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미국이 21세기에도 현재와 똑같은 형태로 존속할지는 분명치 않다. 미국은 다민족 사회이기 때문에 독일과 일본처럼 보다 동질적인 사회에 비해 깨지기가 쉽다. 1992년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게재된 제임스 커스의 글에 따르면, 민족국가 사회는 대규모 징병제도에 의한 군대와 표준화된 공립학교 제도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해 '다문화적 국가체제'는 전적으로 지원병에 의존하고 첨단기술을 갖춘 군대를(나는 경쟁관계에 있는 가치관을 가르치는 사립학교들도 포함시키고 있다) 특징으로 한다. 그런 다문화적 국가체제는 국제언론매체와 오락산업이 '국내 정치세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문화 속에서 작동한다. 바꿔 말하자면 민족국가란 모든 구성원이 비슷한 노선에 따라 교육받고, 국민이 지도자를 본받으려 하며, 모든 구성원(최소한 모든 남성)이 혹독한 군복무를 체험하는 공간, 그럼으로써 애국심 고취가 쉽게 되도록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 로버트 카플란, 『무정부시대가 오는가』, 장병걸 역, 코키토, 2001, p.72-73.


 구절 자체는 민족국가와 다문화국가를 대조하는 부분이지만, 민족국가를 설명한 구절을 보니 너무 한국 이야기라 깜짝 놀랐다. 아마 한국처럼 위 구절들을 적확히 맞추는 나라를 찾기 힘들지 않을까.


1) 민족국가 ->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동질적인 인구구성을 가진 나라다.

2) 엄격한 징병제 -> 기형적인 수준이라 문제가 될 정도.

3) 지도자를 본받고자 하는 마음 -> 가부장적인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박정희적인 마인드는 적어도 기성세대엔 강하다. 

4) 표준화된 공립학교 -> 굳이 설명이 필요한가?

 

예전부터 어렴풋이 생각하던 내용인데, 

한국은 피식민 국가 중 민족국가로서 제일 성공한 케이스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문제라면 저출산 고령화와 이민, 징병제와 과도한 입시교육에 대한 반발 등으로 이런 체제가 지속되기 힘들어보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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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의 평화가 오래 지속되면 비극적 역사에 대한 기억이 없는, 따라서 지혜가 부족한 지도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 지도자들이 역사적 경험 부족을 진지한 독서로 메울 것 같지도 않다. 오락과 편리성을 숭배하는 장기간의 평화는 갈수록 천박한 지도자들을 배출할 것이다. 대중사회인[각주:1]은 지배하는 동시에 지배를 받을 것이다. 이런 어린애 같은 지도자들은 지혜보다 전문성을 중시하는 풍토 때문에 지혜로운 보좌관을 곁에 두기도 어려울 것이다. 장차 평화시의 지도자들을 보좌하는 사람들은 '과학의 사제단'을 위시한 사회과학 분야 전문가들일 것이다. 그들은 난해한 특수분야 논문이나 전문용어에는 익숙하지만 위대한 철학들에는 문외한들이다. 미국의 국내적 평화가 60년쯤 계속된 후 젊은 백악관 보좌관들의 사고방식이 어떨지를 생각해보라. 그러면 평화가 60년간은 지속된다 해도 61년째에는 깨질 수밖에 없을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천박한 지도자와 보좌관들은 지혜와 경험의 부족으로 결국 끔찍한 계산 착오를 범해 전면전을 초래할 수 있다. 20세기 초의 역사적 경험은 이런 비극적 역사의 자기수정 사이클이 여전히 작동중임을 보여준다. 나폴레옹 전쟁 후 수십 년간 지속된 유럽의 평화는 과거에 대한 비극적 감각이 결여된 통치자들을 낳았고, 그들은 결국 휘청거리며 제1차 세계대전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 로버트 카플란, 『무정부시대가 오는가』, 장병걸 역, 코기토, 2000/2001[각주:2], p.194-195. 





첫째문단은 완전히 현실화됐고, 둘째문단이 어떻게 되느냐가 관건인데... 제발 둘째문단처럼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19년 전 나온 책인데도, 현 시대를 놀라울 정도로 통찰력 있게 서술하는 책이라 더 불안해진다. 


책 읽다 이렇게까지 소름끼친 건 오랫만이다.

  1. 개성을 잃고 매스미디어의 영향을 받는 사람. [본문으로]
  2. 현지 출판 기준. 한국어판 출판은 2001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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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밑엔 지하실이 있다는 걸 깨닫고, 

어지간한 비참함, 부조리함, 잔혹함엔 익숙해져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흔히 개도국의 사회문제 하면 전쟁, 빈곤, 독재, 부패, 인권 탄압, 후진적인 가치관 등을 떠올린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문제가 개도국 국민들의 일상생활 곳곳에 포괄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건 모르는 것 같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한국인들은 위 발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일단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근데 단순한 분노를 넘어섰다.


이 짤은 인터넷의 '사탄조차 거를 발상' '사탄 1패' '사탄: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같은 사탄 드립의 기원이 되었다. 

도저히 사람xx가 할 발상이 아니라, 악마의 대명사 사탄도 거르지 않겠느냐는 소리가 나올 급의 미친 발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적어도 한국인들은 저런 말도 안 되는 발상엔 격렬하게 반발한다.




그런데 저런 사탄도 거를 일이 일상생활에 버젓이 벌어지는 나라가 있다면 어떨까?



위 짤처럼, 공무원의 이름[각주:1]으로 '없던 규정도 만들어서' 약자들을 갈취하는 부패문화는 인도, 베네수엘라, 카메룬 같은 개도국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공무원의 횡포에 저항하면 어떻게 되냐고?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 다음 그냥 경찰서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 경찰서에선 무자비한 고문과 열악한 구치소가 기다리고 있다. 누명을 벗을 수 있다고? 재판 한 번 걸리는데 몇 년이 소요되고, 사법부가 노골적으로 경찰 비호 안 한다는 보장이 없는 나라에선 쉽지 않다. 



 

개도국 국민들에겐 미안한 소리일 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은 현실이 픽션보다 더하다는 슬픈 예시였다. 


개도국을 곤궁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끔찍한 현실부터 인정해야 할 것이다. 

  1. 원 글에선 공무원을 '사칭'하므로 실제 공무원이 저러는 개도국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거 말고는 완전 동일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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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서는 공영TV라는 곳에서 반정부 시위대 신상을 털고 앉아있고,


출처: https://www.reddit.com/r/europe/comments/an6302/polish_national_tv_releases_info_about_protesters/







헝가리에서는 지속적인 권위주의 행보로 프리덤하우스 자유지표가 '자유로움'에서 '부분적으로 자유로움'으로 한 단계 내려갔는데[각주:1], 정부가 거기에 반박한답시고 올린 공식성명 내용이



"프리덤 하우스는 소로스[각주:2]의 지원을 받는 소로스 제국의 일원으로서, 소로스의 선거 캠페인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헝가리가 이민자의 국가가 되지 않으려 결정했다고 그는 다른 소로스 조직과 함께 헝가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의 개인적 의견도 아닌 공식성명으로 음모론 설파하고 앉아있다. 


공식성명으로 음모론 풀어대는 곳은 공산권이나 이슬람권 국가나 하는 지꺼리로 알고 있었는데, 볼 때마다 놀랍다. 헝가리가 구 공산권 국가이긴 했었지만...



출처: https://www.reddit.com/r/europe/comments/ando2m/hungary_and_serbia_fall_to_partly_free_status_on/

http://www.kormany.hu/hu/miniszterelnoki-kabinetiroda/hirek/reagalas-a-freedom-house-jelentes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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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나 헝가리가 포퓰리즘으로 망가져간다는 소식은 많이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포퓰리즘은 이래서 무섭다. 

달콤한 말을 해준다고 아무나 뽑으면, 겉으론 나라가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속으론 완전 곪은 나라를 만들 것이다. 


EU는 민주주의적 제도, 차별금지법 같은 것을 가입 선결조건으로 내세울 정도로 자유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연합이다.   

저런 국가들을 그냥 냅뒀다간 EU의 정당성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다. 하루빨리 저 국가들을 제재해서라도 포퓰리즘의 광풍을 막아야 한다. 

  1. 헝가리는 EU 회원국인데, EU 회원국의 프리덤하우스 자유지표가 '부분적으로 자유로움' 이하로 내려간 건 이번의 헝가리가 최초라고 한다! [본문으로]
  2. 헝가리 출신의 억만장자 금융투자가이다. 유대인인데다,, 세계적으로 재단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서구적 가치를 후원하고 있기 때문에, 반유대주의자나 우파 포퓰리스트들에게 온갖 정신나간 음모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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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읽다 흥미로운 구절이 있어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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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 간의 경쟁 관계는 소위 ‘조선족 혐오’가 아닌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동포 노동자들이 적잖은 일자리를 장악해 나가는 이유는 일을 더 싸게 하기 때문”으로 “내외국인 간 임금 격차를 없애야 이런 경쟁도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독일이 통일될 때 서독 노총에서 요구했던 게 동독 노동자들에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이었어요. 안 그러면 값싼 동독 노동자에게 모든 일이 쏠리고, 노동자들의 지위도 함께 지키기 어려워지기 때문인 거죠.” 모든 노동자의 처우에 대한 개선을 해나갈 때 내외국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함께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보는 다문화 가정 지원 방법론도 비슷하다. ‘다문화’로 별도 구획을 해 특정 지원을 해나가기보다는 보편 복지를 통해 많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도록 하자는 것. 박 교수는 “소위 다문화 지원을 하겠다면서 한 학급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만 뽑아 놀이공원으로 현장 학습을 보내 주는 식의 거친 지원이 너무 많다”라며 “이를 보는 다른 가난한 집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냐”고 꼬집었다.


“우리 사회에는 ‘다문화 가정 아이는 당연히 차별받는다’라는 환상이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의 어려움은 대부분 ‘다문화 가정’이라서가 아니라 ‘빈곤 가정’이라 발생한 것들이에요. 보편 복지로 빈곤 가정, 위기 가정을 적극 보살피면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죠.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다문화 가정 친구를 차별하면 안 돼요’라고 가르칠 게 아니라 ‘친구를 차별하는 건 나쁜 거예요’라고 가르치면 될 일이죠.”


출처: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122189036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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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에 100% 동의하진 않지만 발상 자체가 흥미로웠다. 

기사엔 외노자와 다문화가정 이야기만 나오지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 보인다.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소수자의 정체성에 몰두하기보단 보편주의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라... 

소수자의 정체성에 몰두한 정책은 다른 사회적 갈등만 양산시킬 뿐이다.



그러고보니 작년에 읽었던 불평등 관련 서적 구절이 떠오른다.

 실존적 불평등[맥락 상 집단 간 존재하는 자율성, 존엄, 자유, 권리 등의 불평등을 말한다]에만 외곬으로 초점을 맞추는 접근법이 항상 유익한 것만은 아니며 때로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 감소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데 성공하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따른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1차적 목표가 성별이나 인종 간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라 하더라도 전반적인 소득 불평등의 감소를 추진하는 편이 좀 더 바람직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이 시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수평적 불평등[집단 간 존재하는 불평등]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편, 전반적이고 일반적인 불평등을 방치하는 접근법을 취한다. 

 실존적 불평등의 해소에만 매달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적어도 세 가지는 있다. 첫째, 집단 간의 차이에 대한 논의는 곧바로 정체성 정치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변화를 일으켜야 유리한 집단끼리 뭉쳐 국민이 분열될 수 있다. 다양한 집단이 스스로의 상황에만 초점을 맞춤에 따라 공동 전선이 무너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집단의 불만이 해소되면 다른 집단의 곤경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둘째, 실존적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면 근본적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성매매의 합법화에 대한 논의를 예로 들어보자. 여성주의자를 비롯한 많은 이가 성매매를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로 간주하며 이를 금지하거나 성매매 종사자에 대한 교육을 통해 그만두게 하거나 주로 남성으로 이루어진 매수자를 처벌함으로써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성별이라는 틀에 얽매인 접근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음성화될 뿐이다. 또한 성매매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헛수고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예나 지금이나 성매매의 근본 원인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다. 이 세상에는 소득이 높은 남성과 가난하고 일자리를 얻을 가망이 보이지 않는 젊은 여성이 많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성매매가 국가적으로나 (섹스 관광에서 보듯이) 세계적으로나 극성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관건은 성 불평등 해소에 치중하기보다는 성매매의 경제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있다. 남성과 여성의 수평적 소득 불평등이 해소된다고 가정해보자. 여성의 졸업률이 남성을 앞서고 점점 더 부유한 여성이 늘어남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성 매수자의 90%가 남성이고 성 노동자의 90%가 여성인 현실이 성 매수자와 성 노동자가 '공평'하고 '성별 중립적'인 분포를 보이는 상황으로 뒤바뀔 가능성이 있다. 성 매수자나 성 노동자나 남녀 비율이 반반으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성매매 반대론자들은 이러한 성과에 만족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성매매가 성별로 균형적인 것으로 바뀐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통해 성매매 문제의 근본 원인이 남녀 소득 격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셋째, 실존적 평등은 정치적으로 비교적 손쉽게 추구할 수 있는 일이다(물론 보상도 크지 않다).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실존적 평등을 추진하면 우파 정치인과 보수주의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할 일도 없다.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의 기본 구도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실존적 평등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의미 있는 변화를 내기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법적 평등을 이루는 단계까지만 염두에 둔다. (중략) 정체성에만 치중하는 이들은 모든 사람을 동일한 출발선 위에 올려놓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그 선 위에 선 사람이 페라리 안에 있는지, 자전거를 타고 있는지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들의 임무는 모든 사람을 동일한 출발선상에 올려놓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들이 임무 종료를 선언한 바로 그 순간에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 『30년 세계화가 남긴 빛과 그림자 -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브랑코 밀라노비치 저, 서정아 역, 21세기북스, 2017, p. 305-308.

읽으면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왜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생각을 해 보니,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이 사회적 차별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경제적 하류/빈곤층의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각주:1] 빈곤/불평등 정책은 곧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을 위한 정책이다. 정체성 언급 없이도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는 셈이다. 


물론 불평등/빈곤 해결도 세금이 걸린 문제라 해결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문제의 복잡성과 극단주의자들 때문에 제대로 된 논의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 사회적 소수자/정체성 이슈보단 훨씬 쉬울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체성 놀음은 파면 팔수록 노답이라는 결론밖엔 안 나오는 것 같다. 


  1. 높다고 한 건 예외가 있어서이다. The Economist에 따르면 레즈비언은 이성애자 여성에 비해 소득이 더 높다고 한다. 임신 자체가 불가능해 임신으로 인한 소득, 승진, 커리어상의 불이익이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레즈비언이 이성애자보다 강자라 보긴 어렵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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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구의 인종주의자[각주:1]들과 달리, 한국인 인종주의자는 진지하게 자기 인종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는 않음.


미국, 캐나다, 호주, 서북유럽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진지하게 자기 민족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자기들이 제일 잘 살고, 세계에 '진보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전파하는 게 사실이니까. 

자기 민족이 최고라는 사고가 올바른지는 둘째치고, 충분히 그런 주장이 말 되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백인우월주의는 이런 현실 속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한국은 우월한 면모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국인 인종주의자들은 한국인이 최고라고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수사이거나, 한국인에게는 한국적인 것이 최고라는 신토불이 정신 혹은 북한과 자주통일을 이루자는 민족주의적 수사에 불과하다. 한국인이 백인, 일본인보다 우월하다는 글이 적게나마 있긴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도 진지하게 한국인이 최고 우등 인종이라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다. 한국이 저들보다 뒤쳐졌어도 이런 면에선 낫다는 일종의 정신승리적인, 열등감의 발로일 뿐이다.


한국은 일제통치와 분단, 6.25 전쟁으로 극도로 빈곤해지고 자존감을 잃어버린 과거가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은 미국, 일본을 롤모델로 삼고 배우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서구, 일본의 것=우월한 것이며 백인, 일본인=우월한 인종이라는 도식이 생겨났다. 그렇게 한국인은 백인, 일본인보다 아래니, 한국인은 그들의 위대한 문물과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발상이 도출된다. 한국인이 자랑스러운 인종이긴 하지만 백인, 일본인만한 존재는 아닌 셈이다. 


현재 한국은 서구와 일본의 수준을 많이 따라잡았지만, 완전히 따라잡지는 못했으며 과거에 생긴 가치관은 관성적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인종주의자조차 대놓고 자기가 백인, 일본인보다 우위라고 생각하진 않으며, 오히려 그들의 선진성을 본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2. 한국인은 국가위상이 올라가면서 인종차별의 절대적 피해자에서 절대적 가해자 쪽으로 빠르게 전이 중.


이건 한국 인종차별이 타국보다 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3.에서 보듯 그렇게 볼 여지도 있지만. 그보다는 위에서도 말했듯 한국이 많이 발전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종차별을 할 수 있는 권력/위치에 올라섰다는 뜻이다.


나는 신좌파들의 무조건적인 구조 타령에 신물 난 지 오래지만, 인종차별에 구조적인 요소가 크게 작동한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다. 인종차별은 구조상 갑인 사람이 저지르기 쉽다. 쉽게 말해서, 고용주 한국인이 노동자 중국인에게 "짱깨"라 부르기가 노동자 한국인이 고용주 중국인에게 짱깨라 부르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런 짓을 해도 잃는 게 더 적으니까. 물론 나는 후자의 시나리오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으며, 그 점에서 나는 신좌파들과 일부 의견을 달리한다. 하지만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빈도가 높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인은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인과 일본 정부에게, 해방 이후 미국과 독일에 이민갔을 땐 백인과 해당국 정부에 많은 차별을 받아왔다. 이는 과거 한국의 신문/문학작품에 많이 나타나 있다. 당시 한국인은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빈번했다. 

그러나 한국은 생활수준이 많이 올라가 굳이 그 고생을 해가며 백인/일본인 밑에서 일할 일은 많이 줄었다. 대신 한국이 해외에서 중국인(조선족 포함), 동남아 외노자들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그들을 차별하는 케이스는 많이 늘어났다. 이제 한국인은 피해자보다는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3. 극우정당의 존재나 혐오범죄같은 극단적인 수준의 인종차별은 적지만, 그보다 덜한 수준의 차별과 혐오는 심각함.


전자는 현재 서구사회 상황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한국은 갱단 문화, 폭력 시위, 마약 유행 현상이 적은데서 볼 수 있듯 문화가 온건하다보니, 인종주의적 사고가 혐오범죄까지 가는 일은 별로 없다. 또 극우정당이 득세할 정도로 외국인 비중이 높지도 않고.  


후자는, 외국인 비하발언에 대한 터부가 서구보다 약한 데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선 되놈, 짱깨라는 비하어를 대놓고 말하는 경우가 흔한데, 적어도 서구사회에선 공적으로는 그런 발언을 했다간 100% 징계감이다. 흑형처럼 '비하표현까진 아니지만 해당인이 불편하게 여길만한 표현'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고.  

아마 한국인이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고,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같은 인종주의 비판 담론이 학계든 언론이든 뜸한 편이라 그러지 않을까 싶다. 한국인이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된 역사가 짧기도 하고. 그리고 곧 언급할 4.의 요소도 있다.



4. 한국은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과거사와 국가분쟁으로 타국에 대한 반감이 생기는 경우가 빈번한데 그게 해당 국민에 대한 인종주의적 사고까지 번지는 경우가 흔하다.  

 

중국의 미세먼지, 중화패권주의로 인한 반감이 "착짱죽짱[각주:2]"같은 표현으로 번지고, 일본에 대한 역사적 악감정으로 일본 지진 피해자에게 "쪽바리들 잘 죽었다!"고 악플 다는 거에서 볼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다. 서구 선진국 중 이스라엘 정도를 제외하면 동북아시아나 그 이상 급의 화약고에 위치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 간 대립이나 분쟁은 거기에도 있지만, 그래도 한국-북한, 한국-일본, 한국-중국 급의 수준은 아니다. 프랑스-독일 간의 라이벌 감정이 심하다지만 적어도 과거사 문제가 상당수 해결되었으며, 두 국가 모두 한국급의 군사무장을 하지도 않으며, 문제 많다지만 형식적으로나마 EU에서 같이 활동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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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국의 인종주의는 서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모를 많이 가지고 있다. 


최근 신좌파 계열이 유행하면서 한국사회의 차별과 혐오에 대한 담론이 늘어난 느낌인데, 다 좋지만 한국 사회를 분석할 땐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좀 많이 감안했으면 좋겠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한때 "한국 학계의 서구의존성"을 성토하는 담론이 많이 나왔었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회의적이지만, 인종차별 같은 문제는 확실한 '탈-서구의존적인' 분석이 필요할 때이다. 

좋든 싫든 간에 한국은 서구와는 다른 환경과 역사를 가져온 사회인데, 인종차별 문제는 그게 강하게 드러나니까. 


또 무조건적인 강자-약자 도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강자와 약자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며, 약자라 해서 아무 언행이나 강자에게 해도 되는 건 아니다. 모든 윤리가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윤리는 보편적이다.  

백인/일본인이 한국인보다 강자라는 이유로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쪽바리"라 부르고, 백인들더러 "한국 여자들과 섹스하려 안달 난 양키들"이라 부르는 게 정당화될 순 없지 않은가? 




  1. 흔히 인종차별주의자로 부르지만, racism의 직역은 인종주의이다. 그리고 인종차별주의라는 단어는 반복하기엔 너무 기므로, 인종주의라는 단어를 스겠다. [본문으로]
  2. "착한 짱깨는 죽은 짱깨 뿐이다"의 줄임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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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상대더러 남자로 산다는 것, 수도권에 산다는 것, 비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의 특권을 인정하라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미국 PC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니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국제 좌파의 새로운 트렌드인가 싶다.


개인적으로 특권이 존재한다고 본다. 여자로서 치안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 비수도권의 열악한 인프라, 특별한 일 없으면 외출도 못하는 장애인의 리스크는 정말 크고, 직접 여자/비수도권 거주자/장애인이 되지 않으면 인지조차 힘든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꼴갑떤다는 생각밖엔 안 드는 게, 그들에게 21세기에 살며, 한국 국적을 가졌다는 특권부터 인정하라 하면 인정은 커녕 화부터 낼 것이기 때문이다.


왜 감사함을 느끼라는 걸 강요하는거냐, 구조적 억압이냐 하며 난리를 피우는데, 

그게 바로 니들 행동이 남들에게 비춰지는 모습인 건 꿈에서도 모르겠지?



+ 참고로 한국에서 남자/수도권 거주자/비장애인으로 사는 특권보다 21세기에 살며, 한국 국적을 가졌다는 특권이 훨씬 크다. 전자의 특권이 없으면 삶의 질이 나빠지거나 기껏해야(?) 인간다운 삶이 어려운 정도라면, 후자의 특권이 없으면 문자 그대로 생존만 하거나 그 생존조차 위협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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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확실한 저성장 고소득국가다. 


욜로와 소확행 신드롬에서 보이듯 자기 행복을 위해 여행과 물품에 돈을 쓸 수 있고, 여유시간을 보낼 수 있고, 어찌보면 사소한 것들에 만족한다는 건 고소득국가 국민들의 삶의 단면이다. 이걸 자연스레 여기는 청년들이 많겠지만, 사회에 여가 및 소비문화가 활성화되야 이런 삶의 양식이 가능한데, 생활수준이 일정 이상 높아져야만 가능하다.[각주:1]


반면 욜로와 소확행 신드롬은 계층이동이 어려워지고 '미래의 내가 지금보다 잘 살 것이다'는 희망이 없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면도 있다. 그게 가능하다면 굳이 욜로와 소확행을 찾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더 나은 가족과 나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말지. 이건 저성장국가 국민들의 삶의 단면이다. 


아 신드롬을 청년들이 행복을 알았다며 대단한 것인 양 격찬하거나, 아니면 청년들의 암울한 현실을 암시한다며 개탄하는 것 모두 현실을 반쪽만 보는 사람들이다. 

욜로와 소확행 신드롬은 고소득이라는 한국 사회의 명(明), 저성장이라는 한국 사회의 암(暗)이 동시에 공존하는 현상이다. 

  1. 당장 한국에 해외여행이 유행한 게 언제부터인지 생각해 보자. 한국인이 어느정도 먹고살수 있는 1990년대 초반부터 한 번 유행했고, 확실한 선진국이 된 2010년대 초중반부터 다시 유행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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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예체능이 폐쇄적이라는 수준으로만 알고 있는데, 그 폐쇄적인 이유를 포함해서 부조리 문제를 자세히 써보자면.



1. 예술처럼 정답이 없거나 체육처럼 신체를 이용하는 예체능 특성상, 누구나 똑같이 가르칠 수 있는 보편적인 커리큘럼을 만들기 어렵다. 코치만의 독특한 철학, 노하우와 기술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한 도제식 교육으로 갈 수밖에 없다. 


=> 클래식 애호가로서 말하자면, OOO 귀국 독주회 같은 데 가서 연주자 프로필 보면 'OO으로부터 사사받았다'는 말이 반드시 나온다. 이런 프로필이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 이전에, 선생 한 명 한 명이 예술가에게 굉장히 중요한 존재임을 암시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프로가 되기 위해 스승에 의존하는 구조에선 스승이 제자를 통제하고 갑질을 부려대는 현상이 발생하기 쉽다. 물론 세상엔 좋은 스승도 많지만, 스승이 대놓고 나쁜 짓을 시도했을 때 막기가 참 어려운 구조다. 특히 법적이나 사회적인 제재 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면 더 그렇다. 



2. 집단 활동이 필수적인 예체능 분과가 많다보니, 집단을 규율할 수단이 필요하다.


=> 문제는 이런 통제 시도가 손쉽게 갑질, 똥군기, 가혹행위로 전락하기 십상이라는 거다. 한국의 군대문화나 권위주의적인 위계질서 특성상 그런 잠재력이 충분하다. 

초등학교 시절에 수영 강습을 받은 적 있었는데, 하루는 한 강사가 수영장 반대편에서 무슨 일인지 수강생들을 야단치고, 수강생 한 명 한 명씩 엉덩이에 수영용 킥보드를 날려서 경악했던 적이 있었다. 저들은 왜 이런 데서까지 단체기합을 받아야 했을까? 다른 사람들 다 노는 수영장이라 저들이 수영 선수들도 아닐 것이다. 평범한 수강생들에게도 저랬으니 수영 선수들에겐 오죽할까.



3. 진로를 상대적으로 어릴 때 정하고, 오로지 예체능에만 전념하다보니, 예체능계를 떠나면 먹고살 길이 없다.


=> 그러다보니 스승이 성폭력을 저질러도 굶어죽지 않으려면 참을 수밖에 없다. 오랜 연습이 필요한 예체능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는데, 엘리트교육은 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4. 종사자가 적은 예체능 분과가 많고, 이 경우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 '카르텔'이 형성된다. 이는 1.에 의해 더 심해진다.


=> 부조리에 항의하거나 내부고발을 하여 구성원 누군가에게 '찍히게' 되면, 바로 그 집단에서 왕따가 되고 만다.  




심석희가 조재범을 고발했다는 뉴스 보고 생각나서 써 봤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옴부즈만이나 신문고 제도를 운영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체능계의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도제식 제도를 없애거나 집단생활을 제한한다면 자칫 예체능 활동의 기반을 파괴할 수도 있다. 집단 구성원이 적다고 규제할 수도 없고, 엘리트체육 폐지하는 것도 부작용이 있고....  



+ 대학원생 인권 문제와도 겹치는 사항이 많은 듯.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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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10년간은 그럴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국내외적 배경을 설명하자면..... 


1. 경기불황과 불평등. 민심이 흉포해져서 극단적인 발상들이 인기를 끌기 쉬워졌다.


2. 인권을 앞세운 서구사회의 상대적 몰락. EU는 붕괴를 걱정해야 할 참이고, 미국은 고립주의 노선을 타고 있다. 그 상태에서, 인권을 내세우지 않는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이 상대적으로 부상했다. 타 국가들이 이를 인권이 주도하는 세계의 몰락으로 생각해도 할 말이 없다.


3. 세계화 시대와 인터넷의 부작용.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모두가 서로의 문화를 알아가며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근데 그 과정에서 '세계화로 우리 자랑스러운 문화나 가치관이 멸종될 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우리 문화'를 수호하고 타 문화를 배척하자는 정서가 커지는데, 그 과정에서 종교 극단주의, 동성애 혐오, 여성 차별, 권위주의와 같은 '인권 후퇴를 불러올' 문화들까지 우리 것이라며 부각되고 재평가되기 시작한다. 인터넷의 발달은 군중심리와 부족주의를 자극하여 이를 보다 용이하게 한다.


4. 유명무실한 국제사회. 중국이나 미얀마, 시리아 등의 명백한 인권 유린에도 무기력한 UN을 보라. 인권을 지키려는 착한 국가라면 모를까 나쁜 국가들이 인권은 개나 줘버리는 걸 막을 수가 없다. 미국이 고립주의 노선을 타면서 이는 더 심해질 것이다. 


5. 인권 개념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문제. 한 예로, 유럽 선진국들은 인권을 지킨답시고 이주민을 무작정 받아들이고 시민권을 적용했다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보통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보통 1만 언급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큰 관점에서 봐야한다고 본다. 인권의 후퇴는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합쳐져서 생기는 문제이다.  

어쨌든, 이래서야 인권을 지킨다는 게 손해라는 인식만 생긴다. 이런 불안한 잠재성은 국내외 여러 민족주의, 포퓰리즘 운동이 부상하면서 표면 위에 드러나고 있다.


물론 모든 부분에서 인권이 열악해지진 않을 것이다. 인권의 몇몇 부분은 확실히 향상될 것이다. 점점 많은 국가들이(아직은 절대다수가 서구 선진국이지만)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으며, 사우디조차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고 운전을 허용하며, 여성할례 실시율은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다. 인권 개념은 세계 많은 국가에서 깊게 뿌리박혔기에, 인권이 아주 심하게 망가지는 일은 없을 거라 장담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인권이 나빠지는 건 피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이민자의 지위는 약화될 것이며, 몇몇 국가들은 민주정에서 독재정치로 후퇴할 것이며, 지정학적으로 불안한 지역 몇 군데는 전쟁에 휩싸일 것이다. 또 문화적 정체성을 명목으로 문화적인 악폐습이 더 강해지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새해부터 뭔 우울한 예측인가 싶지만,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상 거기에 맞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당분간 국가 단위로, 개인 단위로 각자도생이 불가피해 보인다.



+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근래 몇년 새 인권을 중시하는 좌파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그들의 주장이 맞냐 틀리냐는 둘째치고, 그저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만 들 뿐.

인권에 관심 가지자마자 인권이 후퇴하는 꼴을 봐야 한다니 참...

Posted by 유월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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