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대만, 중국과 같은 동북아시아 지역이 아닐까.


적어도 내가 봐온 정치적 올바름 운동에 따르자면, 특정 국가의 문화가 높은 평가를 받으려면

1.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를 겪었거나(특히 서구 제국들에게), 생활수준이 가난하다고 불릴 만큼 낮거나, 해당국 국민들이 서구권에서 차별받는 이민자 지위에 있는 등 '언더도그마'가 발동될 곤궁한 상황에 있어야 한다.

2. 해당국의 문화나 가치관이 서구 좌파들 기준에서 힙해보이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위 두 요소 중 최소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둘 다 가지고 있지 않다.


1-1. 비서구 지역 중 경제적으로 제일 잘 나가는 지역이 동북아시아다. 한/일/대만 생활수준은 선진국 끄트머리인 남유럽급은 되며, 중국은 아직 선진국 급은 아니지만 아주 못사는 나라는 아니며 고도성장 중이다. 북한 정도가 예외다. 

1-2. 일본은 식민제국이어서 동정심은 커녕 욕먹기 딱이며, 남북한, 중국/대만은 식민지배를 겪었으나 일본에 당했기 때문에 문제인식 수준이 낮고,

1-3. 동북아시아 이민자들은 교육열이 높고 가정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어 서구권에서 인식이 나쁘지 않으며, 잘 성공하는 편이다.[각주:1]

2. 집단주의, 충효, 위계질서, 가부장제, 근면성실, 금욕과 절제, 교육열 등을 중시하는 동북아시아 문화와 가치관은 서구 좌파들에게 엄격하고 억압적으로 받아들여지므로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각주:2]


서구권의 정치적 올바름은 흑인/히스패닉/무슬림들을 위한 거지, 아시아인을 위한 게 아니라는 소리가 종종 나온다.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위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안 그래도 회의적인 정치적 올바름이 동북아시아 정체성 때문에 더더욱 싫어진다. 

  1. 교육열이 무섭다못해 대학 신입생을 점수로만 뽑으면 아시아인들이 독차지할 정도가 됐기 때문에, 아시아인에게 페널티를 주는 관행까지 있을 정도.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80924/1204815 이해 못할 짓만은 아닌데, 이런 지꺼리를 흑인이나 히스패닉, 무슬림들 상대로 했다면 좌파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본문으로]
  2. 꼭 유럽이나 북미 문화가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니다. 중남미 지역의 오늘만 사는 것 같은 방탕한 삶이나 만연한 범죄 및 마약문화는 특별히 나쁘게 보지 않는데, 좌파들은 68운동이나 히피들이 연상되는 이런 문화를 해방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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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들은 흔히 개발도상국이 선진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높고, 그 힘으로 개도국이 선진국 생활수준을 따라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고,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역사가 뇌리에 박혔다보니 더 그렇다. 현재진행형인 중국/인도/베트남의 성장사례가 있다보니 더더욱. 하지만 과연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 

내가 읽었던 책 세 권이 나이브한 통념을 반박했기에 그 내용을 소개한다.  


1.

 인구 가중치를 둔 1인당 소득(1인당 GDP)의 수렴 현상은 자료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는 최근 글로벌 불평등이 감소한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구 가중치를 두지 않은 각국의 1인당 GDP 자료에서는 21세기의 첫 10년을 제외하고는 소득 수렴을 확인할 수 없다. 즉 '전통적인 정의에 따른 절대적 수렴'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1970년대 GDP 대비 1970년~2013년 각국 GDP의 평균 증가율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그것이 억측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도표 4-3-a>는 아시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1970년 소득 수준과 그 후 증가율을 보여준다. 1970년 1인당 GDP 수준에 따라 장기 증가율이 상승하거나 하락하지 않고 있다. 회귀선을 그려본다면 1인당 GDP 증가율이 2%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수평을 그린다. 이는 고소득국가와 저소득국가가 같은 속도로 성장했음을 시사한다. <도표 4-3-b>는 아시아와 서유럽, 미국, 오세아니아(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한 서구 국가의 추세를 보여준다. 이 경우에는 회귀선이 매우 뚜렷이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모양을 그린다. 예외 없이 아시아 지역에 있던 최빈국들은 43년 동안 서구 국가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인구가중 수렴뿐 아니라 비가중 수렴 역시 아시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아시아 국가만이 고소득국가의 소득을 따라잡고 있다.

-브랑코 밀라노비치,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서정아 역, 21세기북스, 2017, p.232-233

<도표 4-3-a>와 <도표 4-3-b>

<도표 4-3-b>에서 볼 수 있듯, 아시아에서도 동아시아/동남아시아/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특히 높다.

한국 주변국가들이 특별히 경제성장을 잘 하는 셈이다. 태평양 서쪽 지역에 특출난 무언가가 있나? 

개인적인 가설을 내세우자면 동아시아/동남아시아/남아시아 국가들의 내정이 개도국치곤 그나마 안정된 편이라 그러지 않을까 싶다. 이 지역들은 적어도 중동/아프리카처럼 부족/종교/종파 문제로 내전을 벌이거나, 구 소련 지역처럼 소련 해체 후유증 수습에 급급하거나, 중남미처럼 극심한 정치분쟁으로 내전 벌이고 사회주의 정책으로 경제를 말아먹진 않았다. 

<표 4-1> 

인용문에서 언급한 자료는 아니지만 내용적으로 직접 관련된 표라 올려본다.  

보시다시피 아시아의 경제성장이 특별하고, 전세계에서 제일 경제성장률이 낮은 지역은 제일 못 사는 아프리카다. 『빈곤의 경제학』 서평에서 논한 최빈곤국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2.

 균제상태[각주:1]가 기존의 경제여건이나 초기의 조건과 무관하다는 첫 번째 성질은 경제성장에 잇어서의 수렴(convergence), 즉 소득이 낮은 국가가 높은 국가보다 성장속도가 더 빠를 것이고 그 결과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국가간 소득격차가 줄어들 것임을 예측한다. (중략) 그러나 [그림 18-6]에서 볼 수 있듯이 소득이 낮은 국가가 소득이 높은 국가보다 빨리 성장할 것이라는 절대적 수렴(absolute convergence)은 실제 경험에 의해 지지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솔로우 모형의 예측은 틀린 것일까? 

 [그림 18-7]은 1965년 당시 21개 OECD 국가의 일인당 국민소득수준과 1965년-1990년 기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여주는데, 터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각주:2] 절대적 수렴에 관한 솔로우 모형의 예측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결과는 OECD 국가들과 같이 경제적 환경이 유사한 국가들간에는 수렴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를 조건부 수렴(conditional convergence)이라 한다.

- 김경수, 박대근 저, 『거시경제학 제5판』, 박영사, 2016, p.610.

[그림 18-6], [그림 18-7]


+ 3. (2019.05.15 추가) 

 1820년부터 현재까지 각국의 소득 격차는 몇몇 예외적 경우 말고는 계속 벌어졌다. 1820년에 가장 부자였던 국가들이 가장 많이 성장했다. 오늘날 선진국의 소득은 평균 2만 5000달러~3만 달러이고, 대부분의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소득은 평균 5000~1만 달러인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소득은 고작 1387달러이다. 이러한 격차의 확대 현상은 그림1에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의 가로축을 따라 오른쪽으로 갈수록 1820년에 소득이 높았던 지역들이고, 이들의 성장률이 제일 높았다. 반면 왼쪽의 지역들은 초기의 소득이 낮은 지역들인데 성장률이 더 낮았다. 유럽과 영국의 식민지들은 1820년에서 2008년까지 소득이 17~25배 증가했다. 동유럽과 대부분의 아시아 지역은 초기의 소득이 낮았고 같은 기간에 소득이 10배 증가했다. 남아시아, 중동, 그리고 대부분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운이 나빴다. 1820년에도 가장 가난했고 같은 기간에 소득 증가도 3~6배에 불과했다. 이 지역들은 서구에 비해 더욱 뒤쳐진 것이다. 그림1의 '분기식(divergence equation)'은 이러한 패턴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소득 격차의 확대에도 예외가 존재한다. 동아시아가 가장 중요하다. 이 지역은 세계적인 추세와 반대로 지위가 개선된 유일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20세기의 가장 대단한 성공 사례이다. 일본은 1820년에는 분명히 가난한 나라였지만 서구와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또다른 극적인 사례는 한국과 대만의 성장이다. 비록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소련도 성공 사례에 속한다. 오늘날 중국은 이러한 사례를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로버트 C. 앨런, 『세계경제사』, 이강국 역, 교유서가, 2017, p.11-15

그림1


결론은 1.과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30년이 아닌 200년 단위로 경제성장을 비교했고, 그래서인지 잘사는 나라들이 경제성장을 오히려 더 잘했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



1,2,3에서 봤듯 개발도상국이 선진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아 생활수준이 국제적으로 수렴할 거라는 가설은 잘 봐줘야 애매하게 맞는 수준이다. 설령 맞는 편이라 할지라도 반례가 많이 나타나므로 모든 개도국들이 눈부신 경제성장 하는 양 이야기하지는 말자.

물론 이는 지역별 상대적인 경제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며,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절대적인 경제성장 및 생활수준 향상 자체는 『팩트풀니』 서평에서도 언급했든 사실이므로 오해하지 말자. 절대적인 경제성장/생활수준 향상이 특정 개도국들이나 지역에 집중된다는 게 문제다. 


  1. 솔로우의 유명한 경제성장모델에서, 생산함수 y=F(K,L)이 정해져 있을 때(K-자본량, L-노동량) 1인당 GDP는 장기적으로 특정 지점에 수렴하게 되는데, 이 때 균제상태에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2. 터키가 OECD 국가들 중에선 1인당 국민소득이 제일 낮은 편이라는 데 주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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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의 밑바닥엔 끝이 없다. 

어떤 곤궁과 비참함을 생각하든 그 이상의 비참함이 존재하는 곳이 과거와 현재의 지구촌이다. 문자 그대로 생존만 하는 삶 밑에는 굶어죽는 삶이 존재하며, 전쟁에서 총살당하는 삶 밑에는 전쟁에서 흉기로 고통스럽게 고문당하다 살해당하는 삶이 있다. 이렇게 문자 그대로 생존만 하거나 생존조차 위협받는 사람들이 지구촌에 10억 명이 넘는다. 그렇다고 세상이 나빠진 것도 아니며, 오히려 2에서도 말해냈지만 그나마 개선된 게 이 지경이다. 세상을 더 밝게 만들려면,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끔찍한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2. 인류는 분명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뤄냈다. 

세계 어느 곳이든 평균수명, 영아 사망률, 교육 수준, 구매력 소득 등 거의 모든 물질적 지표는 100년 간 엄청나게 개선되었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면 이를 인정하고, 이 발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3. 선진국에서 당연한 현상들이 개발도상국에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선진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개발도상국에선 버젓이 일어난다. 일상 공무를 처리하려면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게 필수적이라던가, 군부가 국가 경제 상당수를 장악하고 있다던가, 글자도 못 읽는 사람들(특히 여자)이 넘쳐나거나, 통합된 국민 개념이 존재하지 않거나, 국가의 공권력이 국토 전역에 미치지 못하고 민병대가 날뛴다거나, 복수심에 불타 이웃국가와 잘 지내긴 커녕 상대국을 고의로 골탕먹이려는 외교를 펼친다던가... 우리가 당연시한 개념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4. 개발도상국은 선진국과는 다른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치관적 기반을 가졌기에, 선진국에서나 통할 정책이나 개념을 개발도상국에 함부로 이식하려 하면 안 된다. 

선진국들의 역사 및 시스템은 일단 서구의 것이다.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중국과 미국의 가족문화가 다르며, 독일과 파키스탄의 정치시스템이 다르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서구권 국가들에게 서구식 정책/개념/시스템을 도입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 잘 해 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며, 이식하는 국가의 사회구조와 잘못 얽혀버리면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3과는 다른 이야기다. 3은 가치 판단이 들어간 선진국스러움의 문제라면, 4는 그냥 가치 판단과 무관한 차이를 말한다. 


5. 개발도상국 사람이나 집단이 선하고 고결할 거라 기대하지 말라.

좌파식 언더도그마의 영향 때문인지 약자 진영에 환상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슬프게도 진상은 정반대에 가깝다. 적어도 선진국들의 행위자들은 추태를 벌이더라도 최소한의 가면은 쓰지만, 개발도상국은 대놓고 추태를 벌인다. 개발도상국에선 추한 모습을 볼 각오를 하는 것이 좋다. 선진국 기준에서 후진적이고 천박한 가치관을 드러내는 데 서슴치 않는 사람들, 겉치르르한 명분을 내세우나 내부적으론 탐욕과 부패에 찌든 집단들을 수많이 목격할 것이다. 개발도상국에 관심을 가지려면 이런 모습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6. 우선 힘의 역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발도상국에선 사회가 노골적인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경향이 강하다. 슬프게도 사회의 윤리, 도덕적 수준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이 현실을 이해해야 사회 개선을 하든 뭘 할 수 있다. 윤리와 도덕을 따지자면, 선진국 기준에서 제대로 된 인간이나 집단을 찾아보기 힘들기에 더 그렇다. 


7. 무질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비선진국은 선진국에 비해 사회질서가 취약하기에,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진다. 이 경우 억제된 금기의 욕망들이 죄다 분출되면서 경제 붕괴, 파괴, 고문, 살인, 강간이 일상이 되는 지옥도가 열린다. 유고슬라비아나 르완다 내전은 그 극단적인 사례이다. 정도는 좀 덜하지만 소련의 붕괴도 그랬고.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제일 고통받는 순간은 이런 무질서의 상황이다. 그러므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내정에 개입할 땐 어떤 방식으로든 질서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무질서보다는 통제된 폭력이 훨씬 낫다. 


8. 성급하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위의 요소들 때문에 개발도상국은 살짝만 삐끗하면 바로 위험해질 수 있다. 1,2에서 말했듯 개발도상국 사정이 시궁창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지금이 최악도 아니다. 그러니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고, 목표도 소박하게 잡은 다음, 개발도상국이 다음 단계로 무사히 이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신중하게 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진정 개발도상국을 위한 행동이다.

 

9. 위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적 사고는 안 된다.

개발도상국이 이런 비참한 신세를 피하지 못한 건 지리적, 자연적인 난점과 운의 요소도 크게 작용한다. 진짜 좋은 조건에서 망해버린 나라들도 있지만, 성장 기회를 자신도 모르게 놓치거나 단순히 터가 안 좋은 데 세워져 가난한 나라들도 정말 많다. 스웨덴,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들도 아프리카 대륙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지리조건이 경제성장에 여러모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의 무능함과 한심함에 대해 비판할 건 비판하더라도, 이들의 조건을 생각해 무작정 깎아내려선 안 된다. 


10. 지옥처럼 보이는 세상에서도 삶의 의미는 있다.

이들의 삶의 수기를 읽어보면 진짜 눈물겹다. 이들은 비참한 현실에서도 더 나은 가족들의 삶, 더 나은 공동체, 더 나은 나라를 위해 죽기살기로 생활한다. 그리고 사회의 눈부신 발전에 공헌한다. 이런 노력을 보면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게으르다는 편견도 싹 사라진다. 더불어 고통으로 가득찬 삶의 진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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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주요 강국들은 미국, 유럽 선진국들(혹은 EU)[각주:1],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터키 정도다. 한국도 포함될 지 모르지만 일단은 빼보자. 

이들 국가는 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까? 일단 정치-경제-문화-가치관의 측면에서 바라보자. [] 안은 주로 영향력을 끼치는 분야이다. 


미국: [정치/경제/문화/가치관 모두] 세계 최강대국이며 최고 수준의 선진국으로서 시장경제를 세계에 퍼트리며,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전달한다는 사명을 띰. 그러나 독단적이고 오만한 태도와 실책으로 수많은 반미국가들을 양산해 옴. 

EU: [정치/경제/문화/가치관 모두] 미국과 비슷하나 총체적인 영향력은 미국보다 적으며 반감정도 덜함. 그러나 일단 관계를 맺으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미국보다 더 강조함. 

러시아: [정치/문화] 역사와 사회적 유산을 바탕으로 구 소련권에 영향력을 행사함. 중국보다는 나으나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지 않음. 타국 부분 합병, 간첩질, 대리전 참전, 사이버 정보전 등 비재래적인 국제정치 수단을 많이 사용함. 

중국: [정치/경제] 미국 다음의 최강대국으로 경제/군사적인 영향력이 주이다.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유라시아에 영향력을 뻗치려 함. 미국/EU와 달리 악명높은 독재국가라도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 등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지 않으며, 심지어 중국은 서구와 다르다면서 대놓고 거부하려 들어 서구와 마찰을 빚음. 문화 콘텐츠나 가치관의 측면에선 국력에 비해 매우 빈약하며, 과도한 민족주의적이고 공격적인 외교로 주변국의 반발을 많이 사고 있음. 

일본: [경제/문화] 경제력, 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뻗치고 있음.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나 미국과 EU처럼 앞서서 요구하지도 않음. 그러나 군대가 없고 미일동맹의 영향력이 커서인지 정치/군사적인 영향력은 국력에 비해 초라한 편. 과거사로 인해 타 아시아 국가와 사이가 좋지 않아 더더욱. 

인도: [정치/문화] 파키스탄과 정치/군사적으로 대립함. 서구와 많이 이질적인 힌두(+이슬람) 문화를 가졌으나, 형식적으로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서 중국/러시아처럼 서구와 충돌하지 않음. 발리우드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흥하나, 힌두교도는 남아시아 밖에 거의 없기 때문에 힌두교 소프트파워는 확장성이 떨어짐. 

사우디 아라비아: [정치/경제 일부/가치관] 세계 (수니) 이슬람의 종주국. 석유로 유명한 국가이다. 친서구 스탠스라곤 하지만 억압적인 왕정 독재국가이며, 원리주의적이며 구태스러운 와하비즘의 국가이다. 이런 와하비즘을 전 세계의 모스크나 재단을 통해 퍼트리고 있으며, 시아 종주국 이란과 대결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테러리즘을 지원하며 여러 내전에 개입한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이란: [정치/경제 일부/가치관] 세계 시아 이슬람의 종주국. 천연가스, 석유 등 천연자원이 많이 난다. 사우디보다야는 낫지만 종교적 폭정이나 독재정치가 무시못할 급이고, 시아파 종교 원리주의를 확산하며 사우디와 대결한다고 여러 내전에 개입하고 있다.  

터키: [정치] 오스만 제국의 후예로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주변국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케말리즘이라는 근대 이슬람의 희망인 사상을 갖고 있었으나, 에르도안 집권 이후 후퇴하는 추세.


정리하자면 이 정도다. 보다시피 국가별로 조금씩 다른 분야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그 양상도 다르다.

하지만 지금 주목하고 싶은 건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다. 


이런 말하면 욕먹을 지 모르겠지만 저 국가들 중 제일 긍정적인 영향력을 투사하는 국가들은 양적으로는 미국, 질적으로는 EU다. 이들 국가들은 많은 과오를 저질렀지만 수많은 개발도상국의 롤모델이 되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정치경제적 선진국 진입에 성공하고, 서구적인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에 익숙해진 한국인에겐 그렇게 보일 것이다. 

반대로 제일 부정적인 영향력을 투사하는 국가들은 양적으로는 중국, 질적으로는 사우디 아라비아다. 일방적인 외교로 쓸데없는 반감을 사는 나라와, 종교 원리주의와 테러리즘 그리고 전쟁범죄를 조장하는 나라를 도저히 좋게 볼 수 없다. 


한국은 어디쯤에 위치했을까? 

한강의 기적이나 전자제품이나 K-pop 같은 걸 생각하면 긍정적인 쪽에 가깝겠지만, 최근 불거진 K-pop의 어두운 면이나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는 K-Beauty,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기업들이 벌이는 문제들을 생각하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한국도 이제 세계적인 수준의 강국이 되었다. 한국의 위상과 평판을 지키고 향상시키려면 이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듯. 

  1. 노르웨이나 스위스처럼 EU 가입국이 아닌 유럽 선진국도 있으나, 절대다수는 상위 국제기관 EU의 결정 및 규약에 큰 영향을 받기에 편의상 EU로 통칭하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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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에 책임이 덜한 개발도상국이 제일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 최근에 서평을 쓴 『팩트풀니스』에선 개발도상국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곤 했는데, 편의상 관례대로 선진국-개발도상국 분류를 쓰겠다. 편하게 이 글에 나오는 1-3단계를 개발도상국, 4단계를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자. )

 

나는 기후 변화로 인류 문명이 붕괴된다는 극단적인 예측엔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부족하게나마 있는 데다, 과학기술이 발달해 그 피해를 상쇄할 거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선진국들은 그렇다.

물론 변덕스럽고 극단적인 날씨가 일상화되고, 식품값 폭등이 잦아지는 정도의 불편함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참으라고 하면 못 할 건 없는 수준이라고 본다. 온실효과를 차단하는 노력과 동시에, 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지 별 수 있겠나.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은 다르다. 그들은 기후가 변화하면 기아나 내전으로 국가 기반이 붕괴되는 대재앙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몇몇 분쟁국가나 최빈국에선 문자 그대로 문명이 붕괴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본다. 현재 시리아 내전도 기후변화로 가뭄이 만성화되면서 농촌이 붕괴되고 도시에 사람이 몰리게 되어 생긴 삶의 질 저하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http://harmless.egloos.com/3499833 참조.) 아직 평균기온이 1도밖에 안 올랐는데 벌써 내전으로 붕괴된 나라가 발생했다. 더 올라가면 얼마나 많은 국가가 분쟁에 휘말릴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예상하는 이유를 몇 가지 들자면.

 

- 선진국들은 싱가포르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냉대-온대기후에 위치하여 상대적으로 좋은 기후조건을 가졌다. 어지간히 기후가 변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못 사는 지역이 될 일은 없다.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건조기후나 열대기후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지역에선 조금의 기후 변화도 거주지를 사람 못 사는 지역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 개발도상국들은 생활수준이 낮고 축적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할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다. 

 

- 개발도상국들은 부족/인종 갈등, 종교 간 충돌, 빈부격차, 국민의식의 부재 등으로 잠재적 갈등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높으며, 이를 피 흘리지 않고 해결할 사회적 합의/시스템은 더더욱 부족하다. 그렇기에 작은 외부의 충격에도 큰 사회적 격변이 벌어질 수 있다.

 

-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못 사는 나라 한정이지만, 출산율이 높아 인구가 폭증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의식주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기후변화로 식량/수자원이 부족해지기라도 한다면 문자 그대로 대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화석연료를 낭비할 여력이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최근에야 낭비하기 시작했기에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없거나 적다는 사실이 결부되면 위 비극은 더 심각해진다. 

 

 

제발 내 우려가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화석연료 낭비하는 선진국이야 기후변화로 대재앙을 맞아도 '이기심의 대가를 치른다'는 도덕적 합리화라도 가능하지, 화석연료라는 문명의 이기도 누리지 못하다 선진국과 같은 지구에 산다는 이유로 대재앙을 맞는 개발도상국들은 대체 무슨 죄인가? 그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선진국들을 저주한다면 우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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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쓴 『팩트풀리스』 리뷰


위 저자는 우리가 세상을 A나 B 중 하나로만 보는 간극 본능을 가졌기 때문에, 세계를 자꾸 선진국 vs 개발도상국의 구조로만 본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현재 지구촌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내부에서도 생활수준의 격차가 크고, 같은 개발도상국이라도 과거와 현재의 보건, 생활수준 격차는 크게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1인당 소득수준(2011년 달러 기준)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세계를 4단계로 나눈다.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하루 2달러 미만             하루 2~8달러              하루 8~32달러          하루 32달러 이상


       약 10억 명[각주:1]                약 30억 명[각주:2]                  약 20억 명[각주:3]           약 10억 명[각주:4]


       절대빈곤층 레벨.      절대빈곤을 막 벗어난 레벨.        중산층[각주:5] 레벨.          선진국 레벨. 




참고로 국가별 등급 현황은 다음과 같다.[각주:6]





한국은 역시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등과 함께 4단계에 위치해 있다. 

중국은 3단계, 인도는 2단계, 북한은 아시아 꼴찌로서 1단계(....).


다만 4단계에 터키나 러시아가 있는 걸 보니 느슨한 선진국 기준인 듯?

 

보면 알겠지만 인구규모 어느정도 되면서 선진국인 나라 자체가 드물다.

30-50 클럽이란 말이 낯간지스럽긴 하지만 자랑스러워할 성과이긴 한 듯. 




그렇다면 한국은 언제부터 4단계에 있었을까? 


https://www.gapminder.org/tools/#$chart-type=bubbles에서 180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경제발전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1971년까지는 1단계, 

1972년 - 1986년까지는 2단계, 

1987 - 2003년까지는 3단계

2004년부터는 4단계다.


즉 이 지표로 한국은 2004년부터 선진국인 셈. 




신기하게도 위 시대별 분류가 한국의 사회상과 꽤 맞아 떨어진다.


일단 한국이 1단계에서 2단계로 올라선 1972년




계속 올라가던 1인당 칼로리 섭취량이 정점에 도달하고 안정되기 시작했다. 

음식의 질은 몰라도, 양적으로 배고플 무렵은 그 무렵 끝났다는 뜻.



그리고 2단계에서 3단계로 올라갈 1987년엔 



다들 알다시피 민주화 운동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다. 


물론 간선제 상황에서 전두환 임기가 끝나가는 데 맞춰 벌어진 운동이니 우연이긴 하다.  

하지만 우연이라고만 보기엔 많이 신기하다. 

위 각주에서 말했듯 민주화 필요조건이 3단계 이상 생활수준에 해당하는 중산층 형성인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리고 3단계에서 4단계로 올라간 2004년, 정확히 2004년은 아니었지만 이 무렵이었다.


스타벅스가 유행하면서 '왜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냐'는 식의 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커피나 몇품 등으로 사치부리는 여자를 일컫는 '된장녀'라는 멸칭이 유행어가 되었다.

생활수준이 선진국에 도달하면서 소비 문화가 발달했는데, 국민 의식은 소비문화에 익숙하지 못하다보니 생긴 촌극이다.


현재는 위와 같은 비아냥이나 조롱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식의 소비패턴에 익숙해졌고, 소비문화가 더 발달하면서 비싼 커피와 대비되는 싼 커피도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소득수준으로 세계를 네 단계로 나누는 건 재미있으면서도 설명력이 높은 좋은 지표인 것 같다.

이런 지표에 근거한 사회분석이 많이 나왔으면.

  1. 정확히는 8억명. [본문으로]
  2. 정확히는 37억 명. 반올림하면 40억 명이 되야 하지만, 그러면 10억명 단위로 반올림했을 때 네 단계 합이 80억이 나온다. 사실 현재 인구가 70억을 넘어 80억에 가까워지긴 했지만, 세계 인구가 70억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혔다보니 이렇게 냅둔 듯. [본문으로]
  3. 정확히 20억 명. 10억 명 단위로 할 때와 같다 [본문으로]
  4. 정확히는 8억 명. [본문으로]
  5. 선진국 내부에서의 중산층을 생각하면 안 된다. 1단계부터 4단계를 망라하는 지구촌 전체에서의 중산층을 의미한다. 흔히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으로 말하는 '중산층 형성'에서의 중산층은 이런 의미다. [본문으로]
  6. 원랜 저작권 문제로 저자가 따로 만든 사이트https://www.gapminder.org/에서 퍼오려 했으나, 전세계를 한눈에 보기엔 부적합해서 그냥 책을 촬영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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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연속으로 미세먼지가 나쁨/매우 나쁨을 기록한 기념으로 썼다.

한국에 미세먼지가 정말 심해졌는지에 대해 많은 논란은 있으나, 적어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미세먼지 문제가 누구의 책임인지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보통 언급되는 책임은 이 두 국가다.
1. 한국
2. 중국
실제로 논쟁도 1,2 사이에서 제일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니, 이 둘 말곤 미세먼지 논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개인적으론 이 두 요인에 대해선 굳이 말하지 않겠다. 전문가들을 포함해 이미 많은 사람이 숟가락 얹은 주제고, 쓸데없이 감정적으로 과열된 주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다른 것이다. 1,2간 논쟁만 봐온 사람들은 의외라 여길지도 모르는 책임대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3. 제3의 국가
여기서 내가 언급하고 싶은 국가는 북한이다. 실제로 한 저명한 연구에선 한국의 미세먼지는 한국발 52%, 중국발 34%, 북한발 9%라 분석했다. 물론 북한은 한국과 중국보다는 훨씬 작은 비중을 차지하나, 북한발 요인도 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해야한다.

굳이 북한 문제를 언급한 건, 북한발 미세먼지 문제는 향후 더 커질 가능성도 있어서다. 북한이 비핵화에 성공하고 중국, 베트남의 길을 걸어 산업화에 들어설 경우, 북한은 현대 중국이 그래온 것처럼 미세먼지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물론 현재 북한의 미세먼지는 극단적 빈곤으로 인한 낙후된 난방시설, 삼림 파괴 등이 큰 요인이기 때문에, 산업화되면서 이 문제들은 개선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확신까진 못하겠다.

이 시나리오에선 밑에서 말할 풍속, 풍향이 어떤지가 북한발의 비중을 결정할 핵심이 될 것이다.


4. 그 누구도 책임지기 힘든 요인
뭔 뚱단지같은 소리냐 하겠지만, 책임자를 지목해보라 하면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요인이 하나 있다.

바로 기후변화다.
온난한 날씨, 풍속 감소로 인한 정체된 대기, 비 안 오는 건조한 날씨는 봄겨울의 미세먼지를 심하게 하는데, 현재 기후변화로 세 현상 모두 발생하고 있다. 경험으로 다들 암묵적으로나마 아는 사실이지만, 최근 사회문제화된 미세먼지 문제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듯.

실제로 네이쳐지에 실린 한 연구에선 한국의 최근 몇 년간의 대기질 악화는 풍속이 낮아져 공기가 정체됐기 때문이라면서, 풍속만 낮아지지 않았더라도 대기질은 과거에 그랬듯이 계속 개선됐을 것이라 한다.

만약 이 기후변화 요인이 크다면 미세먼지 해결은 매우 골치아파진다. 글로벌화와 산업화로 전세계가 모두 책임이 있는 문제를 일개 중견국가 한국이 어떻게 해결을 이끌 것인가? 당장 세계 최강국 미국만 해도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인간이 대통령이랍시고 날뛰고 있는데.


미세먼지 문제는 정말 많은 게 꼬인 문제 같다. 1과 2는 대중적 인식이나마 있고,  확실한 책임대상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나 국제적 협조만 있으면 그나마 해결이 가능하다. 사실 이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나마 쉬운 문제다. 그러나 3,4는 대중적 인식조차 없고 인식이 있다 해도 어디서부터 건드려야할지 모르는 문제라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냥 저 미세먼지들을 들이마시는 방법밖엔 없는 걸까.
갑자기 좀 우울해진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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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개인주의 vs 집단주의 논쟁에서 개인주의 편이다. 집단주의가 개인을 억압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일부 존중하지 못하는 면이 있는데다, 서로가 서로의 삶에 깊게 뿌리박힌 네트워크적인 삶은 서로를 피곤하게 하며 예상치 못한 리스크를 불러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개인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은 왜 한국인이 집단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충분히 설명해내지 못하며, 집단주의를 단순히 '개인보다 집단 중시한다' 같이 윤리적인, 사회철학적인 수준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개인주의 vs 집단주의 문제는 윤리, 사회철학의 수준을 넘어선다. 집단주의적인 한국인과 개인주의적인 서양인들의 차이는 근본적인 인식론적 세계관의 차이 문제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여러 사고의 근원이 되는 기초적 사고방식 자체가 자체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한국인과 서양인들의 윤리나 사회철학도 거기서 파생되어 달라지게 되었다.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질 테니, 자세한 내용은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7863를 보라고만 하겠다. 

여기선 위 글에 나온 한 유명한 사례만 들어보자.






"당신은 닭, 소, 풀 중에서 두 개를 묶으라 하면 어떻게 묶으시겠습니까?"



여기서 대부분의 동양인들은 소와 풀을,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닭과 소를 하나로 묶는다. 

동양인들은 소가 풀을 먹는다는 '관계, 맥락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서양인들은 닭과 소는 같은 동물이라는 '범주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는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에서 나온 유명한 실험이다. 간단한 일 하나에도 드러낫듯 서양인과 동양인은 기초적인 인식 방식 자체에 차이가 있다. 그러니 도덕, 윤리, 철학은 얼마나 다를까?


한국의 개인주의자들은 위 책 『생각의 지도』를 읽을 필요가 있다. 집단주의가 왜 못마땅한지 제대로 알기 위해선 일단 집단주의적 가치관과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가이드라인을 잡는 데 매우 좋은 논점을 제공할 것이다. 



+ (정정) 실수로 닭을 양으로 써서 수정했습니다. 글을 먼저 쓰고 사진을 나중에 쓰다보니 이런 황당한 실수가..;;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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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읽다 흥미로운 구절이 있어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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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 간의 경쟁 관계는 소위 ‘조선족 혐오’가 아닌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동포 노동자들이 적잖은 일자리를 장악해 나가는 이유는 일을 더 싸게 하기 때문”으로 “내외국인 간 임금 격차를 없애야 이런 경쟁도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독일이 통일될 때 서독 노총에서 요구했던 게 동독 노동자들에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이었어요. 안 그러면 값싼 동독 노동자에게 모든 일이 쏠리고, 노동자들의 지위도 함께 지키기 어려워지기 때문인 거죠.” 모든 노동자의 처우에 대한 개선을 해나갈 때 내외국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함께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보는 다문화 가정 지원 방법론도 비슷하다. ‘다문화’로 별도 구획을 해 특정 지원을 해나가기보다는 보편 복지를 통해 많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도록 하자는 것. 박 교수는 “소위 다문화 지원을 하겠다면서 한 학급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만 뽑아 놀이공원으로 현장 학습을 보내 주는 식의 거친 지원이 너무 많다”라며 “이를 보는 다른 가난한 집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냐”고 꼬집었다.


“우리 사회에는 ‘다문화 가정 아이는 당연히 차별받는다’라는 환상이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의 어려움은 대부분 ‘다문화 가정’이라서가 아니라 ‘빈곤 가정’이라 발생한 것들이에요. 보편 복지로 빈곤 가정, 위기 가정을 적극 보살피면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죠.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다문화 가정 친구를 차별하면 안 돼요’라고 가르칠 게 아니라 ‘친구를 차별하는 건 나쁜 거예요’라고 가르치면 될 일이죠.”


출처: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122189036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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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에 100% 동의하진 않지만 발상 자체가 흥미로웠다. 

기사엔 외노자와 다문화가정 이야기만 나오지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 보인다.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소수자의 정체성에 몰두하기보단 보편주의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라... 

소수자의 정체성에 몰두한 정책은 다른 사회적 갈등만 양산시킬 뿐이다.



그러고보니 작년에 읽었던 불평등 관련 서적 구절이 떠오른다.

 실존적 불평등[맥락 상 집단 간 존재하는 자율성, 존엄, 자유, 권리 등의 불평등을 말한다]에만 외곬으로 초점을 맞추는 접근법이 항상 유익한 것만은 아니며 때로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 감소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데 성공하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따른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1차적 목표가 성별이나 인종 간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라 하더라도 전반적인 소득 불평등의 감소를 추진하는 편이 좀 더 바람직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이 시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수평적 불평등[집단 간 존재하는 불평등]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편, 전반적이고 일반적인 불평등을 방치하는 접근법을 취한다. 

 실존적 불평등의 해소에만 매달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적어도 세 가지는 있다. 첫째, 집단 간의 차이에 대한 논의는 곧바로 정체성 정치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변화를 일으켜야 유리한 집단끼리 뭉쳐 국민이 분열될 수 있다. 다양한 집단이 스스로의 상황에만 초점을 맞춤에 따라 공동 전선이 무너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집단의 불만이 해소되면 다른 집단의 곤경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둘째, 실존적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면 근본적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성매매의 합법화에 대한 논의를 예로 들어보자. 여성주의자를 비롯한 많은 이가 성매매를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로 간주하며 이를 금지하거나 성매매 종사자에 대한 교육을 통해 그만두게 하거나 주로 남성으로 이루어진 매수자를 처벌함으로써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성별이라는 틀에 얽매인 접근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음성화될 뿐이다. 또한 성매매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헛수고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예나 지금이나 성매매의 근본 원인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다. 이 세상에는 소득이 높은 남성과 가난하고 일자리를 얻을 가망이 보이지 않는 젊은 여성이 많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성매매가 국가적으로나 (섹스 관광에서 보듯이) 세계적으로나 극성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관건은 성 불평등 해소에 치중하기보다는 성매매의 경제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있다. 남성과 여성의 수평적 소득 불평등이 해소된다고 가정해보자. 여성의 졸업률이 남성을 앞서고 점점 더 부유한 여성이 늘어남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성 매수자의 90%가 남성이고 성 노동자의 90%가 여성인 현실이 성 매수자와 성 노동자가 '공평'하고 '성별 중립적'인 분포를 보이는 상황으로 뒤바뀔 가능성이 있다. 성 매수자나 성 노동자나 남녀 비율이 반반으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성매매 반대론자들은 이러한 성과에 만족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성매매가 성별로 균형적인 것으로 바뀐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통해 성매매 문제의 근본 원인이 남녀 소득 격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셋째, 실존적 평등은 정치적으로 비교적 손쉽게 추구할 수 있는 일이다(물론 보상도 크지 않다).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실존적 평등을 추진하면 우파 정치인과 보수주의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할 일도 없다.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의 기본 구도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실존적 평등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의미 있는 변화를 내기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법적 평등을 이루는 단계까지만 염두에 둔다. (중략) 정체성에만 치중하는 이들은 모든 사람을 동일한 출발선 위에 올려놓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그 선 위에 선 사람이 페라리 안에 있는지, 자전거를 타고 있는지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들의 임무는 모든 사람을 동일한 출발선상에 올려놓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들이 임무 종료를 선언한 바로 그 순간에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 『30년 세계화가 남긴 빛과 그림자 -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브랑코 밀라노비치 저, 서정아 역, 21세기북스, 2017, p. 305-308.

읽으면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왜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생각을 해 보니,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이 사회적 차별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경제적 하류/빈곤층의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각주:1] 빈곤/불평등 정책은 곧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을 위한 정책이다. 정체성 언급 없이도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는 셈이다. 


물론 불평등/빈곤 해결도 세금이 걸린 문제라 해결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문제의 복잡성과 극단주의자들 때문에 제대로 된 논의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 사회적 소수자/정체성 이슈보단 훨씬 쉬울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체성 놀음은 파면 팔수록 노답이라는 결론밖엔 안 나오는 것 같다. 


  1. 높다고 한 건 예외가 있어서이다. The Economist에 따르면 레즈비언은 이성애자 여성에 비해 소득이 더 높다고 한다. 임신 자체가 불가능해 임신으로 인한 소득, 승진, 커리어상의 불이익이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레즈비언이 이성애자보다 강자라 보긴 어렵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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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구의 인종주의자[각주:1]들과 달리, 한국인 인종주의자는 진지하게 자기 인종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는 않음.


미국, 캐나다, 호주, 서북유럽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진지하게 자기 민족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자기들이 제일 잘 살고, 세계에 '진보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전파하는 게 사실이니까. 

자기 민족이 최고라는 사고가 올바른지는 둘째치고, 충분히 그런 주장이 말 되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백인우월주의는 이런 현실 속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한국은 우월한 면모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국인 인종주의자들은 한국인이 최고라고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수사이거나, 한국인에게는 한국적인 것이 최고라는 신토불이 정신 혹은 북한과 자주통일을 이루자는 민족주의적 수사에 불과하다. 한국인이 백인, 일본인보다 우월하다는 글이 적게나마 있긴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도 진지하게 한국인이 최고 우등 인종이라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다. 한국이 저들보다 뒤쳐졌어도 이런 면에선 낫다는 일종의 정신승리적인, 열등감의 발로일 뿐이다.


한국은 일제통치와 분단, 6.25 전쟁으로 극도로 빈곤해지고 자존감을 잃어버린 과거가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은 미국, 일본을 롤모델로 삼고 배우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서구, 일본의 것=우월한 것이며 백인, 일본인=우월한 인종이라는 도식이 생겨났다. 그렇게 한국인은 백인, 일본인보다 아래니, 한국인은 그들의 위대한 문물과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발상이 도출된다. 한국인이 자랑스러운 인종이긴 하지만 백인, 일본인만한 존재는 아닌 셈이다. 


현재 한국은 서구와 일본의 수준을 많이 따라잡았지만, 완전히 따라잡지는 못했으며 과거에 생긴 가치관은 관성적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인종주의자조차 대놓고 자기가 백인, 일본인보다 우위라고 생각하진 않으며, 오히려 그들의 선진성을 본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2. 한국인은 국가위상이 올라가면서 인종차별의 절대적 피해자에서 절대적 가해자 쪽으로 빠르게 전이 중.


이건 한국 인종차별이 타국보다 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3.에서 보듯 그렇게 볼 여지도 있지만. 그보다는 위에서도 말했듯 한국이 많이 발전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종차별을 할 수 있는 권력/위치에 올라섰다는 뜻이다.


나는 신좌파들의 무조건적인 구조 타령에 신물 난 지 오래지만, 인종차별에 구조적인 요소가 크게 작동한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다. 인종차별은 구조상 갑인 사람이 저지르기 쉽다. 쉽게 말해서, 고용주 한국인이 노동자 중국인에게 "짱깨"라 부르기가 노동자 한국인이 고용주 중국인에게 짱깨라 부르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런 짓을 해도 잃는 게 더 적으니까. 물론 나는 후자의 시나리오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으며, 그 점에서 나는 신좌파들과 일부 의견을 달리한다. 하지만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빈도가 높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인은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인과 일본 정부에게, 해방 이후 미국과 독일에 이민갔을 땐 백인과 해당국 정부에 많은 차별을 받아왔다. 이는 과거 한국의 신문/문학작품에 많이 나타나 있다. 당시 한국인은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빈번했다. 

그러나 한국은 생활수준이 많이 올라가 굳이 그 고생을 해가며 백인/일본인 밑에서 일할 일은 많이 줄었다. 대신 한국이 해외에서 중국인(조선족 포함), 동남아 외노자들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그들을 차별하는 케이스는 많이 늘어났다. 이제 한국인은 피해자보다는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3. 극우정당의 존재나 혐오범죄같은 극단적인 수준의 인종차별은 적지만, 그보다 덜한 수준의 차별과 혐오는 심각함.


전자는 현재 서구사회 상황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한국은 갱단 문화, 폭력 시위, 마약 유행 현상이 적은데서 볼 수 있듯 문화가 온건하다보니, 인종주의적 사고가 혐오범죄까지 가는 일은 별로 없다. 또 극우정당이 득세할 정도로 외국인 비중이 높지도 않고.  


후자는, 외국인 비하발언에 대한 터부가 서구보다 약한 데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선 되놈, 짱깨라는 비하어를 대놓고 말하는 경우가 흔한데, 적어도 서구사회에선 공적으로는 그런 발언을 했다간 100% 징계감이다. 흑형처럼 '비하표현까진 아니지만 해당인이 불편하게 여길만한 표현'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고.  

아마 한국인이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고,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같은 인종주의 비판 담론이 학계든 언론이든 뜸한 편이라 그러지 않을까 싶다. 한국인이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된 역사가 짧기도 하고. 그리고 곧 언급할 4.의 요소도 있다.



4. 한국은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과거사와 국가분쟁으로 타국에 대한 반감이 생기는 경우가 빈번한데 그게 해당 국민에 대한 인종주의적 사고까지 번지는 경우가 흔하다.  

 

중국의 미세먼지, 중화패권주의로 인한 반감이 "착짱죽짱[각주:2]"같은 표현으로 번지고, 일본에 대한 역사적 악감정으로 일본 지진 피해자에게 "쪽바리들 잘 죽었다!"고 악플 다는 거에서 볼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다. 서구 선진국 중 이스라엘 정도를 제외하면 동북아시아나 그 이상 급의 화약고에 위치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 간 대립이나 분쟁은 거기에도 있지만, 그래도 한국-북한, 한국-일본, 한국-중국 급의 수준은 아니다. 프랑스-독일 간의 라이벌 감정이 심하다지만 적어도 과거사 문제가 상당수 해결되었으며, 두 국가 모두 한국급의 군사무장을 하지도 않으며, 문제 많다지만 형식적으로나마 EU에서 같이 활동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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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국의 인종주의는 서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모를 많이 가지고 있다. 


최근 신좌파 계열이 유행하면서 한국사회의 차별과 혐오에 대한 담론이 늘어난 느낌인데, 다 좋지만 한국 사회를 분석할 땐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좀 많이 감안했으면 좋겠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한때 "한국 학계의 서구의존성"을 성토하는 담론이 많이 나왔었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회의적이지만, 인종차별 같은 문제는 확실한 '탈-서구의존적인' 분석이 필요할 때이다. 

좋든 싫든 간에 한국은 서구와는 다른 환경과 역사를 가져온 사회인데, 인종차별 문제는 그게 강하게 드러나니까. 


또 무조건적인 강자-약자 도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강자와 약자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며, 약자라 해서 아무 언행이나 강자에게 해도 되는 건 아니다. 모든 윤리가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윤리는 보편적이다.  

백인/일본인이 한국인보다 강자라는 이유로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쪽바리"라 부르고, 백인들더러 "한국 여자들과 섹스하려 안달 난 양키들"이라 부르는 게 정당화될 순 없지 않은가? 




  1. 흔히 인종차별주의자로 부르지만, racism의 직역은 인종주의이다. 그리고 인종차별주의라는 단어는 반복하기엔 너무 기므로, 인종주의라는 단어를 스겠다. [본문으로]
  2. "착한 짱깨는 죽은 짱깨 뿐이다"의 줄임말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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