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사실만 나열해도 충분히 깔 수 있는 사안을 

왜 굳이 과장,왜곡 심지어 조작하면서 까는 풍토다.


한국 노동시간 긴 거 솔직히 사실이다.
실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취업 쉽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었던 80~90년대를 그리워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여자라는 이유로 겪는 불합리한 불이익이 있는 거 맞다.
한국 자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한국 현역병에 대한 처우 솔직히 너무 열악하다.

이런 테제들은 통계와 사례들로도 충분히 도출해 낼 수 있다. 
이런 사회문제들 비판하는 덴 공개된 자료만으로도 깔 거 무궁무진하다.
신빙성 있는 근거로 충분히 설득력을 갖고 비판할 수 있다. 
이렇게 까도 사람들 많이 공감할 것이다.


왜 이런 문제들을 굳이 과장, 왜곡, 조작하면서까지 까야하냐고.


외국엔 장시간노동이나 야근이 '아예 없다'고 하질 않나.
현재 생활 수준이 80/90년대보다도 낮다고 하질 않나.
한국의 여성인권이 인도보다도 낮고, 임금격차 36% 전부를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덜 받는다'고 해석하질 않나.
한국 자살률이 높은 걸 청년 실업으로 해석하질 않나.
타 징병제 국가들은 죄다 최저임금 맞춰주고 병영부조리가 없다고 하질 않나.
(참고로 위 다섯 주장은 모두 '확실히' 틀렸다)


더 웃긴 건 저 주장들의 과장, 왜곡, 조작을 지적하면 
'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쓰잘데기없는 트집이나 잡는 놈'으로 취급한다는 거다.
그리고 내 의도를 왜곡한 맹렬한 비난들이 이어진다. 
심지어 나는 저 주장의 큰 틀에는 동의하는 사람인데도 비판을 거부하는 셈이다. 


아마 주장을 자극적이고 주목 잘 받도록 만드려고 이러는 것 같은데.
과장, 왜곡, 조작이 일상시되는 풍토는 비평의 수준을 낮춘다.
어쨌든 당신들이 이야기한 건 '사실'이 아니게 되니.
그러다보니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대한 논쟁이 아닌,
주장의 사실성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만 촉발시킨다.

원래 사회 비평의 의도와는 백만광년 멀어진 반응이다.
이것이 당신들이 원하는 반응이었는가?


요즘 사회비평 글들은 이런 식의 글들이 너무 많다. 
심지어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딴식의 헛소리를 자꾸 접하다보니 점점 짜증이 쌓인다. 

당신들의 과장, 왜곡, 조작하는 태도는 사회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발 자중하길 부탁한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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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식은 거칠고 소홀하며 허위에 가득 차 있고 태만한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국의 역사에 대해서조차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상(=한국)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국을 분석하는데 당위와 연역과 도덕과 외과수술적인 언설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내재적으로 자국을 이해하려고 하는 소수의 성실한 언설은 부당하게 무시되거나 경멸되고 있었다.


- 오구라 기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조성환 역, 모시는 사람들, 2017, p.251-252


이 점에 유의하면서 한국의 (경제학, 사학) 연구자들이 보이는 공통의 결함을 지적하자면, 그들은 한국의 경제체제를 제약하고 있는, 그것의 비교적 특질을 깊숙이 각인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역사로부터 물려받은 비공식적 제도와 규범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적절한 관심조차 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중략)... 한국경제의 유형적 특질에 대한 국내의 논의가 경험적이라기보다 규범적이며, 전체적이라기보다 부분적이며, 심층적이라기보다 표피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음도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 이영훈 엮음, 『한국형 시장경제체제』,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p.25


(자칭) 지식인들이 쓴 한국사회 비평을 보면서 한숨나왔던 적이 많았는데, 그 이유를 위 두 구절이 너무나 잘 요약한 것 같다. 둘이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거 보면, 나와 비슷한 감상을 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보기에, 한국 지식인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가(How the world should work)'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이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How the world really works)'는 별로 논하고 있지 않다. 설령 논하더라도 그 수준은 별로 높지 않다. 개연성, 설명력이 떨어지거나, 근거로서 든 예시들의 사실관계가 틀려먹은 경우가 허다하다. 

'왕은 인의에 기초하여 정치를 하여야 한다',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적인 판단으로 구성된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일까.



물론 과거 한국은 빈곤과 억압으로 점철되었기에 당위적인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한국은 부패한 정치인, 빈곤, 독재 등의 거대악이 존재하는,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사회였으니. 그 요구를 정치인들이 받아들인 덕에 한국 사회가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처럼 거대악도 없고, 복잡한 사회에서 당위만 운운하는 건 문제다. 당위에 사로잡히면, 사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 소홀해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기 십상이다. 또 자기들끼리는 통할지 몰라도 남이 보기엔 터무니없는 도그마에 빠지기 쉽다. 이는 세상을 당위에 맞게 개선시키는 데 방해만 될 것이다. 



이제 한국 지식인은 당위를 일단 제쳐놓고, 자국을 엄밀하고 실증적인 방식으로 연구할 때가 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한국을 연구해볼 생각이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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