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10년간은 그럴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국내외적 배경을 설명하자면..... 


1. 경기불황과 불평등. 민심이 흉포해져서 극단적인 발상들이 인기를 끌기 쉬워졌다.


2. 인권을 앞세운 서구사회의 상대적 몰락. EU는 붕괴를 걱정해야 할 참이고, 미국은 고립주의 노선을 타고 있다. 그 상태에서, 인권을 내세우지 않는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이 상대적으로 부상했다. 타 국가들이 이를 인권이 주도하는 세계의 몰락으로 생각해도 할 말이 없다.


3. 세계화 시대와 인터넷의 부작용.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모두가 서로의 문화를 알아가며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근데 그 과정에서 '세계화로 우리 자랑스러운 문화나 가치관이 멸종될 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우리 문화'를 수호하고 타 문화를 배척하자는 정서가 커지는데, 그 과정에서 종교 극단주의, 동성애 혐오, 여성 차별, 권위주의와 같은 '인권 후퇴를 불러올' 문화들까지 우리 것이라며 부각되고 재평가되기 시작한다. 인터넷의 발달은 군중심리와 부족주의를 자극하여 이를 보다 용이하게 한다.


4. 유명무실한 국제사회. 중국이나 미얀마, 시리아 등의 명백한 인권 유린에도 무기력한 UN을 보라. 인권을 지키려는 착한 국가라면 모를까 나쁜 국가들이 인권은 개나 줘버리는 걸 막을 수가 없다. 미국이 고립주의 노선을 타면서 이는 더 심해질 것이다. 


5. 인권 개념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문제. 한 예로, 유럽 선진국들은 인권을 지킨답시고 이주민을 무작정 받아들이고 시민권을 적용했다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보통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보통 1만 언급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큰 관점에서 봐야한다고 본다. 인권의 후퇴는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합쳐져서 생기는 문제이다.  

어쨌든, 이래서야 인권을 지킨다는 게 손해라는 인식만 생긴다. 이런 불안한 잠재성은 국내외 여러 민족주의, 포퓰리즘 운동이 부상하면서 표면 위에 드러나고 있다.


물론 모든 부분에서 인권이 열악해지진 않을 것이다. 인권의 몇몇 부분은 확실히 향상될 것이다. 점점 많은 국가들이(아직은 절대다수가 서구 선진국이지만)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으며, 사우디조차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고 운전을 허용하며, 여성할례 실시율은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다. 인권 개념은 세계 많은 국가에서 깊게 뿌리박혔기에, 인권이 아주 심하게 망가지는 일은 없을 거라 장담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인권이 나빠지는 건 피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이민자의 지위는 약화될 것이며, 몇몇 국가들은 민주정에서 독재정치로 후퇴할 것이며, 지정학적으로 불안한 지역 몇 군데는 전쟁에 휩싸일 것이다. 또 문화적 정체성을 명목으로 문화적인 악폐습이 더 강해지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새해부터 뭔 우울한 예측인가 싶지만,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상 거기에 맞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당분간 국가 단위로, 개인 단위로 각자도생이 불가피해 보인다.



+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근래 몇년 새 인권을 중시하는 좌파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그들의 주장이 맞냐 틀리냐는 둘째치고, 그저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만 들 뿐.

인권에 관심 가지자마자 인권이 후퇴하는 꼴을 봐야 한다니 참...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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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으로 접한 몇몇 일화만 언급하자면

- 과거에, 서구식 세계화와 자본주의에 같이 반대한답시고 진보좌파들이 이슬람주의[각주:1]와 같은 편에 섬. [각주:2]

- 독일에서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폭행당하는 반유대주의 범죄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다들 네오나치즘, 반유대주의를 크게 우려했으나, 정작 범인이 무슬림으로 밝혀지자 그 우려의 시선이 동정으로 바뀌었다. "오죽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가 심했으면 저랬을까?" 따위의 시선들이 넘쳐남. [각주:3]

- 모 유럽 국가에서, 한 모로코계 가정의 아내가 남편이 자신을 폭행한다고 이혼신청을 했다. 그러나 법원은 모로코 가정문화 특성상 가정폭력이 흔하며 여자는 그걸 알고서 결혼한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여자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림. [각주:4]

- 이슬람교와 이슬람 사회의 전근대적인 면모를 엄격하게 비판한 인권운동가 아얀 히르시 알리가 미국의 한 대학에서 명예학위 수여를 위해 초청받았다. 그러나 진보좌파들이 이슬람 혐오를 조장하는 사람이라며 항의를 하는 바람에 중단됐다[각주:5]


.. 무슬림들의 문제지꺼리를 방치하는 선을 넘어 옹호까지 했으니, 이슬람 문제가 안 터지길 바라는게 이상하다. 처음 이부분을 읽으면서 어이가 없어 벙쪘었다. 

지금은 진보좌파들도 옛날만큼 이슬람에 우호적이지 않지만, 이미 문제가 많이 심각해진 상황이라 문제해결이 쉽진 않을 거다. 최소 10-20년은 고생할 것이다. 


+ 원래는 인용문을 정확하게 쓰려 했는데 책들이 도서관에 있어 내용만 적는다. 도서관에서 책 빌려읽으면 이래서 안좋아... 

  1. 이슬람을 국가 운영 원리로서 삼아야 한다는 정치화된 이슬람. 정교분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배교자와 동성애자를 처형하자는 등 전근대적이고 폭력적인 주장을 내놓아 문제가 되고 있다. [본문으로]
  2. 바삼 티비, 『이슬람과 이슬람주의』, 유지훈 역, 지와사랑, 2013 [본문으로]
  3. 바삼 티비, 『이슬람과 이슬람주의』, 유지훈 역, 지와사랑, 2013 [본문으로]
  4. 야스차 뭉크, 『위험한 민주주의 - 새로운 위기, 무엇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함규진 역, 와이즈베리, 2018 [본문으로]
  5. 아얀 히르시 알리,『왜 나는 이슬람 개혁을 말하는가』, 이정민 역, 책담, 2016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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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에 대한 책을 읽다, 개인적으로 압권이었던 장면이 있어 한번 옮겨본다. 

배넌의 확신에 따르면 새 트럼프 행정부의 첫 행보는 이민에 관한 것이어야 했다. 외국인 문제에서 트럼피즘에 대한 열광의 완벽한 예를 볼 수 있었다. 이 주제를 띄우면 흔히 외골수 과격파에게 의존하는 것이라고 묵살당했지만ㅡ제프 스세션스는 그런 까다로운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ㅡ트럼프는 많은 이들이 외국인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 자신을 따라왔다고 확고하게 믿었다. 트럼프 이전에 배넌은 이 문제에 관해 세션스와 연대했었다. 트럼프의 선거운동은 자국민보호주의nativism가 정말로 지속적인 관심을 끌 수 있을지 알아볼 수 있는 갑작스러운 기회였다. 그리고 그들이 승리했을 때 배넌은 자국민을 중심에 두는 정책에 열과 성을 다할 거라는 선언을 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걸 이해했다. 더구나 그것은 진보주의자들을 치게 떨릴 만큼 분노케 하는 이슈였다.

(중략)

진정한 목표는 진보적 견해의 위선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웬일인지 진보적 세계주의자들은 법과 규칙과 관습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개방적인 이민의 신화를 추구했다. 그것은 진보진영이 갖는 이중의 위선이었다. 왜나면 쉬쉬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불법 체류 외국인들을 추방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진보진영이 그걸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돌려받기를 원합니다. 간단한 겁니다." 배넌이 말했다.

배넌은 처음부터 진보적이지 않은 과정에서 진보진영의 자만심을 아예 벗겨내려는 의도로 행정명령을 추진했다. 그는 최소한의 혼란을 일으키면서 목표를 달성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의 혼란을 일으키려 했다. 진보주의자들을 붙잡아두는 데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중략)

1월 27일 금요일에 여행금지 명령에 대한 서명이 이뤄졌고 명령은 즉시 발효됐다. 그에 따라 진보 매체의 혐오와 분노가 쏟아졌고, 이민사회는 공포에 휩싸였으며, 주요 공항에서 격앙된 시위가 벌어지고, 온 정부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백악관에는 친구와 가족들로부터 설교와 경고, 비난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야? 지금 당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나? 이 일은 없던 걸로 돌려놓아야 해! 당신들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장나버렸어! 대체 누가 이 일을 책임지고 있지?'

그러나 스티븐 배넌은 만족했다. 그는 두 개의 미국을 가르는 선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그리기를 바랄 수 없었다. 그것은 트럼프와 진보진영 사이의 선이며 그 자신의 백악관과 아직 모든 걸 태워 없애버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백악관 사이의 선이었다. 

'우리는 왜 하필 금요일에 이 일을 해야 했지? 수많은 공항에 가장 큰 파장을 미치고 가장 많은 시위를 불러일으킬 날에?' 거의 모든 백악관 직원들이 그에 대한 대답을 요구했다.

배넌은 이렇게 말했다. "음... 왜나하면 잘나빠진 진보주의자들이 공항에 나타나고 소동이 벌어질 테니까." 그것이 바로 진보주의자들을 짓밟는 방식이었다. 그들을 미쳐버리게 하고 더 극단적인 좌파로 끌려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 마이클 울프, 『화염과 분노』, 장경덕 역, 은행나무, 2018, p.110-116.


총평

자칭 현대 선진국의 정치.jpg


사회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상대를 빡치게 만들고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라니. 참 신박하지 아니한가.

멀쩡한 사람들도 편 갈라 싸우게 만든다는 분열쟁점(wedge issue)의 개념은 알고 있었지만, 분열쟁점을 위한 정치는 자기 진영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정치적 술수일 뿐이다. 상대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인 건 처음 본다. 

포퓰리즘의 위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나지만, 그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듯 하다. 내가 졌다. 


+ 저런 발상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관련 부분을 추가로 인용해보자면, 


별것 아니지만 배넌의 정치 경력 전부가 정치 매체에 있었다. 그것은 또한 인터넷 매체였다. 다시 말해 즉각적인 반응에 지배되는 매체였다. <브레이트바트>의 공식은 진보주의자들을 질리게 해서 기본 독자들을 이중으로 만족시킴으로써, 혐오와 기쁨이 서로 부딪치는 가운데 클릭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적의 반응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갈등은 미디어의 미끼였고 이제 정치의 밑밥이었다. 새로운 정치는 타협의 기술이 아니라 갈등의 기술이었다. 

- 마이클 울프, 『화염과 분노』, 장경덕 역, 은행나무, 2018, p.111-112.

배넌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터넷과 SNS가 지배적인 시대의 정치 역학은 과거와 확실히 다르다. 포퓰리스트들의 득세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이 역학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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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는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이주화 이맘과의 인터뷰다. 

서구사회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이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극단화된다는 이야기가 많은지라, 한국의 무슬림들은 어떨지 평소에 궁금했었다. 그래서 한번 읽어봤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1810100052&page=1

눈여겨볼 만한 부분만 인용해보자면, 


  ― 대학에서는 무슨 공부를 했습니까.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국립이슬람대학교에서 아랍어와 이슬람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 꼴통스런 와하비즘의 본산지고, 해외에 지하디스트를 수출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사우디에서 수학했다고? 이거 좀 걱정되긴 하는데...  사우디가 이슬람의 발원지이자 두 성지의 수호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으니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극단적인 종교인들이 한국에 들어올수도 있겠다 싶다. 


  ― 이슬람 샤리아법과 국가의 실정법(實定法) 가운데는 어떤 것이 우선합니까.
  
  이주화 이맘은 “이건 정말 오해 없게 잘 써주셔야 하는데…”라면서 곤혹스러운 빛을 띠었다.

 “무슬림 개개인은 샤리아법을 우선적으로 따라야겠지요. 하지만 이는 ‘도덕법’으로서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고….” 

이주화 이맘은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샤리아법정이 인정되고 있고, 샤리아법이 실정법에 우선한다”면서 “우리는 그런 걸 바랄 수는 없고, 국가의 실정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무슬림은 샤리아법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샤리아법정이 인정되고, 그럴 정도로 이슬람 세력이 강해진 영국을 부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 일단은 실정법을 존중한다니 다행이긴 한데, 말의 뉘앙스를 보니 장기적으로 샤리아가 도입되길 바라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살짝 든다. 삐딱하게 생각하자면, 지금 샤리아를 요구했다간 사회에서 매장당할 기세라 입 닫는 거고, 무슬림들의 수가 많아져 세력이 형성되면 그때 요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그나저나 영국에선 샤리아법정이 따로 존재하는구나. 저 정도면 이슬람 이민자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을 듯. 


― 무함마드 만평사건, 샤를리 에브도 사건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종교와 자유의 문제, 그런 것인 것 같은데…. 자유가 사회악(社會惡)을 초래한다면, 그런 자유가 마냥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

=> 표현의 자유가 선을 넘어선다면 비판은 피할 수 없지만, 표현 내용을 비판하는 것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다. 물론 종교인 입장에서는 신성모독적인 내용이 불쾌할 수 있겠고, 신성모독적인 언행을 하는 건 개인적으로 어리석고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다만 그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자고 하면 반대다. 저 표현만으론 의견을 단정하기 힘드니 넘어가겠지만. 

그리고 샤를리 에브도 사건은 사람들이 열몇명씩 죽어간 대형참사다. 신성모독을 이유로 피해자를 죽인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며, 신성모독적인 표현을 한 것보다 훨씬 큰 문제다. 그 부분은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아쉽다.  


 ― IS(이슬람국가)나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테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무슬림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모두 정당성을 가지고 있고, 종교적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해진다고 해도 그런 만행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등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 고유한 목적에 의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코란》에도 ‘만일 누군가 지상에서 어떤 해악도 끼치지 않는 (선량한) 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살해한 것과 같은 것이며, 만일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을 구한다면 그것은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제5장 32절)’ ‘정당한 이유 없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살인을 하지 말라(제17장 33절)’라고 나와 있습니다.”

=>  최소한의 선은 지키는구나. 다행. 


 원래 이주화 이맘과의 인터뷰를 기획했을 때에는 이슬람과 관련된 여러 현안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있는 인터뷰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주화 이맘은 ‘교과서적 답변’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슬람 원리주의 내지 극단주의와 관련된 질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터키에 대해 언급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다행히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당선되어서…”라고 한 것이나, 그의 책 《이슬람과 꾸란》에 나오는 9·11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에 대해 “미군과 연합군의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도발 행위는… 재래식 무기로 대항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무슬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적할 수 없는 엄청난 횡포와 테러 행위에도 불구하고…”라는 대목에서, 무슬림으로서 오늘날의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 엿볼 수 있었다. 

=> 이슬람 사회들은 전반적으로 반미/반서방 성향이 강한데, 그 성향이 그대로 보이는 듯? 반미/반서방 성향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약간 진영논리처럼 느껴지긴 하다. 이라크 침공이야 명백한 미국의 실수였으니 비판을 피할 수 없겠지만, 반미 원리주의 탈레반에 신음하던 아프간 침공까지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도발 행위로 비판하는 건 지나치지 않나. 그리고 이슬람주의 성향에다 독재를 강화하는 에르도안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좀. 옛날에 반미 유행했을 때 흔히 보이던 레파토리라 이 사람만 탓할 순 없긴 한데...  


만약 이 사람이 종교인으로서 한국인 무슬림을 대변한다면, 한국의 무슬림들은 지금은 큰 문제 없지만 잘못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표현의 자유, 종교 율법 도입 문제에선 확실히 사회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무슬림들은 다른 한국인들과 무시못할 사고관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그게 저 이맘 잘못만은 아니다. 우리가 이슬람 사회와 무슬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소하게 다가오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관의 차이는 확실히 있으며, 자칫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이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무슬림들이 비무슬림과 함께 한국에서 화합하며 지내는 첫 거름이 될 것이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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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도 비슷하다고 하면 할 말은 없긴 한데, 

한국은 지리, 역사, 정치, 경제, 문화, 가치관, 종교 등 인류학적 문화상을 타국과 비교했을 때 

- 유형화했을 때 세계적으로 예외적이고 특이한 사례이거나

- 타국에서는 해당하는 개념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거나

- 수치화해서 세계적으로 비교하면 세계 1등이나 꼴찌에 가까운 극단적인 경우가 많거나

- 특정 이론의 반례가 되거나

이렇게 독특한 케이스로 분류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면

지리)

- 냉온대 기후 중에선 강우량이 매우 많은 편이고, 대륙성 기후라 연교차가 매우 큰 편.

- 전체 토지 중 산지-삼림 비율이 70%로 매우 높다. 

-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열손가락 안에 드는 극한의 인구밀도.

- 인종구성이 세계에서 가장 동질적인 편에 속해, 이론상의 단일민족에 매우 근접함.

역사)

- 역사적으로 왕조 하나하나가 굉장히 길게 지속된 편.[각주:1]

- 중앙집권적 통일왕조의 등장이 세계적으로 굉장히 빠름.

- 후삼국 시대같은 몇몇 예외를 빼면, 국경이 역사적으로 굉장히 안정된 편.[각주:2]

- 제국 중 유일한 비서구권 제국인 일본에 식민지배당한 국가

- 피식민지로 출발했지만 경제적, 정치적 선진화에 모두 성공한, 대만과 함께 세계에서 유이한 국가 -> 종속이론의 좋은 반례가 되어 종속이론을 학계에서 매장시킴

- 현재 몇 안 남은 분단국가

정치)

- 선진국 중 미국과 유이한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국가

- 정당이 이념보다는 사람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며, 이 이유로 정당의 이합집산이 굉장히 잦게 벌어짐

- 의외로 정당별 이념 차이가 크지 않음

경제)

- 재벌이라는 특이한 형식의 대기업집단

- 전세제도

- 선진국에서 일본과 함께 공채제도를 운용하는 유이한 국가

-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주요 국가들 중 제일 높은 편

- 가구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일 큰 편

- 생활수준, 관광업의 상대적 미발달을 감안할 때 자영업자 비율이 매우 높은 편

- 주식 배당률이 주요 국가들 중 제일 낮은 편

문화)

- 아파트 단지 문화

- 효, 족보, 문중, 동성동본, 제사, 친족 간 호칭 등 혈연/가족과 관련된 문화와 개념이 발달

- 세계 주요 언어 중 유례를 찾기 힘든 엄격한 존비어 체계

-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식 나이체계

가치관)

- 선진국에서 대만과 함께 물질주의 문화가 제일 강한 축


종교)

- 개신교, 가톨릭, 불교, 무속신앙, 무교(無敎) 등 종교구성이 다양하면서도, 종교 간 갈등이 거의 없음[각주:3]

- 높은 생활수준에 비해 무속신앙이 매우 발달한 편. 

기타)

- ActiveX+공인인증서로 도배된 인터넷 환경


생각해보고 찾아보면 더 많이 나오겠지만 일단은 여기까지만 쓰자.

암튼 분명한 것은 한국 문화는 타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개념, 성질, 특성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은 지리적으로 타국과 많이 떨어져 있어 사실상 고립됐고[각주:4], 오래 전에 중앙집권국가를 세운데다, 유일한 비서구 제국 일본의 지배를 받다보니 이렇게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할 수 잇지 않았나 싶다. 

  1. 고구려와 백제-700년, 통일신라-1000년, 발해-250여년, 고려-360여년, 조선-500여년) [본문으로]
  2. 통일신라 이후 지속적으로 북진하여, 압록강-두만강이라는 현 시점의 국경이 17세기에 결정됨 - 참고로 이것도 세계적으로 꽤 빠른 편. [본문으로]
  3. 무개념 개신교인들이 행패부리는 건 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종교 간 분쟁으로 의회에서 난투극이 벌어지거나 내전이 일어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본문으로]
  4. 안그래도 반도인데다 대륙과 연결된 북쪽지역은 지리적으로 사람들이 살기 척박한 곳이다보니;;;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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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scha Mounk라고, 세계적인 민주주의 후퇴 현상을 연구하는 미국의 정치학자가 있다. 

내 블로그 글(http://philomenabin.tistory.com/29)에도 그 사람 글을 인용했다. 


그 사람이 트위터에서 미국 정치적 올바름(PC) 현상에 대해 재미있게 분석했기에 내용을 정리해본다.

실제로 이 사람은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PC운동 등 정체성 정치를 비판한 바 있기에 중요한 내용이다.


출처는 https://twitter.com/Yascha_Mounk/status/1050032698755112961 타래글 전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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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 속에서 미국의 깊은 문화적 대립은 

깨어있는 집단(저연령,여성,비백인) vs 분노한 집단(고령,남성,백인) 구도를 갖는다. 

그러나 이런 구도는 거의 틀렸다. 


한 최신 연구에서 미국인들은 다음과 같은 7가지 집단으로 분류된다.


1. 급진 활동가(progressive activists)

2. 전통적 진보(traditional liberals)

3. 수동적 진보(passive liberals)

4. 정치적 무당파(politically disengaged)

5. 중도(moderates)

6. 전통적 보수(traditional conservatives)

7. 헌신적 보수(devoted conservatives)


6과 7은 미국 주류에서 벗어나 있다. 1은 평균적 미국인보다 더더욱 벗어나 있다. 

나머지 부류는 많은 공통점을 지니며 '지친 다수'를 이룬다. 


실제로 미국인들 절대다수는 PC운동에 대해 한 입을 연다. 

미국인들의 무려 80%, 5명 중 4명이 'PC가 이 나라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응답에서 연령별, 인종적인 차이가 의외로 적다는 것이다. 


연령별 차이. 


의외로 연령별로 여론의 차이가 별로 없으며, 모든 연령에서 70% 이상이 정치적 올바름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제일 젊은 18-23세는 그 다음으로 젊은 24-29세보다 더 정치적 올바름에 더 적대적이다!


정치적 올바름 문제를 가지고 "요즘 노인네들은 정말~" "요즘 어린 것들이 말이야~"라고 담론을 만들어봤자 

먹히지 않는다. 


인종별 차이.


더 신기하게도, 인종 간 여론 차이가 작으며, 모든 인종에서 70% 이상이 정치적 올바름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백인은 정치적 올바름에 있어 피해자인데도, 정치적 올바름에 있어 타 인종에 비해 우호적인 편이다. 

심지어 정치적 올바름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인 흑인도 75%, 4분의 3 가량이 정치적 올바름이 문제라고 본다.


백인이라서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한다/흑인이라 정치적 올바름에 찬성한다?

통계는 둘 다 헛소리임을 증명할 뿐이다.


그나마 PC에 대한 평가와 관련성이 큰 건 학력수준재산이었다.


고졸은 87%가 정치적 올바름이 문제라 보는데, 대학원졸은 66%만(?) 그렇게 생각한다.

사진엔 없지만, 1년에 5만 달러 미만을 버는 사람은 83%가 정치적 올바름이 문제라 보는데,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은 70%만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여전히 매우 높은 비율이 정치적 올바름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온다.

어떤 변수로 정렬해도 모든 집단에서 과반수가 정치적 올바름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가? 




바로 위에서 말한 1번, 급진적 활동가(progressive activists)이다.

이들의 특징은...


- 전체 인구의 8%를 차지하며,

- 1년에 10만 달러 이상을 벌 확률이 일반인의 2배이며,

- 대학원졸일 확률이 일반인의 3배이며,

- 오로지 3%만 흑인이다.

- 7번인 헌신적 보수 집단 다음으로 인종적으로 다양하지 않은 집단이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생각할 때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떠올리기 위해, 40세 미국 원주민 남성의 인터뷰를 들어보자. 

"일어날 때마다 무언가 바뀐 느낌이다. Jew인가 아니면 Jewish인가? Black인가 아니면 African-American인가?[각주:1]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무섭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나 폭스 뉴스처럼 혐오발언(hate speech)을 하기 위한 핑계로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는 보수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혐오발언에 부정적이다. 82%의 미국인이 혐오발언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고 한다. 그러니 PC에 부정적인 사람을 인종차별주의자(racist)로 몰아가지 말자. 

미국인들 대부분은 PC가 인종 혐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두 가지를 배우게 되었다. 



첫째로, 대화 규범이 사회적 분별의 기호로써 사용되고 있다. 동료 시민들의 대다수가 PC를 사회 정의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문화적 우월감에 젖어 우쭐거리면서 과시하는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한 여성의 증언을 참고하자면,

57세 미시시피 여성이 털어놓기를, "당신이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그저 옳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특정 대상에 용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그 대상을 차별하는 것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특정 대상을 현재 뭐라 부르는지를 알고 있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저 모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를 때 당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됩니다




둘째로, 우리의 동료 시민들의 관점과, 대다수가 좌파인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엘리트들이 정치적 현실을 이해하는 관점엔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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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분석을 통해 배운 것들이 있다면.


1. PC에 대한 불신은 만인공통 수준이다.

1-1. 심지어 PC의 수혜자인 흑인, 유색인종 심지어 원주민들도 PC에 부정적이다. 


2. 단순히 PC하지 않게 말했다고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는 것은 피해야 할 행동이다. 심지어 위에 인용문에서 보았듯 미국 원주민과 여성조차 이런 행태에 불편함을 표한다. 

PC한 사고를 가지고 있어도 정말 몰라서 PC하지 않게 말했을 수도 있다. 남을 함부로 몰아세우지 말자. 


3. 좌파 급진주의자들은 보면 볼수록 정말 답이 없다. 

3-1. 고학력이고 부유할수록 PC에 긍정적이라... 괜히 요즘 좌파들이 고학력 중산층 위주라고 욕먹는 게 아니다.

3-2. 그렇게 인종차별 반대하는 주제에 지들 집단은 백인들 투성이라니. 




p.s. 궁금해서 이 타래글에 답글 달린 걸 보자하니, 


"정치적 올바름에 부정적으로 여론이 나온 건, 그저 단어의 문제입니다. 이 용어를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을 겁니다. 정치적 올바름을 점잖게(polite) 말하기/소외된 집단(marginalized group)과 일반인 간의 사회적 평등을 주장하기 등으로 고쳐서 설문해보세요"


이런식의 답변들이 참 많이 보였다.





..... 얘네들은 대체 트럼프 당선되고 지금까지 뭘 배운건지 궁금하다. 

좌파들이 저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한 트럼프의 인기는 식지 않을 것이다.

  1. 전자는 유대인을, 후자는 흑인을 일컫는 두 표현이다. 뉘앙스를 1:1로 번역하는게 힘들어 영어 표현을 그대로 실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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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세계적인 불평등 석학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가 실제로 한 주장이다. 


 21세기에는 세금과 사회적 이전이 끼어들기 이전에 개입하는 전략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그러한 전략에는 자산과 교육 등 기초자본 불평등의 감소가 포함된다. 기초자본(개인의 부와 숙련기술)의 불평등이 완화된다면 재산 규모에 따른 부의 수익률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가정할 때 (세금과 사회적 이전을 차감하기 전의 소득인) 시장소득은 오늘날보다 훨씬 더 평등하게 분배될 것이다. 시장소득 불평등을 통제하고 장기간에 걸쳐 억제할 수 있다면 사회적 이전과 세금을 통해 정부가 하는 재분배의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재분배를 덜 강조해도 괜찮다면 가처분소득 불평등의 감소야말로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또는 그것이 기회 평등을 촉진하고 경제 성장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지지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높은 세율이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믿으며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이들도 만족할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대물림된 유산의 가장 유해한 측면을 제거할 수도 있다. 


 낮은 시장소득 불평등과 비교적 작은 정부를 결합한 경제 모형은 전례가 없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몇몇 아시아 국가에 존재하는 모형이다. <도표 5-1>은 특정한 서구권 국가와 한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고소득국가 세 곳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세금과 사회적 이전을 공제한)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는 세로축에, 시장소득의 지니계수는 가로축에 표시되어 있다. 한국, 대만, 일본의 가처분소득 불평등 수준은 서구 고소득국가와 거의 같다. 그러나 시장소득 불평등은 훨씬 더 낮아서 지니계수로 0.15나 차이난다. 결과적으로 주어진 가처분소득 불평등 수준에 맞추다보면 아시아의 정부 재분배가 크게 줄어들고 정부 기능 역시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타이완과 캐나다를 비교해보자. 두 나라 모두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가 0.33이다. 그러나 그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타이완은 재분배에 전혀 관여하지 않다시피 한다. 다시 말해 타이완의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에 대한 지니계수는 거의 같다. 또한 사회적 이전은 시장소득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에 캐나다는 세금과 사회적 이전 시스템의 규모가 커서 상대적인 수치로 따질 때 타이완의 3배나 된다. 그 결과 시장소득의 불평등 수준은 0.47, 가처분소득의 불평등은 0.33으로 낮아졌다. 


- 브랑코 밀라노비치,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서정아 역, 2017, 21세기북스, p.294-295.




인용문에 언급된 <도표 5-1>



표현이 딱딱하니 요약하자면, 

조세와 복지지원 등 재분배 기능을 통한 빈부격차 감소보다는 조세나 복지지원 이전의 순수한 시장소득, 세전 상태에서의 빈부격차를 감소시키는 게 좋다. 두 방법 모두 빈부격차를 줄이는 건 똑같고, 고부담 고복지가 가져올 비효율성을 우려하는 보수우파들도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대만 일본 등 동북아 선진국들이 그렇게 잘 하고 있다.



물론 이걸 보고 동북아시아 찬양을 외치기 전에, 연구되어야 할 지점들이 있다. 사실 저 책에서 저자는 저 부분을 짤막하게 언급하고 넘어가, 저 이야기가 가설 수준이며 차후 연구가 필요함을 암시했다. 


일단 개인적으로 든 의문만 따져도,

1. 동북아 선진국들의 시장소득/가처분소득(쉽게 이야기해서 세전/세후) 지니계수는 제대로 측정된 게 맞는가?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은 현 지니계수 수치에 대한 여러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2. 1의 대답이 Yes라면, 어떻게 동북아에서 시장소득(세전) 격차가 낮게 형성될 수 있었는가?[각주:1]

3. 2의 대답이 Yes라면, 동북아의 이 모델은 앞으로도 지속가능한가?

4. 3의 대답이 Yes라면, 서구사회는 동북아 모델을 본받을 수 있는가? 



가설 수준의 이야기여도 한국인으로서 동북아시아 모델이 찬양받는 걸 보니 기분이 묘하다.

서구사회가 동북아시아의 역사, 사회, 문화를 존중하자는 다문화주의적 주장이야 많이 봤지만, 그건 단순한 다름의 문제였는데 이건 단순 다름을 넘어 동북아시아의 불평등 관련 결과물이 서구 선진국보다 우수하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 부분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활발하길 기원한다. 

  1.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기초자본의 하나인 교육을 중시하는 문화, 근면함을 중시하며 범죄 등 반사회적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이게 심하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테니. 툭하면 교도소와 저임금 일자리와 실업을 왔다갔다하는 미국 슬럼 주민들을 생각해보자), 다들 가난한 상태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자산 불평등이 초기에 매우 낮았다는 사실 등이 있어 보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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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파들은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에 가해지는 폭력과 억압을 규탄하며, 폭력과 억압의 가해자나 동조자에게 죽창을 꽂으려 한다.

그러나 신좌파들이 정작 죽창 꽂게되는 부류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빈곤층이 부유층 가정보다 가정폭력에 취약하다. 신좌파들의 적인 트럼프와 브렉시트의 지지자는 저학력자에게 많다. 영국은 파키스탄보다 여성 위상과 성소수자 인권이 월등히 좋다.

따라서 신좌파들이 죽창질을 하면 그 죽창은 권력자보다는 그들이 보호해야 할 빈곤층,  약자에게 가는 경우가 많다. 약자들은 의외로 신좌파의 편이 아니다.

이 역설을 눈치챘는지 신좌파들은 무슬림, 여성 같은 몇몇 사회적 약자집단의 폭력과 억압에는 거의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농촌 거주자, 빈곤 계층 등 다른 사회적 약자집단에는 계속 죽창을 날려댔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극과 극이다. 거기에 두 방식을 한번에 하면서 비일관성이라는 추가적인 문제까지 생겨났다. 이 문제는 현재 서구 선진국에서 보수우파가 진보좌파 까는 18번 레파토리가 되었다.

이런 난제에서 벗어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죽창질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러나 신좌파들이 그럴 수 있을까.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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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사회를 꽃밭처럼 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가능하지도 않다. 

청년들에게 평생을 좌우할 공간의 한 면만 가르치는 것은 기만이며, 무책임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안 가르쳐도 사회생활이나 언론을 통해 다들 어두운 면을 인지하게 된다. 옛날처럼 정보가 통제된 사회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학생들은 "어른들(기득권)이 우리를 속였다"는 배신감에 사로잡히기 쉬우며, 이는 극단적인 운동과 사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대한 교육은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세상의 어두운 면을 숨기고 싶겠지만, 어느 정도는 고백하듯 말해야 정의로우며 청년에게 제일 바람직하다.

사회문제를 인식함으로서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길러내고,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자세를 배우고, 

더 나아가 사회문제에 개인적으로 맞닥드렸을 때 적극적인 대처 능력을 길러낸다. 

이런 교육은 정의로우며, 청년들에게도 최선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은 시민의식을 함양하고 사회를 개선하려는 건설적인 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회를 꽃밭처럼 가르치는 교육만큼이나 문제적이다. 

다름아닌 미국의 최근 교육이 그렇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정치 관련 분야에서, 많은 교수들이 학생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 분야의 교수들은 미국 정치제도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보다, 우선 학생들이 정치제도에서 많은 부정의와 위선을 찾도록 하는 일에 전념한다. 

 이런 반사 작용에는 각 학문 분야마다 다른 형태를 띤다. 많은 영문학과에서는 고전 작품에서 인종차별주의, 식민주의, 가부장제를 들춰냄으로써 계몽의 가치를 해체한다. 역사학과에서는 정치 발전의 담론이 거짓임을 밝히고, 자유민주주의가 엄청난 부정의를 양산했음을 증명한다. 사회학과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빈곤 문제와 미국의 약점에 주목하며, 미국에 남아있는 차별적인 양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학과별로 보여주는 이러한 접근은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의 결합된 효과는 학생들에게 우리의 정치제도를 무시하는 것이 지적 교양의 증표라고 느끼게 한다. 영어를 전공한 발고 호기심 많은, 어느 여학생이 이런 부분에 있어 나에게 매우 혼란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는 민주주의가 계몽주의의 창조물이고, 민주주의는 계몽주의의 가치가 널리 받아들여졌을 때 작동한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몽주의가 매우 잔인했었고, 계몽주의의 가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이것은 계몽주의에 대해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해야 함을 뜻하는가, 아니면 민주주의에 대한 무의식적인 헌신을 버려야 함을 뜻하는가? 

 나는 그녀가 발견한 갈등들이 실재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또한 민주주의와 계몽주의 모두를 믿거나 또는 믿지 말하야 한다는 의견도 절대적으로 옳다. 물론,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만들어낸 지적 전통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그녀가 결국 깨닫기를 바랐다.

(중략)

 결과적으로 많은 곳에서, 시민이 반(反)시민이 되어 버렸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만연한 부정의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에 젖어들고, 계몽주의의 '문제적인' 가치들을 해체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교사와 교장들은 학생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자랑스런 수호자가 되도록 북돋는 시민 교육을 하기가 어렵다.


- 『위험한 민주주의 - 새로운 위기, 무엇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야스차 뭉크 지음, 함규진 역, 와이즈베리, 2018. p.317-319.


위에서 보듯, 무분별한 사회비판 교육은 학생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주입시켜 학생들이 버려서는 안 될 가치나 사상을 버리게 만들고, 가져서는 안 될 가치나 사상을 가지게 만들 수 있다. 인용한 글에 나오는 예시를 들자면,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와 관용을 포기하고, 권위주의 정부를 옹호하거나 적이라 인식되는 소수자 집단에 대한 권리 탄압을 원하게 만들 수 있다.[각주:1]

 

이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청년들에 이제 익숙해진 헬조선론이나 레디컬 페미니즘은 위 잘못된 선례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회에 대한 무분별하고 근거 부족한 분노와 혐오를 충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헬조선론이나 레디컬 페미니즘이 거론한 사회문제들엔 실제로 심각한 문제인 것도 몇 있다. 그러나 그런 주제에서도 이들은 민주시민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걱정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된 시민 청년들이 나타날 수 있을까.  



  1. 청년들이 기성세대보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회의를 가지고 극단주의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것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위와 같은 그릇된 교육도 일조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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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한국은 일본보다는 대만이랑 비교돼야 맞다.

정치구조, 역사, 경제구조, 사회문화 등을 감안하면 한국은 일본보단 대만과 구조적으로 더 유사하다. 


일단 내가 아는 것만 말하자면... 


- 두 국가 모두 중화인민공화국[각주:1], 일본에 비해 국가 체급이 작다. 한국의 영토는 일본의 25%, 인구는 40% 수준. 대만의 영토는 일본의 10%, 인구는 20%. 


- 두 국가 모두 피식민국가였다. 심지어 식민지배의 주체도 일본 제국으로 동일하다. 


- 두 국가 모두 분단국가이다. 각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과 맞서고 있으며, 이 맞서는 과정에서 역사가 만들어지고 국가적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 두 국가 모두 가난한 독재국가에서 민주적인 경제 선진국으로 크게 발전하는 데 성공했다. 피식민국 중 이 정도의 눈부신 성과를 거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한국과 대만이 유이(唯二)하다.


- 두 국가의 생활수준이 매우 비슷하다. 1인당 GDP(PPP)로 따지면 대만이 한국보다 확실히 높으나, 이는 대만의 세후소득 등을 감안할 때 GDP(PPP)의 한계로 해석하는 게 맞아 보인다. 1인당 명목GDP나 HDI[각주:2]으로 보면 거의 비슷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이 대만보다 조금 높지만, 세계 200개 국가 중에선 정말 비슷한 편이다.


- 두 국가 모두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국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민간영역에 상시적으로 간섭하고 민간을 규율하는 국가자본주의 성향이 강하다. 이는 한국과 대만의 경제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영향을 끼쳤다. 


- 둘 모두 동북아시아적 집단주의, 유교문화를 공유하여, 가치관이나 국민성이 매우 유사하다. 일본도 동북아시아적 문화를 공유하나, 지리적/역사적 이유로 동북아 국가 중에서는 일본만의 고유한 문화가 발달했다. 실제로 Hofstade의 연구에서는 한국인과 제일 비슷한 국민성을 가진 국가가 대만인이라 한다.[각주:3] 전세계 국가별 국민들의 가치관, 세계관을 조사하는 학술적 프로젝트 World Value Survey에서도 한국과 대만은 매우 비슷하게 나타난다.[각주:4]


- 한국과 대만 모두 식민지배의 연륜(?)이 없고, 성장이 늦다보니 학술이나 사회자본 수준이 타 선진국에 비해 낮다. 보통 학술과 사회자본 수준이 높아야 제국이 될 수 있고, 식민 지배를 통한 경험으로 더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많이 올라왔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편을 듣는다. 저신뢰 사회인 것도 한국과 대만이 비슷하며, 부정부패도 둘 다 선진국 중에서는 심각한 편에 속한다. [각주:5] 


[2018.09.14 추가] - 그래서 학계의 미국 의존성이 심각하다. 한국은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학 대학원생이 많은 편인데, 대만도 인구비례로 보면 비슷하다.  


- 인구구조가 한국과 대만이 매우 유사하다. 현재의 출산율이나 노인인구 비중, 중위연령도 비슷하고, 미래 추계로도 인구 정점, 미래의 노인 인구 비중 등이 상당히 흡사하게 나타난다. 인구구조의 면에서 일본이 한국의 미래라면 대만은 한국의 거울이다. 


- 분단이라는 안보적 상황으로 오랫동안 징병제가 유지되어왔다. 한국이야 다들 아는 대로고, 대만은 2018년에 완전 폐지했지만 꽤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다. 집단주의적이며 국가주의적 교육을 통해 군 입대가 당연시되었기 때문에 군대가 개인의 삶,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컸다. 복무기간도 긴 데다 병역을 회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두 국가 모두 타 징병제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회복무요원[각주:6], 산업기능요원같은 다양한 형태의 대체복무가 존재했다. 심지어 병영부조리나 가혹행위, 군 의문사 등 군대문화의 병폐가 심각했다는 것도 비슷하다고 한다. 


[2018.09.14 추가] 

- 국가원수 두 명이 재판을 받거나 수감 중이다. 민주화 이후만 보면 한국은 이명박, 박근혜가 대만은 천슈이벤과 마잉주가 수감 중이거나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두 명 모두 2018년 9월 14일 기준으로 전임과 전전임이라는 것까지 똑같다!!


[2018.09.14 추가] 

- 구직난이 심각하며, 두 나라의 실업률과 청년실업률이 각각 4%, 10-12% 남짓이라는 점이 비슷하다.[각주:7] 구인난을 겪고 있는 다른 동북아시아 선진국 일본과는 대조된다. 


[2018.09.14 추가]

- 두 국가 모두 번체자를 쓴다. (비밀댓글 제보)


등등...


대만은 정말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보면 볼수록 흥미로운 나라다.


그래서 대만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등을 공부하려 하는데 자료 찾기가 쉽지 않다. 


대만은 국제적 분쟁지역이고 하필 세계 강대국 중화인민공화국(...)과 맞대고 있다보니, 왠만해선 양안관계의 틀 속에서 접근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도 한반도라는 세계적인 분쟁지역에 있지만, 한반도 분쟁과 관련없는 한국 자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한 것과 대조된다.

또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존재로 인해 국제적으로 국가 취급도 못 받다보니, 각종 국제적인 통계나 지표에서 자료가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다음 달에 대만으로 여행가는데, 대만에 대한 이해는 거기에서 시작해도 될까나. 대만에서 사는 것과 대만을 여행하는 건 전혀 다르다는 건 유념해야겠지만. 

  1. 중국이라고 쓰면 대만의 정식명칭 중화민국과 구분하기 어려워서, 원래 정식명칭인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쓴다. [본문으로]
  2. Human Development Index. 1인당 GDP, 평균 수명, 평균 교육기간을 지표화해 측정하는, 개인의 후생수준을 나타내는 공신력 있는 지표이다. [본문으로]
  3. https://blog.naver.com/hong8706/40202778574 참고. [본문으로]
  4. http://www.worldvaluessurvey.org/images/Culture_Map_2017_conclusive.png 참고. 가로축은 물질주의적 가치관(좌측) 대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우측)이다.세로축은 전통-종교적 가치관(하측) 대 세속-근대적 가치관 (상측) 가리킨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한국과 대만은 서로 딱 붙어 있는 수준이다. 두 국가 모두 세속-근대적이며,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이 강하게 나타난다. [본문으로]
  5. 엄밀히 말하면 대만의 신뢰/청렴도수준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좀 더 높다고 한다. [본문으로]
  6. 사실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한국인들이 당연시하지만, 국제적으로는 ILO 협약 29조에서 말하는 강제노동에 해당된다. 개인에 군사 업무와 무관한 분야에 의무를 부여하는 행위는 강제노동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최근까지 유지해온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대만(올해부터 폐지)가 유이하다. 이런 면에서 한국과 대만 징병제의 독특함(?)을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7. 한국은 http://hankookilbo.com/v/ce8756fc79a44fdba82290683ec9e3cd 참고. 대만은 http://shindonga.donga.com/3/home/13/1357496/1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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