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진지하고 학술적인 글만 썼으니 일상도 좀 이야기해보자.


얼마 전 칵테일바에 인생 처음으로 들르게 되었다. 인생 처음으로 칵테일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바 분위기가 뭔가 독특해서 흥미로웠다. 소주나 막걸리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달콤한 맛도 그렇고, 은은하게 어두운 조명도 그렇고, 오는 사람들도 흥미로웠는데, 내가 주목한 건 바텐더들이었다. 

이 바엔 바텐더가 여럿 있었는데, 남자 바텐더는 여럿이고 여자 바텐더는 단 한 명이었다. 그런데 남자 바텐더들은 손님들이랑 가볍게라도 이야기를 하는데 여자 바텐더는 진짜 무뚝뚝하게 일만 했다. 심지어 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이. 

왜 그럴까 생각했었는데, 머릿속으로 내린 결론은 씁쓸했다. 

"조금만 적극적으로 말 걸고 미소 보여주면 작업걸고 말 막하는 진상들 때문에 일부러 저러는 것" 

안 그래도 개별 메뉴판 겉표지에 '바텐더도 사람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하주세요'라는 식의 간곡한 부탁까지 적혀 있었던지라 그렇게 해석이 되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이런 쪽에 더 취약하겠지. 남녀공용 진상짓에 더해서 성희롱이나 작업까지 당할 테니. 

그래서 기분을 살짝 잡쳤다. 그리고 여자 바텐더에게 말 걸 타이밍만 기다렸다가 대화를 나눴는데... 

여자여기서 일하는 게 바텐더 인생 첫 날이었다.


진상짓에 대한 적응 이전에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하니 표정이 저럴 수밖에..  

다행이면서도 뭔가 마음이 허탈해졌다. 

====================================================================

물론 저 추측이 맞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그 가능성은 중요하지 않는 게, '매사에 진지하다'는 지적을 듣는 인간인지라, 그런 지적이 맞는 말이라는 확증만 더 생겨 버렸다. 여성 바텐더의 무뚝뚝한 표정에서 진상 손님 문제를 바로 생각해냈으니 더더욱. 머리속이 착잡하기까지 했었던지라 빼도 박도 못한다.  

매사에 너무 진지한 걸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 그러고보니 이 글도 너무 진지빨고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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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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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 맥락 이해를 위해 밑의 표현 일부를 수정했다)

독자는 4단계, 즉 세계를 생활수준으로 4등분할 때 제일 높은 단계의 삶을 이미 알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4단계 삶을 살 것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4단계 삶을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고소득층의 삶을 사는 사람은 다른 세 단계 삶 사이의 큰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4단계 사람이 다른 60억 인구의 현실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 

-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이창신 역, 김영사, 2019, p.58

당신은 특별한 나라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사실로 미뤄 당신은 아마 나와 마찬가지로 연소득이 1만6000달러 이상일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세계 인구의 상위 10%에 해당한다는 뜻이고, 이는 특별한 일이다.

- 윌리엄 맥어스킬, 『냉정한 이타주의자』, 전미영 옮김, 부키, 2017, p.42


옛날부터 독서를 즐겨온 입장에서, 출판사의 베스트셀러 홍보하는 데 흔히 쓰이는 문구가 "OO개국에서 ㅁㅁ개 언어로 번역!"이었던 걸 기억한다. ㅁㅁ의 숫자는 보통 10에서 시작했고, 많아도 보통 50을 넘기지 않았다. 참고로 세계 언어는 6-8천개 정도로 추정된다. 전세계적 베스트셀러조차 세계 언어의 1%를 포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구나. 그마저도 책을 살 구매력과 도서 인프라가 되는 선진국 언어에 집중될 거고. 

애독서가로서 씁쓸한 현실이다. 저소득층 도서를 지원하는 기부가 있으면 해봐야겠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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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6438732&start=slayer

중국 학계의 석학으로서, 중국은 서구와 다른 독특한 국가 모델을 가졌음을 자신있게 설파하는 책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홍콩 사태는 잦아들 일이 없는 상황에서, 중국을 제대로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어 읽어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중국 정부, 학자, 일반인들이 정치와 사회, 역사에 대해 내놓는 의견을 들으면, 저들과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산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독재정권에 우호적이고 중화사상에 강한 이들을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인상이 더 확실해졌다. 중국인들과 중국 정부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을 수용하지 않으며, 동북아시아 및 서구 선진국과 그 점에서 확실히 다르다. 단순히 한 학자의 견해로 치부할 수도 없다. 이 책은 중국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으며, 여러 베스트셀러를 저술했고 여러 상을 수상받았고 여러 요직에 있는 중국 '석학'에 의해 쓰여졌다. 중국의 정치 시스템 특성상, 저자의 견해가 중국 공산당과 크게 충돌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편의상 이 책의 내용을 중국 정부의 공식 견해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대체 어떤 나라인가? 저자에 따르자면, 현대 중국은 수천년에 걸쳐 형성된 중국 특유의 역사, 민족, 인구, 문화에 근거한 민족주의를 통해 형성된 문명형국가다. 중국은 고대 4대 문명 중 유일하게 후대로 이어진 문명이며[각주:1], 진한 시대에 이르러 세계 최초의 거대 제국을 이뤄내는 성과를 이뤄냈고, 전통적으로 인구/영토/민족/문화의 규모가 엄청났으며, 서구에 앞서면 앞섰지 절대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타 국가와는 구분되는 고유한 문명성을 지닌다. 이렇게 독특한 역사적 특징에 근거한 국가를 문명국가라고 하며, 중국의 이러한 문명국가로서의 특성은 근대를 거치면서 전체 인민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묶는 민족국가 개념과 결합되어 문명형국가로 발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인류 보편이라 여겨지는 가치관을 추구하기보다는, 타 문명과 구분되는 중국만의 독특함과 저력에 근거하며, 이에 근거하여 정치/경제/사회/역사/문화/가치관 등 시스템 전반을 만들었다. 수천 년 간 서구 전체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저력을 가졌던 중국인으로서의 포부가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중국의 기본적 특징을 정의한 후, 중국의 세부적인 문명성을 전통적인 중국철학 및 국가 시스템에 근거하여 설명하며, 이를 현대 중국의 시스템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관점에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적 국가시스템과 가치관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논하며, 중국식 시스템과 가치관의 위대함을 설파한다. 대충 기억나는 몇몇 핵심만을 묘사해보자면...

- 중국은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무리하게 민주화했다가 국가 자체가 붕괴하여 하나의 중국이 해체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 중국은 과거의 과거제도의 예를 따라 현능주의(meritocracy - 쉽게 말해 능력주의) 방식으로 엘리트를 선발하며, 이는 서구의 정치제도보다 우수하다. 

- 중국은 중용과 실용성, 점진주의에 근거하여 마오쩌둥 때처럼 과도한 혁명은 지양하고, 장기적이며 점차적인 틀에서 국가를 발전시키고 있다.  

- 서구식 민주주의는 정치제도의 '형식'에만 얽매여,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실제 정치의 내용에는 무관심하다. 실제로도 섣불리 민주화한 개발도상국들 상당수가 엉망진창인 내정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선진국 정치조차 여러 혼란을 겪고 있다.  민주 대 독재의 구도가 아니라 좋은 정치 대 나쁜 정치로 봐야 한다. 

- 위의 관점에서, 중국은 민생을 중시하며 민본주의를 주창하며 국민들의 의식주 문제 해결에 매우 출중한 좋은 정치를 하고 있다. 

- 그 외 셀 수 없이 많은, 중국 고전을 인용한 정치 철학과 제도들. 

읽어보면 알겠지만 중국의 문명성과 시스템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흐르며, 자기들을 서구중심주의적인 가치관으로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서구의 '오만함'에 대한 반발심리가 글 곳곳에서 느껴진다. 위에서도 말했듯 한 두 번 본 견해가 아니라, 중국인들의 이런 마인드는 숙명인가 싶을 정도다. 저런 마인드로 국가를 운영하니 서구와 주변국들과 충돌하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런 국수주의적 중국인들의 견해는 올바른가? 개인적으론 많이 회의적이다. 몇몇 주장들은 분명 예리한 지적이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런 수준으로 중국식 시스템을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와 1:1 대결을 하면 질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을 가졌고, 중국 주변국 거주자로서 중국과 좋든 나쁘든 많이 투닥거린 역사를 가진 시민으로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크게 네 가지 문제가 있다. 

1. 모호한 단어 사용 및 실증의 부족으로 인한 엄밀한 논의의 실종

좋은 단어들을 죄다 끌어왔지만 뜯어보면 무의미한 수사 수준인 게 많다. 한 예로, 이 책은 정치 제도를 볼 땐 서구처럼 민주 대 독재가 아니라 좋은 정치 대 나쁜 정치로 보자는데, 사실 서구건 중국이건 한국이건 인류 모두가 '좋은 정치'를 추구한다. 좋다는 것은 지향해야 할 것임을 언어적으로 함축하니까 당연하다. 그러니 좋은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건 '빨간 개미는 빨갛다'는 동어반복밖에는 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이상하지만 더 살펴보자. 좋은 정치는 민본주의에 입각하여 민생을 추구하고... 백성이 근본이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게 좋은 정치인가? 원래 인류 정치 대부분은 의식주 해결이 근본이며 목적인 게 아닌가? 그렇다면 중국의 정치는 그것들과 무엇이 다른가? 이 책엔 이런 식의 논리전개가 한둘이 아니다. 제대로 된 논증 없이, 하나마나한 수준의 논증이다. 물론 당연한 것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쓴 글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이 책은 도덕교과서 수준에 불과하다. .   

또, 서구와 중국의 정치제도를 비교하면서 중국의 우위를 주장하는 부분 상당수는 제대로 된 정량화 없이 사변적으로만 진행된다. 그래서 서구와 직접적으로 1:1 비교하면 승산이 날까 싶은 분야조차 '서구도 나름의 문제 있으니까 너네나 우리나 거기서 거기다!'는 억지스런 전개가 많이 보인다. 현능주의적인 정치제도가 서구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려면 일단 관료들의 효율성이나 부패를 수치화해서 미국과 중국을 1:1 비교하는 통계부터 가져오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하지만 저자는 제대로 된 통계 들지 않고 자기 시스템이 우월하다고만 한다. 물론 저자는 아직 중국이 개도국 탈출하고 미국 뛰어넘으려면 멀었다고 보는 입장이긴 하다. 하지만 비교해서 불리할 거면 그냥 '서구보다 우월하다'는 말은 하지 말던가. 우리는 '나름의 방법'으로 발전할 거다 수준이면 모를까, 되도 않는 부심 부리는 건 정말 추한 짓이다. 밑에서 언급할 요인들 때문에 더 추하기도 하고. 

2. 국가의 발전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국가 간 1:1 비교

1에서 파생된 문제다. 보통 국가의 경제발전 단계를 볼 때, (경제성장 초기에 기반이 잘 갖춰졌다는 전제 하에서지만) 저소득 시절에는 급성장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성장이 둔화된다. 이 단계를 넘지 못하면 그 유명한 '중진국 함정'에 빠지며, 이것도 되게 어렵지만 설사 이 단계를 무사히 넘기더라도 옛날만큼의 고성장은 불가능한 현실이 된다. 선진국 중 제일 경제성장률 높은 미국조차도 경제성장률 3%면 낮은 게 결코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서구 선진국과 중국 및 중국식 모델로 고속성장하는 개발도상국을 1:1 비교하면서 전자의 성장이 더디니 후자 모델이 전자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소리를 하고 있다. 이게 제대로 된 비교인가? 중국의 상대적 고속성장으로 중국의 상대적인 국력이 커졌다고 주장한다면 모를까, 서로 다른 상황에 있는 국가들 모델의 수준을 1:1로 비교하는 건 뭐하자는 건가 싶다. 이런 식이라면, 민주국가들이 평균적으로 독재국가들보다 잘 사니 민주화만 되면 무조건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저자가 그토록 비판하는 '서구중심주의적인' 결론도 낼 수 있다.   

3. 과도하게 국수주의적이고 오만한 역사관

중국의 위대한 문명형국가성을 너무 치켜세운 나머지, 비중국인으로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오만한 구절들이 많았다. 위에서 말한 '고대 문명 중 후대로 계승된 건 황하문명 뿐이라'는 사실관계조차 애매한 주장부터 시작해서, 중국의 위대한 철학적 신조를 가지지 못한 다른 민족 문화들은 폭력범죄가 성행하고 경제 발전이 더디다는 구절도 있었고,  찬란한 그리스 문명은 일개 소국이었으며 빨리 멸망했다는 이유로 평가 절하한 부분도 있었다! 6.25 때 미국이 먼저 위협했다며 북한을 도왔던 군사 개입을 옹호한 구절도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이 부분은 좋게 넘어가기 어렵다. 

서구의 계몽사상과 같은 근대성은 중국의 민본주의나 과거제도같은 개념에서 도출된 것이라며 중국에 공을 돌려야 된다던가, 그리스 문명이 이집트에서 온 거라면서 순수하게 서구의 것은 아니라는 부분에 이르어서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저자 말대로 중국 문명은 세계 최초로 통일왕조를 만들어 효과적으로 통치했다는 의의가 있고, 그 거대한 규모에서 나온 정치, 경제, 철학, 문화적 유산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 자체로 이미 위대하다. 중국 외 사학계에서 진지하게 취급받는지 의문인 중국판 환빠 주장까지 안 해도 충분하다.  

저자는 수도 없이 서구의 제국주의적 과거와 서구중심주의적인 편견을 반박하지만, 이런 수준으로 논다면 대체 저들과 다를 게 뭔가? 적어도 서구는 이런 면에서 어느정도 반성하고 극복하고 있다.    

4.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인 가치관

저자의 책을 읽으면 정치에는 경제성장과 국가 안정만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과연 인간들이 그런 물질주의적인 욕망 충족에 만족하는 존재였던가? 수많은 서구의 정치이론에 따르면, 생활수준이 올라가면 어느 순간부터 인간들은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 관용, 세계시민주의같은 탈물질주의적인 가치들을 읊기 시작한다. 지금 중국인들도 생활수준이 계속 높아지면 언젠가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 관용, 세계시민주의같은 '영혼이 깃든' 사회를 원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한국도 선진국치곤 물질주의가 꽤 심한 나라지만, 그래도 민주화 운동이 일어 민주화에 성공했고, 그 후엔 웰빙 열풍이 불었으며, 지금은 워라밸과 페미니즘이 유행할 수준의 탈물질주의적 기반은 갖춰진 나라다. 중국도 한국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국은 타 국가들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다. 내가 아는 국제적 가치관 조사에선 중국이 세계에서 제일 물질주의가 심한 나라로 뽑혔으니까. 하지만 이에는 댓가가 분명 따를 것이다. 적어도 진보적인 가치관들이 많이 들어온 서구 선진국들은 이 나라를 부정적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중국 정부는 일당독재와 인권 탄압으로 이미 서구 선진국에서 평판이 많이 나쁘다. 동북아 선진국인 한국과 대만에서도 별로 좋지 않고. 또 이렇게 되면 중국식 모델은 물질주의가 덜한 다른 개발도상국에선 안 통할 것이라는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물론 이 책이 옳게 주장하고, 더 나아가 서구사회가 잘못 판단한 주장들도 있다. 

1. 중국이 문명형국가라는 분석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중국은 그 자체로 서구 전체나 인도와 맞먹는 급의 대규모 문명이며, 세계 최초로 통일되고 중앙집권화된 제국을 건설했다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외에도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사상 등으로 전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투사한 위대한 존재다. 지금의 중국의 독특함은 그런 수천년의 역사의 반복이자 연장일지도 모른다. 한국과 대만과는 달리 국력이 너무 커서 국제적인 압박으로 정치체제를 무너트릴 수 없는 거대한 나라니. 압박을 시도했다가는 중국에 압박'당할'것이다. 중국은 그 규모를 통해 그 자체로 보편인 거대한 체제를 만들었을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자유민주주의가 인류 역사의 최종 단계라는 도발적인 주장은 중국 앞에선 틀린 소리였을지도...    

2. 저개발국에 민주주의는 해로울 수도 있으며, 경제발전 및 안정엔 중앙집권형 독재가 나을 수도 있다는 분석

실제로 비서구 개발도상국들 중 선진국까지 성장하거나 그 길을 그대로 밟는 국가 절대다수는 강력한 독재국가에 의해 경제발전을 한 나라들이다. 한국, 대만은 이를 위해(?) 한때 독재정치의 길을 밟았으며, 중국과 싱가포르, 베트남은 현재진행형으로 독재체제이다. 일본도 독재정치까진 아니었지만(적어도 세계 2차대전 후에는) 자민당이 장기간 집권하고 및 관료주도경제를 통해 강한 국가주도경제를 운영했다. 세계적으로 제일 성공한 경제발전사례였던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전부 중국식 중앙집권형 독재 시스템 하에 가능했다. 절반의 성공이지만 스탈린 시대의 소련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평가받는데, 다 알다시피 이 때 소련은 그냥 독재체제였다.

반면 인도나 필리핀, 러시아, 소위 '아랍의 봄' 국가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 상당수는 민주화에 (한때) 성공했지만 경제발전과 안정엔 별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도로 독재체제로 돌아가거나 무정부상태로 전락한 나라들도 많다. 이런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서구 선진국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대추구나 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집단들에게 악용되었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들은 민주주의이냐 아니냐에만 신경썼지, 실제로 민주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서구 안에서도 있는 반성이다. 이런 국가들이 중국식 중앙집권형 독재를 부러워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독재국가가 항상 경제발전과 안정을 잘 해내는 건 아니다. 북한이나 마오쩌둥 당시의 중국, 이디 아민 당시의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짐바브웨, 미얀마 등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위에서 소개한 반례들은 독재가 무조건 나쁜가?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들기엔 충분하다. 중국의 현재 시스템은 적어도 거기엔 성공했다. 그 이상으론 못 나가는 것 같지만. 



위에 길게 논박했듯 문제점이 많은 책이다. 개인적으론 6/10점 이상의 점수를 주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중국 정부의 공식 의견 비스무레한 걸 읽고 싶다면 추천한다. 서구사회의 시선이 아닌 중국 석학이 직접 쓴 책이니 '직접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데는 정말 좋다. 읽고 비평하는 건 다른 문제이니 말이다. 

덤으로 말하자면, 중국식 모델이 옳지 않으며 그런 게 용인될 세상이 두렵다면,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모델을 갈고 다듬어 매력적으로 만드는 전략을 쓰는 게 좋다. 요즘 개발도상국은 막론하고 서구 선진국에서조차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다. 실제로 저자와 후쿠야마 간 대담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옹호자 후쿠야마는 '아랍의 봄'이 성공적일 것이라 했으나 저자는 사회 불안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저자의 우려대로 되었다. 개인적으론 이 부분이 특히 아프게 다가온다. 진정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아낀다면 다들 자유민주주의의 매력에 안 빠져들 수 없게 괜찮은 자유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중국식 독재 모델을 물리칠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1. 이 부분은 중국 학자로서 자뻑이 과도한 편협한 견해로 보인다. 나일강 문명을 고대 이집트 문명과 완전히 단절시킬 수 있는가?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문명은 후대와 어느정도 단절이 있었던 게 맞긴 하지만.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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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 해보자. 왜 선진국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중시하고, 타국과 경제적/문화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저개발국과 외교할 때 인권을 그렇게 신경쓸까? 

선진국들 절대다수가 자유, 평등, 민주주의, 인권을 중시하는 서구권 국가들이라서? 물론 그런 문화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왜 식민지기에 피식민국에 대해 그리 모질게 굴었는지를 설명하지 못 한다. 서구 선진국에 계몽주의의 확산은 식민지들 독립시키기 전에 이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자국이 과거 다른 나라에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역사적인 부채감에서 비롯된다. 현재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피식민지였던 한국과 대만 정도를 제외하면- 식민주의기에 식민지인들 혹은 '이질적인 국민들'을 대상으로 인종주의적 인식, 이로 인한 권리 박탈, 수탈, 학살 등 계몽주의의 이상을 더럽히는 만행들을 저지른 역사가 남아있다. 

미국은 미국 토착민, 흑인, 세계 2차대전 당시의 일본인[각주:1]에게, 프랑스는 알제리와 아이티 인도차이나 등에, 영국은 아일랜드와 인도 미얀마 등에, 벨기에는 콩고에, 일본은 한국과 대만, 중국에 셀 수 없이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계몽주의의 화신처럼 군 이들이, 타국에는 반-계몽주의적인 방식으로 잔혹하게 굴었던 것이다. 이 아이러니함은 결국 계몽주의를 배운 식민지 국민들이 계몽주의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식민지에 저항하게 만들었고, 식민국들은 처음엔 탄압과 회유로 대응했으나 결국엔 세계 2차대전 전후로 식민지들을 죄다 독립시키고 만다. 이러한 기조는 자국 내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주축이 된 민권 운동이 일어나 흑인들의 권리가 크게 향상되었다. 

이로 인해 식민국들은 자국의 만행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적어도 옛날처럼 공식적인 자리에서 식민주의나 인종주의를 정당화하지는 못하게 되었으며, 식민주의적 인식에 대한 비판을 다룬 탈식민주의는 인문학에서 큰 조류로 부상했다. 주지하다시피 제일 극적인 사례는 독일이다. 나치 시절 세계 최악의 인종주의적 학살국가로 전락했던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등 '타국 과거사 청산의' 모범국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물론 국가 차원의 사과는 홀로코스트에 국한되었으며, 독일 식민지였던 나미비아에서의 학살 등엔 사과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래도 독일이 과거사 청산으로 돋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러시아나 일본처럼, 타국에 대한 억압으로 가득 찬 과거사를 가졌는데도 성의있게 사과하거나 사과하려는 기미도 안 보이는 나라도 있는 게 현실이니. 

이렇게 선진국은 타국의 모범이 된 자유민주주의, 화해와 협력과 같은 진보적인 면모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역설적이게도, 위선 속에서 저지른 과거의 수치스러운 역사 덕분에 그와 아주 대조되는 성취를 얻은 것이다. 물론 최근엔 서구사회에서도 포퓰리즘과 같은 위험한 배타적인 움직임이 감지되었고, 정치적 올바름과 인권 개념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아직은 가치 자체가 훼손된 정도까진 아니다. 


그런데 개발도상국들은 그런 역사적 부채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타국에 영향력을 행사해 과오를 저지를 국력도 없었고, 행사했더라도 '계몽주의'라는 위선 속에서 저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국이 타국에 식민화되어 많은 것을 잃었다는 피해의식만 가득하다. 정치적 올바름, 인권과 같은 개념이 서구만큼 크지 못한 주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려면 자기들이 잘못했으며 잘못할 수 있다는 인식이 먼저 퍼져야 하는데, 그게 도통 이루어지질 않으니. 

이는 력이 커졌을 때 위험해지기 딱 좋은 발상이다. 자국이 타국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타국과 교류할 시 뻔뻔하게 나서거나, 약소국을 압박하거나 심지어는 전쟁범죄 등 여러 만행을 저지르는 외교를 할 위험성이 있다. 

현재 중국이 아주 좋은 예시이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서구 선진국과 달리 타국에 과오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계속 선전하는 중이다. 골치아프게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 반박하기도 어렵다. 티벳과 위구르 문제가 생각나긴 하지만 거긴 '일단은' 타국이 아니니까... 청나라까지의 타국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갖고 오기엔 전세계적인 일이었고, 서구처럼 계몽주의적인 위선 속에서 한 것도 아니니... 중화사상에 역사적 부채감의 부재까지 더해지니 주변국에 함부로 굴어도 된다는 오만한 인식이 생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 인식의 결과가 현재 중국의 뻔뻔한 외교이다. 

아마 전세계적인 경제성장이 계속되면, 중국과 비슷한 인식을 가진 개발도상국들이 국제정치의 장에 부상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뭐가 잘못인지도 모른 채 뻔뻔하게 외교를 할 위험성이 높다. 우리는 그런 국가들의 부상에 대비해야 한다. 

  1. 일본 제국에 동조할지 모른다며 수용소에 가두었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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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은 단순히 개도국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행위 그 이상이다. 개도국에 예상되는 기후 변화의 피해를 줄이는데도 성장이 필요하다.

1. 경제 성장은 기후 변화에 대비할 자금과 인프라를 만들어낸다.  

2. 경제 성장은 보통 1차 산업의 비율을 낮추고 도시화를 촉하는데, 이러한 변화는 기후 변화에 노출되어 생기는 피해를 줄인다. 

내용 출처: 윌리엄 노드하우스, 『기후 카지노』, 황성원 역, 한길사, 2017


갑자기 생각나서 올려본다.

1은 예전부터 알았던 건데, 2는 좀 생경하게 다가왔다. 생각하면 당연한 거지만. 

'생태계 붕괴와 멸종의 시대인데도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고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UN에서 하소연했으나, 그녀 주장의 전제와는 달리 기후 변화의 시대에도 성장은 필요하다. 어쩌면 기후 변화의 시대라서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선진국이라면 몰라도 개발도상국들은 아직도 많은 성장이 필요하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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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우파들은 복지를 확대한다고 하면 곧바로 그리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꼴 날 것처럼 반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만 맞는 이야기다. 단순히 복지 확대한다고 그리스, 베네수엘라 꼴 나진 않는다. 북유럽 국가처럼 복지 시스템을 가지고도 잘 돌아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물론 북유럽 모델도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다른 나라는? 북유럽보다 확실히 낫다 할 나라가 몇이나 될까? 

북유럽 국가의 성공과 그리스-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의 실패라는 대조에서 볼 수 있듯, 복지국가 그 자체는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지 않는다. 복지 시스템을 국가 능력에 맞게 운용할 줄 아는 역량이 진짜 나라의 흥망을 좌우한다. 그 국가적 역량에는 크게 4가지가 있다. 

1. 생활수준 및 조세부담률에 걸맞는, 방만하지 않은 복지 시스템 운용하기 

2. 인구 구조, 경제 성장 등을 고려해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3. 비효율성 및 탈세/부패로 인한, 복지로 발생할 잠재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4. 특정 기득권만이 아닌 모두를 포용하는 복지 시스템 만들기.

슬프게도 그리스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복지 시스템은 1-4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그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다. 

 그리스는 여러 통계와 경험담을 종합할 때, 선진국 최악 수준으로 탈세 및 부패가 만연하였다. 또한 EU에 가입하여 자국 화폐(드라크마)에 비해 과도하게 고평가화된 유로화를 이용하여 복지제도를 운영하였다. 심지어 경제의 방만함을 감추기 위한 통계 조작도 서슴치 않았다. 또한 공무원이 전체 노동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이들은 소득대체율 100%[각주:1]에 달하는 연금을 받는 등 공공부문의 방만화가 심각했다. 태초부터 지속 불가능했던 시스템은 주지하다시피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붕괴되고 만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설명은 다음을 참고해 보자. 

라틴아메리카는 두 가지 영역에서 부진하다. 첫 번째는 평등이다.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에 있어 세계에서 첫손에 꼽힌다. 일부 국가에서는 21세기 들어 불평등 지수가 약간 나아지고 있지만, 불평등의 연혁은 놀랄 만큼 오래 되었다. 두 번째의 열악함은 법치주의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인기 없는 지도자들을 내칠 수 있는 선거제도와 민주적 책임성을 묻는 제도는 비교적 잘 갖추고 있으나, 정의 실현 정책은 대체로 변변치 못하다. 이는 빈약한 사회보장에서 높은 범죄율, 제 기능을 못하는 사법부, 약하거나 안전하지 못한 재산권,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비리 방치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점을 포괄한다.

이 두 가지 현상, 불평등과 약한 법치주의는 서로 관련이 있다. 법치주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매우 소수의 권익만을 지키는, 다시 말해서 대기업을 경영하거나 노조에 속한 사람들만 챙겨주는 경향이 있다. 페루, 볼리비아, 멕시코에서는 무려 60 내지 70퍼센트에 이르는 국민이 이른바 비공식적 부문에서 살아간다. 이들은 대개 무허가 건물에서 살고 미등록 상태로 일한다. 그들은 고용되더라도 노동조합의 일원이 되지 못하며, 따라서 공식적인 노동권 보호를 받지 못한다. 많은 브라질 빈민들은 '파벨라'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데, 이곳은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다. 파벨라에서는 사적인 심판이 이루어지고 조직 폭력단이 마음대로 사람들을 처벌한다. 법이 불공평하게 적용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부추겨지고 있는데, 파벨라 빈민가의 사람들은 대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파벨라에서는 집에 투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기 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범죄에 희생되어도 경찰에 도움을 청할 수 없다. 

이런 불평등의 원인은 찾기 어렵지 않다. 대체로 상속이다. 구 엘리트의 명문 귀족들은 대개 대지주이며, 대농장을 운영하고 그 부를 대대로 물려주는 일에 성공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여기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재정 정책이 이 불평등은 더욱 심화시킨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인 나라의 재정 제도는 대체로 부유한 국민에게서 가난한 국민에게로 소득을 재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누진세제(미국의 경우처럼)나, 소득 지원과 사회보장 지원을 해주는 방식(유럽의 경우처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반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재정 제도가 소득 재분배 역할은 거의 하지 않으며, 오히려 노조에 가입한 공공 부문 근무자나 대학생들 같은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소득 보전을 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공식 부문의 노동자들과 모든 유형의 엘리트들은 자신의 혜택과 보조금을 지킬 수 있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탈세를 하고 있다. 개인 누진세가 시퍼렇게 날이 선 미국과는 달리,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개인에게서는 세금을 많이 거두지 않는다. 부유한 라틴 아메리카인들은 자신의 실소득을 숨기거나 세금 징수의 손이 미치지 않는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데 능하다. 그것은 소비세, 관세, 부가가치세 등의 세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잔뜩 부과된다는 뜻이다.

- 프랜시스 후쿠야마, 『정치 질서의 기원』, 함규진 역, 웅진지식하우스, 2012, p.392-394

[각주:2]

중남미 세금 체계의 역진성을 보여주는 짤. 

위의 파란 정사각형이 세전 빈부격차(지니계수)고, 밑의 군청색(OECD)/빨간색(라틴 아메리카) 직사각형은 세후 빈부격차다. 보다시피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세전 빈부격차는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심한 편 정도에 불과하나, 여타 OECD 국가들과는 달리[각주:3] 세전-세후 빈부격차 차이 즉 소득의 재분배 효과가 거의 없어 세후 빈부격차는 OECD보다 훨씬 심한 수준으로 악화된다. 이렇게 제 기능을 못하는 복지제도는 결국 라틴 아메리카를 불평등으로 악명높은 지역으로 만들었다. 


위에서 보았듯, 한 국가가 복지국가를 원한다면 일단 해당 국가가 복지제도를 제대로 운용할 역량이 있나를 점검하고, 그게 증명된 후에도 시스템을 지속가능하고 부패/탈법행위로부터 자유롭고 복지정책이 모두를 포괄하도록 잘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국가는 그리스-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의 길을 밟을 것이다.

물론 한국은 복지국가를 한다고 문자 그대로 그리스,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의 운명을 되풀이하진 않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력이나 정치적 시스템은 미흡해도 이들 국가들보다는 확실히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유럽 국가들보다는 확실히 뒤떨어지며, 프랑스보다도 조금 낮고 이탈리아, 에스파냐, 포르투갈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 국가는 그리스나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과도한 공공지출, 방만한 복지운용, 경제활력 둔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이 만약 일찍이 복지국가화를 했다면 삶은 더 여유있을지 몰라도 이탈리아, 스페인 꼴이 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그리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화의 우려는 괴담일지 몰라도 이탈리아, 스페인화의 우려는 제법 현실화 있는 경고인 셈이다.  

사실 위 인용문에서 라틴아메리카의 구조적 결함 이야기를 했는데, 물론 거기보다는 확실히 약하지만 한국도 자유롭지 못한 문제들이다. 과보호받는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 과도한 복지의 보편화로 인한 빈곤층에 대한 약한 사회보장성, 선진국치곤 약한 법치주의와 재산권 보장은 한국도 가진 문제다. 그렇기에 복지국가 역량 문제가 더더욱 뼈저리게 다가온다. 라틴아메리카의 확실한 실패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진정한 복지국가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이런 문제를 점검하고 개혁해낸 이후에 복지국가화를 완료해야 한다.  


+ '한국은 국가의 복지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족주의를 강화해서 가족에 복지를 떠넘겼다'는 식의 주장이 보이는데, 위에 설명한 이유로 황당하게 느껴질 뿐이다. 선진국 인정받는 지금도 타 선진국에 비해 부실한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을 가졌는데, 생활수준도 낮고 정치 사회시스템이 더 엉망이었던 70-80년대에 복지국가화를 했다면 문자 그대로 그리스, 아르헨티나 꼴 났다. 아니 거긴 옛날엔 한국보다 확실히 잘 살았으니 베네수엘라화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베네수엘라와 달리 석유는 없었으니 자원의존성의 관점에선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1. 일하나 은퇴해서 연금받으나 들어오는 월급이 똑같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2. https://anticap.wordpress.com/2014/04/05/chart-of-the-day-322/ [본문으로]
  3. 스위스나 한국 정도만 예외다. 그나마 이 둘은 세전 지니계수라도 낮다는 데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는 다르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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