중이다. 

오히려 법과 제도로만 보면, 남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징병제, 여성 할당제로 인해 여자들이 유리한 면도 있다.


물론 아직도 여성들이 겪는 불이익은 많다. 

성차별적인 가치관 속에서 여성들은 위축되기 십상이며, 

출산과 육아, 가사로 인해 여성들은 직장에서 남성들보다 뒤쳐지게 된다. 

성범죄는 만연해서 여성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갖는다.




문제는 이 불이익이 벌어지는 양상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거다. 



과거의 여성운동은 법, 제도와 같은 '권리'를 얻기 위한 투쟁이었다. 


남자와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 

남자와 동일하게 적용되는 제도. 

남자와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본권.

말하자면 '기회의 평등'이다. 

이는 정치사상과 관련된 추상적 문제라서 상대적으로 풀기가 쉬웠다.

여자들이 투표권을 얻는다고 특정 계층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이 가진 않으니까. 

있어봤자 "여자들이 감히 정치에 참여하다니! 말세다!"는 꼰대들의 불평 정도? ㅎㅎ



그런데 여성운동의 성공으로, 위 권리 관련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다. 

페미니즘이 해결할 문제는 이제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이다.


남자와 동일하게 적용되는 임금.

남자와 동일한 치안 수준. 

남자와 동일한 수준의 정치적, 경제적 참여율.



그런데 이는 기회의 평등보다 풀기 훨씬 더 어렵다. 왜나하면 실질적인 댓가를 반드시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남자처럼 투표권을 얻는다고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이 가진 않는다.

하지만 고위공직 자리의 50%를 여성에게 할당한다면, 

남성 고위공직자 상당수가 물러난다는 불이익이 가해진다. 

남녀임금격차를 해결하려 정부가 여성에게 일정의 보조금을 준다면, 

그 액수만큼의 부담은 사회 전체에게 전가된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남자 대 여자, 효율 대 형평의 대립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대립구도는 기득권과 사익이 걸린 문제라 쉽게 풀 수 없다.  

누구한테나 밥그릇은 절박한 문제니.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야 할 정도다. 

독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간 거센 반발만 불러올 것이다.  


사회가 성평등해지면서 사회문화적인 성차가 줄어들면서 드러나는 본성적인 남녀차이[각주:2]

사회문화의 상대적으로 느린 변화속도, 여성위상의 향상으로 추가로 개선될 여지가 줄어드는 현상 등으로 

페미니즘의 향후 전망은 이미 어두웠다. 

적어도 옛날만큼 극적인 변화는 불러오기 힘들어 보였다.  

현재의 남녀대립구도는 이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그렇게 페미니즘은 목표 성취가 몇 배로 어려워졌고, 

이미 여성위상이 많이 높아졌기 때문에 성취할 것도 많이 남지 않게 되었다. 



여성들이 여성이라서 겪는 불이익이 줄어들고, 여성 위상을 올리기는 더 힘들어지면서, 

여성들이 페미니스트가 되거나 페미니즘 활동에 참여할 유인이 줄어들게 되었다.


생각해 보자.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건 내 남은 인생과 가치관을 결정한다는 중대한 의미이다.

패션처럼 페미니즘을 걸친 얼치기가 아닌 이상, 크게 고민한 다음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에서 활동한다는 건 관련단체에 후원하고, 강연도 듣고, 시위에도 나가는 등 

많은 금전적 비용, 여유시간 사용, 에너지 소모를 요구하는 일이다. 

어지간히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위상이 좋아졌다면? 

그냥 집에서 편히 인생을 영위하지 뭐하러 인생 낭비해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겠는가? 

지금도 아주 나쁘진 않게 살아가고, 

힘들게 페미니즘 운동해봤자 내 처지 개선도 힘들고, 개선해봤자 아주 미미한데. 

물론 여성이라고 겪는 불이익은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남자들도 불이익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냥 인생의 어려움으로 치부해도 될 정도까지 여성의 위상이 올라왔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부조리해도 참고 산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수가 갈수록 줄어가고, 여성단체나 페미니즘들도 서서히 몰락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하나. 

이런 시대에 페미니스트들이 될 사람들은 어떤 부류일까? 


1. 성희롱/성폭력 경험으로 인해 남성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거나

2.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욕하는 성질머리 더러운 성격이거나

3. 자기와 자기 부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성격을 가지거나

4. 머리보다는 몸이 앞서는 부류의 인간이거나

등등..


요약하자면 남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거나, 주변에서 안좋은 소리 들을 성격의 사람들이 주로 페미니스트가 될 것이다.

그래야 충분히 피해의식과 분노가 주입되어 페미니즘에 동참할만한 동기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남들은 편히 생각할 일을 나는 가만히 안 있고, 깊게 생각하기보단 즉흥적 감성이 앞서면

페미니스트로서의 기회비용을 모두 상쇄할 수 있다.


그렇게 페미니스트들은 피해의식이 강하거나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가 다수가 되었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은 점점 맛이 가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들의 사고 수준은 점점 떨어지고, 

행동은 점점 무모해지고,

정당성이란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점점 사소한 일에 과격하게 대응하고,

그들에게서 인간미라곤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 페미니즘의 나쁜 이미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온갖 패악질들을 설명한다.


 


페미니즘은 다시 옛날의 좋은 이미지를 되찾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론 당분간은 힘들 거라고 본다.

왜나하면 위에 길게 설명한 구도가 반복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페미니즘의 패악질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점점 올라갈 것이다.

논하는 수준은 개판이라도 적어도 주제들(성범죄, 여성에 대한 편견, 유리천장)은 페미니즘에 약간이나마 명분을 갖췄고,(한 예로, #Metoo운동의 방식은 비판할 수 있어도 취지를 비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대가 교체되면서 여자들이 고위직, 남성이 다수인 직종에 점점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의 명분은 약해지고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페미니스트 수질은 점점 악화되겠지.. 


물론 페미니즘이 완전히 개판을 쳐 반동으로 여권이 악화될 수는 있지만,

아직 그 가능성을 생각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페미니즘이 만약 완전히 몰락한다면,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페미니즘의 성공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1. 사실 여성은 이제 남성보다도 공부를 잘 한다. 성평등수준이 낮다고 여겨지는 국가에서도 벌어지는 현상이다. [본문으로]
  2.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성질들 중 본성이나 환경에서 기인한 비율은 1:1이라 한다. 이걸로 교육, 사회문화의 역할이 크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거꾸로 보면 남녀문제에서 교육이나 사회문화 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절반밖에 안 된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식은 거칠고 소홀하며 허위에 가득 차 있고 태만한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국의 역사에 대해서조차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상(=한국)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국을 분석하는데 당위와 연역과 도덕과 외과수술적인 언설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내재적으로 자국을 이해하려고 하는 소수의 성실한 언설은 부당하게 무시되거나 경멸되고 있었다.


- 오구라 기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조성환 역, 모시는 사람들, 2017, p.251-252


이 점에 유의하면서 한국의 (경제학, 사학) 연구자들이 보이는 공통의 결함을 지적하자면, 그들은 한국의 경제체제를 제약하고 있는, 그것의 비교적 특질을 깊숙이 각인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역사로부터 물려받은 비공식적 제도와 규범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적절한 관심조차 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중략)... 한국경제의 유형적 특질에 대한 국내의 논의가 경험적이라기보다 규범적이며, 전체적이라기보다 부분적이며, 심층적이라기보다 표피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음도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 이영훈 엮음, 『한국형 시장경제체제』,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p.25


(자칭) 지식인들이 쓴 한국사회 비평을 보면서 한숨나왔던 적이 많았는데, 그 이유를 위 두 구절이 너무나 잘 요약한 것 같다. 둘이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거 보면, 나와 비슷한 감상을 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보기에, 한국 지식인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가(How the world should work)'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이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How the world really works)'는 별로 논하고 있지 않다. 설령 논하더라도 그 수준은 별로 높지 않다. 개연성, 설명력이 떨어지거나, 근거로서 든 예시들의 사실관계가 틀려먹은 경우가 허다하다. 

'왕은 인의에 기초하여 정치를 하여야 한다',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적인 판단으로 구성된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일까.



물론 과거 한국은 빈곤과 억압으로 점철되었기에 당위적인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한국은 부패한 정치인, 빈곤, 독재 등의 거대악이 존재하는,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사회였으니. 그 요구를 정치인들이 받아들인 덕에 한국 사회가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처럼 거대악도 없고, 복잡한 사회에서 당위만 운운하는 건 문제다. 당위에 사로잡히면, 사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 소홀해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기 십상이다. 또 자기들끼리는 통할지 몰라도 남이 보기엔 터무니없는 도그마에 빠지기 쉽다. 이는 세상을 당위에 맞게 개선시키는 데 방해만 될 것이다. 



이제 한국 지식인은 당위를 일단 제쳐놓고, 자국을 엄밀하고 실증적인 방식으로 연구할 때가 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한국을 연구해볼 생각이다.  

Posted by 유월비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